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10.09.26 14:40

일상다반사 @ 구글 (3)

구글에 들어온 지 이제 2년 하고도 절반이 되었다. 시간은 천천히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여러 사람이 팀을 떠나고 새 사람들이 자리를 메꿨다. 졸탄은 유부남이 되었고 라슬로는 어느덧 건강한 아들 둘을 거느리게 되었고 브루스도 딸을 둔 애아빠가 되었다. 사람들이 점잖아서 미래씨는 언제 결혼하냐고 묻지 않아 다행이다. -_- 팝은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을 관리하기 시작하며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나는 취리히에 온 이후로 여지껏 크게 자르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이제 너무 길어 불편한 지경이 되어 슬슬 자를 생각을 하고 있다.


# 브루스의 버즈
"지적설계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왜 작은 인간들은 외부의 도움을 받은 트름 없이는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하는 겁니까?"

# 애아빠의 고통
미하올이 종종 브루스에게 인사를 대신해 하는 말이 있다.
"요새 잠은 자고 다녀요?"
그러면 브루스는 대답 대신 잠이 부족해 초췌한 얼굴을 보여준다.

# 헝가리 마을 하나
라슬로가 말했다. "헝가리 시골에서는 부동산 값이 바닥을 기고 있어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집을 처분했는데, 오래되긴 했지만 방이 몇 개나 되고 모든 설비도 멀쩡하게 돌아가는 아늑한 집인데 고작 몇백만원 밖에 못 받는 거예요. 시골 마을들에서는 멀쩡한 별장 한 채가 몇십만원 밖에 안 되는 일도 허다해요. 시골에는 일자리가 없고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거든요."
스웨덴 사람 잉게마가 물었다. "혹시 외국인으로서 몇 채까지만 살 수 있다는 제약 같은게 있나요?"
"글쎄요?"
"마을 하나를 통째로 사고 싶어서요."

# 주민들의 반발
라슬로가 말했다. "헝가리의 한 지역에 공항을 건설하려고 하는데, 정부가 소음 등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해 주지 않아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요. 그들이 생각해낸 유일한 대응책은 집집마다 마당에 커다란 거울을 설치하는 거예요. 파일럿들이 보고 눈이 부셔서 운항에 지장이 있으라고."
내가 물었다. "정말 이상한 대응책이네요. 왜 정부를 고소해서 합의금이라도 받아내지 않는거죠?"
"그렇게 제대로 돌아가는 정부가 아니니까 그렇죠."

# 잉게마의 취미
날씨가 노곤노곤 따뜻해지던 봄날에 잉게마가 말했다.
"지난 주말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아무 화단에나 해바라기 씨를 심었어요."
"아니 왜 남의 화단에다..?"
"나랑 내 여자친구는 해바라기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여기저기 씨를 뿌려두면 나중에 지나다니다 보이지 않을까 해서.."

# 토마슈의 취미
점잖은 폴란드 사람 토마슈가 신기한 박쥐 그림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길래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
"작년에 박쥐 구경 행사에 갔었어요."
"뭐하는 행사예요?"
"박쥐가 잘 나오는 지역에 가서 박쥐를 관찰하는 거예요."

# 리차드의 취미
"어릴 때부터 내 폰트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어요."
"아, 지금 수업 듣는게 도움이 되나요?"
"지난 번에 '반 아이들' 밴드 씨디 봤죠? 거기 사용된 폰트가 내 폰트예요."

# 한반도 문제
지도 자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영국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관련 팀에 고쳐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들은 그다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라슬로가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으니, 나중에 남한 도시랑 북한 도시가 합쳐지는 일이 생기거나 하면 다시 그 팀을 찔러보죠."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그 팀에 다시 압력을 넣겠다는 얘기다. 내가 팀에 있다보니 사람들이 종종 한국 관련 농담을 하곤 한다. 이번에도 그냥 우리는 킬킬 웃고 있었는데 디에나가 정색을 했다. "남한이랑 북한이 뭐가 어떻게 됐다고요?"
"아니 그냥 가상의 예제예요.."

# 한반도 문제 2
사랑니 근처 잇몸이 퉁퉁 부어오르더니 못 견딜 지경이 되어 치과에 갔다. 잇몸 치료를 받고 왔는데 더 아파서 밤새 응급실까지 다녀오는 드라마를 연출한 후 당장 그 다음날로 발치 수술을 받으러 갔다. 마음 좋아보이는 스위스 사람인 치과 의사가 딴에는 신경을 써 준다고 내게 물었다.
"참 오늘 아침 뉴스에 보니 북한이 남한 선박을 공격했다고 하던데요?"
"뭐라고요?"
꼭 내가 뉴스를 안 챙기는 날이면 나라에 일이 생기고 남들이 먼저 안다..

