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슬로베니아에 와 있습니다. 몇 달 전 IT 벤처 회사 Zemanta를 창업한 친구들과 함께 있어요. 구글 취리히 가기 전에 할 일도 없는데 이 친구들이랑 '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좀 놀아보자...라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크크. 아래 보면 일 얘기밖에 없는 것 같지만-_- 회사 친구들이 하나같이 성격좋고 유머있는 녀석들이라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당. ^^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18 (금) 13:47:13
제  목: 슬로베니아 도착

집에서 나서서부터 정확히 19시간만에 도착했다. 금방 왔네 ㅋㅋ
내내 감기로 골골대다가 오느라 약간 걱정을 했는데 뭐 컨디션은 괜찮음.

그래서 하고 있는 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비비질-_-;;


아참, 날씨는 영상 8~10도. 냐하하 피한왔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19 (토) 16:42:14
제  목: 1/18

제만타에 첫 출근을 했다. 사무실은 유레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날씨가 너무나
따뜻한 고로 입을 일이 자주 없을거라 생각했던 회색 코트에 구두를 신고 나갔다.
도착하니 오전 9시.

지난 해 방문했을 때 봤던 친구들이 절반, 새로운(내지는 잘 기억 안 나는) 얼굴이
절반.
매주 금요일 10시에 있는 전사 회의가 마침 있어 다행이었다. 한 회사의 현재
상태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창업을 한 경력이 있는 알레스가 노련하게 회의를 진행했고, 다른
친구들도 사이버파이프에서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진지한 모습. 몇 가지 사안을
능숙하게 다루고 각자의 책임 범위를 다시 한 번 주지하는 것으로 회의가 끝났다.

CTO인 안드라슈에게서 1시간이 넘도록 전체 아키텍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유레는 프론트엔드의 팀장이었으므로 지금까지 내가 들은 것도 그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전체 구조를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일을 굉장히 멋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모로 놀라웠다. 수많은 모듈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이디어의 유망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모두 다 이루어져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몇 가지 할 일들은 명확히 보였다. 아이디어 자체에 포함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크리티컬한 백엔드 부분의 개선(이라 해야할지 새로운 구현이라
해야할지)이 남아있었다. 성능 때문에, 대부분 Python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C++로 교체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큰 이슈였다. 그러나 초기 개발 언어로 Python을
선택한 것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일단 이곳 개발진 모두가
익숙하며, 이런 프로토타입을 기민하게 개발함에 있어서는 아무튼 별로 흠잡을 데가
없는 언어인 것이다.
그외에 안드라슈는 내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했는데 내게 익숙한
주제이기도 했고 나름대로 도전적인 이슈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당장
시급한 부분 중의 하나인 것 같아서 이것을 맡기로 했다.
안드라슈는 Information Retrieval과 Machine Learning, Natural Language
Processing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알아듣는 키워드가 없자 약간
난처해하는 것 같았지만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줬다. 그가 말한 키워드들을
나중에 찾아보면서, IT 업계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미
구축해놓았고, 서로 다른 회사 간에 활발한 인터랙션을 통해 같이 엣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 "함께 기술을 개발한다"는 느낌은 무척 신선했다.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5유로에 근사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다. 여전히 물을 사 먹는게 아까운 나는 수돗물을 주문했는데 먹고
아직까지 별 탈이 없으니 앞으로도 그냥 마시면 되겠다.
지난 해의 방문과 비교해서 또 한 가지 크게 느껴진 차이점은, 이들의 영어가
예전보다 훨씬 알아듣기 쉬워졌다는 것이었다. 1년 동안 내 청취력도 나름대로
늘었겠지만, 그보다도 이들이 지난 6개월 동안 런던에 근거지를 두고 베를린,
브뤼셀, 스페인 등의 컨퍼런스를 오갔던 까닭이 클 것이다. 알아듣기 곤혹스러웠던
억양과 발음이 섞인 영어가 상당히 말끔해졌다. 이제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모두
영어를 쓴다는 것도 큰 배려였다. 지난 방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화를
하는 것이 편해졌다.
그런데도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밥 먹으면서 컴퓨터 얘기
하는 사람들로는 스팍스도 있지마는^^; 최근의 몇 가지 기술적 이슈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내게는 생소했다.

오후에는 안드라슈와 얘기한 것들을 곱씹어보면서 이것저것 문서를 읽었고, 유레와
이야기하며 내가 이번 방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의문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나서 보슈티안과 비용 문제를 이야기했고, 여기서 또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의문점이 해결되었다. 의논이 끝난 이후에는 그도 몹시 만족스러워
했고 나도 그랬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자(^^;) 보슈티안은 굉장히
유머감각과 눈치가 좋은 친구여서, 비용 문제를 얘기하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5시쯤 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퇴근을 했다. 알레스가 워크스테이션이
필요한지 랩탑이 필요한지 물었고, 나는 워크스테이션을 요청했다. 이미 내
노트북을 가져왔고, 컴퓨터까지 제공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큰
스크린이면 작업이 더 편할 것이다.

몇 친구들이 같이 배드민턴을 치러 가자고 했지만 신발도 없고 조금 피곤하기도
해서 집에 돌아왔다. 유레가 지난 6개월간 있었던 일들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상세히 설명해줬다. 난 투자에 대해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도 차근차근 설명을 덧붙였다. 창업을 하는 것은 이들도 처음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25 (금) 07:34:50
제  목: 1/24

아 오늘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날이다. 유레는 아파서 하루종일 누워있었으니
불편했겠지만 나로서는 덕분에 재택근무(?)를 즐겼으니. 두어 시간 낮잠도 늘어지게
잤고 엄청 맛있는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었다. (역시나 유레는 아프다고 해서 나혼자
실컷 먹었다 으하하)

지난 번에 받은 바이너리 지원 & 마이그레이션 업무는 어제부로 마무리가 되었고,
오늘 아침에, 아니 새벽 1시에(스타트업의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메일로 받은
새 업무는 대략 이렇다.

