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다녀온 건데 이제야 올리는 후기.)

학교에서 스웨덴 문화 설명회가 있었다. 스웨덴 학생들이 조직한 Korea Calling 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 행사인데, 우리 나라의 여러 학교를 돌면서 스웨덴의 문화와 교육 프로그램 등을 설명하고 다닌다고 한다. 내가 가을에 교환으로 가게 될 KTH의 학생들도 온다길래 KTX타고 냉큼 다녀왔다.

내가 가을에 거기로 교환학생 간다고 하니까 반가워하면서 이것저것 챙겨주더라. 기숙사는 등록했냐(KTH는 상관없을거라곤 했는데 다른 학교의 경우 기숙사를 보장해주진 않는다고) 돈은 저축하고 있냐(회사 가서 돈 벌고 있다고 대답했다 큭) 술은 좋아하냐(좋아한다고 하니까 당장 끊으란다 스웨덴은 술값 비싸다고) 등등... 서로 명함도 교환했다 으하하- 나의 알흠다운 명함을 건네주며 뿌듯+_+ 검색 엔진 회사에서 크롤러 만들고 있다고 하니 재밌겠다면서 부러워하더라. 그럼 재밌고말고 ㅎㅎ

사람들이 참 상냥하고 붙임성도 좋았다. 스웨덴 학생들이 전부 이렇다고 하면 교환학생도 무쟈게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크크. 물론 이 학생들은 그 나라 그 학교에서도 특수한(?) 학생들이겠지. 무슨 말이냐면, 우리나라에서 뭔가 다른 나라와 그런 문화 교류 활동을 하는 학생이 있다고 생각해보면, 엄청 활발하고 외향적이고 뭐 그런 사람일 거라는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나? 마찬가지란 얘기.
뭐... 그런 걸 감안해도, 뭔가 웃음의 코드가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백만번 쯤은 들었을 '그럼 네가 한국의 미래구나'라는 농담을 이 애들한테 또 들을 줄은 몰랐지-_-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바보같은 예문들에 대한 정서도 일치하야 함께 성토하기도 하고^^;

아무튼, 실제로 거기 가면 만나게 될 학생들도 보고 하니까 정말 간다는 게 실감이 나고 그러네. 재밌을 것 같다 :)



기타 등등

* 학교 갔다가 사람들한테 말려 거하게 뜯겼다. 흑흑. 가벼워진 지갑을 부여잡고 슬퍼하다가도 빕스 VIP됐다고 희희낙락하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의 뇌구조를 의심하는 중이다. 푸핫; 어쨌든 반가운 얼굴들 덕분에 즐거웠음둥! 시간에 쫓기는 통에 못 본 사람들한테는 이래저래 미안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 요즘 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얘기가 별로 없는 건, 그냥 내가 원래 주업(?) 얘기는 잘 안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제일 많이 하는데 공부 얘긴 잘 안 하잖아. 너무 당연한 거라서 얘기를 안 하게 되는지도... 뭐 여튼. 여러가지를 새로이 깨닫기도 하고, 이전의 내 신념을 재차 확인하기도 하면서 골똘히 살아가는 중이라고만 해 두자.
사실 회사에서의 내 생활은 하얗게 불탄 채로 SVN repository에 남아있... (뭐래;;)

* 슈퍼맨도 아니면서 슈퍼슈퍼하게 살았더니 남은 건 감기몸살. 결국 휴가내고 하루종일 쓰러져있다가 인제 일어나서 이런 거 끄적거리고 있다. 흑흑.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2. 16. 01:18

ㅍ...ㅍ...패닉 콘서트



큰일났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
(선아언니이이이 ㅠㅠ 외쳐봤자 물 건너까지 전해질리가)

돌이켜보면 내 주변엔 항상 나와 함께 휀심을 불태워줄 사람들이 있었거늘!!! 어쩌다가 이번엔... 미리미리 퐈슨동지들을 물색해놓을 것을.

3집 공연 때처럼 혼자 가볼까.....; 방방 뛰댕기려면 오히려 그게 나을까-_- 아아아
끄적이기/감상 | Posted by Mirae 2006. 2. 13. 22:05

밀란 쿤데라, <농담>

밀란 쿤데라 자신도 말하길, 그에게 있어 역사적 상황은 그를 매혹하는 실존의 주제를 새롭게 극도로 날카로운 빛으로 내리쬘 때만이 의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저 이국에 있는 어느 편협한 독자가 관심있는 부분만을 조각조각 기워내더라도 작가는 신경쓰지 않을 거란 얘기다. 궤변이지만.





요즘 시대에서 진지함이라는 건 코미디에서 놀려먹기 위한 도구로 더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시대의 철저한 일원이면서도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지만 그건 내가 비교적 진지함을 좋아하는 사람 축에 속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다같이 모여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진지함은 재채기만큼이나 환영받지 못한다. 실수로 진지한 말을 내뱉었다면, 'excuse me!'를 붙이는 것만큼이나 잽싸게 '뭐 그냥 그렇다는거지!' 하면서 소탈한 웃음으로 마무리해주는 것이 관례다. 정말이다.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꽁꽁 얼려서 남극으로 보내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정색을 하고 '아니, 정말로.' 같은 말을 해선 안 된다!
그렇지만 나는 진지한 사람들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난 모든 사람들의 근원 깊숙한 곳에는 진지한 사람이 한 명씩 들어앉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진지한 말보다는 농담과 냉소로 비틀어놓은 말이 더 많은 까닭은 자기의 진실한 생각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진지해지는 것보다는 농담으로 몸을 가볍게 하는 쪽이 더 쉽다. 농담만 하면서 실없는 사람 행세 하기는 싫고 진지해지기는 부담스러운 사람은 조금 더 머리를 써서 냉소라는 것을 택한다. 진지한 척 하다가 돌아서서 거기에 침을 뱉고 비웃는다. 그게 사실은 스스로의 진지함을 모욕하는 행동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삶의 무게에 걸맞지 않는 진지함은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그 바탕에 깔린 선량함이, 악의없음이 드러나보여서 오히려 매력적일 때도 있는 것인데. 삶의 무게에 걸맞지 않는 냉소는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울 뿐더러 겉멋 든 어린애를 보는 것처럼 피곤하다.
그렇지만 나라서 그런 치기로부터 자유로우냐면, 그건 또 자신할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를 '고작' 스물 두 살이라고 믿고 있으니.

그런데 난 왜 이런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는 걸까. 내가 진지함을 좋아한다고는 해도, 농담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무참히 짓눌러 버릴 수도 있었던, 열렬한 진지함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가벼운 낭만을 용납하지 못하던 그 세계가 부러울 정도는 아닌데. 아마 그동안 어지간히 언짢았던 모양이다. 실컷 써 놓은 심각한 문장을 희석하는 것이 가끔은 타협처럼 느껴지니까.





(밀란 쿤데라의 <농담> 중에서 발췌)

당시에 나는 그에 대해 증오밖에 없었으며, 이 증오란 것은 너무도 강렬한 빛을 발사해서 그 속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사라져버리는 법이다. 중대장은 내게 그저 앙심을 품은 교활한 쥐새끼같이만 보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를 무엇보다, 한 젊은이로, 연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 그리고 연기를 한다.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 전체에 걸쳐서 끊임없이 젊음이 저지르는 오류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이해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내 나이 또래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때때로 신경에 거슬렸던 부조화의 정체를.
아무래도 학기 중보다 요즘이 더 정신없는 것 같네요. (그땐 글 쓸 시간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_-) 그래도 짤막하게라도 정리해놓으면 나중에 좋지 않을까 싶어서...


파란만장했던 한 해를 돌아보며 - 2005년 나의 5대 키워드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_-)


1. SPARCS, 스팍스
2004년 12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1년동안 스팍스의 회장을 맡았습니다.
뭐 힘들 때도 많았고... 임기가 다 끝난 지금에서도 차근차근 돌이켜볼 기운도 없을 만큼 많이 지친 것도 사실이지만요.
2005년 한 해가 제 지난 21년 중의 그 어떤 해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운 해였던 것은 아마도 여기에 크게 기인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두 마디로 끝낼 수 없는,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은 오버고) 여튼 뭐 구구절절한 얘깃거리들이 많지만 잘 숙성시켜두면 언젠가 잔뜩 늘어놓을 때가 오겠지요.
일단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맙습니다!!

2. Star Wars
(...갑자기 분위기 반전.)
(여기서부터는 좀 어처구니가 없으실지도-_-)
영화라는 것은 '데이트를 하다하다 정말 더 이상 갈 곳이 없거나 돌아다닐 기운이 없거나 화젯거리마저 떨어졌을 때나 보는 것' 정도로 인식하고 있던 제가 갑자기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이거였습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그후로 클론워즈를 포함한 스타워즈의 모든 에피소드의 섭렵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노블라이즈 오디오북을 지른다던가 캘린더를 지른다던가 하는 주책을 비롯하여 Dark lords of the sith 등의 각종 외전까지 들이파고 있는 지경입니다...
-_- 웬만하면 발을 들이지 마시길 권유드려용.;

3. Ewan McGregor
(앞의 주책과 연결됩니다.)
제가 스타워즈에 그토록 빠지게 된 이유는 다 이 망할 스코틀랜드 배우가 연기한 오비완 때문이었습니다. -_-
그 후론 이 사람의 필모그래피에 줄 그어가며 출연작들을 챙겨보고 있지요. 본 것들을 나열해보자면 대략...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
물랑루즈 (The Moulin Rouge)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
쉘로우그레이브 (Shallow Grave)
엠마 (Emma)
Solid Geometry
아일랜드 (The Island)
빅피쉬 (Big Fish)
다운위드러브 (Down with love)
벨벳골드마인 (Velvet goldmine)
영아담 (Young Adam)
로봇 (Robots)
인질 (A life less ordinary)
스테이 (Stay)
Little voice
겜블 (Rogue Trader)
정도 되겠습니다. 어 생각보다 별로 안 많네요? 다운받아 놓은 것들 마저 봐야겠습니다...-_-

