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10. 4. 02:37

희망의 원리

..... 그렇지만 이러한 어이없는 쇼크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바가 있다. 즉 열일곱 살의 나이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공상을 했으며, 의형제와 같은 우애를 지니려 했고, 얼마나 자주 산 위의 공기를 마시려 했는지, 또한 지금의 젊은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궁금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산 위의 공기는 돌풍으로 가득 차 있다. 산 위의 공기를 마시는 젊은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불명확한 시기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데 따라 이리저리 이끌린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기껏해야 몇 명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천부적 재능에 대하여 기뻐하고, 그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직업 선택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뿐이다. 많은 젊은 처녀들이 영화배우를 꿈꾸며, 많은 청년들이 지금까지 장터에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기발한 직업을 뇌리에 떠올리지 않는가? 이는 거의 일반적인 갈망 내지는 (그 방향에서) 허황한 꿈일 뿐이다.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어떤 재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갈망은 다행히 오랫동안 보존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충동은 특히 사춘기의 시기에 무언가를 창조하게 한다. 즉 그림을 그린다거나 글을 쓰고, 음악에 심취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음의 사실이다. 즉 젊은이들이 갈구하는 모든 일들은 현실화되고 이행될 때 거의 수축된다.
청춘기의 이러한 특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그대로 반증해 주고 있다. 즉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불길이 타오르고 있듯이, 그들은 예술에 대하여 커다란 열정을 지닌다. 그러나 누군가가 만약 예술의 본질을 파악해 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무미건조하게 변할 뿐 아니라, 한 가지 측면마저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오그라들게 된다. 이 시기에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쉬우며 잘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쓰는 것은 무척 어렵다. 말하자면 끓어오르는 열정을 지닌 젊은이가 창출해 내는 것은 <마치 오그라들다가 타버린 듯이 말라비틀어진 자두와 같은> 열매로 출현할 뿐이다. 베티나 폰 아르님은 평생 동안 이러한 청춘의 특성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언제나 바로 그 점을 드러내려 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표출하고자 하는 내용을 거의 편지 형식을 통해서 표현했던 것이다.
청년기 문학 운동의 또 다른 형태는 일기 형식이다. 그것은 정당한 이유로 어떤 감춰진 형태로 평가되지만, 때로는 감춰진 무엇을 전달하는 데에 무척 적당한 장르이다. 어른들 가운데 더러는 젊은 시기에 일기를 쓰고, 이를 소중하게 보관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기장에서 자신의 깊은 감정의 수위를 측량하기 위하여 어떤 척도를 세우려 했다고 할까. 사랑, 우울, 어떤 싹트는 상 그리고 애벌레와 같은 사상 등 모든 것이 거기서 채취되고, 출발로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청년기의 꿈은 결코 김빠진 것은 아니지만, 번거로울 정도로 고혹적으로 빛날 뿐이다. 이 시기는 불행하고도 성스럽게 작용한다. 그렇지만 용맹하고 오색영롱한 삶, 고매하고 폭넓은 삶을 갈구하는 젊은이의 태도는 거의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정의로운 청년은 언제나 기사와 같은 젊은 의지를 지닌다. 그렇기에 청년은 극복해야 할 모험들, 발견해야 할 아름다움 그리고 쟁취해야 할 위대함을 열망하곤 한다.
젊은이가 처한 삶은 이와는 너무 멀리 동떨어져 있으므로, 멀리 위치한 꿈들은 아름답게 장식되는 법이다. 젊은이들은 멀리에 위치한, 그러한 꿈에 매혹될 뿐 아니라, 자신을 더 이상 은폐시키지 않은 채 그 꿈을 박차고 나온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더욱 가까이 다가올수록, 젊은이들은 더욱더 격렬하게 행동한다. 멀리 위치한 꿈은 이제는 마치 저녁에 자그마한 소도시로 데려다 주는 기차와 같은 부호로서 족할 뿐이다. 이를테면 시골에서 상상하는 대도시의 머나먼 공간이다. .....


딱딱한 껍질에 싸인 두꺼운 놈으로 무려 5권이나 되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블로흐가 누구냐면, 당연히 나도 잘 모르지만-_- 마르크스주의랑 유토피아랑 그런 것들에 대해서 연구한 사람인 모양이다. 또 한가롭게 서가를 누비다가 빤딱빤딱한 하얀 표지가 그럴 듯 해서 업어왔다.

내용도 어렵고 문체도 불친절해서(아니 이렇게 심각하게 추상화시킨 문장들만 적어놓으면, 읽는 사람은 이걸 끊임없이 현실의 무엇에 대입시켜야 할 지를 고민하며 읽어야 한단 말이다! 내가 그런 훈련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나마 저 부분은 상당히 친절한 축이다.) 1권만이라도 다 읽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책이지만 이 부분은 꼭 갈무리해두고 싶었다.
사실 저걸 읽고 쓴웃음을 짓는 동시에 심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내가 하고 있는 짓들이 젊은 날의 치기라 이거지...-_-^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저자의 시니컬한 시각이 어줍잖은 딜레탕트들을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뭐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이 갈망(?)이(세상에 목마르다고 표현하는 것까지 이제 찔리게 생겼어-_-) 오래가지 않을거라는 그의 예언에 위안을 삼아야하나, 아니면 젊을 때는 으레 그런 것이지-라고 변명하는 데에 써먹어야 하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