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10. 9. 26. 21:40

일상다반사 @ 구글 (3)

구글에 들어온 지 이제 2년 하고도 절반이 되었다. 시간은 천천히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여러 사람이 팀을 떠나고 새 사람들이 자리를 메꿨다. 졸탄은 유부남이 되었고 라슬로는 어느덧 건강한 아들 둘을 거느리게 되었고 브루스도 딸을 둔 애아빠가 되었다. 사람들이 점잖아서 미래씨는 언제 결혼하냐고 묻지 않아 다행이다. -_- 팝은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을 관리하기 시작하며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나는 취리히에 온 이후로 여지껏 크게 자르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이제 너무 길어 불편한 지경이 되어 슬슬 자를 생각을 하고 있다.


# 브루스의 버즈
"지적설계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왜 작은 인간들은 외부의 도움을 받은 트름 없이는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하는 겁니까?"

# 애아빠의 고통
미하올이 종종 브루스에게 인사를 대신해 하는 말이 있다.
"요새 잠은 자고 다녀요?"
그러면 브루스는 대답 대신 잠이 부족해 초췌한 얼굴을 보여준다.

# 헝가리 마을 하나
라슬로가 말했다. "헝가리 시골에서는 부동산 값이 바닥을 기고 있어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집을 처분했는데, 오래되긴 했지만 방이 몇 개나 되고 모든 설비도 멀쩡하게 돌아가는 아늑한 집인데 고작 몇백만원 밖에 못 받는 거예요. 시골 마을들에서는 멀쩡한 별장 한 채가 몇십만원 밖에 안 되는 일도 허다해요. 시골에는 일자리가 없고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거든요."
스웨덴 사람 잉게마가 물었다. "혹시 외국인으로서 몇 채까지만 살 수 있다는 제약 같은게 있나요?"
"글쎄요?"
"마을 하나를 통째로 사고 싶어서요."

# 주민들의 반발
라슬로가 말했다. "헝가리의 한 지역에 공항을 건설하려고 하는데, 정부가 소음 등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해 주지 않아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요. 그들이 생각해낸 유일한 대응책은 집집마다 마당에 커다란 거울을 설치하는 거예요. 파일럿들이 보고 눈이 부셔서 운항에 지장이 있으라고."
내가 물었다. "정말 이상한 대응책이네요. 왜 정부를 고소해서 합의금이라도 받아내지 않는거죠?"
"그렇게 제대로 돌아가는 정부가 아니니까 그렇죠."

# 잉게마의 취미
날씨가 노곤노곤 따뜻해지던 봄날에 잉게마가 말했다.
"지난 주말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아무 화단에나 해바라기 씨를 심었어요."
"아니 왜 남의 화단에다..?"
"나랑 내 여자친구는 해바라기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여기저기 씨를 뿌려두면 나중에 지나다니다 보이지 않을까 해서.."

# 토마슈의 취미
점잖은 폴란드 사람 토마슈가 신기한 박쥐 그림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길래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
"작년에 박쥐 구경 행사에 갔었어요."
"뭐하는 행사예요?"
"박쥐가 잘 나오는 지역에 가서 박쥐를 관찰하는 거예요."

# 리차드의 취미
"어릴 때부터 내 폰트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어요."
"아, 지금 수업 듣는게 도움이 되나요?"
"지난 번에 '반 아이들' 밴드 씨디 봤죠? 거기 사용된 폰트가 내 폰트예요."

# 한반도 문제
지도 자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영국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관련 팀에 고쳐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들은 그다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라슬로가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으니, 나중에 남한 도시랑 북한 도시가 합쳐지는 일이 생기거나 하면 다시 그 팀을 찔러보죠."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그 팀에 다시 압력을 넣겠다는 얘기다. 내가 팀에 있다보니 사람들이 종종 한국 관련 농담을 하곤 한다. 이번에도 그냥 우리는 킬킬 웃고 있었는데 디에나가 정색을 했다. "남한이랑 북한이 뭐가 어떻게 됐다고요?"
"아니 그냥 가상의 예제예요.."

# 한반도 문제 2
사랑니 근처 잇몸이 퉁퉁 부어오르더니 못 견딜 지경이 되어 치과에 갔다. 잇몸 치료를 받고 왔는데 더 아파서 밤새 응급실까지 다녀오는 드라마를 연출한 후 당장 그 다음날로 발치 수술을 받으러 갔다. 마음 좋아보이는 스위스 사람인 치과 의사가 딴에는 신경을 써 준다고 내게 물었다.
"참 오늘 아침 뉴스에 보니 북한이 남한 선박을 공격했다고 하던데요?"
"뭐라고요?"
꼭 내가 뉴스를 안 챙기는 날이면 나라에 일이 생기고 남들이 먼저 안다..

# 기술의 중심에 선 촌스러운 사람들
팝은 말한다. "사실 아직까지도 나는 트위터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라슬로는 말한다. "나는 내 사생활을 내가 자발해서 공개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요. 그런데 내 마누라는 자꾸 우리 가족 사진이랑 얘기들을 페이스북에 올리는데 말릴 수도 없고…"
졸탄은 되묻는다. "시장이 되면 뭐가 좋은데요? (foursquare 얘기)"
나는 그냥 귀찮아서 안하는 축이다.

# 기술의 중심에 선 촌스러운 사람들 2
뉴욕 팀들에서 활발하게 쓰는 IRC 채널이 있다. 취리히 쪽에서 워낙 반응이 없으니 이들이 기괴한 통계 수치를 들여가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하는데..
- 대화방에서 말한 단어의 양과 코드의 양에는 양의 상관관계는 없지만 음의 상관관계도 없다.
- 대화방에서 말한 단어의 양과 직급 사이에는 경미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듯 하다.
그밖에 각 팀의 규모와 팀이 언급된 횟수에 대한 그래프 등이 줄줄이 따라왔다. 문제는 우리 팀 사람들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시간낭비예요."
"아무래도 쓸데없는 잡음을 잔뜩 생성하는 대화방 로봇을 개발해서 사람들을 쫓아낼까봐요."

# 화장실 비치 물품
구글 오피스들에는 화장실에 무료로 쓸 수 있는 물품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품목이 오피스마다 조금씩 다르다.
취리히 오피스의 여자 화장실: 디지털 탐폰. 데오도란트.
뉴욕 오피스의 여자 화장실: 애플리케이터형 탐폰. 데오도란트. 콘돔.
서울 오피스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중에 다시 들러봐야겠다.

# 엘리베이터 문화
배드민턴이 끝난 후 식사 시간. 내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언젠가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여느때처럼 가만히 서서 계기판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같이 탄 스위스 아저씨가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너 참 수줍음이 많다고. 아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무 대화가 없어서 그랬나봐요. 근데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둘 중 어느쪽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왜 내가 수줍은 사람이 되는 거지요?"
독일 아저씨 마이클이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불편한 장소야. 신체적으로 굉장히 근접한 거리에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으면 유럽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그래서 무슨 시덥잖은 대화든지 나누길 바라는데, 이경우 말을 먼저 꺼내야 하는 건 보통 여자들이야. 북서부 유럽 지역, 특히 교육을 많이 받은 남자들일수록 여자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거나 심지어 말을 거는 것조차 꺼리는 경향이 있지. 마초로 오인받을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랄까."
옆에서 듣던 소냐가 말했다.
"재미있는 지적이네요. 내가 살던 북미 지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즉시 사람들이 벽 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 예의예요. '나는 당신의 바쁜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 언제든 문이 열리는 즉시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거든요."

# '구글년'
배드민턴 후 식사 시간. (IBM에 근무하는 오스트리아 청년) 토마스가 와인 한 병을 주문해 나눠 마실 것을 제안해 그리 했다. 저녁을 먹은 후 계산을 하러 점원이 테이블로 왔을 때, 나는 내가 주문한 음식들을 말해주고 와인 반 병 값을 더해 값을 치렀다. 이윽고 토마스가 계산을 할 차례가 되었고 그는 내가 반 병을 지불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거 뭐야, 내가 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과장해서 자존심이 상한 척 했다.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마이클이 옆에서 심술스럽게 말했다.
"구글년이라서 그래.."

# 스위스의 경찰 업무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어온 스위스의 경찰 업무는 다음과 같다.
-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 처리 이후 사고 현장을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묵묵히 청소한다.
- 주말에 호숫가 주변을 자전거로 느긋하게 순찰한다.
- 일광욕 하던 주민에게 봐 줄 것을 부탁하고 경찰복과 권총을 호숫가에 두고 물에 뛰어든다. (-_- 들은 얘기라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다)
- 식당가. 한 식당의 야외 테이블이 기준보다 xx센티가 더 삐져나왔다는 이웃 식당의 민원에 줄자를 들고 나와 성화를 열심히 들어주고 한 시간 동안 테이블을 잰다.
가끔 이런걸 보면 난 참 희한한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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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쓰려니 기억이 가물가물.. 별 순서도 없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습니다. 며칠만에 햇볕이 났으니 햇볕을 보충하러 나가야겠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다음에!


간만의 포스팅으로 취리히에 살면서 두 차례 셋집을 구하고 이사를 한 저의 조촐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혹시 취리히에 처음 정착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젤이나 베른 등 다른 칸톤은 또 규칙이 살짝 다르기도 하니 기본적인 틀만 참고하셔야 하겠습니다. 스위스에 정착할 의사가 조금도 없는 분들에게도, 스위스라는 특이한 나라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적어보았습니다. 제 독일어 수준이나 여기 살아온 내공이 부족하여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지적해주시면 감사히 고치겠습니다.

스위스의 임대주거환경
스위스의 도시들에서는 세를 얻기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취리히에서 조건이 좋은 집들의 경우 30여명의 희망자가 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스위스에는 전세라는 개념은 아예 없고 월세가 주를 이룬다. 가구가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구가 있는 경우는 집세가 더 비싸고 단기 계약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구가 들어있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 냉장고, 스토브, 오븐, 때로는 식기세척기 등을 갖추고 있다.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월세가 연립 주택 형태의 아파트들이며, 대개 이들 건물 지하에는 공동 세탁실이 있다.
스위스에서는 거실도 방 한 칸으로 친다. 보통 분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열린 형태의 거실인 경우에도 방 한 칸으로 친다. 방 개수가 0.5로 끝나는 것은 식사 공간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거실에 연결되어 있든지 독립된 공간이든지).
스위스에서는 층수가 0부터 시작한다. 0층 또는 EG라고 하면 지상의 첫번째 층을 말한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집세가 높아진다. 발코니가 딸린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외부와 분리되어 있지 않은 트인 공간이다.
집세는 천차만별이다. 공동 생활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취리히에서 부엌과 샤워가 딸린 단칸방은 대략 1000프랑 내지 1500프랑 정도인데 (2010-08-16 기준, 1프랑 = 1123원), 이보다 낮은 가격인 경우 관리 상태가 좋지 않거나 사기(!)인 경우가 많다. 두 칸짜리 집 (침실 하나 거실 하나)은 1500프랑 내지 2000프랑, 건축 연도나 레노베이션 여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세 칸짜리 집은 2000프랑 내지 3000프랑이 일반적인데, 취리히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에 널찍하고 설비가 최신식이고 등등 옵션이 붙으면 월세는 끝도 없이 올라간다. 가족이 살 수 있는 정원이 딸린 독립 주택의 경우 10000프랑 월세도 드물지 않다.
스위스의 일반적인 서민 아파트들은 스타일리쉬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깔끔하고 건축 연도에 비해 관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취리히는 월세가 다소 비싼 편이지만, 도시 내의 어느 지역에 살든지 치안 수준은 대략 비슷하며 주변 생활 환경도 균일하게 쾌적한 편이다. 도시 중심으로부터 기차로 20분 - 1시간 거리 내의 지역들은 세금 혜택이 있고, 월세가 많이 저렴하며, 자연과 가깝고,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분위기를 가진 마을들이다.

자 이제 셋집을 구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Step 1. 정보 구하기
방법 1. 스위스에서 최고의 공신력을 자랑하는 월세 시장 웹사이트가 있다. www.homegate.ch 본인이 원하는 예산, 평수, 방 개수 등을 입력하고 이메일 알림 서비스를 등록한다. 물론 무료.
방법 2. 이민자 커뮤니티 포럼, 메일링리스트 등을 구독하고 몇 가지 키워드로 (rent, apartment 등) 필터링을 한다.
방법 3. 주변 아는 사람들에게 집을 구하는 중이라는 얘기를 열심히 흩뿌린다. 이 방법의 장점은 비교적 적은 경쟁률을 뚫으면 된다는 것과, 집 나가는 사람과 대개 안면이 있는 경우이므로 이사 스케줄을 조정하거나 가구를 싸게 물려받거나 하는 편의를 봐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방법 4. 시간이 없고 돈을 쓸 용의가 있다면 아파트 헌터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다. 헌터들이 정보를 구하는 경로도 거의 homegate로 비슷한데,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이들은 임대 관리회사들과 연락망이 있어 homegate에 올라오기 전에 매물 정보를 입수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물론 독일어를 할 수 있으므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된다. 또한 직업상 부동산 보는 눈이 있으므로 방 배치나 집 위치등을 보고 가격 대 품질 비 등을 말해준다. 서류 작성을 대신 다 해주니 본인은 서명만 하면 된다.
스위스의 이사철은 4월 1일 전후와 10월 1일 전후로, 이사를 계획한다면 이 시기를 노리는 것이 좋다. 시장이 활발하여 선택의 폭이 넓다.

Step 2. 집 보러 다니기
조건에 맞는 집을 발견했다면 가서 들여다 볼 차례이다. 대개 정해진 날짜와 시각에 공개 방문이 한 차례 있다. 방문하겠다고 따로 등록할 필요는 없고 그냥 그 주소로 직접 찾아가면 된다. 그 집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이름(성)을 알고 가야 어느 벨을 눌러야 할지 알 수 있다. 공개 방문 일정이 없는 경우에는 전화연락으로 따로 일정을 잡는다.
대개 현 세입자가 살고 있는 상태에서 집을 보여주는 경우이므로,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여 세입자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야 하는지 미리 물어보는 것이 예의이다. 상식의 한도 내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은 괜찮다. 이웃들은 어떤지, 거리로부터의 소음은 어떤지, 왜 이 집을 떠나는지 (보편적인 질문으로, 묻지 않아도 먼저 말해주기도 한다. 집에 결점이 있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목적이 큰 듯 하다) 등등. 한국에서의 상식적인 항목 외에 기본적으로 눈여겨봐야 할 점들:
- 난방 방식 (라디에이터가 가장 흔하지만 바닥난방도 드물지 않다. 한국인으로서야 바닥난방이 최고..)
- 창문들은 빈틈없이 잘 밀폐가 되는가? (난방과 방음, 방충에 영향을 준다)
- 주방 취사 시설이 마음에 드는가? (스토브는 세라믹 열판이 신식이고 금속 열판은 비교적 구식이다. 가스 스토브는 드물며 종종 구식으로 친다.)
- 공동세탁실 사용에 예약이 필요한가? (예약이 없는 쪽이 물론 좋다. 가능하다면 세탁실도 둘러본다.)
- 건축한 지 얼마나 되었는가? (돌아다녀보면 타일이나 바닥재, 빌트인 가구들의 차이로부터 대략 감이 온다. 이것을 보는 이유는 건축 시기가 이 집 구석구석의 스탠다드를 어느 정도 말해주기 때문이다. 부엌 설비며 화장실 내부까지, 지어진 당시의 표준적인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Step 3. 지원하기 (Anmeldung)
꼼꼼히 따져본 결과 집이 마음에 들었다면 지체없이 지원을 해야 한다. 공개 방문 직후에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인 서류는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지원서와 함께 팩스로 보내고 서면으로도 보낸다. 팩스는 품질이 나빠 잘 안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도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소홀히 할 수 없다. 지원서는 보통 공개 방문을 통해 직접 받아온다. 모두 독일어로 되어있으나 겁먹지 말고 번역 차근차근 돌려가면서 하면 어렵지 않다. 주의할 점은 어떤 경우 지원서를 내고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 벌금을 내기도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사항은 지원서에 적혀 있다. 다음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지만) 지원서와 함께 보내야 하는 필수 서류들:
- Pass: 여권 사본
- Auslaenderausweis: 거주허가증 사본
- Bestaetigung des Arbeitgebers: 본인의 직장으로부터의 고용 사실 확인서. 연봉도 함께 적혀있으면 좋다. 풍문에 의하면 세입자를 결정할때 대체로 연봉 순으로 한다고 한다. 선호 직업군도 있어서, 스위스 은행에 근무한다면 단연 1순위이다.
- Betreibungsauskunft: 채무관계 확인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문서가 첨부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집주인이나 임대 회사들은 지원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문서는 현재 본인이 이 나라에서 가진 채무 액수를 증명하는데, Betreibungsamt라는 정부 기관 사무소에 가서 일정 수수료를 내고 받아온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일주일 내로 우편으로 도착한다.
서류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본인의 직업과 인간 됨됨이와 기타 등등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는 스위스 사람이 있으면 지원서에 적으면 큰 도움이 된다. 집주인이나 임대 회사가 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 이들은 어쩌면 서류 상에 나타나는 다른 여러 지표보다도 다른 스위스 사람의 한 마디를 더 신뢰하는지도 모른다.

Step 4. 새 집 계약 체결하기 (Mietvertrag)
좋은 소식은 전화로, 나쁜 소식은 편지로 온다. 지원서를 내고 1-2주일 내로 연락이 오니 항상 전화 대기하자. 삼대가 덕을 쌓았다면 한방에 연락이 오겠지만 일반적인 경우 서너 번 지원을 하면 한 번 가량의 행운이 있다. 열 몇 군데를 지원해서 싹 떨어졌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낙담하지 말고 진득하게 기다리자.
합격의 기쁜 소식을 받았다면 며칠 내로 계약서가 서면으로 도착한다. 두 부가 오는데 둘 다 서명해서 보내야 한다. 한 부는 집주인의 서명을 얻은 후 돌아올 것이다.

Step 5. 살던 집 계약 종료하기 (Kündigung)
새 집과의 계약이 체결되는 즉시 현재의 집주인에게 계약을 종료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다. 중요한 것은 이 절차는 반드시 서면으로 해야 하며 (독일어든 영어든 상관은 없으나, 의사가 명확해야 한다), 가능하면 우체국에서 '몇날 몇시에 누가 누구에게 우편물을 보냈다'는 보증을 받는 것이 좋다. 5프랑을 내면 우체국 측에서는 우편물에 대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긴다. 후일에 집주인과 문제가 생길 경우 이 보증이 필요할 수 있다. 편지를 보낸 후 집주인 혹은 임대 회사와 구두로 재차 확인하여 확실히 한다.
계약서는 보통 일년에 2회 (새 계약서인 경우 3회), 특정한 날짜에만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보통 4월 1일과 10월 1일이 계약 종료일이며, 이 날짜가 되기 3개월 전에 서면으로 의사를 알려야 유효하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아무때나 계약을 종료하는 것이 가능한데, 새 세입자를 구해와서 집주인이 승낙하거나, 새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계속해서 월세를 낸다거나, 둘 중 하나의 조건 하에 가능하다.

Step 6. 살던 집 새 세입자 (Nachmieter) 구하기
3개월 앞서 계약 종료를 통보한 것이 아니라면, 새 세입자를 구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다. 지금 당장 현재의 집을 물려받을 세입자를 구하기 시작해야 한다. 집주인 또는 임대 회사로부터 지원자들에게 나눠줄 지원서를 받는다. 주변 아는 사람들 중에 희망자가 있다면 집주인에게 간단한 소개를 해 주고 그 희망자에게 지원서를 건네주는 것으로 문제가 끝날 수도 있다. 주변에서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다면 아까 언급한 homegate 웹사이트에 집주인이 광고를 내게 되고, 집주인과 협조하여 공개 방문 날짜를 정하고 희망자들에게 집을 보여주게 된다. 공개 방문이 곤란한 경우는 본인의 전화번호 등을 광고에 올려 방문 일정을 잡기도 한다. 희망자들에게 지원서를 나눠주고 집주인 또는 임대 회사에 서류를 보내라고 말해준다.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구했음을 알려오면 책임은 끝난다.

Step 7. 이사 (Umzug) 준비하기
집 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취리히에 갓 도착해서 달랑 수트케이스 하나가 살림의 전부라면 문제는 간단하겠으나, 이미 살림이 있다면 이사를 해야 한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가장 권하는 방법은 이케아 등 가구점에서 이사박스를 사다가 직접 짐을 싸는 것. 짐을 나르는 데는 이사용 밴과 친구들의 도움을 빌리는 방법이 있고, 이삿짐 센터를 부르는 방법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삿짐 센터를 부르는 것을 추천한다. 짐은 날라본 사람들이 잘 나른다.. 시간당 120프랑 내지 150프랑인데 조건이 약간씩 다르므로 여러 회사에서 견적을 받아서 비교해보고 결정할 것. 미리 예약을 하고 계약서가 서면으로 오간다. 보험 적용 범위도 확인하자.
직접 짐을 쌀 여력이 없다면 포장이사를 부르는데, 가격은 대략 3명에 시간당 200프랑이라 한다.