4. The Moulin Rouge
(역시나 앞의 주책과 또 연결됩니다.)
화려함. 스타일. 현대적인 아름다움. 소비되는 문화. 거대한 문화 산업.
두서없이 썼는데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받은 충격(?)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썼습니다.;
뭐 오비완 했던 배우가 나오는 영화라길래, 그것도 로맨스라길래, 그 길고 긴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챙겨본 영화였는데 그 효과는 아주 강렬했습니다.;;; 전 사실 고등학교 입학한 이후로는 티비도 거의 안 봐서, 요즘 엠넷같은 걸 보면 눈이 뒤집히고 그럽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저런 '티비프로그램'에서 저렇게 스타일리쉬한 화면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별 거 아니라는 듯이 펑펑 쓰게 된거지?! 내가 중학교 때 한창 방방 뜨고 있던 틴에이저 댄스그룹들 - 이를테면 신화 같은 ^^; - 은, 그 어리고 비슷비슷하고 시시하기만 하던 멤버들은 언제 또 저렇게 근사한 녀석들로 큰 걸까!! 뭐 이렇게 절규하고 있지요...;;; 화면 가득 살아숨쉬는 캐릭터들. 독특하면서도 개성적인 매력들. 그리고 그걸 잘 표현해주는 무대와 연출. 매일 보는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전기 안 들어오는 촌구석에서 몇 년 틀어박혀있다 온 사람처럼 신기하기만 하네요-_- 이런 정도니 처음에 물랑루즈를 보고서는 그냥 넋이 나갔다고밖엔...
유안 맥그리거의 노래. 춤. 연기.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거의 7월 한 달 정도를 물랑루즈에 빠져 지냈던 기억이 나요. OST를 듣고, 영화를 보고 또 보고, 외국 팬사이트 뒤적거리면서 촬영 에피소드라든지 패러디라든지를 읽으면서 킬킬거리고, 그것도 아쉬워서 영화에서 소리만 따서 MP3로 만들어서 듣고 다니고... -_-
(이런 걸 쓰고 있으니 저 스스로도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한 건가!!' 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크윽;;)

5. John Maeda
(아 이젠 좀 정상적인 이야기... 일까요?)
미디어랩에 대한 책을 읽다가 이 사람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존 마에다, 간단히 소개하면, 컴퓨터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래요. 이 사람이 쓴 Maeda@Media란 책, 꽤 감명깊게(!) 읽었고요. (보시면 알겠지만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책입니다; 다는 못 읽었지요-_-) 덕분에 미학이라는 것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음, 여기에 대해선 앞으로도 꾸준히 탐구를 해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습지요... ^^
여기에서도 또 역시나 '들이파기 신공'을 동반하여... 미술사라든지 철학이라든지 쪽의 책을 사재기하게 되었다는 얘기는 접어두고... -_-



정리하자면 동아리일로 좌충우돌 진로 문제로 질풍노도에 관심가는 쪽은 가리지 않고 별의 별 데를 다 들이판 한 해...였습니다.
동아리일 덕분에 리더쉽이라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역시 어설프게나마 경험해볼 수 있었고요.
진로... 내가 앞으로 어떤 분야를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민은 많았지만 아직도 답은 못 냈습니다. 이제 4학년인데 창피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후진국일수록 학생들이 진로를 빨리 결정한다'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으로 위안을 삼으며...-_-;;;

이걸 보고 있으면 '당신 전공 공부는 안하냐!!'라고들 생각하실터인데-_- 음 LKIN과 학과 공부 외에는 딱히 한 일이 없긴 하네요.; 사실 그 겨울에 저는 1년치의 배울 것을 다 배워버린 것 같단 생각도 들어요^^; (그 겨울의 세미나와 프로젝트 덕분에 소프트웨어공학개론이라든가 전산망개론이라든가 데이터베이스개론 같은 과목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었거든요. 아 그래 저런 이슈가 있었지! 그래 저것 때문에 내가 고민했단 말이지! 우오오오 말로만 듣던 그 xxxxx를 내 손으로 구현하는 영광이!! 하면서요. ^^; 리더쉽이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고민도 상당 부분은 LKIN과 관련된 것들이었네요.)

어쨌든... 후반부에 가서는 거의 전공과 상관없는 짓들;에 골몰해 있었는데, 전공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제겐 좋았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던 그 순간순간이 굉장히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전 주로 '해야 하는 일'들만 생각했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는 것은 항상 뒷전이었던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책임감 내지는 성실함이겠지만...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 지를 아려면 하고 싶은 것들을 즐겨봐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동안 스스로에게 그런 여유를 주는 것에 너무 인색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제라도 그걸 깨달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되도록 행동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끌리는대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려고 해요. 지금 아무리 재고 따져봤자 나중엔 다 틀릴 거거든요. 그냥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결국은 최선이 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즐겨보렵니다.


뭐 짧게 쓰겠다고 시작했는데 점점 길어져버렸네요. 어쨌든,

2006년도 열심히 즐겨보겠습니다! 잇힝♡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1. 2. 00:43

2006년 토정비결

새해를 맞았으니 또 안 볼 수 없는 것이 토정비결. 여기에서 해 봅시다.
홈피민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11. 28. 09:57

성공적인 KAIST 생활

또 <인간과 기계> 숙제입니다. -_-;;; 방금 구운 따끈따끈한 것.
성공적인 KAIST 생활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대한 짤막한 에세이예요.

지금은 오전 7시 22분, 스팍스 동아리방. 50평 남짓 되는 공간을 가득히 채운 형광등 불빛, 유쾌하게 웃으며 함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이 밤을 지새운 새벽이라는 걸 까맣게 잊게 된다.

LKIN screenshot - 강의평가 내역

방금 전까지도 나는 동아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핵심 프로젝트, LKIN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LKIN은 Lecture Knowledge IN의 약자로, 수강지식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학교의 모든 수강 과목들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이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다음 학기의 시간표를 미리 짜 볼 수 있고(그것도 대단히 편리한 UI를 통해서 말이다), 과목에 대한 알찬 정보들을 열람할 수도 있으며, 게시판과 자료실을 통해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 강의에 대해서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는 ‘로드, 학점, 남는 거’라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별점을 매기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 겨울부터 착수해서 3월부터 베타 서비스를 선보였던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꾸준한 업데이트와 개발을 거쳐 어느 덧 1900명이 넘는 가입자를 유치하는 사이트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며칠 전 학생들이 고대하던 대로 드디어 교무팀의 강의평가 자료가 공개되었을 때, 총학생회가 이것을 제일 먼저 우리 LKIN 개발 팀에게 전달해 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오늘 저녁, 그러니까 10시간 쯤 전, 우리는 총학생회로부터 강의평가 자료가 담긴 엑셀 파일을 받아들고 회의를 했다. 이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가공해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LKIN으로만 수십 번쯤, 동아리 회의까지 합친다면 골백 번은 이렇게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해 본 적이 있던 멤버들이라 진행은 순조로웠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마침내 과목사전 페이지에 강의평가 내역을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집어넣자, 홍보 겸 강의평가 공개 기념 겸 해서 iPod nano를 걸고 이벤트를 하자, 이렇게 할 일들의 목록을 뭉게뭉게 정하고 나서 의문을 던졌다. 그럼 이제 이 작업들을 언제 할 것이냐?

“그냥 오늘 밤에 끝내버리죠?” 한 녀석이 이렇게 말했고,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다. 강의평가 자료는 무사히, 그리고 아름답게 LKIN에 편입되었고, 경품 이벤트를 위한 로그 처리 시스템도 구축되었다. 처음은 아니다. 이렇게 하루의 밤을 활활 불태워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학교 때, 그리고 고등학교 때, 두 차례에 걸쳐 KAIST의 영재캠프에 참여하면서,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바라보며 가슴 벅차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KAIST에 가면 매일 밤새서 프로젝트도 하고 하루종일 학문에 관한 이야기로 입씨름도 하면서, 열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꿈에 어느 정도 가까운 경험을 겪어보았노라고 말할 수 있다. 왜 ‘어느 정도 가까운’이라는 말을 쓰냐면, 사실 매일같이 밤을 새면 곤란하지 않은가. 이런 경험은 가끔이면 충분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동아리 프로젝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그만큼 동아리 활동이라는 것이 성공적인 카이스트 생활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학할 때부터 선배들로부터 닳도록 들은, 대학 생활에서 꼭 잡아야 한다는 세 가지, ‘동아리, 연애, 학점’ 중에서도 동아리는 벌써 첫 번째로 꼽히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속한 이 컴퓨터 동아리, 스팍스의 활동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학업, 진로 설정, 인간 관계, 취미 생활 등등. 먼저 학업진로 설정에 대해. 이곳에는 시스템프로그래밍 동아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산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고, 전산에 관련된 학술 활동 또한 활발하다. 각종 세미나와 프로젝트를 통해 전산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들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전산이라는 분야 내에서도 또 자신이 갈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인간 관계이다. 뭐 이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과 나누는 정겨운 술잔 속에 피어나는 애정..... 아, 내일 회의 끝나고 나면 술 마시러 나가야겠다. 마지막으로, 생산적인 여가 활동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상당수는 여가 시간을 온통 게임으로 보내곤 한다. 물론 우리 동아리에도 게임에 열광적인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더 열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생산적인 여가활동 한다! 리눅스 서버를 가지고 여러가지 삽질을 하는 건 오랫동안 우리 동아리의 훌륭한 취미 생활로 권장되어 왔다. 처음에는 자기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더 나아가선 ara와 ska라는 비비에스 시스템을 운영하고, FTP 미러링이나 뉴스 서버 관리를 하기도 하고, LKIN과 같은 프로젝트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컴퓨터만 하다가 ‘전형적인 전산인의 체형 – 인격이 강조되는 몸매’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요 농구클럽이라든지 인라인타기 모임 같은 운동 소모임들도 있다.



