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8. 9. 15. 09:04

Ars Electronica (2/2)

Ars Electronica (1/2)
Ars Electronica (2/2)

이틀의 발품을 팔고, 저녁에 시작할 불꽃놀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봐버린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일식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메뉴에서 유럽에서 처음으로 회를 발견했다! 세상에. 당장 회 1인분을 주문하고 오꼬노미야끼도 시켰다. 구글러들 중에는 인도, 베트남, 일본, 중국, 심지어 한국 음식에도 익숙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제만타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회초밥이 신성의 영역인 듯 했다. 젓가락 대신 포크를 가져다달라며 카야와 우르방이 살짝 겸연쩍은 표정을 했다. 그래도 좀더 미식 견문이 넓은 보슈티안이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어차피 들어가면 다 똑같아." 다같이 웃었다. 언제나 느끼는 건데 인류의 문명이란 장소를 막론하고 참 공통점이 많다.;; 이런 표현에서까지.
내가 거들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정통 회초밥은 손으로 먹는대. 그러니 포크라고 안 될 거 없지."
"거봐, 우리는 문명인이라 포크를 쓴다구."
"그게 아니라... -_- 유럽에서는 물수건을 주는 문화가 없지?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보통 식당에서 물수건을 내놔. 식사 전에 손을 닦는 게 거의 습관화 되어있어."
"흥미로운데. 우리는 식기를 씻고 동양에서는 손을 씻는다라... 난 동양에 한 표."
"그래,  단지 관점의 차이야."
새삼 구글이라는 환경은 정말로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다 모여있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문명인'같은 표현은 나오지 못했을 터. 예를 들어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역사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그런 역사를 어찌 알겠나' 식의 뻔뻔한 반응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해 약간 주눅든 듯한 반응을 보인다던가 하는, 그런 분위기. 여전히 일에 관련해 뭔가를 의논할 때 '러시아어에서는 복수형이 이러이러하게 변형된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국어에서는 복수형 변화 규칙이 한 가지이며 복수형을 쓰지 않더라도 별다른 혼동이 없다'라는 말에는 웃는 경우도 봤지만... 뭐 다른 이유였을 수도 있고 그냥 그동안은 전혀 듣지 못하던 예제가 나오니 무의식적으로 웃은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악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구글, 특히 국적 구성이 다양한 취리히 오피스에서는 정치적 공정성에 대해서 대체로 사람들이 민감한 편이며,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도도 높은 편이다.

"아 정말 횟집을 어디서 못 봤어. 회초밥이라면 구글에서 매주 나오지만. 야 이 회 진짜 입에서 녹는다." 나는 살랑살랑 '문명인'들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들 경악했다. "회초밥이 매주 나온다고?"  피터가 거들었다. "메인 요리만 여섯 가지가 넘고, 먹고 싶은 만큼 계속 가져다 먹을 수 있어." 그리고 이어진 구글의 각종 복리후생에 대한 이야기들... 보슈티안은 침울하게 말했다. "애들 노조 만드라고 부추기는구나."
그리고 나는 MapSearch팀에서 지난 여섯 달 동안 보고 들은 이런 저런 것들을 간략하게 얘기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사용자들 앞에서 겸손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우리 개발자들 자신은 코어 유저가 아냐. 예를 들어 지도 서비스 같은 경우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용례들이 잔뜩 있고, 가끔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사이드이펙트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는데 하여튼, 우리는 그 용례들을 다 알지 못해. 이 인식부터가 중요해."
"나 슬로베니아 지도 검색을 하다가 버그를 발견했어. 근데 신고할 링크가 없더라. 어떻게 신고해?"
"외부에는 직접적인 링크가 없고, 구글 내부에는 버그 리포팅 시스템이 있어. 보통 구글러들이 자기 주변에서 분개한 사람들로부터 버그를 받고 우리에게 리포팅을 해. 우리 팀에서는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 주에 새로 들어오는 버그들을 분류하고 할당하는 역할을 맡는데, 이 버그들을 보면 참 재밌어, 뭐랄까, 상당수는 그 케이스에 대한 설명만 건조하게 하고 끝내지만 가끔은 굉장히 상세하고 감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런 식이지. '나의 더 나은 반쪽이 어느날 무슨무슨 호텔을 검색하고 있는데, 이 호텔이 그 근처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걸로 표기가 되어 있더라. 물론 이 호텔은 해변에 있지 바다 한 가운데에 있지 않다!'든지 '내가 요새 인터넷으로 뭘 좀 팔고 있는데, 나의 잠재적인 고객들이 계속 길을 잃어버리길래 봤더니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이 막다른 골목을 돌아오도록 되어있더라. 그 길은 큰 벽으로 막혀있다니까!' 등등. 한 번은 잘못 분류했다가 리포팅 한 사람이 화를 낸 적도 있어. 무슨 무슨 주소가 잘못된 주에 속한 걸로 나온다길래, 데이터를 검색해보고는 '지역 주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저 주에 속한 주소인 것 같다.'고 분류를 했더니 몹시 분개한 메일이 날아왔어. '내가 세금을 내도 이 주에 내고, 우편물도 이 주의 우체국에서 날아오는데 무슨 소리냐!'라는... 얼른 데이터 오류로 다시 분류를 하고 잘 달랬지. 많은 경우가 맵서치 쪽 잘못이 아닌데 잘못 분류되어 온 경우야."
그렇지만 가끔은 감사의 편지가 구글러들의 친구들로부터 포워딩되어오기도 한다. 내용과 어조는 대략 이러했다. '나는 뉴욕에 사는 보행자인데, 안그래도 구글 지도 너무 잘 쓰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당신들이 론치한 '보행로검색' 완전 원츄! 새벽 2시에 차 끊기고 택시는 안 잡히고 안전하게 걸어돌아갈 길을 찾아야 할 때 그 막막함 알아? 완전 내 삶의 질을 바꿔놓았어! 당신들 너무 사랑해!' 음;; 보행로검색은 우리 팀 소관이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걸 보면 좋은 서비스가 가져다줄 수 있는 삶의 질의 변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구글 지도의 버그인데 맵서치 잘못이 아니면 누구 잘못이야?"
"구글 지도는 굉장히 큰 서비스고, 수많은 팀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용자들이 보게 되는 그 페이지 자체는 프론트엔드팀이고, 백엔드에는 지오코딩을 담당하는 우리 팀, 비즈니스검색, 경로 검색만 해도 분류가 다양하고. 데이터베이스팀은 워싱턴에 있고, 프론트엔드는 마운틴뷰에 있고, 우리 팀은 취리히에 있고, 이런 식으로 전역에 흩어져있어. 버그들이 처음부터 적절한 팀으로 할당되는 건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야. 계속 뜨거운 감자처럼 팀들 사이에 넘기고 넘기고 하다보면 제자리를 찾아."
"너한테 분노의 이메일 보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 없어?"
"세사미라고, 특정 나라들에 한해서는 사용자가 직접 지오코드를 수정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슬로베니아에는 아마 론치를 안했을거야. 왜, 힘 좀 써서 론치해달라고 할까?" 우리는 다같이 웃었다.