Step 8. 새 집 물려받기 (Übergabe)
새 집을 물려받는 절차는 그냥 열쇠만 건네 받는 것이 아니다.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정도를 예상하자. 이전 세입자와 새 세입자가 만나 열쇠를 건네는 것은 물론, 집주인 또는 임대 회사에서 전문가가 나와 청소 상태와 기물의 상태를 꼼꼼히 검사하고 규격 문서에 기록한다. 이 규격 문서는 기입이 끝난 후 집주인이 한 부, 이전 세입자가 한 부, 새 세입자가 한 부씩 나눠 가진다. 새 세입자는 집의 결점이 발견되면 자신의 입주 전에 고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집주인과 이전 세입자가 동의한다면 실제 계약일보다 며칠 앞서 이 건네주기 절차를 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전구나 전등, 샤워 커튼 등은 집의 일부가 아니므로 이전 세입자는 몽땅 가져갈 수 있다. 없으면 당장 불편한 것들이므로 새 집에 이사갈 때는 이것들을 미리 준비해가자.

Step 9. 살던 집 청소하기 (Reinigung)
취리히에서는 집에 이사를 들어갈 때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갈 때 청소를 한다. 이 청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얼룩 한 점 없는' 상태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위스 집주인들의 청소검사는 그 악명이 대단한데, 흰 장갑을 끼고 온 구석을 쓸어본다는 말은 사실이고, 가방 한 가득 온갖 종류의 거울들을 가져와서 다양한 각도로 구석구석을 살펴본다는 말도 있고, 화장실 변기를 핥아봐서 아무 맛이 안 나야 한다는 낭설까지 있다. 스위스의 모든 집주인이 이리 악독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검사하는 최소한의 필수 종목으로 알려진 것들로는 다음이 있다:
- 문짝과 각종 선반 윗 부분의 먼지
- 창문, 창문틀, 창문 밖의 블라인드 먼지
- 부엌 환풍기 내부
- 수도꼭지와 배수구 내부 (나사를 다 풀어서 내부를 닦아야 한다고 한다)
- (드물게) 콘센트 내부
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처음 집 들어갈 때 냈던 보증금에서 청소비용을 제하게 된다.
검사 항목이 이러하므로 이것을 일반인이 직접 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 전문 청소 용역업체를 부르면 집의 면적에 따라 500프랑 내지 2000프랑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용감한 사람들이 직접 청소를 하기로 결심하고 팔을 걷어붙이는 것을 보았지만, 그들의 한결같은 소감은 '친구/배우자와 둘이서 이틀 내지 사흘 꼬박 청소를 했는데, 몸이 고된 것도 고된 것이지만 이렇게 고생하고서도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덤태기를 쓸 수 있다는 공포가 더 힘들더라'는 것이다. 그냥 웬만하면 용역을 쓰자. 프로페셔널들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용역업체의 또다른 장점은, 청소검사에서 결점이 발견되면 그것을 해결할 것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보증 항목이 있는지 계약서를 잘 확인할 것.

Step 10. 새 집 즐기기
처음 몇 주 간은 이웃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잘 살피자. 정말로 저녁 10시 이후에 변기 물을 내리면 득달같이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인지? (이것은 일반적인 스위스 아파트들의 규칙으로 적혀있는데, 체감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물론 철저히 지키지 않는다. 은퇴한 노년층이 주로 사는 아파트들에서는 좀더 엄격하다고 한다) 정말로 일요일에 빨래를 하면 주의를 받는지? 세탁실 사용후 청소는 어느 수준으로 하는지? 저녁 몇 시 이후에 건물 출입문을 잠궈야 하는지? 발코니 난간에 붉은 꽃이 담긴 화분을 달아야 하는지? (그런 것이 암묵적인 규칙인 건물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계약서와 부록으로 딸려온 규율로 적혀있는 수많은 것들을 다 지킬 수는 없다. 이웃들이 꼬박꼬박 지키는 것, 느슨한 것, 등을 파악하고 사람사는 것처럼 살자.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10. 3. 4. 07:17

수트케이스 인생

Doctor Who 시리즈 중에서 내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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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oamed about this Earth
With just a suitcase in my hand,
And I've met some bog-eyed Joe's,
I've met the blessed, I've met the damned.
But of all the strange, strange creatures
In the air, at sea, on land,
Oh, my girl, my girl, my precious girl,
I love you, you understand.

So, reel me in, my precious girl,
Come on, take me home.
'Cause my body's tired of travelling
And my heart don't wish to roam. No, no.

I have wandered, I have rambled
I have crossed this crowded sphere,
And I've seen a mass of problems
That I long to disappear.
Now, all I have's this anguished heart,
For you have vanished too.
Oh, my girl, my girl, my precious girl,
Just what is this man to do?

So, reel me in, my precious girl,
Come on, take me home.
'Cause my body's tired of travelling
And my heart don't wish to roam"

-- "Love don't roam" Doctor Who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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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에 처음 도착해서 다양한 몬스터들사람들을 마주치고 함께 일하면서, 분명 나는 이 '수트케이스 인생'의 감수성에 자극받았다 (가사는 이 짓 그만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 표현이 또 괜히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할 일 없는 주말이면 닥터후 시리즈를 마냥 틀어놓고 그들의 광활한 시간여행을 즐겼음은 물론이다.

허나 2년 후 나는.
만년 학생마냥 단칸방 사는 것에 싫증이 나서 이사를 한다.

굳이 이사를 해야하나, 그 수많은 잡일은 어떻게 감당하나, 회사 일은 늘상 바쁘고 살림 재주는 시원찮아 손님 하나 와도 내 마음의 평화가 위협받는-_- 마당인데 정말 구태여 일을 벌여야 하나, 지금 사는 집도 좁다는 거 빼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언제고 마음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으려면 살림살이는 가벼워야 하지 않나,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다들 타국에서 짐 바리바리 싸들고 가족들 데리고 스위스엘 온 사람들이다. '난 몇 년 뒤에 여길 떠나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난 평생 여기 뿌리내리고 살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인생에 변화가 생기면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새로운 지역에 가면 거기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을 누리며 살다가, 다른 지역에 가면 또 그렇게 적응해 나간다. 지금껏 나는 언젠가는 어딘가에 정착하고 살아야지, 그때까지는 편안함을 추구할 필요없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해왔는데, 어느덧 그런 무기한 연장이 지겨워져 버렸다. 떠돌이 살림도 이젠 할 만큼 했지.

2년 전보다 아주 조금 더 나아진 독일어로 떠듬거리며 집을 보러 다니고 지원서를 내고 계약을 하고, 이 집 물려받을 세입자를 구하러 부지런히 청소하고 집 보여주고, 이삿짐 센터들에 연락해서 가격 비교를 하고, 아 나갈때 청소 용역도 불러야지 걱정하면서, 이게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짓인가 싶긴 하지만, 뭐 이게 다 훗날 돈 주고 못 산다는 경험이 아닌가, 그냥 그렇게 다독이고 있다. (또 모르지 막상 이사가면 좋다고 춤출지도)
유난히 길고 눈이 많았던 겨울이 끝나고 꽃피는 계절에 찾아온 부활절 연휴. 회사 친구들과 함께 드미트리가 살고 있는 탈린에 놀러가기로 했다. 전날까지 감기로 고생하던 나는 약 네 봉지를 입에 털어넣고 12시간의 수면 뒤에 가까스로 원기를 회복했다. 여전히 정신없는 공항의 아침. 일단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공항 도착했어. 근데 우리 어디 가는거야?"
수화기 너머로 저희들끼리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콕이라고 해 방콕'
4시간 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탈린에 도착했다.

취리히에는 눈부신 햇살 아래 사람들이 죄다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고 봄꽃이 만발하고 있건만. 이 북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봄의 흔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항 건물을 나서면서부터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바람에 나는 황급히 옷깃을 여몄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북방 지역엘 또 왔지... 정말 후회막급이었다. 에릭은 계속 내 구겨진 얼굴을 보며 좋아라했다. 다행히 드미트리의 집은 무척 따뜻한 온돌집이었다. 거리에선 을씨년스러워보이던 겨울나무들도 홍차 한 잔에 몸을 녹이며 발코니에서 바라보니 한 폭의 그림 같지 않은가. 간사하게도.

탈린은 저 먼 중세의 느낌이 곳곳에 남아있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도시였다. 탑에 올라가 내려다 본 옛 시가지는 붉은 지붕들이 널찍하게 이어져있고 여린 겨울햇살을 받은 담벼락이 아담한 느낌을 주었다. 수도사 복장을 한 웨이터들이 서빙을 하는 카페는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누군가가 투덜거려 도로 거리로 나왔다. 중세의 레시피대로 요리를 하는 식당에서는 푸짐한 오리요리와 꿀맥주가 일품이었다. 웨이터들이 모든 요리에 대해 재료를 일일히 설명해주었다. 실내가 어둡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나. 러시아 전통음식 식당은 첫 음식이 나오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맛은 꽤 훌륭했다. '저 주방에 요리사 딱 한 명 있다'고 빈정거리던 우리도 결국 하나씩 나오는 음식에 느긋하게 배가 불러왔다. 평소에 술을 절대 입에 대지 않는 샤오펑도 이날은 와인 한 잔을 마셨다.

도시 이곳저곳에 조금씩 남아있는 구소련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신선함이었다. 샤오펑을 제외하고 구소련의 유물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그 시대의 조각상이나 기념비들을 볼 때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댔고 드미트리는 그런 우리를 더 신기해했다. 에스토니아가 독립하던 시점에 에스토니아인들은 구소련에 관련된 모든 유적 유물들은 철저히 부숴버렸다고 한다. 역사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의지에는 십분 공감을 하지만, 그래도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한 것들에 더 끌리는 법이니 조금 아쉽기도 했다. 마니쉬가 드미트리에게 물었다.
"스탈린 아내가 스탈린을 그렇게 싫어했다고 하던데."
"그야 당연하지."
"왜?"
"네가 하루종일 세계정복을 위해 힘쓴다고 쳐. 어느 나라의 전쟁이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역사를 좌지우지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울먹이지.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애정이 식었어... 어쩌고저쩌고."

탈린에서 해로로 두 시간 반이면 헬싱키에 다다른다. 이미 탈린에서 볼 만한 것도 다 봤겠다, 핀란드에 있는 친구를 방문할 예정인 에릭을 따라 일행은 예정에 없던 바이킹라인에 올랐다.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조합한 핀란드에 대한 나의 인상은 이렇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고 시스템은 사회주의에 가깝다. 길고 음울한 겨울 탓에 우울증 환자나 마약 중독자가 많은 편이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주류 판매가 주중의 특정 시간, 특정 판매처로 제한되어 있다. 월요일 아침에는 주류 판매처마다 줄 서서 기다리는 알콜 중독자들을 볼 수 있다.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스톡홀름처럼 탁 트인 북방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던 나의 기대는 바이킹라인에서부터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술을 박스째 끌고 갑판에 오르는 사람들의 초점잃은 눈들. 밤새 파티에서 놀고 새벽 배를 타는 듯한 십대들의 헝클어진 머리. 이 배의 단골인듯 가벼운 아침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후줄근한 옷차림. 마니쉬는 아까부터 예쁜 여자들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며 야단이었다.

일단 아침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간이 카페테리아에서 나는 스크램블에그와 소시지, 우유 한 컵을 샀다. 한 입을 베어물고 설마했다. 다시 또 다른 것을 한 입 먹어봤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접시 위에 있는 것 중에 아무 것도 맛이 없어."
마니쉬가 열렬히 동의를 표했다. "진짜 이렇게 허술한 아침은 처음 먹어본다. 전부 다 맛이 형편없어."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최소한 이 소시지는 말이지. 음. 맛이 있잖아?"
곧 에릭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판을 들고 왔다. "음, 아침식사 가격이 무척 저렴하군." 포크가 몇 번을 오간 뒤 그는 말했다. "음, 품질도 저렴하군."

에릭은 친구를 만나러 떠나고 샤오펑은 새로 장만한 DSLR을 시험해 보고 싶다며 부지런히 길을 나섰지만, 마니쉬와 나는 옹동하니 주저앉은 하늘과 잿빛 거리에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무채색의 옷을 입었고 표정에도 활기가 없었다. 거리의 차들은 일 주일쯤 세차를 안 한 듯 지저분했다. 마니쉬가 중얼거렸다. "다 햇볕이 부족한 때문이야." 추위 속을 걷다 지쳐 무조건 눈에 보이는 트램을 타고 앉아 바깥 구경을 했다. 독특한 건물들이 종종 보였고, 스웨덴에서 보아온 익숙한 상표들도 보이고 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스웨덴어로 단어 몇 개를 읽으며 아는 척도 했다.
"이케아랑 호엠이 둘다 스웨덴 상표라고?"
"실제로 유사성이 느껴지지 않아? 이케아 디자인와 호엠 디자인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잖아."
"가구랑 옷 사이에서 무슨 공통점을 찾으라는 거야?"
"...뚜렷한 원색에 큼직큼직한 패턴을 주로 쓴다든가, 매끈하게 떨어지는 선이라든가 하는 것."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동경하는 인도 남자와 겨울마다 오리털이불에 틀어박혀 사는 한국 여자. 이렇게 죽이 잘 맞을 수가 없었다. 숙소에서 낮잠을 실컷 잔 다음 사우나를 하고, 몸이 좀 가벼워진 우리는 느적느적 지는 해를 바라보며 술을 마시러 갔다. 샤오펑은 '재밌게 놀아!'라는 문자 한 통만을 남기고 숙소에 들어간 참이었다. 몇 개의 바를 전전하다 우연히 찾아들어간 70년대풍의 라이브 클럽에 눌러앉았다. 어디서들 구했는지 70년대의 최신유행 패션으로들 차려입은 사람들. 이곳의 사람들은 거리의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해보였다.
"우리가 오늘 한 일이 이 나라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향락이었을거야."
"이 나라에 사우나가 발달한 이유를 알겠다."
"이렇게 날씨가 암울한데 사우나하고 술마시는 것밖에 달리 할 일이 있을리가 없지."
"아니 지금까지 불평만 했지만... 뭐... 그래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도시야."
"그 말이 불평보다 더 심하게 들리는데."

다음날 항구에서 다시 만난 에릭의 감상 역시 다르지 않았다. "친구가 진심으로 고마워했어. 여기까지 자길 보러 와 줬다고. 결혼식 이후로 방문객은 내가 처음이래."
단 하루였지만 궂은 날씨와 혹독한 추위에 질려버린 우리는 돌아오는 배 위에서 신이 났다. 멀어져가는 헬싱키의 항구를 바라보며 에릭은 매우 프랑스적인 촌평을 했다.
"자기 나라를 떠나는 산업이 이렇게 발달한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어떤지 알 만 하지."
배가 탈린을 향하는 동안 우리는 그동안 불평해오던 취리히의 흐린 날씨와 구질구질한 빗줄기가 이곳에 비하면 얼마나 천국같은지, 거리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건축들과 패셔너블한 젊은이들로 넘쳐나는지, 그것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이 여행이 얼마나 가치있었는지를 떠들어댔다. 고작 두 시간 반 거리의 탈린에는 축복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빛났다. 이 약간의 위도와 경도 차이가 얼마나 인간이 받을 수 있는 햇볕의 양을, 국민들의 성격을, 옷차림을, 삶의 질을 바꿔놓는가.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살아갈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위대하고 감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것이 일반인에게 가능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도 어쩐지 기이하게 느껴진다.

드미트리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우리는 취리히에 돌아왔다. 일 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날씨 불평을 하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잿빛 거리와 하늘 말고도 그 나라에는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지 않았을까. 무표정한 거리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봤다면 뭔가 색다른 것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웅크린 하늘의 도시들, 탈린과 헬싱키. 너무 혼쭐이 나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기에 괜한 궁금증이 인다.

여행 사진들은 여기
취리히의 일상사.

# 취리히 미스테리
빨래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양말이 한 짝씩 사라진다는 건 고등학교때부터 깨달아온 평범한 삶의 진리건만, 취리히에 살다보니 가끔 이상한 일을 목격한다. 사라졌던 양말들이 짝을 맞춰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 참 누군지 몰라도 친절한 이웃이구나 생각하다가도 공포스러울 때가 있다. 도대체 그 댁은 뭐하느라 남의 양말을 한 짝 씩 잘 모아뒀다가 짝을 맞춰주는 걸까. 그리고 도대체 양말에 이름이 적힌 것도 아니고 아파트 호수가 적힌 것도 아닌데 내 양말인 줄은 어떻게 안 것일까...

# 라슬로의 의문
라슬로에게는 이제 6개월 정도 된 아들이 있다. "헝가리에 계신 부모님이랑 자주 스카이프를 하는데," 그가 말했다. "볼 때마다 '어머나 세상에, 쑥쑥 자라는 거 봐봐'라고 하시는데, 참 이상하단 말이죠. 제가 볼 때는 여전히 너무 작은데."

# 개미 사육
라슬로와 알렉스가 사무실 바닥에 앉아서 거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전에 거미를 잡으면 헝가리에서는 재수가 안 좋다고 하는데." 둘 중 누군가가 제안했다. "그럼 가둬뒀다가 오후에 잡지요." 그들은 컵을 바닥에 뒤집어 거미를 가둬놓은 뒤, 점심을 먹고 와서 거미를 잡아서 알렉스의 개미들에게 주었다.

# 미국은 다 똑같애
점심먹으러 가기 전 스트리트뷰의 새 UI 데모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는 와와 감탄하면서 스트리트맨을 이 주로 저 주로 옮겨보았으나 보이는 건 온통 끝없이 뻗은 도로와 널찍한 들판 뿐이었다. 팝이 불평했다. "미국은 왜 다 이렇게 똑같이 생긴거야?" 앨런의 대꾸. "동부쪽으로 좀 가봐." 건물들이 등장했고 우리는 다시 와와 감탄하면서 데모를 구경했다.

# 한국 지도
구글 맵스 한국 론치를 앞두고, 나는 우리 팀 사람들에게 한국 팀에서 열혈 개발중인 데모 링크를 알려주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팝은 강릉과 속초 쪽을 들여다보면서 지도가 정말 상세하다며 신기해했다. "저기... 그쪽은 조금 변두리 지역이고요 서울 쪽을 보셔야 뭐가 많아요." 그리고 나는 서울역 부근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어떤 정부를 둬야 이런 지도가 나오는거지?" 앨런이 몹시 감탄했다. "가끔 일본쪽 쿼리 디버깅할때마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던데. 이런 색색깔 칠해진 건물이랑 특별부지들 예쁘잖아. 비즈니스 아이콘들이랑."
사실 나는 지도의 차이를 정부에서 찾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이 더 신기하다.

# 문화 차이
라슬로: 이 남자랑 여자랑 서 있는 아이콘은 뭐예요?
나: 예식장이요.
졸탄: 농담 아니고 진짜예요?
알렉스: 이 그릇이랑 숟가락 아이콘은 뭐죠? 식당인가?
나: 아 그건 약국이예요.
알렉스: 이건 성?
나: 학교예요. ㅜㅜ

# 잘못된 방향
주간 회의에서 디에나가 요즘 자신이 작업중인 코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앨런: 그거 왜 필요한건데?
디에나: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운전하잖아!

# 한국 론치
어느 화요일 아침의 출근 인사.
나: 굿모닝. 한국 론치했어요. ^^v

참고삼아 상황설명. 한국 맵스는 한국에 팀이 따로 있습니다. 저는 저희 지도검색팀 관련한 업무만 간간히 도우면서 한국팀 일도 구경하고 있고요 (어쨌든 물론 한국어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으하하).

# 예리한 파월
파월과 배드민턴 단식 경기를 하던 중 나는 그만 기진맥진 지쳐버렸다.
나: 조금 쉬었다 하자. 오늘 날씨가 저기압이라 몸이 좀 피곤하네.
파월: 그러지 뭐. 좋은 이유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구질구질한 날씨.
나: 끄덕.
파월: 업무과중과 스트레스.
나: 끄덕.
파월: 아프리카의 기근.
나: ...변명이 아니었다구.

# 예리한 파월 2
토마스의 집들이 팟럭 파티에 갔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이 하나씩 테이블에 나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음식들에 대한 칭찬이 오가는 중 한 켠의 와인 코너에서 나는 빈 잔을 채우며 파월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배드민턴 클럽과, 그의 고향 바르샤바와, 각자의 주량 등에 대해 대화를 했다. 나는 슬슬 좀더 지적인 화제로 옮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참 무슨 팀에서 일한다고 했었지?
파월: 실망이야. 이제 대화는 끝났어!
나: 어?
파월: 날씨 얘기 일 얘기 나오기 시작하면 끝이라니까. '지루한 대화였어, 잘 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우리 대화가 겨우 그것밖에 안 됐던 거야?

# 일 얘기
그러나 분명 때로는 일 얘기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미안하게도 이름을 까먹어버린) 한 구글러와는 마틴의 팟럭 파티에서 한 시간 가까이 '애즈에서의 검색 품질 테스트와 맵스에서의 검색 품질 테스트를 어떻게 잘 연결해서 시너지를 내 볼까' 풍의 얘기를 즐겁게 하지 않았던가!

# 좋은 소식
오랜만에 만난 현순언니가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 "미래씨 뭐 좋은 소식 없어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음, 네 한국 맵스가 얼마 전에 론치했어요."
"..그런거 말구요!"