팔불출처럼 동아리 자랑만 늘어놓았지만(사실 1년 동안 동아리 회장 + LKIN 팀장을 하며 감동받은 순간이 많다 보니 자랑이 길어져버렸다) 정리해보면 나름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일단 학업을 열심히 해야 한다. 여기서의 학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학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점이라는 수치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본기를 닦아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업에 학과 과목 뿐만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실질적인 경험이 동반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는 주로 동아리에서 이러한 경험들을 얻었지만, 동아리 말고도 아르바이트나 인턴 등의 기회도 많을 것이다. 둘째는, 인간 관계이다. 앞으로 학문을 함에 있어, 또한 삶을 살아감에 있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사람들을 얻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동아리 사람들일 수도 있고,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일 수도 있고, 교수님일 수도 있다. 연애라는 것도 일종의 인간 관계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셋째는, 인생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 자신이 평생동안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그 청사진의 일부이고, 또한 삶에 지칠 때마다 자신을 충전해 줄 멋진 취미 생활을 찾는 것 또한 그 일부일 것이다.

3학년도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나는 얼마만큼 성공적인 카이스트 생활을 하고 있을까? 자문하면서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 위에서 부지런히 언급한 LKIN은 http://lkin.kaist.ac.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LKIN screenshot - 과목사전 목록의 강의평가 파라미터 (배터리 잔량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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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심없이 50평이라고 썼는데... 가물가물하네요. 우리 동방이 몇 평이드라-_-;;;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11. 8. 02:30

홈피민조사합니다~

휴먼과 봇을 구별해내는 카운터 같은 거, 만들기 힘들까요? -_-;;;
어제 방문자 103명이라고 찍혀있는 거... 전부 다 봇인 건 아니겠지요 설마!
.....라는 말은 '댓글 남겨주세요 징징징'이라는 의미이지만; 본인도 역시 다른 블로그에 댓글 잘 안 남기니 징징거릴 수도 없군요. 쩝쩝. 반성하겠습니다.

휴먼도 10%쯤은 있을거라 기대하면서, 홈피민 조사 들어갑니다!
(10%라... 너무 많은가-_-)
조사의 목적은 '독자층 분석'.
그렇지만 그런 걸 한다고 해서 글이 좀더 친절해질 것을 기대하심 또 곤란합니다...;;

하면 뭐 주냐고요? 여기 보기가 있습니다.
1. 빼빼로
(값도 싸고, 마침 빼빼로데이도 다가오고!)

2. 홈피민소개
(그런데 쥔장이 소개쓰다가 지쳐버리면 자동으로 빼빼로로 교체될지도 모릅니다...;;;)

3. Nothing!
(으핫- 웬만하면 이걸로 선택해주시면 고맙죠!)


여튼 너무 쑥쓰러워들 마시고 여기에 댓글 달아주셔요~~ *^^*
형식은 이름 + 위 보기 중 하나 + 옵션으로 쥔장에게 하고픈 말. 입니닷. 그럼!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11. 6. 03:14

10월 15일

넵... 요사이 주말마다 찾아오는 '글쓰고싶다병'이 또 도졌습니다.;;;

지난 번에 올린 연애편지(?)의 뒷이야기입니다. 물론 픽션입니다. 픽션의 속편은 픽션을 상속받은 것이므로 픽션.... (풉)
이것도 숙제냐, 그건 아니고 그냥 지가 괜히 궁금해서 써 봤습니다. -_-
도대체 어떤 녀석인가!
저런 편지를 받고 나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고등학교 남학생의 심리묘사라니 고거 한 번 재밌겠구나!!

등등등...
잘 된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며칠 지나면 쪽팔려하면서 지워버릴지도...;;
아 제목은, 편지를 받은 계절이 대략 그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붙여본 거구요.

그럼 즐겨주세요. ^^;

상욱이 담배를 꺼내물더니 말했다.

"네 소설에 나오는 너랑 찐하게 섹스하는 남자, 영훈이는 정훈이 맞지? 내가 아니지? 정훈이랑 그런 관계라는 거 지금은 이해해줄 수 있어. 난 너하고는 키스밖에 안 했잖아. 뭐라고 해야 할까. 기분이 이상하더라. 나는 널 정말 사랑했는데 소설에는...... 왜 내가 너를 겁탈하는 거처럼 나오니? 그건 정훈이 아니니? 근데 또 이핼 할 수 없는 게 캐릭터를 보자면 영훈이란 남자는 나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게 뻔한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거니? 난 내가 그렇게 파렴치한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그건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야."

소설은 허구야. 거짓말이라구. 이미지는 이번에는 이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상욱과는 두 번 키스를 했지만 정훈과는 키스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신 이미지는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소설의 캐릭터들은 분명 어떤 모델들로부터 창조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사람의 특징들이 모자이크처럼 합성되는 거라고. 다만 자신이 모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실제 인물들은 소설에서 단순히 몇 가지 일치되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을 모델로 이용했다고 분개하기도 감동하기도 한다고. 이미지가 상욱에게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하자 상욱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래, 소설가들처럼 불쌍한 존재도 없는 것 같다. 자신의 과거와 사생활마저도 대중들의 먹잇감으로 던져야 하다니. 사고로 죽은 아들 이야기를 가슴에 묻어두지도 못하고 결국 소설로 만들어내는 어떤 작가를 보고 참 작가들이란 무서운 존재들이구나 싶었어. 널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야. 나는 백 번 널 이해해줄 수 있어. 널 한때 되게 좋아했었고 세월도 이렇게 흐른 마당에, 인생이 뭐 별거냐. 다 이해해줄 수 있어. 너도 그게 직업 아니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상욱이 이미지를 바라보는 눈빛에 연민이 서려 있다. 이미지의 속에서 뜨겁게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술기운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말야, 좀 문제가 생겼어. 난 그렇다고 쳐. 우리 마누라 때문에 말이지."

상욱이 담배연기를 훅, 내뿜더니 좀 비굴해진 얼굴로 말했다.

"우리 마누라, 너하고 연애한 거 실제보다 더 심각한 걸로 예전부터 받아들이고 있었거든. 아마도 예전부터 클럽에선 우리 생각보다 더 찐한 소문들이 나돌았나봐. 네 소설 나오자마자 사서 읽더니 어느 날 펑펑 우는 거야. 내가 진실하지 못했다는 거지. 거짓말했다는 거지. 에전에 마누라 꼬실 때 마누라가 묻더라고. 이미지 선배와의 일 알고 있다고. 내가 그랬지.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그런데 이번 소설 읽고는 날 이제 믿을 수 없다고 이혼하겠다고 난리를 치더라. 사실 요즘 며칠째 냉전중이야. 이런 얘기 너한테까지 하기엔 뭐하다만 사실 내가 그 동안 사고치고 조용해진 지 몇 달 안 되거든. 껀수 잡은 거지 뭐. 그래서 말인데...... 어이 참 미안하다야."

상욱이 거칠게 술을 입에 털어넣으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럴 일은 아마 없겠지만...... 그러길 바라지만...... 하지만 그럴 기회가 있다면, 언제 네가 우리 집사람에게 진실을 좀 밝혀주면......"

- 권지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중에서

이렇게 막 가져다가 타이핑해도 되려나요... (안 되겠지요-_-) 그렇지만 그냥 요즘 생각하던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서, 가지고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한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데, 각자 구해서 읽으라면 아무래도 귀찮아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어쨌든 멋진 책이니까 정말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사서 보세요. ^^ [꽃게 무덤]이라는 책입니다.

어떤 책... 아마도 제목이 '서른'이었나 '서른 둘'이었나 '서른 셋'이었나 하는 책이었는데요. 책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겉장에 이런 요지의 말이 쓰여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창작된 허구의 인물들이며, 혹시라도 현실의 누군가와 닮아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저 위의 소설에서 하고 있는 얘기와 비슷한 맥락이지요. 작가는 미리부터 걱정하는 겁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들이, 소설 속 인물들을 작가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과 동일시하려 하고, 그로부터 여러가지 오해가 싹트는 것을요. 막 잔뜩 소심해져서는 저런 문구를 책 겉장에 써넣고 있는 작가의 기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아 내가 이런 쪼잔한 말까지 써야 돼? ㅠㅠ' 하면서요...;;;

소설가는 거짓말쟁이라고들 합니다. 거짓말을 잘하면 잘할 수록 훌륭한 이야기꾼인거지요. 그렇지만 때로는, 너무나 그럴 듯하게 거짓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그걸 진짜인 것으로 믿어버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할겁니다. 네,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그쯤 되면 작가는 혼란스러울 겁니다. 자기 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지, 사람들의 오해섞인 눈초리에 슬퍼해야 할지.
위의 소설 속 이미지는 이런 난처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도 주의하셔야 합니다. 권지예가 아니라, 이미지가 이렇게 말한 겁니다.) '허구는 숨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다. 허구는 변신했을 뿐이다. 어느 날 실재세계에 아주 위협적인 괴물로 나타났다. 이미지의 삶은 이제 소설 속 여주인공의 삶으로 간단히 규정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이 불멸의 오해와 그 아래 숨겨진 진실을 어떡할 것인가.'
소설가란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안도감이 듭니다. 아 역시, 글쓰는 건 고상한 취미로나 삼고, 소설가 따위는 꿈도 꾸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풋내기 습작 몇 개를 끄적거리면서도 벌써 이런 게 두려워지는데, 그 사람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반역>, 1928


이게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그 그림입니다. 아싸, 본 적 있는 그림이네요. 뿌듯합니다. 이 널따란 세상에서 아는 거 마주치면 또 희희낙락하게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 그나저나 이미지의 반역이라, 소설가란 인간들은 이렇게까지 치밀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미지'라는 이름은 중의적인 의미였나봐요.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10. 16. 02:57

20년 뒤의 자서전

오믈렛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아따 대학가요제 보면서 놀고 왔더니 공부하기가 참 싫소이다... -_-
내친 김에 이거나 마저 올리고 잘랍니다.

<인간과 기계> 숙제 2탄 - 20년 뒤의 자서전.
(아아 이런 즐거운 숙제를 다 내주다니.. 참 좋은 과목 아닙니까 ㅎㅎㅎ)
A4 2장 쓰라고 했는데 신나서 버닝하다보니 그만... 길어졌습니다.

사실 저는 20년 뒤에 제가 뭘로 먹고 살고 있을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직업 얘기 나오면 슬그머니 화제 돌려서 '어? 벨이 울린다' 내지는 '스물 한 살의 나에게는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을테니 비밀이다. 후훗' 따위로 무마하려 했으나... 교수님께서 읽다가 화내실 거 같아서-_- 그러니까 '억지다!!'라고 생각되더라도 그러려니 넘어가주세용.