"다른 팀들이랑 연락은 어떻게 해? IRC 채널이라도 있어?"
"IRC라니 뭘 생각하는 거야. 우리는 구글톡 써." 다시 한바탕 웃음. 그렇네 당연하지,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사실 IRC를 사용하는 팀들도 있긴 하다.;
"그리고 물론 이메일을 엄청나게 많이 쓰지. 물론 지메일이고. 음 또, 가상회의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테크톡이나 회의에 자주 이용해. 영상 음성 품질이 굉장히 좋아서 원거리여도 거의 불편을 못 느껴."
"그렇겠지, 충분한 대역폭을 확보하고 있을테니까. 그럼 가상회의가 가장 선호되는 방식이야?"
"가장 선호되는 방식은 당연히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는거지. 우리 팀 같은 경우에는 관련된 프로젝트들 상당수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어서 보통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서 얘기를 해. 직접 얼굴맞대고 얘기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어. 테크리드급 이상의 사람들은 다른 오피스로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한 일이주씩 관련있는 팀이랑 같이 머물면서 싱크업 하는거야. 많은 논의들이 이 방식을 통해 민첩하게 진행되곤 해."
내 오꼬노미야끼는 주문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는지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먹은 회와 현미차의 입가심에 매우 흡족해하며 일어섰다.
"우리 결국 불꽃놀이 놓쳐버렸네."
"이것도 일종의 전통이야. 사실 매년 놓쳤어.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나면 이 시간 쯤엔 뭔가 먹어야 했거든." 보슈티안이 대답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오케이센트룸 옥탑의 클럽으로 갔다. 가득한 인파를 뚫고 무대를 보았다. 한 서른 다섯은 충분히 넘어보이는 한 남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흠 뭐, 그냥 평범하네. 노래를 끝내고 박수를 받은 후, 다음 곡을 준비한다면서 그가 꺼낸 것은 로봇과 그의 진가였다! 멀리 보기에도 서툴어보이는 솜씨로 그는 로봇을 연결하고, 심지어 맥북을 재부팅까지 하면서, 쉴새없이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일본에서 수입해온 로봇키트인데, 급히 조립하고 프로그래밍하느라 사실 오늘 4시까지 계속 코딩하고 있었는데, 주절주절. 그는 가수나 프로그래머로서보다는 코미디언으로서 재능이 있는 듯 했다. 한바탕 소동 끝에 마침내 그가 문제의 맥북으로 음악을 틀고 로봇을 춤추게 하고 그 자신도 로봇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리고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흐음, 데모의 법칙을 아는 우리들은 조금더 관대해 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어쨌든 재미있었으니까. 그리고 로봇과 함께 춤을 추는 감수성, 이 페스티발 전체에 떠돌고 있는 이 감수성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가 퇴장한 후 올라온 디제이는 빔프로젝터가 쏜 0101010101010111100이 가득한 배경화면을 뒤로 하고 진지한 미래지향적 음악 실험을 시작했으나, 여기까지는 우리의 감수성이 공감대를 찾지 못해 다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여행의 대부분은 거기서 끝났다. 나머지는 그냥 찌끄레기 버리지 못하는 미련에 쓰는 디테일. 그날 밤에는 한 군데의 바를 더 들러 맥주를 마셨고, 길을 잃고 한 시간이 넘게 걸어 숙소에 도착했고, 오렌지의 그지같은 커버리지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글로벌 로밍 신청을 안 했던 탓이었다. 다음날에는 커피와 그네와 함께 느릿한 오전을 보내고 나서, 슬로베니아 친구들은 먼 길 운전을 하느라 먼저 떠났다. 나는 숙소에 돌아와 그동안 '젊은' 친구들 쫓아다니느라 모자랐던 잠을 오후 내내 실컷 잤다. 친구들이 알려준 인디안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느긋한 저녁식사를 즐겼다. 사실 너무 많이 먹었다 그때. 독일어권 티비는 역시 재미가 없어서 꺼버리고 책을 읽었다. 밤에 케이블 길이가 모자라서 전기장판을 못 틀고 자서 꽁꽁 언 채로 아침에 깨어났다. 숙소의 아침식사를 먹고, 제 시간에 기차를 탔다. 7시간 동안 자다 책을 읽다 자다 취리히에 도착했고, 노드제에서 생선샌드위치를 사서 짐가방을 끌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때 걸린 감기가 아직도 낫지 않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