# 기술의 중심에 선 촌스러운 사람들
팝은 말한다. "사실 아직까지도 나는 트위터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라슬로는 말한다. "나는 내 사생활을 내가 자발해서 공개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요. 그런데 내 마누라는 자꾸 우리 가족 사진이랑 얘기들을 페이스북에 올리는데 말릴 수도 없고…"
졸탄은 되묻는다. "시장이 되면 뭐가 좋은데요? (foursquare 얘기)"
나는 그냥 귀찮아서 안하는 축이다.

# 기술의 중심에 선 촌스러운 사람들 2
뉴욕 팀들에서 활발하게 쓰는 IRC 채널이 있다. 취리히 쪽에서 워낙 반응이 없으니 이들이 기괴한 통계 수치를 들여가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하는데..
- 대화방에서 말한 단어의 양과 코드의 양에는 양의 상관관계는 없지만 음의 상관관계도 없다.
- 대화방에서 말한 단어의 양과 직급 사이에는 경미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듯 하다.
그밖에 각 팀의 규모와 팀이 언급된 횟수에 대한 그래프 등이 줄줄이 따라왔다. 문제는 우리 팀 사람들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시간낭비예요."
"아무래도 쓸데없는 잡음을 잔뜩 생성하는 대화방 로봇을 개발해서 사람들을 쫓아낼까봐요."

# 화장실 비치 물품
구글 오피스들에는 화장실에 무료로 쓸 수 있는 물품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품목이 오피스마다 조금씩 다르다.
취리히 오피스의 여자 화장실: 디지털 탐폰. 데오도란트.
뉴욕 오피스의 여자 화장실: 애플리케이터형 탐폰. 데오도란트. 콘돔.
서울 오피스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중에 다시 들러봐야겠다.

# 엘리베이터 문화
배드민턴이 끝난 후 식사 시간. 내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언젠가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여느때처럼 가만히 서서 계기판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같이 탄 스위스 아저씨가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너 참 수줍음이 많다고. 아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무 대화가 없어서 그랬나봐요. 근데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둘 중 어느쪽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왜 내가 수줍은 사람이 되는 거지요?"
독일 아저씨 마이클이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불편한 장소야. 신체적으로 굉장히 근접한 거리에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으면 유럽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그래서 무슨 시덥잖은 대화든지 나누길 바라는데, 이경우 말을 먼저 꺼내야 하는 건 보통 여자들이야. 북서부 유럽 지역, 특히 교육을 많이 받은 남자들일수록 여자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거나 심지어 말을 거는 것조차 꺼리는 경향이 있지. 마초로 오인받을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랄까."
옆에서 듣던 소냐가 말했다.
"재미있는 지적이네요. 내가 살던 북미 지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즉시 사람들이 벽 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 예의예요. '나는 당신의 바쁜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 언제든 문이 열리는 즉시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거든요."

# '구글년'
배드민턴 후 식사 시간. (IBM에 근무하는 오스트리아 청년) 토마스가 와인 한 병을 주문해 나눠 마실 것을 제안해 그리 했다. 저녁을 먹은 후 계산을 하러 점원이 테이블로 왔을 때, 나는 내가 주문한 음식들을 말해주고 와인 반 병 값을 더해 값을 치렀다. 이윽고 토마스가 계산을 할 차례가 되었고 그는 내가 반 병을 지불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거 뭐야, 내가 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과장해서 자존심이 상한 척 했다.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마이클이 옆에서 심술스럽게 말했다.
"구글년이라서 그래.."

# 스위스의 경찰 업무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어온 스위스의 경찰 업무는 다음과 같다.
-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 처리 이후 사고 현장을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묵묵히 청소한다.
- 주말에 호숫가 주변을 자전거로 느긋하게 순찰한다.
- 일광욕 하던 주민에게 봐 줄 것을 부탁하고 경찰복과 권총을 호숫가에 두고 물에 뛰어든다. (-_- 들은 얘기라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다)
- 식당가. 한 식당의 야외 테이블이 기준보다 xx센티가 더 삐져나왔다는 이웃 식당의 민원에 줄자를 들고 나와 성화를 열심히 들어주고 한 시간 동안 테이블을 잰다.
가끔 이런걸 보면 난 참 희한한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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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쓰려니 기억이 가물가물.. 별 순서도 없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습니다. 며칠만에 햇볕이 났으니 햇볕을 보충하러 나가야겠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