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의 일상사.

# 취리히 미스테리
빨래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양말이 한 짝씩 사라진다는 건 고등학교때부터 깨달아온 평범한 삶의 진리건만, 취리히에 살다보니 가끔 이상한 일을 목격한다. 사라졌던 양말들이 짝을 맞춰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 참 누군지 몰라도 친절한 이웃이구나 생각하다가도 공포스러울 때가 있다. 도대체 그 댁은 뭐하느라 남의 양말을 한 짝 씩 잘 모아뒀다가 짝을 맞춰주는 걸까. 그리고 도대체 양말에 이름이 적힌 것도 아니고 아파트 호수가 적힌 것도 아닌데 내 양말인 줄은 어떻게 안 것일까...

# 라슬로의 의문
라슬로에게는 이제 6개월 정도 된 아들이 있다. "헝가리에 계신 부모님이랑 자주 스카이프를 하는데," 그가 말했다. "볼 때마다 '어머나 세상에, 쑥쑥 자라는 거 봐봐'라고 하시는데, 참 이상하단 말이죠. 제가 볼 때는 여전히 너무 작은데."

# 개미 사육
라슬로와 알렉스가 사무실 바닥에 앉아서 거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전에 거미를 잡으면 헝가리에서는 재수가 안 좋다고 하는데." 둘 중 누군가가 제안했다. "그럼 가둬뒀다가 오후에 잡지요." 그들은 컵을 바닥에 뒤집어 거미를 가둬놓은 뒤, 점심을 먹고 와서 거미를 잡아서 알렉스의 개미들에게 주었다.

# 미국은 다 똑같애
점심먹으러 가기 전 스트리트뷰의 새 UI 데모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는 와와 감탄하면서 스트리트맨을 이 주로 저 주로 옮겨보았으나 보이는 건 온통 끝없이 뻗은 도로와 널찍한 들판 뿐이었다. 팝이 불평했다. "미국은 왜 다 이렇게 똑같이 생긴거야?" 앨런의 대꾸. "동부쪽으로 좀 가봐." 건물들이 등장했고 우리는 다시 와와 감탄하면서 데모를 구경했다.

# 한국 지도
구글 맵스 한국 론치를 앞두고, 나는 우리 팀 사람들에게 한국 팀에서 열혈 개발중인 데모 링크를 알려주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팝은 강릉과 속초 쪽을 들여다보면서 지도가 정말 상세하다며 신기해했다. "저기... 그쪽은 조금 변두리 지역이고요 서울 쪽을 보셔야 뭐가 많아요." 그리고 나는 서울역 부근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어떤 정부를 둬야 이런 지도가 나오는거지?" 앨런이 몹시 감탄했다. "가끔 일본쪽 쿼리 디버깅할때마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던데. 이런 색색깔 칠해진 건물이랑 특별부지들 예쁘잖아. 비즈니스 아이콘들이랑."
사실 나는 지도의 차이를 정부에서 찾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이 더 신기하다.

# 문화 차이
라슬로: 이 남자랑 여자랑 서 있는 아이콘은 뭐예요?
나: 예식장이요.
졸탄: 농담 아니고 진짜예요?
알렉스: 이 그릇이랑 숟가락 아이콘은 뭐죠? 식당인가?
나: 아 그건 약국이예요.
알렉스: 이건 성?
나: 학교예요. ㅜㅜ

# 잘못된 방향
주간 회의에서 디에나가 요즘 자신이 작업중인 코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앨런: 그거 왜 필요한건데?
디에나: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운전하잖아!

# 한국 론치
어느 화요일 아침의 출근 인사.
나: 굿모닝. 한국 론치했어요. ^^v

참고삼아 상황설명. 한국 맵스는 한국에 팀이 따로 있습니다. 저는 저희 지도검색팀 관련한 업무만 간간히 도우면서 한국팀 일도 구경하고 있고요 (어쨌든 물론 한국어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으하하).

# 예리한 파월
파월과 배드민턴 단식 경기를 하던 중 나는 그만 기진맥진 지쳐버렸다.
나: 조금 쉬었다 하자. 오늘 날씨가 저기압이라 몸이 좀 피곤하네.
파월: 그러지 뭐. 좋은 이유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구질구질한 날씨.
나: 끄덕.
파월: 업무과중과 스트레스.
나: 끄덕.
파월: 아프리카의 기근.
나: ...변명이 아니었다구.

# 예리한 파월 2
토마스의 집들이 팟럭 파티에 갔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이 하나씩 테이블에 나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음식들에 대한 칭찬이 오가는 중 한 켠의 와인 코너에서 나는 빈 잔을 채우며 파월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배드민턴 클럽과, 그의 고향 바르샤바와, 각자의 주량 등에 대해 대화를 했다. 나는 슬슬 좀더 지적인 화제로 옮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참 무슨 팀에서 일한다고 했었지?
파월: 실망이야. 이제 대화는 끝났어!
나: 어?
파월: 날씨 얘기 일 얘기 나오기 시작하면 끝이라니까. '지루한 대화였어, 잘 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우리 대화가 겨우 그것밖에 안 됐던 거야?

