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11. 4. 06:17

대략 일주일 일기

준기군의 가비야운 압박을 받고 일주일치 일기 올립니다. ㅋㅋ
생각 같아서는 스톡홀름 일기용 홈페이지 하나 열고 친절하게 사진도 하나씩 첨부해가면서 꼬박꼬박 올리고 싶지만요 사람 일이 어디 그렇게... (라고 말하고 자방한다)
하여튼. Observer's influence라고 하잖아요. pH를 측정하기 위한 지시약도 사실은 용액의 pH를 변화시키고, 광자의 위치가 또 어쩌고 저쩌고... (전공 아님돠 자세히 물어보면 자신없슴돠;;) 그런 것처럼, 일상을 기억하기 위해서 쓰는 일기도 사실은 일상의 일부로 떡하니 시간을 잡아먹고 있단 말이지요. 원체 뭘 끼적대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씩 그게 몹시 비합리적으로; 보일 때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 텔넷을 애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오버헤드가 가장 적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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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3일 (금) 05시 43분 01초
제 목: 막두 오다

월요일.
핀란드 헬싱키공대에서 교환학생 하고 있는 막두랑, 01학번 한 분. 바이킹라인 타고
스톡홀름에 왔다. 버선발로 뛰어나가기엔 너무 추웠고 대신 지금까지의 모든
코스에서의 개근 기록을 깨면서 Technical English 수업 째 주고 뚤레뚤레
중앙역으로 마중나갔다. 카이스트에서도 보기 힘들던 막두, 어찌나 반갑던지. ㅋㅋ

우리 기숙사로 데려와서 볶음밥 해 먹이고 맥주마시면서 한참 수다떨었다. 동네
이웃들은 '오오 이게 한국어구나' 신기해하고 '네가 요리한거냐' 기특해도 하고;;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요리해서 사람들 먹이는 거
예상외로; 꽤나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

화요일.
아침부터 막두 일행의 관광가이드 노릇을 할 예정이었으나 가이드 본인이 길을
잃어버리는 사태 발생. -_- 빗속에서 한참 헤매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초밥집에서
점심을 때웠는데 이때까지도 좀 양심이 남아 있어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역에서 감라스탄으로.. 그리고 또 박물관에서 박물관으로.. 다니는 사이
어느새 같이 좋아라 하면서(혹은 더 신나서;) 구경에 정신팔린 나를 발견.;
킁 나도 그 박물관 처음 간거란 말야-_- 근데 정말 왕궁이 너무 멋졌다 ;ㅁ;
..막판에는 저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기까지 한 두 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여자야 좀 쪽팔린 줄 알아라;;)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3일 (금) 07시 57분 45초
제 목: 할로윈

그렇게 막두 일행을 배웅(?)하고 난 화요일 저녁.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다리는 피곤했으나 코리도에서 할로윈 파티가 있다! 다시 불끈

할로윈이라고 별 걸 한 건 아니고 그냥 디너 각자 준비해서 다같이 먹기로 한
거였다. 살로메랑 같이 장 봐와서는 '가능한 모든 재료를 넣은 볶음밥'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난감. 사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줄리아가 또 실력발휘를 하는
바람에 나란히 놓인 우리의 요리는 어쩐지 안쓰러워 보였다. ;ㅁ;

그래도 초고추장도 만들고(토마토케첩이랑 고추장 1:1로 섞고 참기름 좀 섞으면
초고추장 되더라! 나 혼자 터득한거다 으하하) 한국서 공수해온 양반김도 꺼내고
끓는물만 부으면 되는 인스턴트 된장국도 준비했다. 냄새가 강한 편이라 사람들이
과연 먹을까 싶었는데 '일본 미소랑 비슷한거다'라고 했더니 불티나게 팔리더라.;;

"이 수프 미소랑 비슷하다고 했지. 근데 미소랑 뭐가 다른거야?"
"나한테 묻지마-_-"
"니가 설명한 그 김밥이라는 거 마끼스시랑 비슷한 거 같은데 왜 너네는 그걸
스시로 안 친다는 거야?"
"몰라. 생선이 안 들어가서 그런가-_-?"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삼..;;

하튼 그 사람들한테도 희한한 음식이었겠지만 나도 희한한 광경 좀 봤다.
사람들이 김에서 생선 냄새가 난다고 하질 않나. (바다 냄새라고 하잖아 우리는;)
옆에서 유레가 빵에 와사비 발라먹는 걸 보면서는 속으로만 경악하고 있었고 ㅋㅋ

안에 촛불 넣은 호박 가면 가지고 한참 놀다가, 노래 부르면서 흔들흔들 춤추다가,
사람들 성화에 못 이겨 트로트도 한 곡 뽑아주고.. 아참 여기서 노래 부를 때 몹시
안타까운 점은 사람들이 코러스를 넣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네 시간에 걸친 즐거운 파티가 끝나고.. 마티아스와 함께 차 한 잔
기울이며 난데없이 내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면서-_- 하루가 저물어갔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3일 (금) 08시 44분 22초
제 목: 채식 점심

할로윈 파티에 초대받은 답례로 유레가 점심에 초대했다. 이건 대접이라기 보다는
그냥 주방와서 점심 같이 요리해서 먹자는 것.

이 친구 채식주의자인데, 예전부터 '채식을 하면 얼마나 몸이 달라지는지, 얼마나
머리가 상쾌해지고 졸음이 덜 오는지' 등등 열심히 포교를 하더니만 오늘의 컨셉도
그런 거였다.
토마토 당근에 잘게 썬 파와 말린 바질을 뿌린 한 바구니 가득한 샐러드.
꼭 고기같은 맛과 질감이 나도록 만들어진 채소스테이크.
버섯과 콩으로 만든 파스타 소스.

으음 물론 나는 옆에서 뭐 깎으라는 거 깎고 썰라는 거나 썰었다. ^^;
근데 그 채소스테이크 정말 신기하더라. 진짜 딱 햄버그스테이크 같던데..

오랜만에 해가 무척 밝게 뜬 날이었는데 오후 네 시쯤 부터 해가 지기 시작했다.
후식으로 레몬티랑 케익 먹으면서 눈 쌓인 평원에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는데 참,
조용하고 서늘하던 그 풍경은 마치 지구 끝에 와 있는 듯한 느낌.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4일 (토) 05시 22분 24초
제 목: 여행?

12월 말에 어쩌면 동유럽 여행을 하게될지 몰라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중인데,
으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원래 여행이란 '그 지역 주민인 척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한 장소들 여기저기 바쁘게 들르고 다니는 그런 여행 왠지 안 내킨다.
그런 면에서 스톡홀름 교환학생 온 거 참 좋았단 말이다. 학교 갔다 버스타고
돌아올 때마다 마주치는 예쁜 거리라든지, 친구랑 자주 들르곤 하는 음식점이라든지.
그런데 그런 일상의 기억과 맞물려 있지 않은 장소들에서 사진 한 방씩 찍고 온다고
그게 내 인생 여정(?)의 일부가 될까.

뭐..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예쁜 거리 멋진 건물들 보면 또 홀딱 눈
돌아가서 '내가 한 말 당장 취소야!' 외칠지도 모르고.. 사실 마음이 썩 안 내키는
이유는 추운 날씨에 어디 돌아다니기 싫어서인지도. 진짜 학교 가는 것도 이렇게
추운데 과연 여행까지나 할 수 있을까.. 덜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