감상의 포인트:
1. 요리에 대한 글쓴이의 로망이 어떻게 실현되었는가를 본다.
2. 독신생활에 대한 글쓴이의 로망이 어떻게 실현되었는가를 본다.
3. 있지도 않은 직업을 만들어내느라 글쓴이가 겪었을 고초를 헤아려본다.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10. 13. 01:32

연애편지

<인간과 기계> 과목 숙제로 쓴 연애편지. 고백을 하든지 거절을 하든지 둘 중 하나로 잡고 쓰라는 조건이었어요. 음, 그래서 픽션입니다.
사실 지난번에 올린 recursion도 나름대로 소설인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 (너무 짧았나)
뭐, 그냥 즐겨주세요. ^^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10. 8. 03:23

사랑니

굉장히 괜찮았다. 맘에 들었다.
이걸 쓰레기라고 폄하한 사람들이 뭘 보고 그렇게 말한 건지도 알 것 같지만, 그건 이 영화 전체에 흐르는 미묘한 심리 묘사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일거라고 감히 말해본다. 아 물론, 읽어냈는데 그게 체질에 안 맞았을 수는 있겠지. 어쨌든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심리를 읽어내는 재미가 눈물날 정도였다.



아... 전체적으로 매우 만족스럽다. 말했듯이 심리 묘사가 굉장히 치밀하다는 느낌이다. 걱정했던 김정은의 연기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게다가 너무 예뻤고.) 정지우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볼 생각인데, 기대가 크다. ^^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10. 4. 02:37

희망의 원리

..... 그렇지만 이러한 어이없는 쇼크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바가 있다. 즉 열일곱 살의 나이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공상을 했으며, 의형제와 같은 우애를 지니려 했고, 얼마나 자주 산 위의 공기를 마시려 했는지, 또한 지금의 젊은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궁금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산 위의 공기는 돌풍으로 가득 차 있다. 산 위의 공기를 마시는 젊은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불명확한 시기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데 따라 이리저리 이끌린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기껏해야 몇 명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천부적 재능에 대하여 기뻐하고, 그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직업 선택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뿐이다. 많은 젊은 처녀들이 영화배우를 꿈꾸며, 많은 청년들이 지금까지 장터에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기발한 직업을 뇌리에 떠올리지 않는가? 이는 거의 일반적인 갈망 내지는 (그 방향에서) 허황한 꿈일 뿐이다.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어떤 재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갈망은 다행히 오랫동안 보존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충동은 특히 사춘기의 시기에 무언가를 창조하게 한다. 즉 그림을 그린다거나 글을 쓰고, 음악에 심취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음의 사실이다. 즉 젊은이들이 갈구하는 모든 일들은 현실화되고 이행될 때 거의 수축된다.
청춘기의 이러한 특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그대로 반증해 주고 있다. 즉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불길이 타오르고 있듯이, 그들은 예술에 대하여 커다란 열정을 지닌다. 그러나 누군가가 만약 예술의 본질을 파악해 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무미건조하게 변할 뿐 아니라, 한 가지 측면마저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오그라들게 된다. 이 시기에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쉬우며 잘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쓰는 것은 무척 어렵다. 말하자면 끓어오르는 열정을 지닌 젊은이가 창출해 내는 것은 <마치 오그라들다가 타버린 듯이 말라비틀어진 자두와 같은> 열매로 출현할 뿐이다. 베티나 폰 아르님은 평생 동안 이러한 청춘의 특성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언제나 바로 그 점을 드러내려 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표출하고자 하는 내용을 거의 편지 형식을 통해서 표현했던 것이다.
청년기 문학 운동의 또 다른 형태는 일기 형식이다. 그것은 정당한 이유로 어떤 감춰진 형태로 평가되지만, 때로는 감춰진 무엇을 전달하는 데에 무척 적당한 장르이다. 어른들 가운데 더러는 젊은 시기에 일기를 쓰고, 이를 소중하게 보관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기장에서 자신의 깊은 감정의 수위를 측량하기 위하여 어떤 척도를 세우려 했다고 할까. 사랑, 우울, 어떤 싹트는 상 그리고 애벌레와 같은 사상 등 모든 것이 거기서 채취되고, 출발로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청년기의 꿈은 결코 김빠진 것은 아니지만, 번거로울 정도로 고혹적으로 빛날 뿐이다. 이 시기는 불행하고도 성스럽게 작용한다. 그렇지만 용맹하고 오색영롱한 삶, 고매하고 폭넓은 삶을 갈구하는 젊은이의 태도는 거의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정의로운 청년은 언제나 기사와 같은 젊은 의지를 지닌다. 그렇기에 청년은 극복해야 할 모험들, 발견해야 할 아름다움 그리고 쟁취해야 할 위대함을 열망하곤 한다.
젊은이가 처한 삶은 이와는 너무 멀리 동떨어져 있으므로, 멀리 위치한 꿈들은 아름답게 장식되는 법이다. 젊은이들은 멀리에 위치한, 그러한 꿈에 매혹될 뿐 아니라, 자신을 더 이상 은폐시키지 않은 채 그 꿈을 박차고 나온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더욱 가까이 다가올수록, 젊은이들은 더욱더 격렬하게 행동한다. 멀리 위치한 꿈은 이제는 마치 저녁에 자그마한 소도시로 데려다 주는 기차와 같은 부호로서 족할 뿐이다. 이를테면 시골에서 상상하는 대도시의 머나먼 공간이다. .....


딱딱한 껍질에 싸인 두꺼운 놈으로 무려 5권이나 되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블로흐가 누구냐면, 당연히 나도 잘 모르지만-_- 마르크스주의랑 유토피아랑 그런 것들에 대해서 연구한 사람인 모양이다. 또 한가롭게 서가를 누비다가 빤딱빤딱한 하얀 표지가 그럴 듯 해서 업어왔다.

내용도 어렵고 문체도 불친절해서(아니 이렇게 심각하게 추상화시킨 문장들만 적어놓으면, 읽는 사람은 이걸 끊임없이 현실의 무엇에 대입시켜야 할 지를 고민하며 읽어야 한단 말이다! 내가 그런 훈련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나마 저 부분은 상당히 친절한 축이다.) 1권만이라도 다 읽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책이지만 이 부분은 꼭 갈무리해두고 싶었다.
사실 저걸 읽고 쓴웃음을 짓는 동시에 심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내가 하고 있는 짓들이 젊은 날의 치기라 이거지...-_-^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저자의 시니컬한 시각이 어줍잖은 딜레탕트들을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뭐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이 갈망(?)이(세상에 목마르다고 표현하는 것까지 이제 찔리게 생겼어-_-) 오래가지 않을거라는 그의 예언에 위안을 삼아야하나, 아니면 젊을 때는 으레 그런 것이지-라고 변명하는 데에 써먹어야 하나. -_-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9. 30. 02:35

토이 - 그럴 때마다

아침에 이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리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그냥 편하게 잘 불러지는 멜로디에 속을 뻔 했지만, 이거 절대 단순한 상황이 아니다!!
일단 가사를 보시라. 아시는 분들은 좀 흥얼거려 보기도 하시고.

반복된 하루 사는 일에 지칠때면 내게 말해요
항상 그대의 지쳐있는 마음에 조그만 위로 되줄께요
요즘 유행하는 영화 보고플땐 내게 말해요
내겐 그대의 작은 부탁 조차도 조그만 행복이죠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늦게 잠에서 깨 이유없이 괜히 서글퍼 질 땐

그대 곁엔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
오랫동안 항상 지켜왔죠 그대 빈자리
이젠 들어와 편히 쉬어요

혼자 밥먹기 싫을땐 다른 사람 찾지 말아요
내겐 그대의 짜증섞인 투정도 조그만 기쁨이죠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누군가 만나서 하루종일 걷고 싶을땐

그대 곁엔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
오랫동안 항상 지켜왔죠 그대 빈자리
이젠 들어와 편히 쉬어요


정말 구김살없고 따뜻한 노래인데... 어쩐지 이상하다.
짝사랑이라는 것.. 짧은 기간에는 사람을 들뜨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길어지면 사람을 반쯤 말려죽이는 몹쓸 병이 아니던가?
이 남자는 오랫동안 그대의 빈자리를 지켜왔댄다. 헌데!
오랫동안 짝사랑을 해 온 사람이 어찌 이리 구김없이 주저없이 자신에게 다가와 달라는 말을 할 수 있냔 말이다..
게다가 저렇게 '딱 남자친구가 생각날 만한' 상황에서 자기를 떠올려 줄 것을 확신하는 걸 보면,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걸 보면 꽤나 가까운 사이같은데..?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
1. 사실은 그렇게 상사병으로 바작바작 마를 정도로 오래 기다린 것이 아니다
-> 그렇지만 이렇게 소심 내지는 섬세한(?) 남자가 몇 주 좋아한 거 가지고 '오랫동안'이라면서 법석을 떨 것 같지는 않다.
2. 한때 바작바작 말라버렸으나 최근에 소생했다(?)

아무래도 두 번째 시나리오가 유력한 것 같다.



일단 그는 그녀와 가까운 사이다.
오랫동안 그녀 주변을 맴돌아온 순애보 중 순애보. 사실 그녀에게 직접적인 프로포즈를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속만 타들어가던 찰나, 그녀가 그를 새롭게 보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이유는 모른다.
좋아하던 남자에게 차였을 지도 모르고,
사귀던 남자랑 헤어졌을 지도 모르고,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점점 그의 지극정성에 탄복하게 된 것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이제서야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단지, 자신을 변함없이 아껴주는 좋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달리 좀 더 다정해졌음을 눈치채게 된다.
놀란다. 왜 갑자기 달라졌는지야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기뻐한다.
그녀가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그는 사라진 줄 알았던 희망을 다시 품게 된다. 혼자서 쌓아왔던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가기 시작한다. 자기를 저버린 것 같았던 세상이 이제 그녀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된다.