# 일 얘기
그러나 분명 때로는 일 얘기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미안하게도 이름을 까먹어버린) 한 구글러와는 마틴의 팟럭 파티에서 한 시간 가까이 '애즈에서의 검색 품질 테스트와 맵스에서의 검색 품질 테스트를 어떻게 잘 연결해서 시너지를 내 볼까' 풍의 얘기를 즐겁게 하지 않았던가!

# 좋은 소식
오랜만에 만난 현순언니가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 "미래씨 뭐 좋은 소식 없어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음, 네 한국 맵스가 얼마 전에 론치했어요."
"..그런거 말구요!"

# 기억하고 싶은 와인
나: 흠 이 와인 이름 기억해야겠어요.
소냐: 맘에 들었나봐요?
나: 아뇨, 다시 안 마시려고 기억하는 거예요. 떫은 맛이 너무 심해서요.

# 연장된 휴가
아니카가 3개월의 휴가 끝에 돌아왔다.
나: 그동안 어디 갔다 온 거야? 사람들이 너 미국으로 영영 이주해버렸다고까지 했다니까. 3개월짜리 휴가라니 분명히 멋졌겠지?
아니카: 그게 사실은 말이지...
그리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워싱턴에서 만난 한 장교와 사랑에 빠져, 남은 여행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일 주일만에 동거를 시작해서 그와 함께 두 달 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숨 돌릴 틈도 없이 해 줬다. 장갑차를 운전하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든가, 군부대의 수영장이며 체육관이며 편의 시설을 하루종일 이용할 수 있어서 장교 여자친구라는 거 참 할 만 하더라든가, 그가 얼마나 세심하고 사려깊고 매력있는 남자인가 등등. 조만간 그가 취리히로 여행을 올 거라는 얘기도. 이야기하는 내내 그녀의 눈은 꿈을 꾸듯이 반짝반짝 (분명히 그랬다!) 빛나고 있었다. 나는 참을성있게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고 지금 여기에 쓰고 있)다.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축복을.

# 한국인
여성 구글러들과 함께 와인 보트 축제에 갔다. 다시 말하면, 아가씨들 열댓명이 우르르 술 마시러 몰려갔다. -_- 절반 정도는 동유럽 출신이라 지금까지 내가 어울려 다닌 어느 그룹들보다 술을 잘 마셔서 분위기는 매우 고조되었다.
해나: 당신을 내 술친구로 임명합니다.
나: 영광이옵니다.
그레이스가 깔깔 웃었다. "미래는 진짜 한국인 같애요." (그레이스는 말하자면 한인교포 2세다)
나: 한국인 같은게 아니고 나는 정말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예요.
다음날 숙취로 집 천장만 바라봤다.

# 독일 남자친구
배드민턴 클럽을 이끄는 맥주친화적인 독일 아저씨 마이클은 볼 때마다 나를 야단친다.
마이클: 왜 아직도 독일 남자친구를 안 사귀는 거야?
나: 아니 왜 꼭 독일인이어야 하나요.
마이클: 취리히에 왔으니 독일어를 배워야 할 것이고, 독일어를 배우려면 독일 남자를 사귀어야지!
나: 혹여 누굴 만나더라도 그 사람 자체 때문이어야지 그런 이유로 사람을 만나면 쓰나요.
릴리와 옥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럼 우리가 이 남자들이랑 왜 결혼했게요?"



여기서부터는 뉴욕 출장 얘기.

# 초과업무
항상 팝의 근면함에 감탄하던 나는 출장가는 비행기를 같이 탄 김에 물었다.
나: 저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시고요... 그냥 궁금해서요.
팝: 그럼요.
나: 그렇게 맨날 늦게까지 일하면 부인께서 화 안 내요?
팝이 웃었다. "화내요."

# 다양성
한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야니스: 참 그 친구 이름을 바꿨죠.
앤드류: 이름만 바꾼게 아니지 말이죠.
팝: 뭐, 다양성을 존중해야죠.

# 맨체스터 동문
앤드류와 팝이 맨체스터 동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야니스가 놀란 기색을 했다.
야니스: 그런데 팝은...
우리는 흐린 말끝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팝은 살짝 프랑스 억양을 가진 반면, 핀란드 출신인 앤드류는 굉장히 심한 맨체스터 억양을 가지고 있는 것.
팝: 저는 억양까지 픽업하진 않았는데 말이죠.
앤드류: (독백조로) 출신을 숨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어요. 억양을 고쳐가면서까지. 불행한 출신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상관없었어요.