# 기억하고 싶은 와인
나: 흠 이 와인 이름 기억해야겠어요.
소냐: 맘에 들었나봐요?
나: 아뇨, 다시 안 마시려고 기억하는 거예요. 떫은 맛이 너무 심해서요.

# 연장된 휴가
아니카가 3개월의 휴가 끝에 돌아왔다.
나: 그동안 어디 갔다 온 거야? 사람들이 너 미국으로 영영 이주해버렸다고까지 했다니까. 3개월짜리 휴가라니 분명히 멋졌겠지?
아니카: 그게 사실은 말이지...
그리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워싱턴에서 만난 한 장교와 사랑에 빠져, 남은 여행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일 주일만에 동거를 시작해서 그와 함께 두 달 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숨 돌릴 틈도 없이 해 줬다. 장갑차를 운전하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든가, 군부대의 수영장이며 체육관이며 편의 시설을 하루종일 이용할 수 있어서 장교 여자친구라는 거 참 할 만 하더라든가, 그가 얼마나 세심하고 사려깊고 매력있는 남자인가 등등. 조만간 그가 취리히로 여행을 올 거라는 얘기도. 이야기하는 내내 그녀의 눈은 꿈을 꾸듯이 반짝반짝 (분명히 그랬다!) 빛나고 있었다. 나는 참을성있게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고 지금 여기에 쓰고 있)다.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축복을.

# 한국인
여성 구글러들과 함께 와인 보트 축제에 갔다. 다시 말하면, 아가씨들 열댓명이 우르르 술 마시러 몰려갔다. -_- 절반 정도는 동유럽 출신이라 지금까지 내가 어울려 다닌 어느 그룹들보다 술을 잘 마셔서 분위기는 매우 고조되었다.
해나: 당신을 내 술친구로 임명합니다.
나: 영광이옵니다.
그레이스가 깔깔 웃었다. "미래는 진짜 한국인 같애요." (그레이스는 말하자면 한인교포 2세다)
나: 한국인 같은게 아니고 나는 정말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예요.
다음날 숙취로 집 천장만 바라봤다.

# 독일 남자친구
배드민턴 클럽을 이끄는 맥주친화적인 독일 아저씨 마이클은 볼 때마다 나를 야단친다.
마이클: 왜 아직도 독일 남자친구를 안 사귀는 거야?
나: 아니 왜 꼭 독일인이어야 하나요.
마이클: 취리히에 왔으니 독일어를 배워야 할 것이고, 독일어를 배우려면 독일 남자를 사귀어야지!
나: 혹여 누굴 만나더라도 그 사람 자체 때문이어야지 그런 이유로 사람을 만나면 쓰나요.
릴리와 옥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럼 우리가 이 남자들이랑 왜 결혼했게요?"



여기서부터는 뉴욕 출장 얘기.

# 초과업무
항상 팝의 근면함에 감탄하던 나는 출장가는 비행기를 같이 탄 김에 물었다.
나: 저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시고요... 그냥 궁금해서요.
팝: 그럼요.
나: 그렇게 맨날 늦게까지 일하면 부인께서 화 안 내요?
팝이 웃었다. "화내요."

# 다양성
한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야니스: 참 그 친구 이름을 바꿨죠.
앤드류: 이름만 바꾼게 아니지 말이죠.
팝: 뭐, 다양성을 존중해야죠.

# 맨체스터 동문
앤드류와 팝이 맨체스터 동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야니스가 놀란 기색을 했다.
야니스: 그런데 팝은...
우리는 흐린 말끝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팝은 살짝 프랑스 억양을 가진 반면, 핀란드 출신인 앤드류는 굉장히 심한 맨체스터 억양을 가지고 있는 것.
팝: 저는 억양까지 픽업하진 않았는데 말이죠.
앤드류: (독백조로) 출신을 숨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어요. 억양을 고쳐가면서까지. 불행한 출신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상관없었어요.

# 리즈
구글 맵스 전체를 통째로 책임지고 있는 리즈는 끊임없이 쉴새없이 말할 수 있는 대단한 정력과 아이디어의 소유자이다. 이메일로 간간히 그녀에게서 버그 리포팅을 받다가 뉴욕 출장에 가서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나: 지도검색팀의 미래예요.
리즈: 리즈예요. 아 당신이 그 미래군요? 닌자 프로젝트(대충 이렇게 얘기해둡시다. 쿨럭) 담당하는?
나: 네. 이번 분기부터 그 프로젝트는 국제화 팀으로 인수인계 중이고요.
리즈: 나는 도대체 사람들 이름이랑 얼굴 매치하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한 번 보고 나면 그제서야 매치가 되지요. 내 머릿 속에는 '미래? 닌자 프로젝트' '닌자 프로젝트? 미래' 참 단순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람들을 기억해요. 분명히 사람들은 기분 나쁠거야 내 머릿 속에 자기들이 이렇게 기억되고 있다는 걸 알면.
그녀의 언변은 카페테리아의 끝에서 끝까지 한 걸음씩 이동하도록 계속되었지만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었기에 나는 다소 안심했다.

# 뉴욕 오피스의 점심식사
뉴욕 오피스는 과연 소문대로 다양한 요리가 즐비했다. 베지테리안 컬렉션, 온갖 종류의 커리들, 동양 음식들, 심지어 낫또까지 있었다. 나는 UI 디자이너 스캇과 잠시 내 프로젝트들과 관련한 간단한 UI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옆 테이블에 자리한 리즈와 앤드류는 물 만난 고기마냥 포크 드는 것도 잊은 채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인류와 철학에 이를 때 즈음 나는 내 접시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스캇이 눈을 찡긋했다. '재미없죠' 그리고 그는 뉴욕에서 어디를 여행할 계획인지 물었고, 서점에 가고 싶다는 내게 길 건너 스트랜드를 추천해줬다.

# 이틀짜리 뉴욕 관광
주말에는 야니스, 앤드류, 팝과 앨리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을 실컷 했다. 토요일은 오전에 모마에 갔고 점심으로 일식을 먹었으며 타임스퀘어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혼자 스트랜드에 가서 책 냄새를 실컷 맡고,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만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The 39 Steps> 연극을 봤다. 일요일에는 사라베스에서 브런치를 먹고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뉴욕 닉스 경기를 관람하고 메이시에서 옷가지 몇 개를 샀다. 앤드류와 팝은 길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아이폰과 블랙베리로 구글 맵스를 검색하다가 디버그 공방을 벌이는 낭만도 잊지 않았다.
더블에스프레소 한 잔 씩을 앞에 놓고 팝이 물었다. "이번 출장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내 매니저는 참 끝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요." 앤드류가 킬킬거렸다.

# 국제 로밍
출장 덕에 전화비가 12만원이 넘게 나올 예정이다.
나: 역시 국제 로밍은 너무 비싼 것 같애. 뉴욕에서 맵스 몇 번 검색하고 급한 전화 몇 통 했더니 이렇게 나와버렸네.
맷: 맨하탄처럼 길 잃기 힘든데서 맵스는 왜 쓴 거야?
나: 눈 앞의 광경을 스트리트뷰와 함께 보면 얼마나 근사한데.
맷: 으하.
나: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하길래 교통량 검색을 해 봤더니 우리 택시가 빨간 줄 초반에 있더라구.
맷: 제법 유용하네.
나: 그치. 다시는 데이터 로밍 안 쓰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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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구글 맵스 한국 http://maps.google.co.kr

문의사항은
구글 맵스 한국 그룹 http://groups.google.com/group/google-kr-Maps/topics
구글 맵스 API 그룹 (글로벌) http://groups.google.com/group/Google-Maps-API
공식 채널을 통하시는 것이 여러모로 가장 권장되는 방법입니다. 지도검색에 관련한 개선점은 저에게 직접 문의를 주시면 힘 닿는 만큼 봐 드릴 수는 있으나 100% 고쳐드린다는 부도수표는 남발할 수 없어 조심스럽고, 지도검색 외의 개선점에 대한 문의를 주시면 함께 공감하고 슬퍼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각자의 분야가 워낙 세분화되어 있는지라 그중에 제가 고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으니 이 역시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또 직접 사람 냄새 나게 연락할 수 있는 아무개가 있다는 건 기분이 다를 것이니, 제게 직접 귀뜸 주셔도 그런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며 귀담아 듣겠습니다만. ^^

구글 맵스가 추구하는 큰 목표 중의 하나가 '재미'라는 사실 아시는지요. 커다란 서비스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서, 구글 맵스가 언제나 유용하고 즐거운 서비스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가만있자 한국에서의 정식 명칙은 구글 지도인데... 킁)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2009년 되세요! ^^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8. 11. 2. 07:23

일상다반사@구글

# 스트리트뷰 론치기념 파티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 밀리웨이에 갔다. 평소에도 밀리웨이의 식사는 언제나 훌륭했지만, 그날따라 도가 지나칠 정도로 메뉴가 으리번쩍한 것이 아닌가. 번쩍거리는 디저트들 옆에 푯말이 붙어있었다. '스트리트뷰 파리 론치 기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스트리트뷰 영상과 함께 프랑스 음악이 흘렀다.
에릭이 불평아닌 불평을 했다. "이거 참, 나는 그저 점심을 먹고 싶었을 뿐이라고!"

# 미국에는 버팔로가 없어
자기가 미국인인지 영국인인지 독일인인지 헷갈려하는 마틴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에는 진짜 버팔로가 없다. 버팔로라는게 뭔지 잘 몰랐던 미국인들이 엉뚱한 동물을 버팔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동물이 미국 전역에 퍼져서 잘 서식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건 진짜 버팔로가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에는 진짜 버팔로 모짜렐라도 없다. 스위스에도 버팔로가 자라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버팔로 모짜렐라는 진품이라면 모두 이탈리아산이다.
나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기분으로 흘려들으며 구운 치즈를 맛있게 먹었다.

# 10만원
처음 이주해와서 가구 사다 조립하고 나름대로 독립심과 자주심과 자긍심을 쌓아가던 차에, 결국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다. 파이프 형태로 된 옷장을 샀는데, 이걸 설치하려면 천장을 드릴로 뚫어야 했던 것. 결국 가구점에 전화를 해서 10만원짜리 가구조립 서비스를 신청했다. 이 얘기를 했더니 전형적인 러시아 군인 체격의 드미트리가 잔뜩 핀잔을 주었다.
"날 부르지 그랬어. 10만원이면 사람도 하나 죽일 수 있는데." -_-

# 굳어진 단위 환산
다같이 카누를 타러 가기로 하고 가격을 알아봤다.
"얼마래?"
"한 사람 반."

# 본토 영어
어느날 앨런이 내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말을 했다.
"#&%^@#$Y&#%^&#&*$^&@$@"
"뭐라고?"
"아, 신경쓰지 마." 그리고 그는 다시 뚜벅뚜벅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본토 영어 2
어느날 앨런이 내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광속으로 말을 했다.
"이게 @#!@#$한데 말이야 @$%@^&@$하고 @#&#한데 어떻게 &*&#$%#할 수가 있지?"
나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네 말이) 이해가 안 되는데."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이 현상이) 이해가 안 돼."
그리고 그는 다시 뚜벅뚜벅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본토 영어, 그러나 오레곤 사투리
팀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던 중 각 나라의 상징 동물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유럽 나라들 대부분이 독수리여서, 자기 나라는 황금색 볏이네, 자기 나라는 머리가 셋이네, 이런 시덥잖은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말해줬다. "한국의 상징은 타이거예요. 지도가 호랑이처럼 생겼거든요."
명색이 지도검색팀인지라 사람들이 다들 한반도 모양은 알고 있어서, 어떻게 호랑이가 이 모양에 매치되는지를 내게 묻고 있었다. 가만히 있던 앨런이 한참 뒤에 말했다. "티거 말하는거야?"

# L 발음은 어려워
어느날 내가 앨런의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말을 했다.
"그래서 월드 빌드에서는 이러이러한 것과 이러이러한 것을 추출하고 있는데..."
그가 골똘히 생각해보곤 말했다. "아, 월드 말하는거구나."

# 친밀한 남미인
종종 다른 오피스에서 우리 팀을 방문하면,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나름대로 상냥하게 대접하려 노력한다. 어느날 남미풍의 이국적인 손님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예요."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예요."
각자 소개를 하며 악수를 하는데, 이 손님이 디에나에게만 손에 키스를 했다. 디에나가 약간 당황하며 재빨리 수습했다. "아 정말 친밀하시네요."

# 뉴질랜드 영어, 영국 영어, 미국 영어
어떤 미지의 아저씨가 우리 팀에 뚜벅뚜벅 걸어와서 물었다.
"...그래서 이 브런치에서 이러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브런치에서는..."
앨런이 미지의 아저씨의 말을 중단했다. "잠깐만. 브런치가 뭐야?"
미지의 아저씨: "브런치."
알렉스: "브란치."
앨런: "아, 브랜치."
미지의 아저씨: "브런치."
알렉스: "브란치."
앨런: "브랜치!"
미지의 아저씨: "도대체 키위한테 뭘 바라는 거야?"
그리고 셋은 어쨌든 '브런치'로 통일을 하고 평화롭게 대화를 계속했다. 괴로운건 나뿐이었다.
.........어떡해 계속 '브런치'만 들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섬세한 취미
내 멘토이자 책상 이웃인 알렉스는 매우 점잖은 영국 사람이며 한국인 부인을 두고 있다. 헌데 어느날 그가 팝에게 유리상자를 보여주며 뭔가 부탁을 하고 있었다. 개미가 든 유리상자였다.
"개미를 키우세요?"
그러자 그는 이 개미는 독일에서 수입해 온 것이며, 혈통있는 개에 보증서가 있듯이 이 개미도 보증서가 딸려 있으며, 본인 자신도 개미를 키우기 위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설명해줬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부인도 아세요?"

# 매니저
내 매니저인 팝 역시 매우 점잖은 프랑스 사람이다. 구글의 지오코딩은 이 사람을 믿고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막중한 책임을 떠맡고 있으며 광범위한 지식과 초인적인 업무량과 그에 비례해 테이블 위에 첩첩이 쌓인 커피잔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람. 그런 팝이, 알렉스의 휴가기간 동안 며칠에 한 번씩 그의 개미상자를 들여다보며 세심하게 꿀 한 방울과 물 두 방울씩을 줬다.
아, 나는 내가 정녕 훌륭한 회사에 다니고 있구나, 감동할 지경이었다.

# 돕고 산다
원격 화상회의가 있었다. 시간은 이미 늦은 저녁 8시, 팝과 앨런과 나 셋만 남았다. 너댓 군데 오피스에 화상회의가 연결되고, 여러 질의응답이 오가고, 결정의 순간에 그들이 내게 물었다. "@#$!#$%@#$^@$%"
나는 옆에 있던 앨런에게 되물었다. "질문이 뭐였어?" "추가적인 트래픽이 필요하냐고."
덕분에 나는 침착하게 대답을 하고 회의가 끝났다. 나보다 팝이 더 기뻐했다.

# 빔의 아버지를 만나다
누글러 트레이닝을 받던 첫 주. 자기소개도 없이 불쑥 강연을 시작했던 이 사람이 바로 빔의 아버지, 브람 물레나였다는 것이 강연 후에 밝혀졌다. 나는 중1때 가수 이적을 처음 실물로 접했을 때만큼이나 광분했다...!
"당신이 진짜 '그' 브람이예요?"
브람이 웃었다. "'그' 브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브람 맞아요."
다른 누글러 친구들이 뻘쭘해하는 가운데 나는 그와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았다.
'Happy Vimming! - Bram Moolenaar'

# 그런데
정작 브람 본인은 요즘 이클립스를 쓴다고 한다.

# 두들의 아버지를 만나다
여느 때처럼 밀리웨이에서 감동의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익숙한 얼굴이 휙 지나갔다. 나는 다시 광분했다.
"방금 데니스 황이 지나갔어!"
"그게 누군데?"
"잠만 그거 대답해 줄 시간 없어.. 아 어떻게 가서 말을 걸지 $@^@#$ 어흑 사라졌어"
그리고 나는 라이브러리로 쫓아가서 그에게 수줍은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는 그의 일정이 너무 바빠보여 차마 브람 때처럼 싸인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 격식있는 한국어
두들의 아버지 황정목씨와의 조우 후, 피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 우리가 아까 옆에서 웃은 이유는 말이지."
"니네 웃고 있었어? 몰랐네."
"옆에 있던 한국분이 우리한테 통역을 해 줬는데, 네가 굉장히 격식을 갖춘 한국어로 점잖게 말하고 있다고 해서."

# 재색겸비
스페인 사람 루재가 자신의 친구인 한국 여자분을 데리고 불쑥 내 책상으로 찾아왔다. 마침 포니테일을 질끈 묶고 뿔테 안경을 쓰고 8단으로 나눈 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를 보고 그 친구분이 말했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젊은 여자분이 구글에서 일을 하시네요."
"네 뭐, 전산 전공이거든요."
"세상에 공대 출신이신데 영어도 어쩜 잘하시고.."
"미모도 겸비했다는 말도 덧붙여주세요." ^^ 그분의 벙찐 표정이 생각난다.

# 금색 하이힐
내 책상 이웃인 스웨덴 사람 요한이 인천국제공항에 잠시 들렀던 경험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 김치라는 것도 맛을 봤는데 말이죠. 솔직히 맛이 정말 끔찍했는데, 우리를 안내했던 한국 여자는 김치가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거예요."
"네 한국 사람들은 김치 덕분에 사스도 피해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그 여자도 사스 얘기를 하더라니까요!"
그리고 그가 중요하다는 듯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를 안내했던 한국 여자가, 엄청나게도 차려입었었는데, 하이힐이 금색이었어요!"
...어쩐지 나랑 마주앉아 얘기할 때마다 내 구두를 쳐다보더라니 싶었다.

# 더이상 놀랍지 않아
요한이 다른 오피스에 출장을 다녀왔다. 알렉스가 물었다.
"어땠어요?"
"뭐 그럭저럭. 걔네 오피스도 좋던데요. 아 수영장이 있어요."
"괜찮네요."
"그죠."

# 번뜩이는 광고 재치
취리히의 어느 지역신문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안녕 구글 취리히! 근사한 휴게실도 갓 짠 신선한 쥬스도 스페이스 캡슐도 잠시만 잊어보세요. 한밤의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가 보다 극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팀웍을 고양시킬테니까. 분장실도 구경시켜줄게!!”
아니 이렇게까지 오라는데 못 갈 이유가 있나. 우리는  카피라이터의 재치에 감탄을 거듭하며 단체로 즐겁게 잘 보고 왔다.

# 새 인스턴스 (주: 워낙 구글 특화된 용어들이라 대충 비슷한 용어로 대체)
제프리의 아들 출산 소식이 이메일로 날아들었다.
"어제 저와 제 아내가 두 번째 인스턴스를 성공적으로 론치했습니다. 첫 번째 인스턴스보다 더 적은 자원을 사용하는군요. 서버 상태 양호. QPS는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팝이 재빨리 답장을 달았다. "오 축하합니다! 모니터링 그래프를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프리의 귀여운 아들의 인증샷이 따라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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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제 블로그에서 구글과 검색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피력하는 이야기를 기대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앞으로도 그런 글은 올라오지 않을 예정입니다. ㅋㅋㅋㅋㅋ 그런 것은 공식 블로그에서 찾으시고. 저 자신도 얼마나 회사의 요모저모가 어썸리 어썸한지 자랑하고 싶지만, 제 수다는 여기서 일어나는 일상다반사만 얘기해도 바닥이 날 것 같지 않으니까요. ^___________^
얼마 전 규진이가 KTH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길래 이것저것 메일로 답해주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작년에 써 둔 후기를 이제야 올립니다. 취리히에서 직딩으로-_- 6개월을 더 살아보니 달리 보이는 것들도 있고 해서 주를 조금 달았습니다. KTH에, 혹은 다른 유럽 국가의 대학에 교환학생을 가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8. 9. 15. 15:51

Ars Electronica (1/2)

일주일이 한 달 같고 한 달이 일주일 같습니다. 여기 온 이후로 어쩐지 시간감각을 좀 잃었어요. 연락이 뜸하다고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길.

근황을 한토막씩 쓰는 건 재미없을 듯 해서, 지난 주말에 다녀온 알츠 일렉트로니카 얘기에 간간히 썰어넣겠습니다.

아, 피터가 찍은 사진들: http://flickr.com/photos/skatey/sets/72157607205649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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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처음으로 그럴싸한 휴가를 냈다. 슬로베니아 친구들이랑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리는 'Ars Electronica'에 가기로 한 것. 아예 좀 놀다 오자 싶어서 주말을 끼고 5일짜리 휴가를 만들고 한 달 전부터 기차표도 예매해뒀다. 물론 나중에 종이 더미 속에서 찾느라 고생했지만.

창 밖 풍경은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전원 풍경은 언제나 그림같이 예쁘고, 똑같다. 익숙해진 풍경을 별 미련없이 외면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성과 평가 기간이라 자기평가서를 써야 했다. 지하철처럼 혼잡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좁은 '자기 공간'을 느낀다고 하던데, 참 맞는 말이다. 저쪽 맞은 편에 앉은 여자분도 딱 나같은 표정으로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데, 혹시 구글에서 일하시나,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집중해서 자기평가서를 끝냈다. 반 년의 성과를 마무리하면서 떠나는 기차 여행이라니 참 시의적절하지 않은가. 아직 여정은 한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완만한 구릉지와 야트막한 숲들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이적 3집을 귀에 꽂고, 참으로 이런저런 사념이 쏟아졌다. 여기서 만난 온갖 종류의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들이 머릿 속을 왕왕 맴돌았다.