자, 좀더 시간이 지난다.
자기 전에 그녀와 통화하는 것이 점점 그의 일상이 되어간다. (사실 이쯤 되면 충분히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
가끔씩은 전화 끝에 용기를 내어 '좋아해' '사랑해' 등의 간지러운 말도 슬쩍슬쩍 끼워넣어 본다.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녀는 적어도 전화를 확 끊어버리거나 싸늘한 말로 분위기를 깨버리거나 하진 않는다.

이제 결정타를 날릴 때가 머지 않았다.
그녀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든든한 존재인지를 역설하고,
그러니까 이제 내게 와라...라고 강력하게 어필해야 할 시점!!



...이 노래의 남자는 바로 지금 이런 상태인 것이다!!!!
아아, 정말로 복잡한 시츄에이션 아닌가? -_-
강력한 프로포즈가 되어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저렇게 젠틀한 것은 저 남자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이니 뭐라 토 달지 말지어다...;;;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9. 24. 23:41

Recursion

좋아, 그렇다면 말이지, 이제부턴 네 멋대로 해 봐.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저질러봐. 그 좋아하는 책 실컷 읽고, 머릿 속을 헤매는 문장들도 마음껏 뱉어내보란 말이야. 상상만으로 두근거렸던 그 영상들도 현실로 끄집어내라구. 네 눈이 삐지 않는다면 네가 뱉어낸 것들을 판단할 재주만큼은 있겠지. 역겹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길, 시시한 것 보다야 나을테니. 시시하더라도 스스로를 비하하진 말길, 상사병 걸린 듯이 동경만 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낫고 무엇에도 마음 끓이지 못하는 것보다는 천 배 나을테니. 그것도 부족하면 삶을 비웃듯이 훌쩍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라구.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하고 싶은 짓이나 실컷 하며 살아야지. 그러니까 자, 이제부터 글을 써 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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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30분밖에 안 지났을텐데도 벌써 몇 갠가의 꿈을 꾸었다. 꿈 속의 복잡한 이야기가 남겨놓은 잔상이 거미줄처럼 남아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한다. 이불을 걷어내려다 서늘한 기운을 느끼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어둑어둑한 방 안의 공기는 싸늘해서 텅 빈 것 같고 사물들은 푸르스름한 빛깔을 낸다. 더듬거리며 전화기를 찾아 손에 쥔다. 익숙한 이름들을 하나 둘 떠올려보다 말고 쓴웃음을 짓는다. 어린애같잖아? 비웃자, 이럴 때는 스스로를 마음껏 비웃어도 좋다. 조롱을 퍼부어도 좋다. 정말 한심해서 봐주기 힘들구나. 창피함에 몸이 비틀릴 지경이다. 실소를 접고 몸을 일으켜 형광등을 켠다.

대단치는 않지만 약간의 시장기도 있고, 늦어지기 전에 슬슬 나가봐야겠다. 하얀 바탕에 하늘색 스트라이프 무늬의 남방을 고른다. 양 쪽 소매에 팔을 끼우고, 뒤집어진 깃을 반듯이 한 다음, 맨 윗 쪽 단추부터 채운다. 그런데 내가 왜 서두르고 있지? 손을 멈춘다. 천천히, 느릿하게 단추를 채운다. 다시 속도를 빨리해 본다. 다시 느리게. 그리고 굳어진 표정을 조금 풀어 본다. 나는 눈썹하나 까딱않고 늑장을 부리면서, 녀석에게 거기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저 시간이라는 녀석은 조금은 툴툴거리겠지만 침대 끄트머리에 털썩 걸터앉을 것이다. 제가 별 수 있겠나. 조금 전의 조소는 잊은 채로, 오늘 저녁의 주도권은 내가 잡았다는 생각에 어쩐지 뿌듯하다.

톤을 적당히 죽인 엷은 분홍색의 트렌치코트를 걸친다. 계절의 변화를 은근하게 즐기며 드는 나만의 축배다. 무슨 말이냐면, 가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트렌치코트를 걸친다는 것도, 해가 짧아지면 세로토닌의 분비가 감소해서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 쉽다는 식의 과학적인 설명을 곁들일 수 있는 나의 이상한 ‘환절기 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문을 나서며 습관처럼 불을 끄려던 손을 멈칫한다. 그대로 두고 가는 게 좋겠다. 돌아와서 문을 밀치자마자 밝은 불빛이 쏟아지면 그것도 나름대로 반가울 것 같다. 문을 나서고, 길을 걸어 식당에 도착한다. 적당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이런 식으로 혼자서 다니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어색해하는 건 그런 내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쪽이다.

수저를 놀리면서, 단어와 단어를 모으고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본다. 어릴 때부터 즐겨온 놀이 비슷한 것이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낼 때는 잊어버리곤 하는데, 많은 말을 입 밖에 내고 나면 지쳐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고독을 즐기는 사람 같지만 사실 난 그 반대였다. 두려웠다. 세상과의 관계를 빼 버리면 나에겐 아무 것도 남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웃음이 많은지 적은지, 낯을 가리는지 안 가리는지, 나약한지 강인한지, 혼자일 때는 나의 이 모든 특성들이 조금씩 엷어지며 사라져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보다시피 혼자를 자초하고 있다. 혼자이건 그 어떤 사람과 함께 있건 변하지 않는 자신의 특성을 발견하기엔 이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가로등 불빛이 점점이 원을 그리는 길을 돌아온다. 바라보는 눈은 없지만 조금 더 꼿꼿하게 걸으려 노력한다. 아니 사실 바라보는 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먼 발치 따라오는 뒤에서, 양 옆에서, 또 저 멀리 있는 건물의 창가에서, 나의 걸음걸이와, 가볍게 핸드백을 쥔 손, 발을 디딜 때마다 약간씩 흩날리는 머리카락, 깜박이는 눈을 훔쳐보고 또 훔쳐본다. 집요하게 쫓아오는 시선이 내게 묻는다. 흔들리니? 아니. 외롭니? 전혀. 오히려 지금의 내가 더 맘에 드는 걸. 너무 자신에게 빠지는 건 경계해야 할 걸? 허, 그 정도로 심각하게 빠지기엔 내 눈이 좀 높아서 말야. 좋아, 그렇다면 말이지, 이제부턴 네 멋대로 해 봐.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저질러봐. 그 좋아하는 책 실컷 읽고, 머릿 속을 헤매는 문장들도 마음껏 뱉어내보란 말이야. 상상만으로 두근거렸던 그 영상들도 현실로 끄집어내라구. 네 눈이 삐지 않는다면 네가 뱉어낸 것들을 판단할 재주만큼은 있겠지. 역겹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길, 시시한 것 보다야 나을테니. 시시하더라도 스스로를 비하하진 말길, 상사병 걸린 듯이 동경만 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낫고 무엇에도 마음 끓이지 못하는 것보다는 천 배 나을테니. 그것도 부족하면 삶을 비웃듯이 훌쩍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라구.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하고 싶은 짓이나 실컷 하며 살아야지. 그러니까 자, 이제부터 글을 써 보는거다.
스타워즈 열풍이 지나간 지도 제법 되었고, 싹 다운받아놓고 광분하며 n번씩 돌려보던 것도 벌써 두 달은 족히 된 일이건만.
생뚱맞게 이런 주제로 기다란 이야기를 늘어놓게 된 것은 어제 신나게 마셔댄 알코올 탓이리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캐릭터의 변천사>

프리퀄과 클래식. 영화 내의 줄거리에 따르면 프리퀄-클래식이지만 현실에서 만들어진 시기를 생각하면 클래식-프리퀄이다. 숙취로 멍해진 머리로 침대에서 몇 시간째 뒹굴, 뒹굴 하면서 클래식의 주요 캐릭터들과 프리퀄의 주요 캐릭터들을 떠올리다보니 문득 20년 세월의 간극을 느꼈다...

레아 vs 파드메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강인한 여성상'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것인데, 그 표현에 있어서는 20년 세월만큼이나 많은 차이가 있다.
웬만한 남자들이라면 말도 못 붙여볼만큼 당당한 여장부 레아. 헤어스타일이 촌스러운 것은 시대의 영향이니 어쩔 수 없다 치지만 한 솔로의 이죽거림에 대꾸하는 저 팍팍한 선머슴같은 태도란! 그 당시의 페미니즘을 선도하는 여성상이란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강인하고, 때로는 저돌적이며, 남자를 경계하고 전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여성. (아 물론 이렇게 안 좋은 쪽으로만 말했지만 레아는 그래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럼 이제 파드메를 볼까. 시종 두세 명쯤 붙이고도 한 시간은 족히 걸렸을 듯한 요란한 헤어스타일과 화장, 화려한 의상까지. 그녀는 자신의 미를 가꾸는 데에 열성을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집착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수완의 일종으로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강인하지만, 저돌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신중하게 계산된 전략을 발휘한다. 남자는 경계의 대상도 전투의 대상도 아니며, 공존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도 다른 점은 그녀는 스스로의 여성성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미를 가꾸고, 가정을 원하며, 눈물을 보일 줄도 안다.
'강인한 여성상'이란 것은 확실히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는 모양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 역시, 파드메와 같은 여성상 쪽이 좀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한 vs 아나킨
두 사람의 공통점은 아까 말한 '강인한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는 젊은 남자라는 것. 그러나 이들도 역시 많이 다르다. 히로인과 사랑에 빠지고도 용서받을 수 있으려면 그 시대가 용서할 수 있을만큼 괜찮은 남자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괜찮은 남자의 요건 또한 시대가 흐름에 따라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은 어떤 상황에서건 당당하고 호쾌하다. 표현에 있어서도 몹시 거칠고 직선적이며, 사고 또한 단순한 편이다. 그의 머릿 속은 의리와 명분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아나킨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남성상을 보여준다. 아나킨에게는 두려움이 있으며, 그것을 감추지 않는다. 화면에서 몇 번이고 눈물을 보인 그가 자신의 어머니, 자신의 연인과 대화하는 방식은 지극히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그를 지배하는 것은 의리도 명분도 아닌,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다.
메트로섹슈얼이라든지, 꽃미남 선호 풍조;라든지 하는 것들로 이미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시대는 남성적인 남성보다는 양성성을 지닌 남성을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사랑에 빠지는 방식
레아와 한의 맺어짐은 거의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안 맞는 듯 하면서도 묘하게 아귀가 맞는 둘의 성격 때문. 처음 레아를 본 한은 '정신력 하나는 끝내주는 여자야!'라며 감탄한다. 레아는 한의 거침없는 행동에 분개하면서도 이제껏 자신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 끌리게 된다.
반면, 아나킨과 파드메는 어떤가? 그들의 성격이 찰떡궁합이라는 실마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아나킨은 잘생겼고 파드메는 예뻐서'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_- 어린 아나킨은 파드메에게 '첫눈에 반했다'. 이건 뭐 그냥 무조건 외모만으로 승부나는 게임이다. 한편 파드메는 젊은 아나킨의 강렬한 눈빛공세에; 홀딱 넘어가버리게 된다. 필연성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이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외모지상주의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쯧쯔..