# 리즈
구글 맵스 전체를 통째로 책임지고 있는 리즈는 끊임없이 쉴새없이 말할 수 있는 대단한 정력과 아이디어의 소유자이다. 이메일로 간간히 그녀에게서 버그 리포팅을 받다가 뉴욕 출장에 가서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나: 지도검색팀의 미래예요.
리즈: 리즈예요. 아 당신이 그 미래군요? 닌자 프로젝트(대충 이렇게 얘기해둡시다. 쿨럭) 담당하는?
나: 네. 이번 분기부터 그 프로젝트는 국제화 팀으로 인수인계 중이고요.
리즈: 나는 도대체 사람들 이름이랑 얼굴 매치하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한 번 보고 나면 그제서야 매치가 되지요. 내 머릿 속에는 '미래? 닌자 프로젝트' '닌자 프로젝트? 미래' 참 단순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람들을 기억해요. 분명히 사람들은 기분 나쁠거야 내 머릿 속에 자기들이 이렇게 기억되고 있다는 걸 알면.
그녀의 언변은 카페테리아의 끝에서 끝까지 한 걸음씩 이동하도록 계속되었지만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었기에 나는 다소 안심했다.

# 뉴욕 오피스의 점심식사
뉴욕 오피스는 과연 소문대로 다양한 요리가 즐비했다. 베지테리안 컬렉션, 온갖 종류의 커리들, 동양 음식들, 심지어 낫또까지 있었다. 나는 UI 디자이너 스캇과 잠시 내 프로젝트들과 관련한 간단한 UI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옆 테이블에 자리한 리즈와 앤드류는 물 만난 고기마냥 포크 드는 것도 잊은 채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인류와 철학에 이를 때 즈음 나는 내 접시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스캇이 눈을 찡긋했다. '재미없죠' 그리고 그는 뉴욕에서 어디를 여행할 계획인지 물었고, 서점에 가고 싶다는 내게 길 건너 스트랜드를 추천해줬다.

# 이틀짜리 뉴욕 관광
주말에는 야니스, 앤드류, 팝과 앨리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을 실컷 했다. 토요일은 오전에 모마에 갔고 점심으로 일식을 먹었으며 타임스퀘어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혼자 스트랜드에 가서 책 냄새를 실컷 맡고,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만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The 39 Steps> 연극을 봤다. 일요일에는 사라베스에서 브런치를 먹고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뉴욕 닉스 경기를 관람하고 메이시에서 옷가지 몇 개를 샀다. 앤드류와 팝은 길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아이폰과 블랙베리로 구글 맵스를 검색하다가 디버그 공방을 벌이는 낭만도 잊지 않았다.
더블에스프레소 한 잔 씩을 앞에 놓고 팝이 물었다. "이번 출장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내 매니저는 참 끝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요." 앤드류가 킬킬거렸다.

# 국제 로밍
출장 덕에 전화비가 12만원이 넘게 나올 예정이다.
나: 역시 국제 로밍은 너무 비싼 것 같애. 뉴욕에서 맵스 몇 번 검색하고 급한 전화 몇 통 했더니 이렇게 나와버렸네.
맷: 맨하탄처럼 길 잃기 힘든데서 맵스는 왜 쓴 거야?
나: 눈 앞의 광경을 스트리트뷰와 함께 보면 얼마나 근사한데.
맷: 으하.
나: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하길래 교통량 검색을 해 봤더니 우리 택시가 빨간 줄 초반에 있더라구.
맷: 제법 유용하네.
나: 그치. 다시는 데이터 로밍 안 쓰려구.

-------------------------------------------
참고로
구글 맵스 한국 http://maps.google.co.kr

문의사항은
구글 맵스 한국 그룹 http://groups.google.com/group/google-kr-Maps/topics
구글 맵스 API 그룹 (글로벌) http://groups.google.com/group/Google-Maps-API
공식 채널을 통하시는 것이 여러모로 가장 권장되는 방법입니다. 지도검색에 관련한 개선점은 저에게 직접 문의를 주시면 힘 닿는 만큼 봐 드릴 수는 있으나 100% 고쳐드린다는 부도수표는 남발할 수 없어 조심스럽고, 지도검색 외의 개선점에 대한 문의를 주시면 함께 공감하고 슬퍼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각자의 분야가 워낙 세분화되어 있는지라 그중에 제가 고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으니 이 역시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또 직접 사람 냄새 나게 연락할 수 있는 아무개가 있다는 건 기분이 다를 것이니, 제게 직접 귀뜸 주셔도 그런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며 귀담아 듣겠습니다만. ^^

구글 맵스가 추구하는 큰 목표 중의 하나가 '재미'라는 사실 아시는지요. 커다란 서비스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서, 구글 맵스가 언제나 유용하고 즐거운 서비스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가만있자 한국에서의 정식 명칙은 구글 지도인데... 킁)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2009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