잘즈부르크에 들렀다. 사전지식을 준비할 여유같은 것도 없었지만, 실제로 내가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 그렇다. 아예 작정했으면 좋은 가이드북을 사든지, 아니면 그냥 지도 한 장만 구해서 걸어다닌다. 독일어로 된 안내문들이며 교통카드 자동판매기까지 취리히와 비슷해서 편안함을 느꼈다. 곧장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에메랄드빛 강이 큰 산을 향해 흘렀고, 바람이 산 내음을 닮아 향긋했다. 막연히 크고 현대적인 도시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작고, 무엇보다도 무척 고풍스러운 도시였다. 현대적인 것의 침략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따뜻한' 날씨와 밝은 햇볕에 들떠 정처없이 걸어다녔다. 노천 와인카페에서 와인 한 잔과 디저트를 음미하면서, 멍하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한동안 그렇게 늘어져있었다. 아, 이렇게 좋은 건줄 알았으면 휴가 좀 자주 다닐걸. 오스트리아의 별미라는 이 디저트 이름은 또 까먹었지만 아무튼 훌륭했다. 저녁 무렵까지 잘즈부르크 강변을 맴돌다 다시 린츠행 기차에 올랐다.

린츠의 숙소에서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식사를 놓쳤다. 지도 한 장을 구해서 트램에 올랐다. 음, 도나우 강이 여기 흐르고, 중앙역이 여기에 있고, 여기에 중앙광장이라는 것이 있으니 틀림없이 여기에 내 일용할 양식과 카페인이 있을지어다! 예상대로 도착한 그곳은 100미터 전방에 도나우강이 흐르고 노천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선 곳이었다. 나의 탁월한 '독일어권 도시 여행 능력'에 혼자 괜히 뿌듯해하며 커피 한 잔과 아이스크림을 즐겼다. 아싸 무선랜도 잡힌다. 아이폰으로 트위터를 한 줄 날렸다. "In Linz Austria. Hat einen kaffe und eis in der hauptplatz. Warte meinen freuenden. Well hope this sentence makes sense :D" 한참을 늘어져있다가, 다시 길 잃은 강아지모냥 또 열심히 쏘다니고 햇볕을 만끽했다. 피부 좀 타면 타라지. 취리히의 부슬비에 갇혀있었을 구글러 친구들한테 자랑도 할 겸.

조금 후 슬로베니아 친구들이 린츠에 도착했다. 새벽 5시부터 루블리아나에서 운전해왔다고 했다. 피터, 유레, 보슈티안, 카야. 카야를 제외하고는 다들 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현재 Zemanta라는 벤처를 차리고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다. 피터는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다 최근에 디자이너로 합류했고, 유레는 에반젤리스트로 전세계의 컨퍼런스며 캠프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보슈티안은 초기 창업멤버 중 하나로 CEO였다가, 이쪽 경험이 많은 형에게 자리를 물려준 상태. 카야는 보슈티안이 최근에 채용한 대외협력담당 쯤 되는데, 슬로베니아의 텔레비전 스타라고 했다. 카야와 보슈티안이 프레스 명찰을 받으러 가고 우리 셋은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반 년 만인데, 모두에게 많은 것이 변했다.

"유레, 이제 정말로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삶이네. 멋진데. 기분이 어때?"
"그 장소에서는 대개 즐거워.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온갖 이야기들을 듣고 하는 것. 여행을 준비하고 이동하는 과정은 성가셔." 그리고 그는 한 다섯 가지쯤 되는 일화들을 죽 열거했다. 영국에서 환승기차를 놓치고 야간버스를 간신히 타고 새벽에 길 한 복판에 떨어진 일, 샌프란시스코 어느 공항에서 항공기 지연으로 밤샌일 등등. 피터가 스웨덴에 있던 유레를 방문했을 때 비행기가 연착되어 늦게 도착해 10월의 새벽에 짐을 끌고 라피스까지 걸어가야 했던 일화도 나왔다. "새벽 2시 3시쯤 되었을거야. 그 지역에 살아온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일이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때 스톡홀름에서 나는 아무도 몰랐어. 그러니까 중요한 건 네트웍이야. 미국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가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단 말이지. 그냥 처음부터 시작하는거야."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 어떻게 처음 그 시작점을 만들지?"
유레가 씩 웃었다. "나만큼이나 지루해하고 있는 듯한 사람을 찾아. 대화를 시작해. 이 대화를 듣고 흥미를 느낀 몇 사람이 동참하기 시작해. 그 사람들의 아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군중 하나가 만들어져. 거기에 있던 사람들과 모두 안면을 트도록 노력하지. 이게 시작점이야."
"흐음, 그게 스웨덴에서 나한테 접근한 방식인거야?" 웃음. "아니."

Ars Electronica라는 행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미디어 아트 페스티발'인데,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디어 아트'보다는 뭐랄까 좀더 geeky한 면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미디어 아트 행사이고, 전시작으로 선발되기 위해서 매우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린츠에서는 이 외에도 다양한 문화 행사를 많이 개최되지만, 미디어 아트 분야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면 린츠라는 도시에 이목을 집중하곤 한다. 그리고 나처럼 geeky and artistic이라는 수식어에 혹한 사람들도 린츠를 찾는다. 행사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은 설치예술인데, 간간히 세미나도 있고 라이브 퍼포먼스도 있다. 이 작고 아름다운 도시의 시가지에 20여군데의 크고 작은 전시장이 설치된다. 열심히 발품을 팔면 하루만에도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걸을 만한 거리이면서도, 도시 전체에 잘 녹아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배치였다.
"흥미로운 게 있으면 시간을 들여서 봐. 뭐든지 궁금한게 생기면 부스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5일 동안 내내 그 부스를 지키고 있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슥 훑어보고 지나갈 뿐이고, 따분하지. 관심을 보이면 굉장히 기뻐하면서 자세히 설명해줄거야." 우리는 부지런히 걷고, 카페인을 충전하고, 하면서 돌아다녔다. 저게 뭐지? 싶은 것들은 피터가 종종 설명해주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적어보면..

- 새들과 상호작용하는 새 로봇. 얼핏 봐서는 둥지처럼 생겼는데, 새 울음소리 같은 것을 휘익휘익 낸다. 숲에 놓아두면 새들의 울음소리를 학습하고 그에 맞게 자기 울음소리를 바꿔나간다고. 실제로 숲에서 실험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어떤 새들은 몹시 경계하며 달아나는 반면 어떤 새들은 지속적으로 주변을 맴돌면서 상호작용을 한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네 개의 로봇이 놓여있었는데, 로봇들끼리 서로 학습하면 간섭이 생기지는 않는지 궁금했..으나 부스에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 비누방울 하프. 금속으로 된 막대기들이 하프처럼 꽂혀있고, 그 앞에 손잡이 달린 상자가 놓여있다. 손잡이를 드륵드륵 돌리면 비누방울이 나오면서 금속 막대에 부딪히고, 이것이 전도체 역할을 해 소리를 낸다. 비누방울이 퐁퐁 날리고 랜덤하면서도 듣기에 나쁘지 않은 멜로디가 울려퍼지는, 동화적인 컨셉이 귀여웠다. 보슈티안이 모델을 하고 피터는 줄곧 사진을 찍었다.

- 콘크리트 테이블 악기. 콘크리트로 된 단순하고 우직하게 생긴 테이블이 조명 아래 놓여있다. 테이블을 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면 멜로디가 흐른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멜로디가 달라진다. 보슈티안은 한동안 그 콘크리트 테이블을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 이 테이블과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어떻게 만들 수 없을까. 어렵지 않을 건데." 나중에 알아본 원리는 광섬유로, 테이블에 뚫린 작은 구멍들로 들어오는 명도를 인식해 멜로디를 조합하는 것.

- (비디오 전시작) 뭐라고 불러야 하지... 스크린에 얼룩이 하늘하늘 흘러다닌다. 손을 대면 이 얼룩이 손을 따라 팔로 번져나온다. 스크린 밖의 얼룩은 프로젝터로 투사한 것인 듯 했다. 이걸 보며 떠오른 것이 유시진의 클로저라는 만화였다. 한 세대마다 '초즌원(;)'이 있고, 이 초츤원은 팔에 문신 비슷한 산스크리트어 문양을 가지고 있다. 다음 세대의 초즌원에게 역할을 넘겨주는 의식에서, 그들은 서로 손목을 잡고, 이 문양이 손을 타고 흘러가 전달된다. 내가 이 얘기를 했을때 보슈티안에게 누군가가 싱거운 질문을 던졌다. "네가 우리들의 초즌원이냐?" "당연하지."

- (비디오 전시작) LED 속눈썹. 단 하나 뿐이었던 우리나라 작품이다. 눈 밑에 붙이는 점점히 박힌 LED인데, 눈을 깜박일 때마다 반짝인다. 비디오에는 이 속눈썹을 달고 서울의 밤거리를 거니는 자신(박수미 씨)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한국 여성들의 큰 눈에 대한 집착을 표현하는 거라고.

- 벽면 전체에 그리드로 붙은 스티커. 떼어서 다른 곳에 붙일 수 있다. 뗀다라는 것 행위가 그리드에 자국을 남기고, 붙인다라는 행위는 새로운 자국을 만들어낸다... 는 건 그냥 내가 대충 둘러댄 해석이고 중요한건 여기에 한글로 선명하게 '카이스트'라는 자국이 있었다! 동경대가 올해 이 행사 초청대학이라 일본 사람들은 잔뜩 봤지만 한국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더랬는데. 누군가가 카이스트에서 왔다 간 모양이다.

- (퍼포먼스) 유리로 된 상자 안에 텅 빈 표정의 한 남자가 앉아있다. 눈과 입과 코에서 흘러내린 파란 물 자국이 얼굴에 가득한 채로. 그냥 그린 건 줄 알았는데 애들의 말에 따르면 일종의 음독을 한 거라고 한다. "해독을 하느라 몸이 파란 물을 뱉어낸거지". 그날 저녁 블랙베리를 확인하던 누군가가 어떤 블로그 포스트의 제목을 큰 소리로 읽었다. <아티스트들의 자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나> 카야는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가까이에서 그 얼굴을 봤는데, 어쩐지 압도되었어. 정말로 텅 빈, 이해하기 힘든 표정이었어. 한참을 쳐다봤어." 그렇게 말하는 카야도 어딘가 닮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난 얼굴에 파란 물 자국을 하고 유리 상자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몇 백명의 사람들에게 관찰되는 그 경험 자체가, 뭔가 엄청난 느낌일 것 같아."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Ars Electronica (1/2)
Ars Electronica (2/2)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8. 9. 15. 09:04

Ars Electronica (2/2)

Ars Electronica (1/2)
Ars Electronica (2/2)

이틀의 발품을 팔고, 저녁에 시작할 불꽃놀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봐버린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일식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메뉴에서 유럽에서 처음으로 회를 발견했다! 세상에. 당장 회 1인분을 주문하고 오꼬노미야끼도 시켰다. 구글러들 중에는 인도, 베트남, 일본, 중국, 심지어 한국 음식에도 익숙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제만타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회초밥이 신성의 영역인 듯 했다. 젓가락 대신 포크를 가져다달라며 카야와 우르방이 살짝 겸연쩍은 표정을 했다. 그래도 좀더 미식 견문이 넓은 보슈티안이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어차피 들어가면 다 똑같아." 다같이 웃었다. 언제나 느끼는 건데 인류의 문명이란 장소를 막론하고 참 공통점이 많다.;; 이런 표현에서까지.
내가 거들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정통 회초밥은 손으로 먹는대. 그러니 포크라고 안 될 거 없지."
"거봐, 우리는 문명인이라 포크를 쓴다구."
"그게 아니라... -_- 유럽에서는 물수건을 주는 문화가 없지?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보통 식당에서 물수건을 내놔. 식사 전에 손을 닦는 게 거의 습관화 되어있어."
"흥미로운데. 우리는 식기를 씻고 동양에서는 손을 씻는다라... 난 동양에 한 표."
"그래,  단지 관점의 차이야."
새삼 구글이라는 환경은 정말로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다 모여있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문명인'같은 표현은 나오지 못했을 터. 예를 들어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역사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그런 역사를 어찌 알겠나' 식의 뻔뻔한 반응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해 약간 주눅든 듯한 반응을 보인다던가 하는, 그런 분위기. 여전히 일에 관련해 뭔가를 의논할 때 '러시아어에서는 복수형이 이러이러하게 변형된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국어에서는 복수형 변화 규칙이 한 가지이며 복수형을 쓰지 않더라도 별다른 혼동이 없다'라는 말에는 웃는 경우도 봤지만... 뭐 다른 이유였을 수도 있고 그냥 그동안은 전혀 듣지 못하던 예제가 나오니 무의식적으로 웃은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악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구글, 특히 국적 구성이 다양한 취리히 오피스에서는 정치적 공정성에 대해서 대체로 사람들이 민감한 편이며,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도도 높은 편이다.

"아 정말 횟집을 어디서 못 봤어. 회초밥이라면 구글에서 매주 나오지만. 야 이 회 진짜 입에서 녹는다." 나는 살랑살랑 '문명인'들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들 경악했다. "회초밥이 매주 나온다고?"  피터가 거들었다. "메인 요리만 여섯 가지가 넘고, 먹고 싶은 만큼 계속 가져다 먹을 수 있어." 그리고 이어진 구글의 각종 복리후생에 대한 이야기들... 보슈티안은 침울하게 말했다. "애들 노조 만드라고 부추기는구나."
그리고 나는 MapSearch팀에서 지난 여섯 달 동안 보고 들은 이런 저런 것들을 간략하게 얘기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사용자들 앞에서 겸손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우리 개발자들 자신은 코어 유저가 아냐. 예를 들어 지도 서비스 같은 경우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용례들이 잔뜩 있고, 가끔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사이드이펙트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는데 하여튼, 우리는 그 용례들을 다 알지 못해. 이 인식부터가 중요해."
"나 슬로베니아 지도 검색을 하다가 버그를 발견했어. 근데 신고할 링크가 없더라. 어떻게 신고해?"
"외부에는 직접적인 링크가 없고, 구글 내부에는 버그 리포팅 시스템이 있어. 보통 구글러들이 자기 주변에서 분개한 사람들로부터 버그를 받고 우리에게 리포팅을 해. 우리 팀에서는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 주에 새로 들어오는 버그들을 분류하고 할당하는 역할을 맡는데, 이 버그들을 보면 참 재밌어, 뭐랄까, 상당수는 그 케이스에 대한 설명만 건조하게 하고 끝내지만 가끔은 굉장히 상세하고 감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런 식이지. '나의 더 나은 반쪽이 어느날 무슨무슨 호텔을 검색하고 있는데, 이 호텔이 그 근처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걸로 표기가 되어 있더라. 물론 이 호텔은 해변에 있지 바다 한 가운데에 있지 않다!'든지 '내가 요새 인터넷으로 뭘 좀 팔고 있는데, 나의 잠재적인 고객들이 계속 길을 잃어버리길래 봤더니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이 막다른 골목을 돌아오도록 되어있더라. 그 길은 큰 벽으로 막혀있다니까!' 등등. 한 번은 잘못 분류했다가 리포팅 한 사람이 화를 낸 적도 있어. 무슨 무슨 주소가 잘못된 주에 속한 걸로 나온다길래, 데이터를 검색해보고는 '지역 주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저 주에 속한 주소인 것 같다.'고 분류를 했더니 몹시 분개한 메일이 날아왔어. '내가 세금을 내도 이 주에 내고, 우편물도 이 주의 우체국에서 날아오는데 무슨 소리냐!'라는... 얼른 데이터 오류로 다시 분류를 하고 잘 달랬지. 많은 경우가 맵서치 쪽 잘못이 아닌데 잘못 분류되어 온 경우야."
그렇지만 가끔은 감사의 편지가 구글러들의 친구들로부터 포워딩되어오기도 한다. 내용과 어조는 대략 이러했다. '나는 뉴욕에 사는 보행자인데, 안그래도 구글 지도 너무 잘 쓰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당신들이 론치한 '보행로검색' 완전 원츄! 새벽 2시에 차 끊기고 택시는 안 잡히고 안전하게 걸어돌아갈 길을 찾아야 할 때 그 막막함 알아? 완전 내 삶의 질을 바꿔놓았어! 당신들 너무 사랑해!' 음;; 보행로검색은 우리 팀 소관이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걸 보면 좋은 서비스가 가져다줄 수 있는 삶의 질의 변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구글 지도의 버그인데 맵서치 잘못이 아니면 누구 잘못이야?"
"구글 지도는 굉장히 큰 서비스고, 수많은 팀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용자들이 보게 되는 그 페이지 자체는 프론트엔드팀이고, 백엔드에는 지오코딩을 담당하는 우리 팀, 비즈니스검색, 경로 검색만 해도 분류가 다양하고. 데이터베이스팀은 워싱턴에 있고, 프론트엔드는 마운틴뷰에 있고, 우리 팀은 취리히에 있고, 이런 식으로 전역에 흩어져있어. 버그들이 처음부터 적절한 팀으로 할당되는 건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야. 계속 뜨거운 감자처럼 팀들 사이에 넘기고 넘기고 하다보면 제자리를 찾아."
"너한테 분노의 이메일 보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 없어?"
"세사미라고, 특정 나라들에 한해서는 사용자가 직접 지오코드를 수정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슬로베니아에는 아마 론치를 안했을거야. 왜, 힘 좀 써서 론치해달라고 할까?" 우리는 다같이 웃었다.

"다른 팀들이랑 연락은 어떻게 해? IRC 채널이라도 있어?"
"IRC라니 뭘 생각하는 거야. 우리는 구글톡 써." 다시 한바탕 웃음. 그렇네 당연하지,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사실 IRC를 사용하는 팀들도 있긴 하다.;
"그리고 물론 이메일을 엄청나게 많이 쓰지. 물론 지메일이고. 음 또, 가상회의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테크톡이나 회의에 자주 이용해. 영상 음성 품질이 굉장히 좋아서 원거리여도 거의 불편을 못 느껴."
"그렇겠지, 충분한 대역폭을 확보하고 있을테니까. 그럼 가상회의가 가장 선호되는 방식이야?"
"가장 선호되는 방식은 당연히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는거지. 우리 팀 같은 경우에는 관련된 프로젝트들 상당수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어서 보통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서 얘기를 해. 직접 얼굴맞대고 얘기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어. 테크리드급 이상의 사람들은 다른 오피스로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한 일이주씩 관련있는 팀이랑 같이 머물면서 싱크업 하는거야. 많은 논의들이 이 방식을 통해 민첩하게 진행되곤 해."
내 오꼬노미야끼는 주문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는지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먹은 회와 현미차의 입가심에 매우 흡족해하며 일어섰다.
"우리 결국 불꽃놀이 놓쳐버렸네."
"이것도 일종의 전통이야. 사실 매년 놓쳤어.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나면 이 시간 쯤엔 뭔가 먹어야 했거든." 보슈티안이 대답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오케이센트룸 옥탑의 클럽으로 갔다. 가득한 인파를 뚫고 무대를 보았다. 한 서른 다섯은 충분히 넘어보이는 한 남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흠 뭐, 그냥 평범하네. 노래를 끝내고 박수를 받은 후, 다음 곡을 준비한다면서 그가 꺼낸 것은 로봇과 그의 진가였다! 멀리 보기에도 서툴어보이는 솜씨로 그는 로봇을 연결하고, 심지어 맥북을 재부팅까지 하면서, 쉴새없이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일본에서 수입해온 로봇키트인데, 급히 조립하고 프로그래밍하느라 사실 오늘 4시까지 계속 코딩하고 있었는데, 주절주절. 그는 가수나 프로그래머로서보다는 코미디언으로서 재능이 있는 듯 했다. 한바탕 소동 끝에 마침내 그가 문제의 맥북으로 음악을 틀고 로봇을 춤추게 하고 그 자신도 로봇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리고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흐음, 데모의 법칙을 아는 우리들은 조금더 관대해 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어쨌든 재미있었으니까. 그리고 로봇과 함께 춤을 추는 감수성, 이 페스티발 전체에 떠돌고 있는 이 감수성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가 퇴장한 후 올라온 디제이는 빔프로젝터가 쏜 0101010101010111100이 가득한 배경화면을 뒤로 하고 진지한 미래지향적 음악 실험을 시작했으나, 여기까지는 우리의 감수성이 공감대를 찾지 못해 다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여행의 대부분은 거기서 끝났다. 나머지는 그냥 찌끄레기 버리지 못하는 미련에 쓰는 디테일. 그날 밤에는 한 군데의 바를 더 들러 맥주를 마셨고, 길을 잃고 한 시간이 넘게 걸어 숙소에 도착했고, 오렌지의 그지같은 커버리지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글로벌 로밍 신청을 안 했던 탓이었다. 다음날에는 커피와 그네와 함께 느릿한 오전을 보내고 나서, 슬로베니아 친구들은 먼 길 운전을 하느라 먼저 떠났다. 나는 숙소에 돌아와 그동안 '젊은' 친구들 쫓아다니느라 모자랐던 잠을 오후 내내 실컷 잤다. 친구들이 알려준 인디안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느긋한 저녁식사를 즐겼다. 사실 너무 많이 먹었다 그때. 독일어권 티비는 역시 재미가 없어서 꺼버리고 책을 읽었다. 밤에 케이블 길이가 모자라서 전기장판을 못 틀고 자서 꽁꽁 언 채로 아침에 깨어났다. 숙소의 아침식사를 먹고, 제 시간에 기차를 탔다. 7시간 동안 자다 책을 읽다 자다 취리히에 도착했고, 노드제에서 생선샌드위치를 사서 짐가방을 끌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때 걸린 감기가 아직도 낫지 않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8. 7. 10. 07:28

스위스 라이프

네 소식이 뜸하긴 합니다만 매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놀러다니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패턴으로 살고 있습니다. ^^;; 이제 넉 달이 되어가네요. 살림살이도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고(여전히 천장을 뚫어야 하는 Stolmen은 설치를 못했지만) 아름다운 계절 여름을 맞아 스위스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쏘다닌 곳들 (대충 생각나는 대로)

- Euro2008 구경: 2002 월드컵 같은 걸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만.. 정말 작은 도시라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인파라고 해야할 겁니다. 길거리마다 즐비한 세계 각국 음식 포장마차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경기 있는 날이면 스크린이 설치된 광장에 나가 사람들을 비집고 맥주를 주문하던 것이나, 축제 분위기에 취해 친구들과 밤거리를 쏘다니며 깔깔대고 웃으며 민폐 끼치던 일이나, 경기 끝나고 자정이 넘도록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터키인들 덕분에 잠을 못 자던 것이나, 트램 스케줄이 바뀌는 통에 망한 일이나.. 한 달로 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축제라는 건 매력적인 겁니다.

