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11. 28. 09:57

성공적인 KAIST 생활

또 <인간과 기계> 숙제입니다. -_-;;; 방금 구운 따끈따끈한 것.
성공적인 KAIST 생활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대한 짤막한 에세이예요.

지금은 오전 7시 22분, 스팍스 동아리방. 50평 남짓 되는 공간을 가득히 채운 형광등 불빛, 유쾌하게 웃으며 함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이 밤을 지새운 새벽이라는 걸 까맣게 잊게 된다.

LKIN screenshot - 강의평가 내역

방금 전까지도 나는 동아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핵심 프로젝트, LKIN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LKIN은 Lecture Knowledge IN의 약자로, 수강지식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학교의 모든 수강 과목들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이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다음 학기의 시간표를 미리 짜 볼 수 있고(그것도 대단히 편리한 UI를 통해서 말이다), 과목에 대한 알찬 정보들을 열람할 수도 있으며, 게시판과 자료실을 통해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 강의에 대해서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는 ‘로드, 학점, 남는 거’라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별점을 매기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 겨울부터 착수해서 3월부터 베타 서비스를 선보였던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꾸준한 업데이트와 개발을 거쳐 어느 덧 1900명이 넘는 가입자를 유치하는 사이트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며칠 전 학생들이 고대하던 대로 드디어 교무팀의 강의평가 자료가 공개되었을 때, 총학생회가 이것을 제일 먼저 우리 LKIN 개발 팀에게 전달해 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오늘 저녁, 그러니까 10시간 쯤 전, 우리는 총학생회로부터 강의평가 자료가 담긴 엑셀 파일을 받아들고 회의를 했다. 이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가공해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LKIN으로만 수십 번쯤, 동아리 회의까지 합친다면 골백 번은 이렇게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해 본 적이 있던 멤버들이라 진행은 순조로웠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마침내 과목사전 페이지에 강의평가 내역을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집어넣자, 홍보 겸 강의평가 공개 기념 겸 해서 iPod nano를 걸고 이벤트를 하자, 이렇게 할 일들의 목록을 뭉게뭉게 정하고 나서 의문을 던졌다. 그럼 이제 이 작업들을 언제 할 것이냐?

“그냥 오늘 밤에 끝내버리죠?” 한 녀석이 이렇게 말했고,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다. 강의평가 자료는 무사히, 그리고 아름답게 LKIN에 편입되었고, 경품 이벤트를 위한 로그 처리 시스템도 구축되었다. 처음은 아니다. 이렇게 하루의 밤을 활활 불태워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학교 때, 그리고 고등학교 때, 두 차례에 걸쳐 KAIST의 영재캠프에 참여하면서,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바라보며 가슴 벅차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KAIST에 가면 매일 밤새서 프로젝트도 하고 하루종일 학문에 관한 이야기로 입씨름도 하면서, 열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꿈에 어느 정도 가까운 경험을 겪어보았노라고 말할 수 있다. 왜 ‘어느 정도 가까운’이라는 말을 쓰냐면, 사실 매일같이 밤을 새면 곤란하지 않은가. 이런 경험은 가끔이면 충분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동아리 프로젝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그만큼 동아리 활동이라는 것이 성공적인 카이스트 생활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학할 때부터 선배들로부터 닳도록 들은, 대학 생활에서 꼭 잡아야 한다는 세 가지, ‘동아리, 연애, 학점’ 중에서도 동아리는 벌써 첫 번째로 꼽히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속한 이 컴퓨터 동아리, 스팍스의 활동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학업, 진로 설정, 인간 관계, 취미 생활 등등. 먼저 학업진로 설정에 대해. 이곳에는 시스템프로그래밍 동아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산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고, 전산에 관련된 학술 활동 또한 활발하다. 각종 세미나와 프로젝트를 통해 전산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들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전산이라는 분야 내에서도 또 자신이 갈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인간 관계이다. 뭐 이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과 나누는 정겨운 술잔 속에 피어나는 애정..... 아, 내일 회의 끝나고 나면 술 마시러 나가야겠다. 마지막으로, 생산적인 여가 활동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상당수는 여가 시간을 온통 게임으로 보내곤 한다. 물론 우리 동아리에도 게임에 열광적인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더 열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생산적인 여가활동 한다! 리눅스 서버를 가지고 여러가지 삽질을 하는 건 오랫동안 우리 동아리의 훌륭한 취미 생활로 권장되어 왔다. 처음에는 자기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더 나아가선 ara와 ska라는 비비에스 시스템을 운영하고, FTP 미러링이나 뉴스 서버 관리를 하기도 하고, LKIN과 같은 프로젝트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컴퓨터만 하다가 ‘전형적인 전산인의 체형 – 인격이 강조되는 몸매’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요 농구클럽이라든지 인라인타기 모임 같은 운동 소모임들도 있다.



팔불출처럼 동아리 자랑만 늘어놓았지만(사실 1년 동안 동아리 회장 + LKIN 팀장을 하며 감동받은 순간이 많다 보니 자랑이 길어져버렸다) 정리해보면 나름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일단 학업을 열심히 해야 한다. 여기서의 학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학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점이라는 수치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본기를 닦아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업에 학과 과목 뿐만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실질적인 경험이 동반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는 주로 동아리에서 이러한 경험들을 얻었지만, 동아리 말고도 아르바이트나 인턴 등의 기회도 많을 것이다. 둘째는, 인간 관계이다. 앞으로 학문을 함에 있어, 또한 삶을 살아감에 있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사람들을 얻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동아리 사람들일 수도 있고,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일 수도 있고, 교수님일 수도 있다. 연애라는 것도 일종의 인간 관계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셋째는, 인생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 자신이 평생동안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그 청사진의 일부이고, 또한 삶에 지칠 때마다 자신을 충전해 줄 멋진 취미 생활을 찾는 것 또한 그 일부일 것이다.

3학년도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나는 얼마만큼 성공적인 카이스트 생활을 하고 있을까? 자문하면서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 위에서 부지런히 언급한 LKIN은 http://lkin.kaist.ac.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LKIN screenshot - 과목사전 목록의 강의평가 파라미터 (배터리 잔량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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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심없이 50평이라고 썼는데... 가물가물하네요. 우리 동방이 몇 평이드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