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욱이 담배를 꺼내물더니 말했다.

"네 소설에 나오는 너랑 찐하게 섹스하는 남자, 영훈이는 정훈이 맞지? 내가 아니지? 정훈이랑 그런 관계라는 거 지금은 이해해줄 수 있어. 난 너하고는 키스밖에 안 했잖아. 뭐라고 해야 할까. 기분이 이상하더라. 나는 널 정말 사랑했는데 소설에는...... 왜 내가 너를 겁탈하는 거처럼 나오니? 그건 정훈이 아니니? 근데 또 이핼 할 수 없는 게 캐릭터를 보자면 영훈이란 남자는 나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게 뻔한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거니? 난 내가 그렇게 파렴치한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그건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야."

소설은 허구야. 거짓말이라구. 이미지는 이번에는 이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상욱과는 두 번 키스를 했지만 정훈과는 키스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신 이미지는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소설의 캐릭터들은 분명 어떤 모델들로부터 창조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사람의 특징들이 모자이크처럼 합성되는 거라고. 다만 자신이 모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실제 인물들은 소설에서 단순히 몇 가지 일치되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을 모델로 이용했다고 분개하기도 감동하기도 한다고. 이미지가 상욱에게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하자 상욱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래, 소설가들처럼 불쌍한 존재도 없는 것 같다. 자신의 과거와 사생활마저도 대중들의 먹잇감으로 던져야 하다니. 사고로 죽은 아들 이야기를 가슴에 묻어두지도 못하고 결국 소설로 만들어내는 어떤 작가를 보고 참 작가들이란 무서운 존재들이구나 싶었어. 널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야. 나는 백 번 널 이해해줄 수 있어. 널 한때 되게 좋아했었고 세월도 이렇게 흐른 마당에, 인생이 뭐 별거냐. 다 이해해줄 수 있어. 너도 그게 직업 아니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상욱이 이미지를 바라보는 눈빛에 연민이 서려 있다. 이미지의 속에서 뜨겁게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술기운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말야, 좀 문제가 생겼어. 난 그렇다고 쳐. 우리 마누라 때문에 말이지."

상욱이 담배연기를 훅, 내뿜더니 좀 비굴해진 얼굴로 말했다.

"우리 마누라, 너하고 연애한 거 실제보다 더 심각한 걸로 예전부터 받아들이고 있었거든. 아마도 예전부터 클럽에선 우리 생각보다 더 찐한 소문들이 나돌았나봐. 네 소설 나오자마자 사서 읽더니 어느 날 펑펑 우는 거야. 내가 진실하지 못했다는 거지. 거짓말했다는 거지. 에전에 마누라 꼬실 때 마누라가 묻더라고. 이미지 선배와의 일 알고 있다고. 내가 그랬지.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그런데 이번 소설 읽고는 날 이제 믿을 수 없다고 이혼하겠다고 난리를 치더라. 사실 요즘 며칠째 냉전중이야. 이런 얘기 너한테까지 하기엔 뭐하다만 사실 내가 그 동안 사고치고 조용해진 지 몇 달 안 되거든. 껀수 잡은 거지 뭐. 그래서 말인데...... 어이 참 미안하다야."

상욱이 거칠게 술을 입에 털어넣으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럴 일은 아마 없겠지만...... 그러길 바라지만...... 하지만 그럴 기회가 있다면, 언제 네가 우리 집사람에게 진실을 좀 밝혀주면......"

- 권지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중에서

이렇게 막 가져다가 타이핑해도 되려나요... (안 되겠지요-_-) 그렇지만 그냥 요즘 생각하던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서, 가지고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한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데, 각자 구해서 읽으라면 아무래도 귀찮아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어쨌든 멋진 책이니까 정말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사서 보세요. ^^ [꽃게 무덤]이라는 책입니다.

어떤 책... 아마도 제목이 '서른'이었나 '서른 둘'이었나 '서른 셋'이었나 하는 책이었는데요. 책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겉장에 이런 요지의 말이 쓰여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창작된 허구의 인물들이며, 혹시라도 현실의 누군가와 닮아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저 위의 소설에서 하고 있는 얘기와 비슷한 맥락이지요. 작가는 미리부터 걱정하는 겁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들이, 소설 속 인물들을 작가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과 동일시하려 하고, 그로부터 여러가지 오해가 싹트는 것을요. 막 잔뜩 소심해져서는 저런 문구를 책 겉장에 써넣고 있는 작가의 기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아 내가 이런 쪼잔한 말까지 써야 돼? ㅠㅠ' 하면서요...;;;

소설가는 거짓말쟁이라고들 합니다. 거짓말을 잘하면 잘할 수록 훌륭한 이야기꾼인거지요. 그렇지만 때로는, 너무나 그럴 듯하게 거짓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그걸 진짜인 것으로 믿어버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할겁니다. 네,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그쯤 되면 작가는 혼란스러울 겁니다. 자기 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지, 사람들의 오해섞인 눈초리에 슬퍼해야 할지.
위의 소설 속 이미지는 이런 난처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도 주의하셔야 합니다. 권지예가 아니라, 이미지가 이렇게 말한 겁니다.) '허구는 숨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다. 허구는 변신했을 뿐이다. 어느 날 실재세계에 아주 위협적인 괴물로 나타났다. 이미지의 삶은 이제 소설 속 여주인공의 삶으로 간단히 규정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이 불멸의 오해와 그 아래 숨겨진 진실을 어떡할 것인가.'
소설가란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안도감이 듭니다. 아 역시, 글쓰는 건 고상한 취미로나 삼고, 소설가 따위는 꿈도 꾸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풋내기 습작 몇 개를 끄적거리면서도 벌써 이런 게 두려워지는데, 그 사람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반역>, 1928


이게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그 그림입니다. 아싸, 본 적 있는 그림이네요. 뿌듯합니다. 이 널따란 세상에서 아는 거 마주치면 또 희희낙락하게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 그나저나 이미지의 반역이라, 소설가란 인간들은 이렇게까지 치밀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미지'라는 이름은 중의적인 의미였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