- 취리히 호수: 언제봐도 아름답고, 절대 질리지 않는 취리히 호수.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들, 바들, 이젠 제법 친구들과 자주 가는 단골집도 생기고 좋아하는 메뉴도 읊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각종 음식들, 디저트들, 여름 음료들, 음 사실 외식비를 슬슬 줄여야 할 때가...

- 영화관: 취리히의 영화관들은 대부분 "ice cream break"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화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촌시런 빨간색 배경이 펼쳐지고 보트 위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여인네의 실루엣이 "Have a nICE break!"이라는 자막과 함께 그려집니다. -_- 처음엔 이게 무슨 20세기의 유산인가 몹시 분개했지만 몇 번 겪고 나니 글쎄 그런대로 좋은 면도 있습니다. 10분 정도, 화장실에 다녀오고 음료수 하나 집어들고 지금까지 본 절반에 대해 열혈토론을 하는데, 영화가 다 끝난 다음에 하는 토론보다는 좀더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못 알아들은 부분을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 카누잉: Thur강에서의 카누잉. 스위스에 오실 계획이라면 반드시 목록에 넣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혼자서는 못 가고 어느정도 무리를 이뤄야 합니다). 강 위에서 노를 저으며 바라보는 잔잔한 강물과 강변을 따라 우거진 숲은 너무나 아름답고 색다른 운치가 있습니다. 세 명이 한 카누를 탔는데 두 사람이 타는 것이 사실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세 시간 동안 노 젓고 키 잡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매직파스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Pictures from Peter: http://flickr.com/photos/skatey/sets/72157605989560227/

- 래프팅: 취리히에서 기차로 두 시간 가량 떨어진 (즉, 거의 이탈리아 국경에 접한) 곳에 좀더 험한 강이 있습니다. (http://www.wasser-land.ch/english/water/riverrafting_vorderrhein.html) 처음 타 본 카누가 너무 쉽다고 의기양양해진 제 동료들은 바로 그 다음 주말에 래프팅을 예약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저는 그저 비가 오기만을 빌고 있었는데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약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킁. 잔뜩 찌푸린 하늘과 소낙비와 천둥 속에서의 래프팅은 그렇지만, 절대 나쁘지 않았습니다! 에 사진 속에서는 좀 표정이 웃기긴 합니다만..
Pictures from Manish: http://picasaweb.google.com/manishrjain/RaftingInnRiver

- 헌책 시장: Saint Andrew에서 일 년에 두 번씩 하는 행사입니다. 취리히는 독일어를 쓰는 도시라 영어로 된 책은 가격도 비싸고 구할 수 있는 곳도 제한적인데, 이 행사는 영어로 된 책을 값싸게 구할 수 있는 기회로 이민자 커뮤니티(http://www.englishforum.ch)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페이퍼백 소설류에 치중되어 있었는데 (그리고 참 범죄물이 왜 그리 많던지) 어쨌든 오랜만에 맡는 책냄새(그리고 읽을 수 있는)에 기뻐하며 Coop 쇼핑백 가득 담아왔습니다. 당분간은 이걸로 갈증을 달랠 듯 합니다. 요즘은 여기서 건져온 John Grisham의 책들을 오며가며 읽고 있습니다.

- 구글서브: 구글러들의 환경친화활동. 취리히 근방의 Thur강 근처 숲. 학교 다닐 때 봉사활동 시간 채워오라면 참 귀찮았는데 말입니다. "숲 속에서 부페 제공! 구글 로고 티셔츠는 물론! 근무 시간에 야외에서 햇볕 쬘 수 있는 기회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게 아니삼!" 등등의 슬로건에 낚여... 반나절동안 잡초를 뽑고 왔습니다. -_-

- 배드민턴 학교: 우리나라의 홈플러스 문화강좌처럼, 여기에는 Migros schule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별도의 전용 건물이 있다는 겁니다. 강좌 종류도 춤, 노래, 언어, 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원래는 살사 강좌에 나가려고 했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일단 키가 맞는 파트너를 구하기가 힘들고, 유튜브에 있는 살사 비디오들을 보니 과연 내가 저런 고난이도의 춤을 출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고, 첫 레슨 날에는 어쩐지 발목도 쑤시고 기타 등등) 배드민턴 강좌를 골랐습니다. 배드민턴 선생님은 독일 사람으로 영어를 잘 못 하십니다만 눈치껏 코치껏 따라하는 중입니다. 독일어를 정말로 더 배워야겠습니다. ㅜㅜ 참 제 동료들은 그대로 살사 강좌에 나갔는데 아주 춤바람이 났습니다. 맨날 춤얘기만 합니다. -_-

- 굿민턴: 매주 금요일의 배드민턴 모임. 삼분의 일 가량은 구글러들, 삼분의 일 가량은 IBM, 삼분의 일은 다양한 직업으로, 스무명 남짓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여러 국적과 연령대와 직업의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저도 정규멤버입니다. ^^

쓰다보니 놀러다니기만 하는 것 같은데 음... 다음에는 일에 대해서도 좀 써야겠습니다.;;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8. 4. 29. 06:07

취리히에 정착중

순식간에 한 달이 지나갔네요 허걱. 취리히에서 무사히 잘 살아가는 중입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잘 설명했다고 소문이 날지 몰라 미루다보니 더 많은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_-; 그냥 마음을 비우고 쪼잘쪼잘한 자랑질로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냐하

1. 회사 너무 좋아요!!! +_+

벌써 두 달째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계속 누글러 모자 눌러쓰고 천진난만하게 살고 싶었는데 한 달 지나면 더 이상 누글러가 아니라나요.. 크음. 몇 백명에 달하는 사람들 중에서 슬슬 낯익은 얼굴이 늘어가고, 대화 중에 난무하는 약어들도 점차 귀에 익어가고, 오피스에서 길 잃어버리는 빈도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피스가 와방 멋있어요!!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를 참조..
- 구글 취리히 새 오피스 사진
- 구글 취리히 예전 오피스 동영상
낮잠과 간식을 즐기는 저에게 정말 천국같은 곳이어요. 크크

하루 세 끼 식사가 카페테리아에서 제공됩니다! 물론 구글리합니다(=공짜). 최소 세 가지 이상의 메인 요리에 디저트도 종류별로 있습니다. 덕분에 칼질하는 솜씨가 좀 늘었습니다. ㅋㅋ 세상에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요.. 어머니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국음식 생각이 별로 안 납니다. ^^;;

저는 mapsearch 팀에서 일하고 있고요. http://maps.google.com/ 에서 보시는 바로 그 서비스입니다. 원래 Google Earth를 무진장 좋아했었는데 하루종일 오피스에서 지도 들여다보는게 일이 되어서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2. 집을 구했습니다!

취리히에서 집 구하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열다섯군데 정도 둘러보고도 아직도 못 구했다는 경우도 심심찮게 들려요. 다행히도 저는 다섯 군데를 둘러보고 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앗싸. 뭐 제 사이즈에 맞게 방 한 칸짜리 자그마한 아파트고요, 중요한 건 '온돌난방에 남향집'.. 으흐흐

이케아에서 가구 사서 직접 *운반하고* 직접 *조립하느라* 손목에 부상을 입을 뻔 했습니다.; 독립이라는 것이 참 쉬운 것이 아니예요... -_-a

3. 독일어를 진짜로 써 먹고 있습니다;;;

오기 전에 학교에서 들은 독일어 수업에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매우 초보적인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지대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상점 직원들, 택시 기사, 심지어길을 물어오는 행인까지.. -_- (아니 제가 벌써 현지인처럼 보이는걸까요) 독일어를 전혀 못했으면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손발 동원해서 땀 삐질삐질 버벅거리면서 어쨌든 이것저것 물건도 사고 길도 찾고 가르쳐 주기도 하고-_- 있습니다.

회사에는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다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영어를 사용합니다만, 회사에서 제공되는 독일어 수업도 있고 대부분 유럽 출신들이라 독일어를 곧잘 합니다. 오피스가 스위스처럼 다언어 국가에 있는 것이 의외로 강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여러(최소 3개의) 언어를 고려하게 되고, 그냥 주변에서 비영어권의 예제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특히 저는 mapsearch팀에 있다보니) 다양한 언어에 대한 이해가 업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됩니다. 유럽이라는 특이점이 있는 거겠지만, 하여튼 자기 모국어 + 영어는 기본 + 독일어나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나 기타 유럽어 + 일본어나 중국어 + 아랍어 + ... 뭐 이 정도 구사하는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음 저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어를 매우 유창하게 하며 + 회사에서 일할 때의 영어 + 생존을 위한 독일어/일본어 + 그 나라 사람을 만났을 때 친밀한 대화의 시작을 위한(-_-) 몇 단어의 스웨덴어/슬로베니아어/필리핀어 정도를 할 줄 압니다.
-_-;;;;;; 종류만 많습니다. ㅋㅋ 그런데 이런 허접한 정도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언어는 참 심심하면 배우고 볼 일입니다.

4. 취리히에 적응중

정말 그림처럼 예쁜 도시입니다. 아직도 '우아 내가 이런 곳에 살고 있구나' 놀라고 있습니다. ㅋㅋ 트램이 특히 맘에 들어요. 계단 오르락내리락 안해도 되고 멀미도 안 나고 시간도 딱딱 맞춰 오고. 사실 뒤집어말하면 100미터 후방부터 숨을 몰아쉬며 뛰어와도 기사아저씨는 안 기다려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로 오늘 저녁이었어요 흑.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

또한 살인적인 물가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가격을 보고 도대체 뭐든 사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 감자 2킬로를 사다놓고 구워먹고 삶아먹고 볶아먹다가... -_- 슬슬 물가에 적응이 되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그리하여 발전한 것이 뭐, 그래봤자 파스타... ㅋㅋㅋ 지난 주말에는 weissburst(하얀 소세지) 삶아 먹었습니다. 아 맛나요 히히

아직도 보험이니 이주비용 청구니 신경쓸게 너무 많네요... 아직까지 주말에는 주로 살림 장만용 쇼핑(=허리가 휠 정도로 무거운 무언가를 나르는 막노동)이나 대청소 가구 조립 등등의 가사노동-_-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틈을 타서 가끔은 구글러 친구들(?)이랑 영화도 보러가고, 소풍도 다니는 등 사교적인 활동을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이쯤 얘기하면 왜 포스팅이 뜸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시리라.. ㅋㅋ


아참 혹시 트위터 하시는 분 계시면 서로서로 follow합시다. ㅋㅋ 이게 사실 핸드폰 문자로 착착 받아볼 수 있어야 쿨한건데 아직 한국에서는 지원이 안 되네요.
http://twitter.com/mirae

여하튼 저는 잘 살고 있어요! ^^ 다들 잘 지내시죠?
저는 지금 슬로베니아에 와 있습니다. 몇 달 전 IT 벤처 회사 Zemanta를 창업한 친구들과 함께 있어요. 구글 취리히 가기 전에 할 일도 없는데 이 친구들이랑 '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좀 놀아보자...라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크크. 아래 보면 일 얘기밖에 없는 것 같지만-_- 회사 친구들이 하나같이 성격좋고 유머있는 녀석들이라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당. ^^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18 (금) 13:47:13
제  목: 슬로베니아 도착

집에서 나서서부터 정확히 19시간만에 도착했다. 금방 왔네 ㅋㅋ
내내 감기로 골골대다가 오느라 약간 걱정을 했는데 뭐 컨디션은 괜찮음.

그래서 하고 있는 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비비질-_-;;


아참, 날씨는 영상 8~10도. 냐하하 피한왔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19 (토) 16:42:14
제  목: 1/18

제만타에 첫 출근을 했다. 사무실은 유레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날씨가 너무나
따뜻한 고로 입을 일이 자주 없을거라 생각했던 회색 코트에 구두를 신고 나갔다.
도착하니 오전 9시.

지난 해 방문했을 때 봤던 친구들이 절반, 새로운(내지는 잘 기억 안 나는) 얼굴이
절반.
매주 금요일 10시에 있는 전사 회의가 마침 있어 다행이었다. 한 회사의 현재
상태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창업을 한 경력이 있는 알레스가 노련하게 회의를 진행했고, 다른
친구들도 사이버파이프에서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진지한 모습. 몇 가지 사안을
능숙하게 다루고 각자의 책임 범위를 다시 한 번 주지하는 것으로 회의가 끝났다.

CTO인 안드라슈에게서 1시간이 넘도록 전체 아키텍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유레는 프론트엔드의 팀장이었으므로 지금까지 내가 들은 것도 그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전체 구조를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일을 굉장히 멋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모로 놀라웠다. 수많은 모듈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이디어의 유망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모두 다 이루어져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몇 가지 할 일들은 명확히 보였다. 아이디어 자체에 포함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크리티컬한 백엔드 부분의 개선(이라 해야할지 새로운 구현이라
해야할지)이 남아있었다. 성능 때문에, 대부분 Python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C++로 교체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큰 이슈였다. 그러나 초기 개발 언어로 Python을
선택한 것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일단 이곳 개발진 모두가
익숙하며, 이런 프로토타입을 기민하게 개발함에 있어서는 아무튼 별로 흠잡을 데가
없는 언어인 것이다.
그외에 안드라슈는 내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했는데 내게 익숙한
주제이기도 했고 나름대로 도전적인 이슈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당장
시급한 부분 중의 하나인 것 같아서 이것을 맡기로 했다.
안드라슈는 Information Retrieval과 Machine Learning, Natural Language
Processing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알아듣는 키워드가 없자 약간
난처해하는 것 같았지만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줬다. 그가 말한 키워드들을
나중에 찾아보면서, IT 업계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미
구축해놓았고, 서로 다른 회사 간에 활발한 인터랙션을 통해 같이 엣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 "함께 기술을 개발한다"는 느낌은 무척 신선했다.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5유로에 근사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다. 여전히 물을 사 먹는게 아까운 나는 수돗물을 주문했는데 먹고
아직까지 별 탈이 없으니 앞으로도 그냥 마시면 되겠다.
지난 해의 방문과 비교해서 또 한 가지 크게 느껴진 차이점은, 이들의 영어가
예전보다 훨씬 알아듣기 쉬워졌다는 것이었다. 1년 동안 내 청취력도 나름대로
늘었겠지만, 그보다도 이들이 지난 6개월 동안 런던에 근거지를 두고 베를린,
브뤼셀, 스페인 등의 컨퍼런스를 오갔던 까닭이 클 것이다. 알아듣기 곤혹스러웠던
억양과 발음이 섞인 영어가 상당히 말끔해졌다. 이제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모두
영어를 쓴다는 것도 큰 배려였다. 지난 방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화를
하는 것이 편해졌다.
그런데도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밥 먹으면서 컴퓨터 얘기
하는 사람들로는 스팍스도 있지마는^^; 최근의 몇 가지 기술적 이슈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내게는 생소했다.

오후에는 안드라슈와 얘기한 것들을 곱씹어보면서 이것저것 문서를 읽었고, 유레와
이야기하며 내가 이번 방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의문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나서 보슈티안과 비용 문제를 이야기했고, 여기서 또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의문점이 해결되었다. 의논이 끝난 이후에는 그도 몹시 만족스러워
했고 나도 그랬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자(^^;) 보슈티안은 굉장히
유머감각과 눈치가 좋은 친구여서, 비용 문제를 얘기하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5시쯤 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퇴근을 했다. 알레스가 워크스테이션이
필요한지 랩탑이 필요한지 물었고, 나는 워크스테이션을 요청했다. 이미 내
노트북을 가져왔고, 컴퓨터까지 제공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큰
스크린이면 작업이 더 편할 것이다.

몇 친구들이 같이 배드민턴을 치러 가자고 했지만 신발도 없고 조금 피곤하기도
해서 집에 돌아왔다. 유레가 지난 6개월간 있었던 일들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상세히 설명해줬다. 난 투자에 대해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도 차근차근 설명을 덧붙였다. 창업을 하는 것은 이들도 처음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25 (금) 07:34:50
제  목: 1/24

아 오늘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날이다. 유레는 아파서 하루종일 누워있었으니
불편했겠지만 나로서는 덕분에 재택근무(?)를 즐겼으니. 두어 시간 낮잠도 늘어지게
잤고 엄청 맛있는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었다. (역시나 유레는 아프다고 해서 나혼자
실컷 먹었다 으하하)

지난 번에 받은 바이너리 지원 & 마이그레이션 업무는 어제부로 마무리가 되었고,
오늘 아침에, 아니 새벽 1시에(스타트업의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메일로 받은
새 업무는 대략 이렇다.

1. MySQL의 압축 기능을 이용해서 바이너리를 압축할 것. (변환 유틸을 비롯해서
그에 따라 모델 등 해당 테이블에 접근하는 코드들의 변경도 포함)

2. RSS 수집기를 멀티쓰레드 방식으로 고칠 것. 단 같은 서버를 동시에 마구
접근하지 않도록 해서..
(참고로 검색업계(--;)에서는 이걸 politeness, 10초룰이라고도 부른다.. )

아니 뭐 이런 것 쯤이야. 커밋 두 번으로 즐겁게 끝내주었다. (3,4번이 아직 남긴
했지만 어쨌든 ㅋㅋ)

한편 안드라슈는 철저한 테스트를 통해 어제에 이어 또 하나의 MySQL 버그를
발견하고 멍청한 MySQL을 마구 비난하는 커밋 로그를 남기며-_- 우회 코드를 썼다.
참고로 그 커밋 로그는 다음과 같다. '바보같은 바보같은 바보같은 MySQL!!!'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27 (일) 07:56:57
제  목: 1/25

오늘도 재택근무. 유레는 여전히 37도의 열로 고생하고 있었고 나는 어제 커밋한
코드에서 이상동작을 발견하고 고심하고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화창하다.

"산책이나 좀 해야 할까봐. 좀 움직여야겠어. 아 이거 하난 손 보고 나서. 굉장히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는데, 내가 Django 모델 하나를 변경했거든? 물론 DB 스키마도
SQL로 변경해줬고. 근데 그런 다음부터는 오브젝트를 업데이트 할때마다 전혀 다른
테이블의 필드가 초기화가 되어버린단 말이야. 어떻게 덮어써 버리나봐. Django쪽
문제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가. Django는 원래 이상해. 날씨도 좋고 해는 2시간 정도 뒤면 떨어질거야."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문을 나섰다. 야 날씨 끝내준다. 산책하는 부부며 가족들이
많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ㅎㅎㅎ

돌아와서는 버그 따위는 잊어버리고 피자를 만들어 먹고 유레 어머니랑 사이좋게
거실에서 TV 영화 한 편을 봤다. Meteor. 1979년작이네. 바보같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ㅋㅋ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1/27 (일) 08:35:41
제  목: 1/26

이상동작의 원인을 찾았다. 바이너리를 지원하기 위해 save()를 오버라이딩
했었는데, 그 함수에서 insert와 update를 구별하는 부분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update할 때마다 초기화가 일어났던 거였다.  기본적으로 그 코드는 안드라슈와
내가 번갈아 손보고 있었는데, 여러 번 수정을 하다가 어떻게 그 부분을 빠뜨린
모양이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내친김에 벼르고 있던 도메인 신청도 해치웠다.
내 개인 도메인이다. http://www.miraeon.com/
miraeon은 몇 가지 의미를 (굳이 부여하자면) 가지고 있는데:
1. Mirae online
2. ('꿈꾸다' 'dream on'의 느낌으로) 미래로 나아가다
3. ('전부의, 모두의'라는 뜻의 우리말 관형사 '온') 미래의 모든 것
4. ('이리 온~'의 느낌으로) 미래 온~

마지막 껀 물론 농담이고-_-
하여튼 짧고 간단하니 좋은 것 같다.