<클래식과 프리퀄에서의 대립 양상에 대해>

양성성 얘기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클래식의 정확한 선 긋기 식 이분법과 프리퀄의 다소 모호한 대립 구도도 비교할 만하다.

선과 악
클래식에서, 다스베이더는 절대적 악인이다. (마지막에 돌아선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돌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즉, 중간과정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루크와 벤은 악에 대립하는 선의 수호자이다.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 그러나 프리퀄에서는 모든 것을 혼란에 빠뜨린다. 다스베이더는 다름아닌 선의 수호자 제다이의 그림자였으며, 더욱더 충격적인 것은 아나킨이 그렇게 다스베이더로 변해가는 과정이 결코 불연속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알 수 없는 흐릿한 상태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며, 이는 클래식의 이분법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다.

강인함과 나약함, 남성성과 여성성
클래식에서 한과 레아는 시종일관 씩씩하고 당찬 모습만을 보여준다. 반면에 파드메와 아나킨은 유능하고 강인한 직업인(-_-)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한 면모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또한 한과 레아는 남성성과 여성성 중 한 가지만을 표현하는 캐릭터이다. 한은 전형적인 남성적 캐릭터이고, 레아 역시 캐릭터로 치면 선머슴에 가깝다. 그러나 파드메와 아나킨에게는 두 성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그들에게는 여성성도 존재하고, 남성성도 존재하는, 양성성의 모습을 더 쉽게 찾아보게 된다.
이렇듯 서로 상반되는 듯한 개념이 섞인 채로 인물에 투영된다는 것 또한 클래식과 굉장히 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늙은 오비완과 젊은 오비완에 대해>

알렉 기네스가 연기한 늙은 오비완은 전형적인 '현인'의 모습이다. 루카스가 그에게 간달프 같은 이미지를 주문했다고 하니 빼도박도 못할 이야기. 그는 현명하고, 세상의 지혜와 경험은 다 가지고 있으며, 능글맞기까지 하다.
그러나 유안 맥그리거가 연기한 젊은 오비완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상에서는 가장 이질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젊기 때문에, 그는 아직 원칙을 신봉하며 예외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젊기 때문에, 그는 노인네의 능글맞은 유연한 대처보다는 젊은이 특유의 고집불통과 완고함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이건 반대잖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오히려 젊은이들은 현실에 무지하기 때문에 원칙주의자에 고집불통이어야 한다.라는 개인적인 견해는 차치하고라도, 이야기에 필연성을 부여하려면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 오비완은 지나치게 능글맞으며 유연하다. 시도때도 없이 눈웃음을 흘리고 다니는가 하면(점잖아야 할, 그래서 허튼 웃음도 자제해야 할 것만 같은 제다이가!) 웬걸, '협상가'로 우주에 이름을 날리고 있기도 하다...
아나킨이 다크사이드로 가는 과정에 좀더 필연성을 부여하려면, 아나킨의 마스터로서 오비완이 실격이었던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오비완에게는 아나킨의 섬세함을 달래줄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 설명에 실패하고 되려 능글능글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오비완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아나킨은 '잘 보듬어주고 잘 가르쳐놨는데 저 혼자 폭주해서 잘못된 길로 빠져버린' 우주에서 제일 질나쁜 비행청소년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연히 누군가의 글을 읽게 되고,
그 느낌에 홀려 그 사람의 다른 글들을 찾아 읽게 되고,
결국 그 사람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가지며 끝내 동경하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으신지? 프로작가도 아닌 보통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난 PC통신 시절부터 그런 일에 맛을 들였고,
지금은 이글루스와 네이버와 태터툴즈에 힘입어 온 나라에 퍼진 블로그 덕택에
전보다 더 풍족해진 환경 속에서 이 무익한 취미를 계속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뚜렷한 자의식, 독특한 감수성, 견고한 신념.
신념이라고 하면 대단히 종교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의미로 쓴 건 아니고,
애써 부정하고 싶어하지만 절대 부정하지 못하는 명제 같은 걸 말하고 싶은거다.
이를테면 '나는 영원히 아웃사이더일 수 밖에 없다'고 믿는 것도 일종의 신념이고.
아마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는 신념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잠깐 딴소리인데.. 가끔 우습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모순이 있다.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나만의 특이한 면모'라는 식으로 말하면 "아니야, 누구에게나 그런 건 있어"
'이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 "아니야, 너만 그래"라고 말한다!
실컷 설명해놓고도 흡족하지 않아 어떻게 하면 이 오묘한 것을 더 근접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누구에게나 있는 것' 따위로 치부해버리면.
짜증이 확 솟는다. 그런게 아니니까 설명하려고 한거잖아.
그나마 후자 쪽 반응이 더 견딜만하니 요즘은 아예 그렇게 얘기하게 된다.


세상엔 글로 벌어먹고 살지 않으면서도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독서량을 짐작케하는 유려한 표현들보다, 좀더 투박하더라도 현실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글에 난 더 끌린다.
글쎄, 화려한 글을 만나면 일단 주눅부터 든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 변명하지 말자. 이건 질투다. 나도 그렇게 사치 좀 부려보고 싶다!

그러나 이런 유치한 시샘을 제껴두더라도 투박한 쪽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때로는 아집, 때로는 비틀린 맹신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건 그 사람 특유의 촉수 때문. 독특한 감수성이라는 건,
본인에겐 재앙일지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에겐 동경의 대상일 수 있다.

가만.. 방향을 잃었다. 아까 난 도대체 무슨 말을 쓰고 싶었던걸까.
거의 울고싶은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중간에 단어 고르다 지쳐버렸다. 뭐였지..
그러니까 아집도 집착도 나쁜게 아니다? 아닌데..
그럼 부러워 죽겠다? 이것도 아니고. 이놈의 기억력은 한 번 더 저주해줘야겠다.
역시나 아닌 것 같지만 머리 속에 남아있는 잔상만이라도 적어보자.

- 갈증이란 느낌조차 잊고 살았더니 물 한 모금은 감질나기만 하다.
- 역시 밤은 위대하다. 또 이런 글 나부랭이를 남길 용기가 생겼다.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8. 18. 23:36

움베르토 에코

기억력을 저주해가면서 책을 읽었다. 이렇게 수많은 지명과 인명이 등장하고, 게다가 그 이름들이 서너 번씩 입 속으로 외어도 뒤돌아서면 싹 까먹어버릴 그런 것들이라면! 사실 더한 것도 많겠지만 난 그런 것에 원체 적응이 안 되어있다.. -_- 그렇지만 이런 걸 읽다 보면 느끼는 것은, 대충 대여섯 명 남짓한 인물들을 데리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소설가는 정말 부지런하거나(수많은 복잡한 캐릭터들을 세밀하게 배치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설정에 공을 들이거나) 아니면 단지 게으를 뿐이거나(소설 전체를 지배할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 몇몇에 의존하거나 자신의 오감이 받아들여온 세계를 묘사하는데 만족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기 위해 각지를 여행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이들을 보면 왠지 공정치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지만, 그들 생각에는 내면의 글을 발견하겠다고 매일 책상머리에 앉아 공상에 잠기는 것이 더 치사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으, 말이 길어졌지만 어쨌든..

바우돌리노
책 뒤의 소개를 보면 '모든 중세의 신화를 가르강튀아적인 박식으로 녹여낸 소설이다'라고 되어있다. 음. 가르강튀아적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온갖 신화를 집대성했다는 것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가끔 스쳐가는 익숙한 신화 속 이름들, 우스꽝스럽게 재편된 일화들을 발견하면서, 나이를 먹어도 도대체 철이 들지 않는 이 아저씨들의 무용담이 전혀 터무니없는 상상에서 나온게 아니라는 것도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히 여기 나온 기괴한 이야기들에는 다 출처가 있을 것이다. 우스꽝스럽게 느껴진 것은 내가 그 이름과 그 일화들을 알기 때문이니, 여기에 나오는 그 모든 배경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움베르토 역시 자기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을 것을 상상하면서 한껏 재주를 부려본 것일테고.

장미의 이름
수도원의 도서관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천국 같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작가도 이 광경을 꿈꾸는 듯이, 음미하는 기분으로 쓴 것 같다. 그런 느낌이 확 묻어나는 걸 보면 이 작가는 중세 수도원과 수도사들, 그들의 시대를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화가들이 지나간 르네상스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하)권은 도서관에도 서점에도 없어서 못 읽었다. 택배나 기다려야지.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5. 8. 4. 01:04

Down with love


*
실컷 다운받아서 다 보고 나니 DVD가 도착했다. OTL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족이었다. special features가 끝내줬거든!