1. MySQL의 압축 기능을 이용해서 바이너리를 압축할 것. (변환 유틸을 비롯해서
그에 따라 모델 등 해당 테이블에 접근하는 코드들의 변경도 포함)

2. RSS 수집기를 멀티쓰레드 방식으로 고칠 것. 단 같은 서버를 동시에 마구
접근하지 않도록 해서..
(참고로 검색업계(--;)에서는 이걸 politeness, 10초룰이라고도 부른다.. )

아니 뭐 이런 것 쯤이야. 커밋 두 번으로 즐겁게 끝내주었다. (3,4번이 아직 남긴
했지만 어쨌든 ㅋㅋ)

한편 안드라슈는 철저한 테스트를 통해 어제에 이어 또 하나의 MySQL 버그를
발견하고 멍청한 MySQL을 마구 비난하는 커밋 로그를 남기며-_- 우회 코드를 썼다.
참고로 그 커밋 로그는 다음과 같다. '바보같은 바보같은 바보같은 MySQL!!!'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27 (일) 07:56:57
제  목: 1/25

오늘도 재택근무. 유레는 여전히 37도의 열로 고생하고 있었고 나는 어제 커밋한
코드에서 이상동작을 발견하고 고심하고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화창하다.

"산책이나 좀 해야 할까봐. 좀 움직여야겠어. 아 이거 하난 손 보고 나서. 굉장히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는데, 내가 Django 모델 하나를 변경했거든? 물론 DB 스키마도
SQL로 변경해줬고. 근데 그런 다음부터는 오브젝트를 업데이트 할때마다 전혀 다른
테이블의 필드가 초기화가 되어버린단 말이야. 어떻게 덮어써 버리나봐. Django쪽
문제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가. Django는 원래 이상해. 날씨도 좋고 해는 2시간 정도 뒤면 떨어질거야."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문을 나섰다. 야 날씨 끝내준다. 산책하는 부부며 가족들이
많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ㅎㅎㅎ

돌아와서는 버그 따위는 잊어버리고 피자를 만들어 먹고 유레 어머니랑 사이좋게
거실에서 TV 영화 한 편을 봤다. Meteor. 1979년작이네. 바보같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ㅋㅋ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27 (일) 08:35:41
제  목: 1/26

이상동작의 원인을 찾았다. 바이너리를 지원하기 위해 save()를 오버라이딩
했었는데, 그 함수에서 insert와 update를 구별하는 부분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update할 때마다 초기화가 일어났던 거였다.  기본적으로 그 코드는 안드라슈와
내가 번갈아 손보고 있었는데, 여러 번 수정을 하다가 어떻게 그 부분을 빠뜨린
모양이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내친김에 벼르고 있던 도메인 신청도 해치웠다.
내 개인 도메인이다. http://www.miraeon.com/
miraeon은 몇 가지 의미를 (굳이 부여하자면) 가지고 있는데:
1. Mirae online
2. ('꿈꾸다' 'dream on'의 느낌으로) 미래로 나아가다
3. ('전부의, 모두의'라는 뜻의 우리말 관형사 '온') 미래의 모든 것
4. ('이리 온~'의 느낌으로) 미래 온~

마지막 껀 물론 농담이고-_-
하여튼 짧고 간단하니 좋은 것 같다.

오후에는 유레 어머니가 시내 구경을 시켜주셨다. 사실 작년에 몇 번을 돌아봤던
곳들이지만 일 년이 지나니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유레 어머니 설명이 훨씬 더
친절했기 때문에 즐겁게 관람을 했다. 구시가지는 슬로베니아의 건축가 Plecnik의
건축물로 가득했다. 교회에도, 다리에도, 시장에도,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주랑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내가 몹시 감탄한 정교한 처마 장식은 유레 어머니가
무슨 양식이라고 얘기를 해 주셨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_- 비엔나와 프라하에도 이
건축가의 작품이 많다는데 언젠가 가 볼 기회가 있겠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카페마다 야외 테이블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커피는 내가
쏘기로 하고 우리도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카푸치노와 핫초콜릿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데 햇빛은 화창하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 표정도 환하게
밝았다.

아, 참고로 유레 어머니는 프로그래머이시다. ^^;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2/03 (일) 11:40:05
제  목: 이번 주

아, 길었던 한 주였다.

일요일. 집. 하루종일 고리 프로젝트.
월요일. 제만타. 하루종일 수집기 튜닝.
화요일. 블레드 호수. 하루종일 PASCAL 학회 참가. (참고로 언어 파스칼이 아님;;)
수요일. 제만타. 수집기 손질 대략 완료.
목요일. 집. 유레는 류블랴나 시내에 무슨 학회 가고 덕분에 나는 또 재택근무.
금요일. 제만타. 느슨한 하루. NLP 독학 시작.
토요일. BarCamp in Klagenfurt! Osterrich! Austria! Yeah!

그리고 이번 주의 가장 큰 소득은,
개발자 혹은 공학자가 가져야 할 네트웍과 커넥션에 대한 태도, 인터랙션의 방법에
대해 여러모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자극은 여러 곳에서 온다. 매일 유레와의
대화에서, 제만타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학회나 캠프 등에서. 두어 달
소파에서 굴러다니며 책이나 읽으려던 당초 계획 대신 이곳에 온 것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나, 새삼 생각하고 있다.

깨달음의 첫 번째 실천으로써, 내일부터 블로깅한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