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9. 30. 02:35

토이 - 그럴 때마다

아침에 이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리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그냥 편하게 잘 불러지는 멜로디에 속을 뻔 했지만, 이거 절대 단순한 상황이 아니다!!
일단 가사를 보시라. 아시는 분들은 좀 흥얼거려 보기도 하시고.

반복된 하루 사는 일에 지칠때면 내게 말해요
항상 그대의 지쳐있는 마음에 조그만 위로 되줄께요
요즘 유행하는 영화 보고플땐 내게 말해요
내겐 그대의 작은 부탁 조차도 조그만 행복이죠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늦게 잠에서 깨 이유없이 괜히 서글퍼 질 땐

그대 곁엔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
오랫동안 항상 지켜왔죠 그대 빈자리
이젠 들어와 편히 쉬어요

혼자 밥먹기 싫을땐 다른 사람 찾지 말아요
내겐 그대의 짜증섞인 투정도 조그만 기쁨이죠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누군가 만나서 하루종일 걷고 싶을땐

그대 곁엔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
오랫동안 항상 지켜왔죠 그대 빈자리
이젠 들어와 편히 쉬어요


정말 구김살없고 따뜻한 노래인데... 어쩐지 이상하다.
짝사랑이라는 것.. 짧은 기간에는 사람을 들뜨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길어지면 사람을 반쯤 말려죽이는 몹쓸 병이 아니던가?
이 남자는 오랫동안 그대의 빈자리를 지켜왔댄다. 헌데!
오랫동안 짝사랑을 해 온 사람이 어찌 이리 구김없이 주저없이 자신에게 다가와 달라는 말을 할 수 있냔 말이다..
게다가 저렇게 '딱 남자친구가 생각날 만한' 상황에서 자기를 떠올려 줄 것을 확신하는 걸 보면,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걸 보면 꽤나 가까운 사이같은데..?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
1. 사실은 그렇게 상사병으로 바작바작 마를 정도로 오래 기다린 것이 아니다
-> 그렇지만 이렇게 소심 내지는 섬세한(?) 남자가 몇 주 좋아한 거 가지고 '오랫동안'이라면서 법석을 떨 것 같지는 않다.
2. 한때 바작바작 말라버렸으나 최근에 소생했다(?)

아무래도 두 번째 시나리오가 유력한 것 같다.



일단 그는 그녀와 가까운 사이다.
오랫동안 그녀 주변을 맴돌아온 순애보 중 순애보. 사실 그녀에게 직접적인 프로포즈를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속만 타들어가던 찰나, 그녀가 그를 새롭게 보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이유는 모른다.
좋아하던 남자에게 차였을 지도 모르고,
사귀던 남자랑 헤어졌을 지도 모르고,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점점 그의 지극정성에 탄복하게 된 것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이제서야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단지, 자신을 변함없이 아껴주는 좋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달리 좀 더 다정해졌음을 눈치채게 된다.
놀란다. 왜 갑자기 달라졌는지야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기뻐한다.
그녀가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그는 사라진 줄 알았던 희망을 다시 품게 된다. 혼자서 쌓아왔던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가기 시작한다. 자기를 저버린 것 같았던 세상이 이제 그녀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된다.

자, 좀더 시간이 지난다.
자기 전에 그녀와 통화하는 것이 점점 그의 일상이 되어간다. (사실 이쯤 되면 충분히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
가끔씩은 전화 끝에 용기를 내어 '좋아해' '사랑해' 등의 간지러운 말도 슬쩍슬쩍 끼워넣어 본다.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녀는 적어도 전화를 확 끊어버리거나 싸늘한 말로 분위기를 깨버리거나 하진 않는다.

이제 결정타를 날릴 때가 머지 않았다.
그녀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든든한 존재인지를 역설하고,
그러니까 이제 내게 와라...라고 강력하게 어필해야 할 시점!!



...이 노래의 남자는 바로 지금 이런 상태인 것이다!!!!
아아, 정말로 복잡한 시츄에이션 아닌가? -_-
강력한 프로포즈가 되어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저렇게 젠틀한 것은 저 남자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이니 뭐라 토 달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