*
고등학교때부터 남자의 비율이 압도적인 환경에서 살아와서 가끔은 '여자친구들과 대화하는 프로토콜'을 까먹었다고 느낄 때도 있다. 푸하,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남자가 대화하는 방식과 여자가 대화하는 방식은 분명히 미묘하게 다르고, 그리고 분명히 나 또한! 그랬었다. 우연히 중학교 때의 메신저 대화록 같은 걸 볼 때마다 그걸 확실히 느낀다...; 어딘가 날카롭다. 어딘가 변덕스럽다. 말하지 않고도 전달되는 '무언가'를 강력히 믿는다.
"그게.. 잘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런 느낌. 뭔지 알 것 같지 않아?"
"응 알 거 같아!!" 그녀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

근래엔 여자친구들을 주로 만났는데.. 세상에, 아무리 연이어 만났다고는 하지만 목이 쉬고 머리가 지끈지끈;; 말했지만 음성언어란 보통 비싼 녀석이 아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수다쟁이 소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
외로웠었다. 더이상 소녀의 것이 아닌 고민과 갈등들로 괴로웠었다.
그런데 나와 전혀 다른 생활을 하며 지내온 친구가 똑같은 고민으로 열변을 토하면!
갑자기 보편적 무의식이니 원형이니 하는 말이 생각나면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아, 안타까운건 context도 다르고 solution도 다르고 단지 problem만 같다는 것이다.;;

*
Down with love.
그저 유쾌하게 웃어달라는 저 발랄한 엔드 크레딧을 무시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넌 애인이 좋아, 초콜릿이 좋아?"
(아.. 생각보다 훨씬 진지한 물음이 되어버려서 계속 마지막 문장을 고치고 있다;;)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8. 2. 21:48

우산

오랜만에 놀러간 친구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하려던 차에 갑작스레 비가 쏟아졌다. 소나기겠거니 하고 잦아들길 기다려 친구네 집을 나섰는데, 가랑비 속을 걸어오던 중 무슨 소설이었더라.. 어쨌든 이 대목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왜 하필 내게 우산을 씌워주었느냐고 묻는 여자에게, 남자는 "감기에 걸리신 것 같길래"라고 대답한다. 물론 여자는 궁금해한다. 어떻게 감기에 걸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을까?


감기 걸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우산을 미리 챙기는 습관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감기에도 무심하다.라는 아주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우산을 미리 챙기는 습관도 없고 내 감기에도 무심한 사람이지만 이번 감기는 퍽 오래가는 것 같다.


아 덧붙이자면, 예전에 아라 가비지에서 어떤 글을 보고 생각한 게 있었다.
'여자들이 우산을 씌워주는 남자를 좋아한다면, 왜 세상의 남자들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생각한 답은, 적절치 못한 호의는 베풀지 않느니만 못하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같은 실수 - 우산을 씌워주는게 아니라, 적절치 못한 호의를 베푸는 것 - 를 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거고.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7. 18. 04:03

이만교, 표정관리주식회사

표정, 몸짓, 목소리, 말, ...
때로는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나를 깨달아.
시덥잖은 백일몽이 하루를 슬금슬금 파고들어.

네 마음에선 아무 맛도 향도 안 나잖아,
그런데 대체 왜 그런 웃음을 짓고 있는거야.


나도 몰라, 언제부턴가 이런 몹쓸 버릇이 붙어버렸어.







- 재미난 소설 읽고 쓴 따분한 감상.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6. 6. 17:19

아직도 모르겠다

살다보면 정말 크고 작은 기회를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수많은 기회 중에 무엇을 잡을 것인가, 이 선택의 문제는 항상 어렵다.
시간이라는 자원은 항상 제한되어 있으므로.

그러므로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까?

당연히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이루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아야 한다.
아, 정말 어렵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그냥 greedy하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돌아서 가는 길은 피해야 할 나이인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진다.
그런데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뭐지?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5. 30. 03:43

lkin.kaist.ac.kr

KAIST 수강지식인.
가을학기 시간표를 짜 보아요~

라고 끝내려고 했지만 할 말 있다. -_-

이거 만들면서 겪은 몸고생 마음고생은 정말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지.
삘 받았으니 실컷 하소연이나 해볼란다.

리더는.. 아무리 일을 적게 맡는 것처럼 보여도 최소한 서너 배는 더 고생하는거다.
서너 배? 아니 최소한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일들의 합 이상으로 고생한다.
시킴 '당하는' 입장에선 전혀 알 수 없는거다. 물론 쫌만 생각해보면 알게되지만..
혼자만의 스케줄도 관리하기 힘든 것인데(자기관리 서적들이 왜 그렇게 지천으로
널려있겠는가) 하물며 여러 사람한테 작업 나눠주고 진행상황 체크하는 것은..
직접 해봐라. 도대체가 개인적인 사정들이 왜 그리 자주 생기는지, 왜 한 번 말해서는
절대 안 고치고 다섯 번 여섯 번을 말해야 고치는지, 이때까지 꼭 해오자고 다같이
정해놓고도 왜 꼭 안 해오는지, 몇 시에 모이자고 했는데 제 시간에 모이는 놈은
왜 아무도 없는지... 속 터지는 일 투성이다.

팀장은 원래 스케줄링만 잘해도 성공하는 거랜다. 초짜 팀장이 그런거 알리 있나.
리더는 일도 많이 맡아야지!라는 생각에 그냥 다 떠맡아버렸었다.
혼자 밤새가며 스켈레톤 다 짜고 제반이 되는 함수들 만들어내고 디비 설계하고
로그인모듈 만들어내고 디자인 갈아엎고 과목사전 만들고...
식음을 전폐한다는 문자 그대로였다.
그 자체가 나름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게 다가 아니다. '너 좋아서
미친 듯이 만들었으면 그만이지, 무슨 대가를 더 바래?'라고 말하는 건 '너 좋아서
연구했음 그만이지, 무슨 대가를 바래?'라고 말하는 거나 똑같다. 그 최근에
회자되는 '과학자는 순수하게 과학만 좋아해서 연구해야지, 돈을 바라서는 안
된다' 따위의 망언이나 같은 꼴이다 그말이다.
난 졸라 열심히 했다. 미친듯이 했다.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 노력 좀 알아주길 바라는 게 그렇게 나쁜가?

요즘은 혼자 울화통이 터진다.
같이 일했던 팀원들마저,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 싶다.
누나는 시키기만 하고 하는 일이 뭐가 있냐는 둥,
별로 대단한 시간을 투자한 것 같지도 않은데 신기하게도 많이 만들어졌다는 둥
(그 당시 나는 여러 사람이 나눠서 작업하기 힘든 부분들을 전부 혼자 떠맡아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밤을 새고 있을 때였다. 당근 이 말 듣고 속터졌다)
이거 설계가 너무 잘못되지 않았냐는 둥(일단 설계가 잘못되었다는 말 부터가
잘못된 말이다. 완전 허접으로 짠 것도 아니고 여러 사이트 들여다보면서
고민 많이 한 설계다. 내가 밤새서 설계할 때 같이 논의하기는 커녕 제 할일 다
챙기고 다니던 녀석이 이런 말 하면, 짜증 안 날 수가 없다구.)

프로젝트 회의 한 시간을 위해서 나는 서너 시간씩 고민하고 설계도를 그렸다.
여러 사람이 적당히 분담해서 미리 해올 수도 있는 일이건만 애들은
'숙제가 있으면 부담스러워요, 그냥 모여서 해요' 따위의 말로 일축해버렸다.
회의를 진정한 '회의'로 만들기 위해서, 즉 여러 사람의 머리를 모아야 하는
일에만 오로지 집중하기 위해서, '이건 분명히 한 사람이 맡아서 일관성있게
해야 하는 일인데'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나 혼자 맡아버렸다.
그거 좀 애들한테 시키면 안되냐고?
애들 시키면 싫어하거든. 시켜도 절대 안해오거든. 팀장은 언제나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줘야 한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아는거니까, 자꾸 싫어하는 일
시키면 싫증내니까 그냥 다 내가 한거다.
그렇게 배려해줬는데... 생색내는 것 같아서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는데...
그러고도 억울하단 소리를 듣게 되다니 정말 화가 난다.

사실 나는 책임감'만으로도'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다.
즐겁지 않은 일이라도, 설사 하기 싫은 일이라 해도 책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꾸역꾸역 해치워버린다. 그럴땐 개인적인 용무고 사정이고 모두 뒷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일만 아는 냉혈한으로 보지 마시라. 그렇게 책임감에
불탄다고 해서 또 그 때문에 제껴둔 개인적인 일에 대한 미련이 없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겨울 방학에, 난 내가 '바라는' 것은 모두 포기했었다.
따뜻한 집 소파에서 뒹굴거리는 것, 음악을 듣는 것,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것, 운동,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
그리고 그 모든 걸 포기하고 내가 '해야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건 불과 얼마 전에서야 깨달은 일이고,
그동안 속 태우느라 이제껏 앓은 적 없던 위염이란 녀석을 얻기도 했다.

겨울 방학, 그때 이미 나는 내가 미친듯이 불태우고 있던 노력과 시간과 열정이
어디에도, 어떤 형태로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태우는 족족 고스란히 공중으로
흩어져 버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욱 괴로웠지만,
책임감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쓴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 다시금 확인하는 지금은
더욱 마음이 쓰리다.
사람들은 이런 나의 노력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는다. 팀원들조차 그렇다.
이걸로 많은 교훈을 얻었지, 라고 자족하기에는 재주만 실컷 부리고 실속은
못 챙기는 내가 정말 바보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 실속이라 하긴 뭐해도.

우스운 얘기 하나 할까.
대외적으로 홍보라든지 공지사항 같은, 공식적인 활동을 할 때에는
그 팀을 이끄는 리더가 전면에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무슨 대외홍보처 같은 부서가
따로 있는 거대한 조직이 아닌 이상.
그런데 얼마 전에 한 후배가 '누가 봐도 공식적인, 팀을 대표해서 쓴 것 같은'
글을 비비에스에 올려 공지를 했다. 점잖게 한 마디 했다. 이런 건 팀장이
해야 하는 일이다, 라고. 즉각 동방에서 자리를 빼던데 이게 섭섭해서였을까.
그런데, 보통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잘 몰라서 그랬겠지'라고 넘어갈 수
있었을 일인데, 그리고 조곤조곤 후배의 섭섭합을 달랬을텐데,
난 그날 내내 서운함과 억울함과 뭐 여러가지 때문에 속이 쓰려왔다.
저기 위에 잔뜩 썼잖아. 실컷 일해놓고도 아무도 몰라줘서 섭섭해 죽겠는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쪼금이라도 생색낼 수 있는(그래봤자 자기만족이지만)
기회(?)가 그렇게 공지라도 띄우는건데, 나로선 억울할 수 있지 않아?
그리고 여기저기에서(그친구가 공지를 띄웠던 게시판을 비롯) 그 후배 한 명을
치하하는 글들이 올라오면서... 나는, 솔직히 얘기하면 정말 속상했다!
내가 제일 열심히 했으니까 저 칭찬 내가 받아야 하는 건데, 뭐 이런건 아니다.
그래도 팀원들 중에선 가장 열심히 한 녀석이었으니.. 칭찬받을만도 하다.
그렇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나에게는,
대체 무엇이 남았단 말인가?
누가 더 열심히 했나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 난 이게 억울한거다.
내가 팀장으로서 노력했던 그 시간들을, 남자친구와 엄마를 빼면,
도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어쨌든 많은 경험이 되었잖아. 실력이 늘었잖아. 그럼 된거 아냐?'
글쎄. 어떤 일이든 이만한 노력을 쏟아붓고도 경험이 되지 않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얻은 것은 있지만, 그건 내가 정말로 갈망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때 정말로 1순위로 하고 싶던 일은 다른 거였으니까.
무슨 댓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서럽고 억울하기
그지없다.
유치한가? 전에도 말했다구. 인간이란게 고매한 목표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막상 까뒤집어보면 그런게 다가 아니라고.