오후에는 유레 어머니가 시내 구경을 시켜주셨다. 사실 작년에 몇 번을 돌아봤던
곳들이지만 일 년이 지나니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유레 어머니 설명이 훨씬 더
친절했기 때문에 즐겁게 관람을 했다. 구시가지는 슬로베니아의 건축가 Plecnik의
건축물로 가득했다. 교회에도, 다리에도, 시장에도,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주랑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내가 몹시 감탄한 정교한 처마 장식은 유레 어머니가
무슨 양식이라고 얘기를 해 주셨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_- 비엔나와 프라하에도 이
건축가의 작품이 많다는데 언젠가 가 볼 기회가 있겠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카페마다 야외 테이블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커피는 내가
쏘기로 하고 우리도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카푸치노와 핫초콜릿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데 햇빛은 화창하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 표정도 환하게
밝았다.

아, 참고로 유레 어머니는 프로그래머이시다. ^^;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8/02/03 (일) 11:40:05
제  목: 이번 주

아, 길었던 한 주였다.

일요일. 집. 하루종일 고리 프로젝트.
월요일. 제만타. 하루종일 수집기 튜닝.
화요일. 블레드 호수. 하루종일 PASCAL 학회 참가. (참고로 언어 파스칼이 아님;;)
수요일. 제만타. 수집기 손질 대략 완료.
목요일. 집. 유레는 류블랴나 시내에 무슨 학회 가고 덕분에 나는 또 재택근무.
금요일. 제만타. 느슨한 하루. NLP 독학 시작.
토요일. BarCamp in Klagenfurt! Osterrich! Austria! Yeah!

그리고 이번 주의 가장 큰 소득은,
개발자 혹은 공학자가 가져야 할 네트웍과 커넥션에 대한 태도, 인터랙션의 방법에
대해 여러모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자극은 여러 곳에서 온다. 매일 유레와의
대화에서, 제만타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학회나 캠프 등에서. 두어 달
소파에서 굴러다니며 책이나 읽으려던 당초 계획 대신 이곳에 온 것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나, 새삼 생각하고 있다.

깨달음의 첫 번째 실천으로써, 내일부터 블로깅한다. ㅋㅋㅋㅋㅋ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7. 10. 25. 01:21

공간: 시스템의 비유

숙제 아니면 생산적인(?) 글을 쓰지 않는 이 게으름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도 마감 독촉이 아니었으면 안 나왔을거라고 하니 그나마 위안을?;

이번 학기 <인류 문명과 건설>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건축가 김진애씨. 저는 이분이 첫 수업 시간에 화이트보드에 기다란 시간의 수평선을 그리실 때부터 홀딱 빠져서는 열심히 수업을 경청하고 있지요 히히. 이 과목 숙제로 제출한 에세이를 또 슬쩍 올려봅니다.

사족 1) 서론과 예의상 대칭을 이뤄줘야 할 결론의 분량이 빈약한 것은 배고픈데 식당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가서 얼른 마무리를 하고 밥을 먹으러 가야 했기 때문입니당. ^^;;
사족 2) 아래 글을 보시다 보면 입실론 같은 것을 기묘하게 부르고 있는 걸 발견하실텐데 그건 나름대로 비전산인(?) 독자를 향한 배려라고나...
사족 3) 에세이에선 이론만 실컷 만들어놓았고, 이걸 실제 SF영화에 적용해 본 사례 연구는 에세이엔 없고 PPT에만 들어있습니다. 이것도 밥 때문인데..;; PPT는 다음 기회에...^^;;

아무튼 독특한 내지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감상의 포인트를 그리 잡아주시고... 늘 부족하지만 즐감해주세요 ^^

 
블로그가 배고프다고 낑낑대서 오랜만에 포스팅 좀 하러 왔습니다. ^^;
이번 학기에 수강했던 <디자인과 생활> 과목 숙제로 쓴 final essay입니다. 부족하지만 그저 즐감해주세용~ ^^


Ideo Design: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여는 말
지난 가을 나는 스톡홀름의 KTH에 있었다. 그 예쁘다는 유럽에 가서 여행도 사절하고 학교에 콕 눌러앉아 교환학생답지 않게(?) 빡빡한 과목들을 수강하며 숙제로 괴로워하고 있던 나날들 속에, 아무래도 가장 큰 기억을 남긴 것은 <Human Computer Interaction: Principles and Design> 수업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인간 컴퓨터 상호 작용에 관련한 기본적인 이론을 습득하고, 과제로는 조별 프로젝트로 실용적인 실습[1] 을 주로 했다. 고되었지만 과제도 시험도 무사히 치러 내 뿌듯했고, ‘전공자만큼 깊이 이해하지는 않아도 이젠 나름대로 디자인에 대해서 얘기할 거리가 생겼겠구나’라는 생각에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교환학생의 여정을 끝내고 대전에 돌아왔을 때 여유로운 마음으로(?) 제출한 나의 첫 번째 숙제는 다음과 같았다.

“My idea of Design can be summarized as a way of communication, by which a designer and users and the product itself can interact.”

그리고는 그 <Human Computer Interaction>을 같이 수강했던 친구 Jure에게 자랑스럽게 완성된 PPT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 친구가 실실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네가 설명하고 있는 건 user-centered design process야. 유럽에서의 6개월이 네겐 아무 쓸모가 없었구나!”
 
HCI 수업에서 같은 조 멤버들과 함께 (사진 제공: Nasim Mahmud)

HCI 수업에서 같은 조 멤버들과 함께 (사진 제공: Nasim Mahmud)



1.    Design:  디자인, 디자이너,, 그리고 엔지니어
석 달 전까지 시험 범위라고 줄을 그으며 읽어댔던 Donald A. Norman의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나 조별 프로젝트를 하며 다루었던 여남은 가지의 방법론들은 일단 잊기로 했다. 다시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와 수업을 경청했다. 이건표 교수님의 다채롭고도 풍부한 강의는 들으면 들을 수록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한 학기의 수업을 들으며 나는 새록새록 새롭게 다가오는 개념들을 느꼈고, 그럴 수록 살짝 부끄러워졌다.

“디자인은 fashion도 style도 drawing도 아니다. 인간을 만족시키기 위한 모든 가시적/비가시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디자인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것 자체도 역시 디자인이며, 이것이 사실은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내 숙제에서 어느 부분이 부족했는지 교수님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디자인은 내가 위에서 말한 의사소통의 수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만족을 위해 발생하는 온갖 문제들을 정의하고, 때로는 발견하며, 해결해나가는 이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개념인 것이다.

“공학 또한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단지 방향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같은 목표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협력은 항상 어렵다. 디자이너와 잘 협력하는 법을 익혀라. 디자인의 넓은 개념을 이해해라. 여러분이 하는 일은 모두 디자인이다.”

나의 짧은 견문에 비추어 생각해봐도 이 협력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NHN에 합병된 검색회사 ‘첫눈’에서 4개월 간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에도 기획자(디자이너)와 개발자(엔지니어)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던 것 같다. 웹프로그래밍을 5년이 넘게 해 온 한 개발자 분은 지난 회사에서 수시로 바뀌는 디자인에 따라 코드를 되풀이하여 고쳐야 했던 고충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검색 모델의 개선에 관여하고 있던 한 기획자 분은 개발자들의 기술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어려워 논의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었다. 회사에서 종종 열리곤 했던 각종 세미나에서, 개발자들에게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재귀recursion’이라는 개념을 기획자들이 이해하지 못해 개발자들이 진땀을 빼며 설명하던 적도 있었다.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어느 수준까지가 실질적으로 구현이 가능한지, 인터페이스 상에서의 작은 차이가 기술적으로 어떤 차이를 불러오는지,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짜야 기술적으로도 효율적인 설계가 나올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데이터베이스와 운영체제, 대규모 시스템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최상의 방책이겠으나, 그것이 어렵다면 엔지니어와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친구 Jure의 초대로 슬로베니아의 오픈소스소프트웨어 커뮤니티 Kiberpipa[2] 에 방문하여 2주간 함께 활동하면서 나는 이 원활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에 대한 실마리를 엿보았던 것도 같다. 이곳에서는 오픈소스 개발 뿐만 아니라 여러 아티스트들과 엔지니어들이 함께 협력하여 흥미로운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체화하는 데에 있어 의사소통의 벽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티스트들은 엔지니어의 기술적인 관점에서부터 나오는 의견을 적극 수용했고, 엔지니어들은 아티스트의 의도를 최대한 구현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루는 류블랴나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한 아티스트의 작업을 도운 일이 있었다. Space Junk Spotting[3] 이라는 프로젝트였는데, Saso라는 아티스트가 아이디어와 기본적인 스케치, 반 년 간 개발한 미완성의 구현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완성시키고 시스템의 다른 부분에 연동하여 실제 전시장에서 3개월간 작동할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전시회의 시작까지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루, 조금 촉박해 보였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참여하기로 했다.
여기서 Saso와 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던 Bostjan의 활약은 내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Bostjan이 한 일은 먼저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예술활동(?)에 참여해보고픈 나의 소망을 이해하고, 나의 프로그래밍 실력에 대해 비록 구두로였지만 확인하고, 현재 커뮤니티에서 진행 중인 수많은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곧바로 Saso와의 만남을 주선하여, 다소 추상적이고 정돈되지 않은 설명을 듣고 이것을 엔지니어인 내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는 전체 시스템의 구조를 깔끔하게 그려내어 Saso와 내가 같은 mental model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작업을 하는 동안 ‘그녀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Saso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마감 순간이 다가와 초조해하던 Saso가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두 시간 정도면 완성될 것 같다’고 말했고 Bostjan은 ‘개발자들이 저렇게 말할 때는 이틀 정도를 의미하니 그냥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는 게 좋겠다’라고 친절히(?) 귀뜸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작업은 정말로 두 시간 만에 끝났고 초조해하던 Saso와 은근히 긴장하고 있던 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저녁 전시회의 오프닝에서 맛있는 와인을 마시며 ‘한국에서 온 천재 해커 소녀’ 취급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 물론 Bostjan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순탄치 못했을 작업이었다.
Bostjan은 Kiberpipa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프로젝트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커뮤니티에서 그가 필수적인 존재임이 내 눈에도 뚜렷이 보였다. 회사에서도 그러한 가교 역할을 하는 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숫자는 극히 적었음에도 그들은 IT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연결하여 실제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중간 매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혹여 없더라도,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상호적으로 노력하는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간극은 조금 더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pace Junk Spotting (사진 제공: Saso Sedlacek)



2.    Ideo Design:  컨셉디자이너와 Google
한때 ‘컨셉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기계과에서 개설되는 <인간과 기계>라는 과목에서 ‘20년 뒤의 나의 자서전’을 쓰며 이 가공의 직업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 바를 적어보았었는데, 이 자서전의 일부분을 여기에 붙여본다.

“제품은 그 제품 하나로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제품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어떻게 파고들 것인지, 어떤 부분에 자리잡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것인지 등등, 그 제품을 둘러싼 주변의 문맥까지가 모두 제품이라는 개념 속에 들어간다. 환상적인 이야기를 가진 제품은 그 자체가 이미 환상이며 꿈이다. 소비자들은 제품이 아닌 ‘이야기’를 사는 것이다. 컨셉디자이너는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전체적으로 일관성 있는 컨셉을 잡는 것을 돕는다. 제품의 기능, 외관 디자인에서부터 광고물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이 ‘이야기’를 잡아주는 것이다. 회사의 경우도 조금 더 스케일이 크다는 것을 빼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시한부의 고용관계로 묶인 사람들이 살고있는 현대에, 회사 전체가 한 마음이 되어 목표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는 감동적인 드라마, 가슴뛰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야기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에는 컨셉디자이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컨셉디자이너는 먼저 그 회사의 사람들, 중역에서부터 신입사원까지를 두루 만나보며 그들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심사 등을 파악한다. 또한 개인적 차원 뿐만 아니라 조직의 체계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도 병행하게 된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지향하는 목표점, 그들 모두를 꿈꾸게 할 수 있는 이상이자 소비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약속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컨셉디자이너의 지휘 아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다. 제품의 실질적인 기획자나 경영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경영 컨설턴트, 통계학자, 종종은 심리학자들까지도 동원된다. 그렇게 그려낸 이야기는 각본이 되어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고, 한 줄의 카피가 되어 버스 옆구리에 커다랗게 실리기도 하고, 그림이 되어 건물 전체의 외벽에 도색되기도 한다. 좌우간 회사 전체의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다.”
- <인간과 기계> 과목 숙제로 제출했던 본인의 <20년 뒤의 나의 자서전> 중에서

디자인과 생활 수업을 듣고 이제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가 그때 어렴풋하게나마 그려 보고자 했던 것은 바로 Tiger의 Four Pleasures 중에서 Ideo라는 측면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개인적인 자기정체성과 가치에 중점을 두는, 이야기 주도적story-driven 디자인. 개인의 특질을 존중하고, 개인의 감성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흐름일 것도 같다.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에 예로 드셨던 Apple사가 단연 이 Ideo Design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나는 내 인생에서의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 졸업 후 Google의 취리히 연구 센터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할 계약을 맺은 것이다. (덕분에 20년 뒤에 내가 ‘컨셉디자이너’가 되어 있을 가능성은 조금 줄어들었다) 지인들로부터 축하와 격려와 염려를 동시에 받으면서 나는 ‘전산학도에게 Google이 멋진 직장임엔 틀림없지만, 전산학과가 아닌 사람들마저 내 취직 소식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해 보았었다. 단지 주변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취업 대상이기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중 한 요인으로 Google이 그 동안 대중들에게 보여온 비전을 꼽으려 한다. 먼저, “Don’t be evil”이라는 다소 장난스러운 모토에서부터 시작한, 외부의 정치력에 휘둘리지 않고 사람의 수작업으로 오염되지 않을 순수한 기술에 대한 그들의 포부가 사람들에게 굳건한 믿음과 애정을 심어 준 까닭이다. 거대한 포탈 서비스를 옆에 끼고 수익 모델을 고안하는 여느 검색엔진들과는 달리 순수하게 검색에만 집중하여, 사람들을 그다지 성가시게 하지 않는 소박한 몇 줄짜리 광고로 돈을 벌겠다는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일관성 있게 지켜 온 단순명료한 인터페이스와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로고 디자인 또한 점점 복잡다단해지는 웹 환경 속에서 피로해져 가는 사람들의 눈을 자연스럽게 길들이는 데에 한 몫을 담당해왔을 터였다. 채용에 있어 길게는 14회까지 걸쳐 진행된다는 강도 높은 기술 면접, 엔지니어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와 창의적인 사무실 분위기 역시 기술에 대한 그들의 고집스러운 애착을 보여주는 데에 기여했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여러 가지의 요소들이 9년의 세월에 걸쳐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 오늘날 Google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에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움직이는 Google의 이러한 ‘이야기’ 역시 Ideo Design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형적인 구글의 인터페이스 (http://www.google.com/에서 캡쳐)

전형적인 구글의 인터페이스 (http://www.google.com/에서 캡쳐)



닫는 말
내게 <디자인과 생활> 수업은 디자인의 귀중한 원리와 원칙들, 디자인을 둘러싼 각종 생각할 거리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여러 유럽 국가들의 다양한 문화와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 디자이너로서(혹은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양심, 그리고 인생에 두고두고 도움이 될 교훈 몇 가지를 얻은 참 값진 시간이었다. 특히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developmental tasks가 몹시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교수님께서는 30대까지는 지식과 경험을 쌓으며 기본적인 기교를 연마하고, 40대에는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며, 50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조직을 이끌거나 좋은 책을 쓰거나 하여 사회 기여에 이바지하는 등, 사람에게는 나이에 걸맞게 따라가야 할 단계적인 성장 과정이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40대 이후에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까, 애매하게 흩어져 있던 생각이 조금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모습이 되기 위해 어떠한 것을 다듬어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이 수업에서의 소중한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끊임없이 정진하여 나아가려 한다.


[1] 실습 과제로는 heuristic evaluation, rapid prototyping, usuability test 등을 주로 다루었다.
[2] Kiberpipa, <http://www.kiberpipa.org/>
[3] Space Junk Spotting,
<http://www.sasosedlacek.com/anglesko/projects_Spacejunk_eng.htm>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11. 24. 11:21

키루나 가기 전 일기

에... 키루나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잘 몰라서 미리 올리고 갑니다. 으핫
방한복 잔뜩 휘감고 갈 예정이니.. 살아 돌아올 수 있겠지요...?;;;
다녀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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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1일 (화) 12시 21분 01초
제 목: 뉴스

Jure : hello
Mirae : hihi
Jure : lots of news! :)

(수요일 디너, 목요일 하키게임 얘기 등등 블라블라)

Jure : yep :)
Mirae : then every news delivered?
Jure : I think so
Jure : oh and that life is great :)


본인 스스로 'super optimistic, light hearted'라 말하는 이 친구. 가히 내 생애를
통틀어 이런 초긍정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_- 처음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어제의 저 대화에서도 순간 벙쪘었고.;

가끔은 그 끝도 없는 긍정적인 생각에 지칠 때도 있지만 줄기차게 반박을 하다보면
오히려 내가 너무 회의적인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인생이 멋지다는 뉴스는 듣기 좋지 않은가!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2일 (수) 08시 40분 06초
제 목: 가계부

사흘 치 가계부 몰아쓰고 맞아떨어진다고 행복해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방금 전에 한 달 치 가계부를 쓰고 희열에 차 있다.
몇 주 전에 학교 매점에서 먹은 샌드위치랑 핫초코 가격이 막 기억난다.
아.. 진화한 것 같은 기분이다!! ^^;;;

그나저나 뭘 하는지 모르게 정신 빼놓고 살면 밥을 대충 먹고 장도 가끔가다 보게
되니 결과적으로 생활비가 확 줄어든다. 이번 달이 딱 그렇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4일 (금) 09시 09분 19초
제 목: 구글밥 +_+

음 어제 구글에서 전화왔다. (구글 스위츨란드!)
지난 번 인터뷰 결과가 아주 좋다면서, 이번에는 취리히에서 인터뷰 하고 싶댄다.
호텔이랑 비행기는 자기들이 다 알아서 제공할테니 날짜만 정하라고 했다. 예이!!

인터뷰 전날 도착해서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당일은 하루종일 인터뷰. 4~5명의
면접관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고 한다.
..도대체 몰 그렇게 많이 물어보려는 걸까 진짜로 공부 좀 해야하나 부렉부렉부렉;;

그러나 역시 염불보다는 구글밥이 얼마나 맛있으려나 기대중... 냐하하 +_+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4일 (금) 09시 52분 00초
제 목: 베지테리안 디너

그러보고면 요즘들어 아무 생각없이 단어를 번역 안하고 그냥 쓰는 일이 많다.
귀찮아서..도 있지만 아무래도 번역을 하면 어감이 달라지니까 그냥 쓰게 되는 듯.
이를테면 '채식주의'라고 하면 뭔가 채식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철학적
입장도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베지테리안'이라고 하면 그냥 식습관의 한
종류를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하여튼 유레랑 클라우디스(원래 유레 친군데 그냥 자주 보여서 익숙해졌다; 엄청
재밌는 친구)가 베지테리안 디너에 초대했다. 난 만드는 재주도 별로 없고 뭐 사갈
것도 마땅찮아서 그냥 일찍 가서 일손이나 도와주기로 함.
며칠 전에 놀러온 유레의 동생을 처음 봤는데.. 차라리 클라우디스랑 더 닮았더라;;
마른 체형에 키도 크고 눈코입도 안 닮았고 전혀 형제같지가 않았음.;;

오늘의 메뉴
- 야채샐러드와 치즈가루
- 홍당무 저민 것에 녹말가루를 조물거려 만든 야채셧불레(미트볼)
- 마티니가 들어간 버섯크림소스랑 내가 만든(!) 야채카레소스
- 소금 듬뿍 넣고 지은 밥;; (도대체 왜 얘들은 밥할 때 소금을 넣는거야?;;)
- 까니알불레(스웨덴 전통 빵 - 무지무지 달다)
생각해보니 전부 다 직접 만든 거라서 '직접 만든'이라는 말은 생략.

세 시간동안 만든 것을 여섯 명이서 삼십 분만에 다 먹어치웠다. ^^; 아 맛있었다.
요즘 대체의학에 홀딱 빠져있다는 유레 부모님 얘기랑(듣다보니 우리 엄마가
수지침에 홀딱 빠져있는 거랑 너무 비슷한거다;;;), 유레 형제가 홀딱 빠져있는
오픈소스 얘기랑, 12월에 런던가면 신세지게 될 Jee라는 한국 아티스트 얘기 등등.

"어어 스키를 안 좋아한다면 곤란한데. 우리 1월에 Jee랑 다같이 스키타러 가는
일정도 계획중이라구. 사실 지난번에 Jee는 하루의 대부분을 스키가 아니라 소세지
먹는 걸로 보냈지만 말이야."

아 까먹고 안 쓴 게 있다. 12월 중순에 유레랑 같이 런던 들러 며칠 머문 뒤에,
슬로베니아에 있는 유레네 집에 방문해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다. 그리고 1월
중순 정도까지 슬로베니아를 거점삼아-_- 주변 나라들 몇 개 여행 좀 다닌 뒤에,
스웨덴 다시 안 들어오고 바로 독일이나 프랑스 통해서 한국 들어올 계획.
(참 야심차고 민폐스러운 계획이다-_-) 유레네 집에서는 웰컴한대고 우리 엄마는
재밌다고 웃고만 있고 런던이랑 류블랴나 가는 비행기표는 다 끊어놨다.;;

사실 복학하고 개별연구하고 뭐 이런 생각에 마음이 바빠서 크리스마스만 지나면
바로 한국 돌아올 생각도 조금 하고 있었는데 들어보니 유레네 집에서 좀더 놀다
가는 것도 재밌을 거 같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4일 (금) 10시 09분 37초
제 목: 떡볶이

지난 생일파티에 내가 큰 실수를 한 게 하나 있다. 내가 전화를 안 받고 있어서
리딴이라는 친구가 버스 정류장에서 2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간 것. ㅜㅜ
아 지금도 생각하면 미안해 죽겠다.

하여튼 사과의 표시 겸 작별인사 겸 해서 그 친구를 런치에 초대했다.
메뉴는 한국에서 직수입한 재료로 만든 명품요리 '떡볶이'.
(얼마나 귀한 음식인데!;ㅁ;)

물론 내가 만들었다. 뽀하하하..
1. 냉장보관해둔 떡을 미리 끓는 물에 잠시 푼 다음 건져내고
2. 그 국물을 그대로 이용, 오뎅을 끓인다
3. 오뎅이 적절히 익으면 양배추랑 파 썬 것을 넣는다
4. 물엿이랑 고추장이랑 토마토케찹을 듬.뿍 넣는다. 간 보면서
5. 건져뒀던 떡을 넣고 적절히 졸인다
국물 간은 딱 맞았는데 떡을 좀 늦게 넣는 바람에 간이 충분히 안 배였다. 에잉.
그래도 게눈감추듯 먹어치우긴 했다. 그 친구야 원래 맛이 어떤지 모를테니
ㅎㅎㅎㅎㅎ -_-

아 리딴은 '연구방법론' 수업에서 만난 중국 여학생이다. 가끔 무슨 얘기를 할 때
한자 발음으로 얘기를 하면 오히려 말이 잘 통하는 기묘한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분산(수학에서)'이라든지 '성좌(별자리 말이다;)' -_-;

참 말도 차분하게 하고, 공부라던가 진로에 대해 생각하는 게 통하는 면이 있어서
편하고 좋았던 친구. 선물을 받는데 다시 한 번 너무 미안했다. -_-;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11. 20. 05:27

열흘 치 일기

요새 귀찮아서 별로 안 썼다고 생각했는데 몰 또 이렇게 쓰잘데기없이 많이 썼댑니까... 끙^^;

아래에도 썼지만 저 1월에 돌아가요!!
한국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김치와 라면이 더 땡기는,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입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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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0일 (금) 10시 37분 43초
제 목: 김밥

내일이 내 생일이라 한국 친구들이랑 김밥 해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연락을 제대로 안 돌린 탓에 다른 애들은 한참 나중에 오고
이랑이랑 나랑 둘이서 놀면서 김밥 10줄 마는데 세 시간 걸렸다;

일본식품점에서 산 김은 두껍고 질겼고 싼 맛에 산 쌀은 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결과물은 맛있기만 했다. 크크. 아 이랑이가 마늘이랑 마른미역 챙겨와서 고기도
듬뿍 넣고 미역국 끓여줘서 또 한 번 감동했다. ㅠㅠ
준호가 사다준 케익도 고맙고. 우람이가 사다준 고디스도 고맙고.
그러고보니 다 먹는 거구나;;

낮에는 연장신청땜에 추천서 두 장 들고 코디를 찾아갔었다. 'unfortunately'
어쩌고 저쩌고 하길래 그랬다. 나는 unfortunately 어쩌고 저쩌고를 들으러 온 게
아니다. 당신마저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지 않으면 누가 이걸 신경이나 쓰겠냐. 나는
여기서 지금까지 21학점 들었고 정말로 구체적인 학업 계획을 가지고 있고 곧
개별연구도 시작할거다. 지금까지 네 명의 교수를 만나봤고 연구 분야가 내
관심사랑은 미묘하게 달라서 합치점은 못 찾았지만 지금도 찾느라 노력중이다..라고.
솔직히 일부는 뻥이다. 구체적인 학업 계획 없다. -_-

사실 이제 연장에 관한 한 내가 힘쓸 수 있는 일은 대충 다 한 셈이니 이제 와서는
뭐.. 1월 말 쯤 한국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별연구 같은거 하기엔 카이스트가 훨-씬 낫고, 봄학기에만 개설하는 아키도 가서
들어야하고, 여기서 만 20살이랍시고 희희낙락 좋아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두 달
뒤면 나는 23살이 되고 슬슬 진로 고민도 다시 해야 하고. 여기서 벌써 네 달째,
사는 동안 무척 즐거웠고 아마 이후로도 계속 연락하게 될 것 같은 좋은 외국
친구들도 사귀고 정말 인생에서 몇 안 되는 걱정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테니까. 이 모든 것들에 너무 많이 정들면 안될테니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술먹는 파티 하기로 했는데 사람들이 겁준다 막. 재미없으면 여기 애들은
그냥 나가버린대나-_- 그럼 술만 놓고 가라고 그래야지 으히히.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2일 (일) 04시 51분 59초
제 목: 생일파티

어제는 우리 코리도에서 내 생일파티를 했다. ㅋㅋ

이랑이랑 미리부터 떡볶이 만들면서 기다리는데.. 역시 9시부터라고 하면 이넘들은
9시부터 쥔장이 준비한다는 소리라서; 30분이 지나서야 첫 손님들이 왔다.
파티 열어보는 건 처음이라 처음엔 우왕좌왕 하고 뻘쭘했지만 나중에는 다들
자기들끼리 잘 놀더라. ^^; 여기서 한 뭉태기 수다떨고 있고 저기서 한 뭉태기
수다떨고 있고.. 나는 뭐 계속 와인오프너를 찾는다 새 손님 받는다 동분서주;

선물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사실 놀랐다. 알빈이랑 니클라스는 스웨덴
레드 와인, 톰은 판타지 소설, 다이끼는 화이트 와인(사실 선물이었는진 잘
모르겠는데 가져와서 다 먹었음;), 나쯔꼬는 일본 부채, 유레는 꽃 한 다발
(백합과로 추정됨), 하우라는 레바논 쿠키...
내가 한 거라곤 칩스랑 팝콘 미친듯이 많이 사다 나른 거 밖에 없는데 조금
민망했다;; 아 아니다 떡볶이를 해줬구나. 클클

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건 생일축하 노래를 영어버전/스웨덴버전/한국어버전
이렇게 세 번을 들은 거. ㅋㅋ 답례로 나중에 트로트 한 곡 뽑아줬다. 크히히

사람들 하나둘씩 다 보내고 유레랑 남아서 설거지 싹 하고 부엌 청소 하고나니
새벽 세 시 반. 아-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당분간은 또 할 생각 없다. 디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2일 (일) 05시 32분 01초
제 목: Start-up day

http://www.startupday.se/

Stockholm School of Entrepreneurship (SSES)에서 주최하는 Start-up day라는
행사에 다녀왔다.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어떻게 사업화할
것인가, 네트웍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등등에 대한 일종의 워크샵. 몇 주 전부터
미리 등록을 해야 했다.

가는 것부터 고생이었다. 어제 파티하고 남은 음식이며 뭐며 싹 마저 정리하느라
두 시간도 채 못 자고(!) 무거운 몸을 느적느적 끌고 갔는데,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도대체 Regeringsgatan 74는 어디 있냔 말이다..; 묻고 물어 30분만에 간신히 그
거리를 찾긴 했는데 번호 매겨놓은 게 또 가관이었다. 최소한 연속되든가. 증가하는
방향이라도 맞추든가. 이게 뭐야!! 등록 마감 직전에 겨우 도착했다. 에효

그래도 공짜 아침에 공짜 점심에 공짜 커피 공짜 홍차 다 챙겨 먹었다 ㅋㅋㅋ

세미나는 30분씩이고 10분 정도씩 쉬는 시간이 있었다. 두 세 가지 정도의 세미나가
게속 동시에 열려서 그중에 듣고 싶은 걸 골라서 듣고 다니는 거였다. 그래서 오늘
하루 총 9개의 세미나를 듣고 왔는데; 제목에 낚인 것도 있었고 의외로 괜찮은 것도
있었고 심각하게 졸아버려서 판단이 불가능한 것도 있었다. -_-;; 아래가 내가 들은
세미나들 목록.

Master of Ceremonies
How to start-up a 120-year-old family brand
Fundementals, relevant right, brands, patents
Sex, business and rock 'n' roll!
Sales skills and tips
Entrepreneurship trends in the future
Getting your company listed
Combining art and commerce
The masochist's guide to starting successful businesses

처음엔 와 이런 좋은 말들을.. 하면서 열심히 받아적었는데 하루종일
entrepreneurship에 대한 세미나를 듣자니 나중엔 뽑는 키워드도 다 비슷비슷하고..
그 얘기가 그 얘긴거 같고.. 아니 이렇게 하는 얘기들이 비슷해서야 경영학 전공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이런 시덥잖은 생각도 하면서...;

쉬는 시간에 만난 어떤 학생은 다짜고짜 내 경력과 프로그래밍 실력을 물었다.
자기가 정말 근사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구현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경영학이라든지 사회학이라든지 이런 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는 많은데
구현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반면에 전산학을 공부하는 나는 지금 당장 보면 스스로
뭘 캐서 하고 있질 않고. 그래서 협업이 필요한 거다..라고 말하기엔 사실 문제가
있다. 연구든 사업이든 주체가 되려면 먼저 그 아이디어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만날 때마다 '이거 정말 백만달러짜리 아이디어야' '이건 그냥 박사 논문 감이다'
너스레를 떨며 온갖 아이디어를 얘기하는 유레를 볼 때도 늘상 그랬지만, 오늘은 또
저 학생 덕분에 좀 자극을 받은 것 같다.

막판에는 세 잔의 카페인 덕분에 실날만큼 깨어있는 정신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컴퓨터만 잘해가지고는 다른 사람들한테 이용당하겠다' -_-
거의 모든 강연자들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
중에 스물 네 살짜리 도박사이트 CTO가 말했다.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로서의
엔지니어는, 훌륭한 실력을 갖췄지만 아직 큰 성공으로 검증받은 적이 없고
finance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참 진지하게도 말하던데 사실 정말
무서운 말 아닌가.

여기는 어딜가나 코트랑 가방 맡아주는 데가 있어서 편리하다. 특히 오늘 갔던 그
Nalen이라는 곳은 건물도 정말 웅장하니 멋있고 웨이터가 강연장 계속 돌아다니면서
컵도 수거해가더라. 샹들리에랑 천장 장식만 보고 있어도 몹시 즐거웠다. 크크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2일 (일) 06시 26분 23초
제 목: 인터뷰 잡힘

어제 구글에서 전화가 왔었다. 다음주 수요일에 내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고 했다.
두 시간동안 두 명의 엔지니어를 만나게 된댄다. 기술적인 내용, 주로 알고리즘을
물어볼거고, 자기네 프로덕트에 대해서 좀 훑어보고 오라고.

어흑 괜히 신청했다-_- 알고리즘은 LRU로 머릿 속에서 밀려나간지 좀 된 거 같고
교과서도 없거니와 볼 시간도 없음. 나도 나름 바쁜 몸이라오. 무엇보다도 구글님아
이거 잘 본다고 받아줄 것도 아니잖아 웰케 빡빡하게 구는겨.. ;ㅁ;

알빈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회사 일 하느라 따로 뭐 볼 시간도 없고 그냥
경험삼아 가야지- 하는 말에
"블라블라 블라블라 아 진짜 솔직히 취업인터뷰도 아니면서 너무 빡센거 아니냐"
"..그 말 들으니까 걱정되기 시작한다 다 까먹었는데-_-"

월요일은 무슨 회사에선가 카이스트 교환학생들 초청해서는 점심 주면서 회사
구경시켜준다 했고. (말이 점심이지 영어수업으로 쌈박하게 마무리하고나면 하루가
다 가게 생겼음) 화요일은 알마다 다른 회사들 인터뷰 네 개 잡혀있고. 그리고
수요일이라?
아니 것보다도 나 여기서 일할 것도 아닌데 왜 다 회사 어쩌고인거야.. -_- 괜히
이것저것 승낙해놨더니 골치만 아프다. 우욱...

어쩌겠소 내가 판 무덤인 것을.;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6일 (목) 05시 04분 55초
제 목: 공짜 점심

월요일. 아틀라스 코프코라는 회사에서 점심을 대접한다고 해서 카이스트
교환학생들이랑 같이 갔다. 일본 학생들이랑 한국 학생들만 초대했던 모양이었다.

중장비랑 공구들 만드는 회사인데, 그들이 얼마나 세계적인 기업인지.. 얼마나
세계적인 비즈니스를 뛸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하고 있는지.. 등을 듣고 왔다.
'글로벌 기업'에 솔깃할 참이었으나 분야가 워낙 다르니 사실 지루하기만;;

점심은 뭐 평범했고 실내는 코트를 벗고 있었더니 추워 죽을뻔했다.
사무실도 쭉 둘러봤는데 엔지니어들 쪽은 초특급 지저분하고 사업 쪽은 깔끔.
어딜 가나 마찬가지지. ㅎㅎ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6일 (목) 06시 49분 20초
제 목: 인터뷰

어제오늘 알마다에 가서 네 개의 인터뷰를 봤다. 알빈이 '뭐 그냥 가볍게 찔러볼 만
하다'라고 하길래 룰루랄라 지원을 남발한 것이 화근이었다. ㅠㅠ 그치만
누가 그거 다 가게 될 줄 알았나 그래도 그 중에 몇 개는 떨어질 줄 알았지..;;
전날 밤 정말 전화해서 취소라도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알빈을 비롯한 주최측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결국 강행. 결론은, 뭐, 나름 유익했다!

첫째 날 13:30~14:00. 오페라 소프트웨어.
생애 첫 영어인터뷰(?)라 나름 긴장할 만 했으나 몹시 친절한 인상에 미소를 잃지
않는 면접관 덕분에 분위기는 시종 부드러웠다. 우리 회사에 대해 뭘 아냐고 묻길래
회사생활 시절(?) 본 무슨 통계자료 얘기를 하면서 여러 방면을 종합해 볼 때
오페라가 퍼포먼스 면에서 가장 우수하더라는 얘기를 했더니 몹시 좋아했다. 동아리
얘기 회사 얘기 신나게 하고 나오면서는 내가 좀 쓸데없이 수다스러웠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_-

첫째 날 14:00~14:30. 스웨덴은행.
면접관이 아파서 취소됐다길래 쾌재를 불렀다. 사실 가장 하기 싫은 면접이었으므로;
내가 무슨 생각으로 클릭했던걸까-_-

첫째 날 15:30~16:00. DICE.
배틀필트라는 게임 만든 회사라는데 난 모르겠다. 바로 전 인터뷰에서는 내
이력서랑 커버레터 미리 다 꼼꼼히 읽어보고 질문도 미리 준비했던데 이 면접관은
출력도 안 해 온 데다가 거기 다 써 놓은 것을 자꾸 물어서 좀 성의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면접관을 평가하고 있다;;) 나도 이 회사에 대해 겨우 홈페이지 훑어본
정도밖에 몰랐으니 피차 일반인가. 나도 게임 관심없고 면접관도 개발에 관심
없어서 20분만에 얘기 끝내고 같이 부스로 구경갔다.;;

둘째 날 10:00~12:00. 구글.
이 행사의 인터뷰들은 인터넷으로 등록을 했어도 시작 15분 전에 로비에서 재등록을
해야 한다. 로비에서 '구글'을 찾았더니 스태프들의 달라지는 눈빛. 홍홍홍
(그러타 구글이란 말이다! 만나는 것으로도 영광일지니) 면접은 2시간동안 진행됐다.

내 생에 첫 유러피안 구글맨과의 대면이구나 희희낙락 기다렸는데 첫 면접관이 7분
정도 늦었다. 인상좋은 아저씨. "긴장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자, 맘 편히 가져요"
뭘 물어봤나 쓰는 건 너무 귀찮다. ;ㅁ; 하여튼 몇 가지 문제를 주고 그걸 칠판에
코딩하게 하는 거다. 이력서에 C를 주로 썼다고 했던데 그럼 C로 하라고 하면서.
그리고 실수가 있으면 '뭔가 빠뜨린 게 있네요'라고 지적해주고, 그래도 못 찾을 땐
힌트를 주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과정을 계속 말로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초반에 미리 얘기하더라. 가장 최악의 케이스는 혼자서 한참 생각한 다음에 답을
우르르륵 적는 거라고. 사실 이 정도는 10분짜리 구글링으로 다 알고 간 건데 재차
확인을 한 셈이다. 여튼 그래서 계속 쫑알쫑알 하면서 열심히 칠판에 풀었고,
구글맨 그걸 타이핑해서 무슨 채점기 프로그램 돌리더니 오케이란다. 분위기 매우
좋았고, 마지막엔 내가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

두 번째 구글우먼. 무뚝뚝한 얼굴에 표정도 별로 없고 말투도 무뚝뚝했다.;;
이력서의 상세 내용들에 대해 묻길래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상세하게 설명해야지
싶어서 열심히 말하고 있었는데.. 계속 뚝뚝 자르길래 그걸 깨닫고부터는 나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성적표 보면서 무슨 과목이 흥미로웠냐 물었고,
최근에 A+ 받은 과목들을 유심히 보는 듯 했다. 간단한 확률 문제라면서 물은 것이
반지름 1인 원이 있는데 여기서 랜덤 포인트를 어떻게 유니폼하게 뽑을 거냐.
극좌표계로 잡고 찍는 방법을 먼저 말하고, 직교좌표계로 잡고 찍는 방법을 나중에
말했는데 내 반응이 재밌다고 했다. 보통 수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극좌표계를 먼저
말하고, CS를 공부한 사람들은 직교좌표계를 먼저 말한다면서.
그리고 또 이어진 코딩 문제. C로 한다고 하니까 아규먼트를 정해줬다. 칠판에
코딩하고 디버깅하고 메모리사용량 계산하고 하다보니 나중엔 어쩐지 둘 다 지친
분위기가 되었다. "다시 계산해보면 이거 같네요" "봅시다 생각 좀 해 보고..(침묵)"
한동안 코딩을 안 했더니 사소한 것들이 헷갈려서 좀 난감했다.

일을 하게 되면 어디서 하고 싶냐 영국 스위스 미국? 하길래 미국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아 정말 나 개념없이 잘도 지원서들 밀어넣었구나 크하하; 나는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회사들이랑 허심탄회 진솔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진짜로 제대로 잡 인터뷰들이었던 거다.
-_- 이런 어이없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겠지;; 그래도 뭐 이렇게 진짜로
부담없이 인터뷰 봐 볼 기회가 어디있겠나, 좋은 연습이었지 생각하기로 했다.;

둘째 날 14:15~14:25. 유로링 AB.
이건 알마다 참가 회사는 아니고, 알빈이 내 이름 떨궜다던 바로 그 검색솔루션
회사. 관심있으면 전화를 좀 달라고 메일이 왔길래 고민하다가 (관심은 없었으나
역시 친구에게 룰루랄라 승낙한 나의 업보로) 막간을 이용해 CEO아저씨한테 전화를
했다. 스웨덴에 얼마나 머물거냐, 하길래 비자가 곧 만료된다고 했더니 난색을
표했다. 자기네는 지금 롱텀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라고. 그래서 몹시 반가웠다 사실;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 당장 일할 생각은 없는지라.

둘째 날 15:00~15:30. 패스트 서치 & 트랜스퍼 ASA.
이 인터뷰 하기 전에 부스에 가서 거기 앉아있는 아저씨를 한 삼십 분은 괴롭힌 것
같다;; 데모를 보여달라. 뉴스를 수집하는데 템플릿 같은걸 쓰냐 그냥 인식을 하냐.
이 데이터들 손으로 가공한거냐. 글로벌 서치는 안하냐. 등등.. 처음듣는
회사였는데 의외로 큰 규모에 놀랐다.
면접관 아저씨는 세일즈맨이었다. 내가 그쪽 솔루션들 구경한 거 몇 개 언급을
하니까는 또 몹시 기뻐하며 나에게 판촉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의 마켓은
구글의 마켓과는 전혀 다르며, 유럽에서 3대 검색 솔루션 중의 하나라고 했다.
자기네 CEO가 정말로 멋진 사람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도 하고.. 한참
신나서 얘기하다가는 문득 생각난듯이 "아, 이제 당신 자신의 얘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혹시 인턴쉽 같은 걸로 비자 연장 되냐고 그냥 괜히 한 번 물었더니,
최소 두 달 이상 일할 수 있다고만 하면 정규직 채용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비자
같은 것도 물론 해 준다고 했다. 단-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내 스톡홀름의 추위에
질렸는데 오슬로를 갈까보냐!!


이상 목적도 없고 실속도 없지만 나름대로 경험/추억(?)이 된 인터뷰 후기 끝.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8일 (토) 06시 04분 00초
제 목: 귀환 준비

참 세월 빠르다. 이제 또 귀환을 준비할 시기가 왔다.

귀국은 1월에 할 예정.
비행기표 알아보고, 내년 수강 계획 대략 짜고, 기숙사 같은 것도 슬슬 생각하고,
그리고 돌아갈 마음의 준비도 하고 그러고 있다.