저 따위 푸념이나 늘어놓고 있다니, 리더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 없군. 이라고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각종 리더쉽 어쩌구에서는 리더라는 걸 무슨 고고한 군자라도 되는 것처럼 무한한
포용와 이해심과 희생을 가진 존재로 그리고 있지만, 웃기는 소리다.
리더도 사람이다! 리더라는 이유로 자신의 감정들을 감추고 좋은 낯빛만 보이려
하는 것도 일종의 위선 아닌가. 그런 획일적인 리더의 상 따위를 강요하는 거 자체가
황당한 발상이다.

요즘은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현대는 자기PR시대. 낭중지추는 옛말이지.
조금이라도 잘난 구석이 있다면 무조건 떠벌릴 것.
조금이라도 기여한 바가 있다면 그걸 침소봉대해서 떠벌리고 다닐 것.
그래도 사람들이 겨우 알아줄까말까 하다는 것.
많은 업적을 이뤄놓고도 가만히 입다물고 있는 건 자기만족,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런걸 바라다간 혼자 속만 썩는다는 것.
이 룰을 몰랐으니 나는 위염에 걸려도 싸다.
끄적이기 | Posted by Mirae 2005. 3. 22. 02:01

쉬고 싶다

말, 거창하게는 ‘음성 언어’라고 부르는 이것은, 정말 대단히 체력을 소모하는 일인 것 같다. 나름대로 소싯 적부터 성량[?]에 자신이 있었고 매일같이 몇 시간씩 수다를 떨어도 지치지 않았던 중고등학교 시절도 있었건만. 요즘은 동아리 회의 한 두 개 하고 나면 진이 쏙 빠지곤 한다.
전반적으로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원래 잔병치레 많은 몸이긴 했지만 요즘은 스스로 적신호를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태. 몸은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별로 없는 것 같고... 지난 주말엔 링겔도 맞고 왔구나. 지어놓은 약이 점점 종류가 많아져서 이젠 끼니 때마다 무슨 약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다-_-; 아이고.

이번 겨울방학 때 정말 너무 무리했나보다. 그 당시에도 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강행했었다. 쉬어야하는데, 쉬어야하는데, 생각하면서도 남겨진 일을 생각하면 쉴 수가 없었다. 결국 목표에 어느 정도 근접한 결과물을 얻기는 했지만...
조금은 속상하다. 그냥 그것의 완성 자체만을 바라보고 달렸던 건 사실이지만, 막상 막이 오르고 나니... 완성의 뿌듯함, 만족과 보람도 있지만 쉽게 회복될 수 없는 내 건강을 해친 것이 못내 속상하다. 그렇게 건강을 해칠 정도로 몸사리지 않고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더 속상하다. 인간은 원래 고매한 목표를 좋아한다지만 뒤집어보면 그런 게 전부는 아니다.

쓰고 몇 번을 고쳐도 왠지 내 좁은 그릇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부끄럽다. 알아주는 이 없이 외롭게 일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던가.
그렇지, 난 쉬어야 하는 거다. 마음은 앞서가는데 몸이 따라오지 못해서 마음까지 지친거다. 사실 나는 많은 것을 얻었으니 감사해야 할텐데, 모든 걸 포용하기엔 내가 지금 너무 지쳐있나보다.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3. 12. 23:04

올해 벚꽃 개화 예상 시기

금년 벚꽃 개화시기는 평년과 비슷하나, 작년에 비해 약 6~8일 정도 늦을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www.kma.go.kr


딸기파티 일정 잡는데 참고합시다. ㅎㅎㅎ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2. 28. 01:34

fortune cookie

비비질 하다보면 허구헌날 보이는 '포츈쿠키'가 뭔가,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http://cherryapple.com/momo/cookie/cookie.html

아리따운 페이지가 나오고, 과자를 눌러보니 이런 말이 나오네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딜레마에 빠뜨리지 마세요."

뭔가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긴 한데....;
요즘들어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되뇌이고 다니던 차에 이런 메시지를 마주치니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네요. ㅎㅎ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2. 27. 21:33

제2회 대학생 IT Festival

출처: http://www.it-festival.net


세상의 중심인 나, IT 리더의 꿈을 향해!
- 제2회 대학생 IT Festival -


제2회 대학생 IT Festival 은 전국의 우수 대학생 IT 동아리와 여대생 IT Junior Club 이 준비하는 IT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축제의 장입니다.

삼성 SDS 의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IT Festival 은 직접 만든 소프트/하드웨어 프로젝트 작품전시회, 대학생들의 연구결과를 보여 주는 IT주제발표, IT 관련 유명인사의 초청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며 코딩 실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결하는 AI 게임코딩 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시:
2005년 3월 4일(금), 09:00 ~ 18:30
2005년 3월 5일(토), 09:00 ~ 18:00

장소:
삼성 SDS 멀티캠퍼스
1층 로비및 18층 국제 회의실
강연장 1701,1702,1703,1704 호

주최:
전국 우수 대학 IT 동아리, 여대생 IT Junior Club




저희 동아리 SPARCS에서도 이번에 여기에 참가하게 됩니다. 출품작은 'LKIN(KAIST 수강지식인)'이고요.
많은 IT동아리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뽐내는 자리이니 굳이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는 이라도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미리 참가신청을 하면 보다 많은 혜택을 준다네요. 참가신청합시다. ㅎㅎ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1. 28. 08:00

클래지콰이

처음 들어봤는데.... 오 멋지군.

바야흐로 국영문혼용체가 막을 여는건가...
평소에 그런 이상한 문체의 혼용[?]을 좋아하진 않아도 거부감은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좀 심하게 거슬리네. 예전에 듣던 노래들보다 단지 영어의 비중이 커져서 그런가...
그런데 똑같은 말 영어로 하면 더 멋있나? -_-

아, 더불어 러브홀릭도 그런 느낌인걸 보니 아무래도 이거 유행인가부다. 늙은이 소리 듣기 전에 어서 적응해야지.

게츄게츄게츄~ 예압 베이베~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1. 28. 01:25

청소하다 든 생각들

windows의 '내 문서'

내 문서라는 폴더 안에는 내 사진도 있고, 내 비디오도 있고, 내 음악도 있다. 그런데 사진과 비디오와 음악이 모두 '문서'의 하위 개념일 수 있을까? 텍스트로 된 문서들을 보관하기 위한 폴더 이름을 짓기가 영 마땅치가 않다... 난 차라리 '내 서랍' 따위의 이름을 붙이고 그 안에 '내 문서'와 '내 사진'과 '내 비디오'와 '내 음악'을 넣고 싶다.
어디선가 레지스트리를 잘 건드리면 고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이런 구조로 만들었다는 것이 맘에 안 든다. :(

파일 또는 폴더 삭제 오류


불쾌한 효과음과 함께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것!
시그윈으로 만들었던 파일들이 대부분 이런 증상을 보이는듯?
사용 안 하고 있단 말이다 ㅜㅜ 제발 사라져다오...

Firefox의 순간이동

요즘들어 이상해진 firefox. 뭔가 링크를 클릭했을 때, 열려 있는 다른 firefox 창으로 풀쩍 포커스가 이동해버리는 일이 자주 생기고 있다. 왜지? 왜 내꺼만 그러지? 놋북도 데탑도 다... -_-

자꾸 멈추는 Photoshop

시작을 하다 말고 자꾸 멈춰버린다. 한두 번씩은 꼭 강제로 실행을 종료시킨다음에 다시 켜야 제대로 켜지는... 이것 역시 놋북이랑 데탑 둘 다에서 생기는 문제.
뭐냐고...;ㅁ;

iTunes

지저분한 파일 목록을 보며 좌절... 그냥 iTunes로 라디오 듣고 있다.;; 그래도 좋네.
윈앰프는 목록 관리하는게 너무 귀찮았었는데 이건 귀차니즘을 상당히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

SharpReader

오랫동안 잘 써오다가 12월 초반인가에 노트북 밀고 나서 이걸 안 깔았더니 뉴스를 절대 안 보게 됐다...; 귀차니즘에 물든 사람이 세상 얘기를 듣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이랄까-_-;
지인들 블로그랑, 각종 뉴스들(BBC, 오마이, 한겨레, 서프라이즈 -_-)이랑, KLDP 등록해뒀음.

anyway...

오랜만에 파일 정리 하니까 기분이 좀 상쾌하네. ^^;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5. 1. 26. 01:46

난항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의 난이도,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체력에는 어쩔 수 없는 제약이 따른다.
나의 자원들을 분배하는 것만도 충분히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자원까지도 분배해야 한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내가 이런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겨울 방학의 프로젝트 두 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덕분에 설계도를 그리는 것까지는 무사히 진행되었지만, 우리들의 머리 속에만 있는 이 설계도를 밖으로 끄집어내는게 여간 어렵지 않다. 나름대로 회의록을 남기기도 하고 그림을 끄적거려보기도 하지만, 무엇 하나도 흡족하지 않다.
아마도 경험이 부족한 탓이겠지. 그런 것을 쌓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작업들을 해나가고 있는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