기숙사 랜덤 신청 해야된다 꾸윽.
아름관 쓸까 신축 쓸까.. 근데 신축 에어콘 이상하게 틀어댄다고 해서 겁나는데;;

돌아가면 다들 저랑 술이나 하자구요. ㅎㅎㅎ (아놔 근데 그 소설 신경쓰여;;)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8일 (토) 06시 53분 07초
제 목: 프리뷰 티켓 득템!

<미스 포터> 영국 프리뷰 티켓 득템했다!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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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Mirae Seo

CONGRATULATIONS!

We are delighted to confirm that you have won 2 tickets for the following
preview screening of MISS POTTER

Odeon, Covent Garden, London
Date: 18/12/06
Time: 06:3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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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에 런던 도착할 예정이니 날짜도 딱이시고~!!

유안씨의 실물을 볼 수 있는 프리미어는 12월 3일이라 입맛만 다셔야겠다.
나중에 뮤지컬 하라니까.. 한국에서부터 날라갈테니..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0일 (월) 03시 32분 52초
제 목: 아주 오래된 연인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

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지
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
자연스레 이별할 핑계를 찾으려 할 때도 있지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는 거야

- 공일오비, 아주 오래된 연인들
----------------------------------------

이 노래, 1분이 지나도록 가사가 나오지 않아 그 당시 방송국에서 싫어했다던가.
(진짠진 모르겠다 별밤에서 들은 얘긴데.. 적군이 그냥 농담한 걸수도 있고;;)

기분좋은 90년대 냄새에 빠져 있다.
선구적인 음악이었니 어쩌니 해도 지금 들으면 90년대 음악인 걸 뭐. 크크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0일 (월) 04시 50분 16초
제 목: Borat

스웨덴 영화관이란 게 궁금하던 차에 유레의 제안으로 앗싸리 영화를 보러 갔다.

역시 비싸구나.. 싶었고. 가장 싼 게 130크로나 정도. 만칠천원? 흐엑.
(근데 잠깐.. 인제보니 내 티켓 왜 85크로나야? 학생할인은 없던데 설마...?)
영화마다 가격이 다른 것에 조금 어이가 없었고.
(심하게는 만 원 이상 차이난다)
제레미 아이언스옹이 무슨 판타지영화 비슷한 포스터에 나온 걸 보고 기겁했고.
티켓에 적힌 영화 시작시간으로부터 15분을 광고로 꼬박 채우는 걸 보고 '으힛
우리나라는 저거 없앤지 오래됐는데' 라는 생각도 하고.

유안씨 나온다는 스톰브레이커 볼까 하다가 5분도 채 안 나오고 죽어버린다기에(;)
'카자흐스탄을 배경으로 한 미국 풍자 코미디'라는 을 봤는데 매우 만족!
그 영국 배우 정말 천연덕스럽게 카자흐스탄식 영어를 하면서 계속 웃겨대더라.
그리고 더욱 맘에 들었던 건 관객들이 웃음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점. 두 남자가
벌거벗고 싸우고 뒹굴고 호텔 로비까지 뛰어다니는 난감한 장면이 지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꺽꺽거리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성적인 농담이 좀 많았는데 기냥 뭐
다들 재밌어만 하더라. 나? 분위기에 동화되어 아줌마처럼 웃어제끼고 있었음-_-

우리 나라에서 개봉하면 반응이 어떨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의외로 인기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극장 나서면서 남자친구한테 '어머 완전 저질 영화야'라고 속닥이는
여자들이 대다수일 수도 있고. 그렇지만 정말정말 웃기니까 혹 개봉하면 강추.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0일 (월) 04시 50분 54초
제 목: 엘튼 존

프랑스 친구가 자기네 코리도에 초대를 해서 갔었다. 그냥 'gathering'이라고만
해서 디넌지 술파틴지도 모르고 그냥 대충 허기 때우고 맥주 들고 찾아갔음.

이 친구는 음.. 이름을 말할 수 없다. 열 번쯤 시도했는데 발음을 못 하겠다.;;
그냥 '길'이라고 해 두자. 하여튼 부모님이 베트남 사람이라, 외모만 봐서는 그냥
아시안인 줄 아는데 어찌됐건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인이다.

길이랑. 캐나다에서 9년 전에 프랑스로 이민왔다는 여학생이랑. 또다른 프랑스
여학생이랑. 독일 여학생이랑. 나랑. 나중에 보니 우리만 테이블에 앉아 있고,
가난한 옷을 입은; 스웨덴 언니야들이랑 오빠야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다들 일어서서
돌아댕기고 있더라. 크. 테이블에 앉은 우리들은 뭔가 화제를 찾다 찾다 한계를
느끼다가.. 길의 방에 있는 키보드를 떠올리고는 좋아라하고 우르르 일어났다.;;

길이 맨 처음 친 곡이 The phantom of the opera여서 꺄악했음. 그냥 취미로 치는
거라고 했고 실제로 실력도 그냥 취미 수준인 것 같았지만 그냥 듣기에 괜찮았다.
밖에선 요란한 댄스음악이 왕왕거리는데, 우리는 여학생 넷이서 침대에 나란히 다리
펴고 앉아서 악보 보면서 엘튼 존을 열창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웃기네. 으핫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11. 9. 00:43

(요리집약적인) 일주일 일기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5일 (일) 18시 44분 10초
제 목: 키루나 질렀다

스웨덴 최북단 키루나. 내 일생에 갈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곳인데 카이스트
애들이랑 같이 여행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서 눈 딱 감고 표 질렀다.

얼음호텔과 얼음낚시와 개썰매를 찾아... 아 생각만 해도 춥다.;

정말 이상한 것은 나는 여지껏 나보다 추위 많이 타는 사람은 본 적이 없을
정도인데 (우리 엄마 빼고) 왜 기숙사 생활 6년 하는 동안 방은 항상 북향이 걸리는
것이며 (아마 딱 한 번 동향) 교환학생은 왜 또 스웨덴에 왔으며 지금 잡혀있는
여행일정 두 개는 왜 또 11월의 스웨덴 최북단과 12월의 동유럽인 것인지..라는
것이다. ;ㅁ;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런 추운 델 가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어."
"But it's beautiful."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마티아스가 한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 사실 걱정은 되지만 또 마음은 신나긴 한다. ㅋㅋㅋ
슬슬 방한용 장비들이나 마련해야지.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7일 (화) 07시 19분 41초
제 목: 연장신청중

KTH측에서 공식적으로 연장을 거절한다는 통보가 났다. 뭐 5명의 학생이 1년을 있을
수 있게 배정했으니 이제 반년짜리 2명만 더 받을 수 있다 쌀라쌀라는 저들 논리고.
나의 논리는..

"나 유럽 여행 하나도 못하고 수업만 조낸 들었는데.. 억울해서 못 간다!! 배째!!"

-_- 물론 이렇게 말할 건 아니고;;

뽀작난 개별연구도 다시 재개해야 할텐데 요즘은 매일같이 런치다 디너다 파티다
해서 정신을 놔버렸다. 으하하. 송교수님 죄송해요. 하여튼. 연장만 된다고 하면
다시 열심히 알아볼 예정이다. 사실 연장하려고 기를 쓰는 주된 이유도 거기에
미련이 있어서니까.

하튼. 연장을 위해 현재 쓰고 있는 어프로치는 교수님들 추천서.
'연구방법론' 수업시간에 맨앞에 앉아서 열심히 재잘거린 덕분에 산드라의 추천서는
수월하게 받아냈고. '테크니컬 잉글리시'도 지금까지 낸 숙제로 베개도 만들 수
있을 정도라 자신있게 요청을 했는데 정말 상상 이상으로 적극적인 답장이 왔다.
오늘 수업시간에 받아보니 지난번 퀴즈들이 거의 만점이더라 헐헐; "wow" "great!"
같은 코멘트 붙어있고;; 어쩐지 왜 이렇게 잘 해주나 했다.;

어쨌든 이 두 추천서 들고 코디들한테 가서 담판을 지어볼 예정이다. 아자!

궁여지책으로 여기 회사에 취직해서 시급한 비자문제부터 해결하는 방법도 있는데
일단 비자 전용이 가능한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 알빈이 스웨덴 무슨 검색솔루션
회사에 내 이름 좀 떨궈도 되겠냐고 간곡히 묻길래 그러라고 하긴 했으나;; 사실
네이버를 뿌리치고(?) 논문쓰고 공부하겠다고 여길 왔는데(;;) 또 검색회사 비슷한
걸 다닐거면 굳이 여기 남을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외국 회사에서
일해보는 기횐데 하자고만 하면 넙죽 받아들이는게 나은가 싶기도 하고. 에잉 잘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이번 주 금요일 내 생일파티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중이다. 누구누굴
초대하나, 술만 준비하면 되나, 초대받은 애들끼리는 서로 많이들 모를텐데 어떻게
얘들을 잘 섞나, 실컷 불러놨는데 지루해하면 어쩌나.. 아아아 한국처럼 우르르
델고 나가서 퍼마시고 끝이면 좀 좋아;;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7일 (화) 23시 47분 21초
제 목: 구글?

Armada라고 스웨덴에 있는 회사들이 KTH에 와서 박람회 비슷하게 하는 행사가 있다.
좀 유명한 회사로는 구글, 오페라 정도? 나머지는 뭐 스웨덴은행 이라든지..; 하튼
알빈이 이 행사 알려주면서 여기 인터뷰도 있는데 별로 심각한 거 아니고 그냥
가볍게 응해볼만 하다, 하길래 랜덤으로 몇 회사 찍어서 지원을 했었다. 테크니컬
잉글리시 숙제로 마침 써 둔 커버레터와 이력서를 첨부하야..

그래서 오늘 구글에서 메일이 왔는데. 아 내 이력서 흥미롭게 읽었댄다.
그리고... 내 성적표를 보고 싶대네?;;;;;
덴장.. 그래서 사진기 접사모드로 영문성적표 찍고 있다-_-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8일 (수) 18시 22분 38초
제 목: 칼국수 & 쿠키

(또 밀린 일기 쓴다;;)

지난 토요일. 이랑이네 코리도에서 한국 친구들끼리 모여서 뭘 해먹기로 했다.
이랑이네 기숙사는 처음 가 보는 거였는데..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왠지
좋아보였음. 무엇보다도 방에 소파가 있고!!! (나의 오랜 로망 ㅠㅠ) 주방도 훨씬
분위기있고 등등..

하여튼 칼국수를 해 먹기로 한건데 그날 한국식품점 들렀을 때 문이 닫혀있어서
칼국수를 못 샀다. 흐음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생각만 하면서 이랑이네엘 갔더니
세상에 한 시간 반을 반죽했다는 '손칼국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간장에 깨를 띄운 양념장과, 닭고기가 들어간 쫀득쫀득한 손칼국수.
ㅠㅠ 크아아 계속해서 감동하면서 먹었다;;

아 그리고 후식으로는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만든 쿠키!!!
오기 전에 우리집(?)에서 미리 반죽을 만들어 온 건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과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어쨌든 준비해 온
반죽을 그 자리에서 썩썩 썰어서 오븐에 넣고 굽는데, 달콤한 바닐라향이 온 주방에
진동을 했고 결과물의 맛도 놀랍게도 쿠키맛이 났다!

이상이 구황작물로 연명하던 임모양과 초콜렛으로 1일대사량을 채우던 서모양의
성공담이었음. 크하하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8일 (수) 18시 53분 58초
제 목: 팬케익 크럼블

(원래 일기는 몰아서 쓰는게 제맛.. 이러고;)

지난 일요일. 유레가 팬케익 크럼블이라는 걸 만들어준다고 초대를 했다.
영어숙제에 손도 안 대었던 터라 어쩔까 하다가 그날 오후 열심히 버닝해서;
800단어 에세이 짠 끝내고 상쾌하게 놀러감. 쉐프의 주문에 따라 베이킹 파우더와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버터를 챙기고 슈퍼 들러서 달걀도 사 갔다.

원래 오스트리아(였나? 호주였나?) 요리인데 슬로베니아에서 엄청 대중적이란다.
팬케익을 만드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확 뒤집어서 주걱으로 마구마구 뿌시는 것이;
이 요리의 포인트. 원래 엄청나게 달콤한 음식이라는데 초반에 설탕을 좀 적게 넣은
지라, 막판에 엄청나게 많은 설탕과 꿀을 들이붓는데 옆에서 보면서 덜덜 했다;

음. 정말 달더라.;; 한 그릇 우걱우걱 먹고 있으니 짭짤한 칩이 먹고 싶어졌다.
만들기는 비교적 쉬운거 같으니 언제 나도 해 봐야지.

진에 레몬수 탄 걸 뭐라고 하지? 하여튼 그걸 마시면서(아아 맛있었다;ㅁ;) 한글도
가르쳐줬다. 설명하다보면 빠뜨린게 있어서 '아참 이런 룰도 있는데' 라고 말할때
마다 이 친구는 몹시 혼란에 빠졌다. '지금 글자 새로 만들고 있는거 아냐?'라고;;

어쩌다보니 얘기가 흘러흘러 일본 애니메이션 얘기를 하게 됐는데 이 친구가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헐헐헐. 그래서 마사루 상을
소개해줬다. 그거 보고나면 나 안 볼지도 모른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8일 (수) 19시 45분 38초
제 목: 연어구이

(그렇다.. 모든 모임과 약속은 요리의 이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말 요리지향적인 삶인듯;;)

지난 화요일. 어제. 니클라스가 저녁 대접한대서 갔다. 정말 이곳에서의
대인관계라는 것은 주방에서 만들어지는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같이 뭘 해
먹고, 뭘 해 먹이고, 이런 게 생활의 일부.

역에 마중나왔길래 같이 슈퍼에 들르면서 '뭐 아이스크림 같은거 좀 살까?' 했더니
약간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완전한 디너를 준비한 거니까 넌 아무 것도
준비할 필요 없어 ^^;' 자 또 답례해 줄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스웨덴 북쪽 지역 숲에서 직접 따 왔다는 버섯을 크림소스에 볶아 얹은 토스트로
가볍게 시작. 스웨덴의 트레이드마크라도 되는 것 같은; 삶은 감자와, 이름 까먹은
무슨 그리스 치즈를 넣은 토마토 샐러드가 나오고 메인디쉬인 연어구이가 나왔는데
선명한 색깔이랑 싱싱하게 차오른 살, 또렷한 모양새가 좋은 생선 같아서 잠시
칭찬을 했다. 그리고 한 입 베어문 순간...

"이게 크림이야 생선이야 입에서 살살 녹는거 같애 ;ㅁ;"
"(웃고 있다;;)"

아 정말 보드랍게 살살 녹는 그 비계(?) 부분이 너무 훌륭했다! 내가 지금까지 먹은
연어들은 그런 게 없었는데;; 원산지라 신선한 걸 구하기 쉬워서일까. 냉동되지
않은 걸 사 와서 요리한 거라고 했다.

후식으로는 '오스트카카'라고, 직역하면 치즈케익인데 음.. 실제로 먹어보니
케익이라기보다는 찜 같았다; 치즈찜이랄까;; 독특한 향내가 있어서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지만 쨈이랑 같이 먹으니 또 그런대로 고소하고 맛났음.

한참 수다를 떨다가 말 나온 김에 또 한글 가르치기에 재도전했다. 며칠 전에 한 번
가르쳐 본 경험으로 이번엔 좀 더 매끄럽게 가르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자모의
창제 원리, (-_-이거 왜 가르치냐면 그러면 모양 외우기 쉽거든) 각각의 발음들,
모음을 어떻게 합성하는지, 한 음절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어떻게 모아쓰는지 등등..

그 아파트에 쉐어해서 사는 일본인 여학생이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같이 배웠다.
'헤에..?' 음 근데 이 여학생 분위기가 너무 구우스럽더라;; 정말 표현하기 힘들
만큼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느릿느릿하고 약간 퉁명스러운 듯한
말투에, 일본어 억양을 그대로 담은 리드미컬한 영어..;

잘 얻어먹고 수다도 실컷 떨고 내가 좋아하는 40번 버스 타고 몹시 행복한 기분으로
기숙사에 돌아왔다. 니클라스의 말대로 완벽한 저녁이었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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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사(http://picasaweb.google.com/seomirae)에 사진 업뎃 종종 하고 있으니 들러주셔용! ^^
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6. 11. 4. 08:02

말, 그리고 생각들

"Maslow's Triangle을 생각해 봐. 네가 뭔가 기분이 나쁘면 체크해 봐야 할 리스트가 있어. 잠을 제대로 못 잤나? 밥을 제대로 못 먹었나? 샤워를 안 했나? 어디가 아픈가?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 다음 단계를 체크하는거야. 친구들이랑 주기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나? 또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 다음 단계를 체크하고 이런 식으로. 이건 bottom-up이야. 피라미드의 아래쪽이 없는 상태에서 윗쪽을 먼저 채울 수는 없어. 뭔가 대단한 걸 이루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 그럼 너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거야. 그건 치팅이야."

유레가 했던 말. 사실 중학교 도덕 시간에 들은 당연한 말인 거 같은데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이걸 잊고 살았다. 학교 공부에 매진하고 동아리 프로젝트에 매진할 때면 잠을 세 시간을 자건 밥을 거르건 방이 난장판이 되건 상관할 바가 못 되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생활의 밸런스가 깨져있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깨달았지만, 그건 치팅이었던 거다.

그리고 또 떠오른 생각.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게 사실 별 거 아니야. 의식주 적당히 해결하고, 예쁜 마누라랑 아이들이랑 살고, 결국은 그거면 되는거야. 사회적 성공이니 뭐니 하는 건 사실은 진짜 행복과는 상관없는 것들이야' 라고 말했던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때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었지만 갑자기 이 친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생긴 것 같다. 기본적인 욕구 - 의식주와 가정 등 - 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건 물론 허상이지만, 그런 기본적인 욕구가 또 행복이라는 것의 전부는 아니라고.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한다는 것도 사실은 대단히 어렵지만, 그게 충족되고 나면 다음 단계의 더 큰 욕구가 있고 이걸 충족해나가는 게 또다른 행복이 되는 것 같다고. 하긴 그 친구에게는 또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나름의 논리가 있는 거겠지만서도.


"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가 뭘까. 타고난 능력의 차이일 것 같지는 않잖아. 내 생각은 그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계획성없이 소모해왔던 사람들이야. 즉각적인 욕구만을 충족하지.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뤄온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 희생하면서 우선순위를 매겨온 사람들이야. 이를테면 나는 요즘 테드톡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 그냥 이거나 하루종일 보고 싶어. 그렇지만 자, 나는 숙제를 해야 하고 내 프로젝트들을 해야 하니까 조금만 보고 차후로 미뤄두는거야. 그런 희생이 결국은 내 미래를 만드는 거니까."

이것 역시 지극히 정석적인 말이지만 늘상 스티븐 코비의 3사분면에 매달리고 있거나 4사분면으로 도피하곤 하는 나에게는 또 몹시 찔리는 얘기였다.;;


"내가 파티에 열광하는 건 사실 외로워서예요. 나는 사람들하고 끊임없이 만나고 얘기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이렇게 타지에 와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거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지 않아요?"
"글쎄... 사실 난 잘 모르겠어요. 내 인생은 항상 외로웠거든요. 오히려 여기서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아서 덜 외로운 편이랄까요."


살로메와, 줄리아 남자친구의 대화. 옆에서 설거지하면서 간간히 들려오는 얘기에 슬쩍 웃음이 났다. 나도 언젠가부터 생각하게 된게 '인생은 원래 외로운 것이다'라는 거였으니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의 빈 시간들을 온통 친구들과의 수다로 보내왔던 나는 대학 초년에는 하루를 수다로 정리할 친구가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때로는 남자친구에게 모든 일상을 보고하며 살기도 했고, 때로는 사람들과 매일같이 술을 마시러 다니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혼자 있는 것 자체를 즐기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잘 되고 있는 건 아니고, 그게 어떨 때는 지금처럼 쓸데없이 긴 글을 쓰는 걸로 분출되기도 하지만. 하하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의 동반자이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멀리서 보면 유성처럼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인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두 개의 위성이 그려 내는 궤도가 우연히 겹쳐질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죠. 또는 마음을 합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잠깐,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의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거에요. 언젠가 완전히 연소되어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몫인 거라면, 인생이란 게 원래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고생스럽지 않을 수 있겠지. 오히려 우연히 다른 위성과 조우하게 되는 그 드문 이벤트를 더욱더 소중하게 반길 수 있을지도.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11. 4. 06:17

대략 일주일 일기

준기군의 가비야운 압박을 받고 일주일치 일기 올립니다. ㅋㅋ
생각 같아서는 스톡홀름 일기용 홈페이지 하나 열고 친절하게 사진도 하나씩 첨부해가면서 꼬박꼬박 올리고 싶지만요 사람 일이 어디 그렇게... (라고 말하고 자방한다)
하여튼. Observer's influence라고 하잖아요. pH를 측정하기 위한 지시약도 사실은 용액의 pH를 변화시키고, 광자의 위치가 또 어쩌고 저쩌고... (전공 아님돠 자세히 물어보면 자신없슴돠;;) 그런 것처럼, 일상을 기억하기 위해서 쓰는 일기도 사실은 일상의 일부로 떡하니 시간을 잡아먹고 있단 말이지요. 원체 뭘 끼적대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씩 그게 몹시 비합리적으로; 보일 때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 텔넷을 애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오버헤드가 가장 적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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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3일 (금) 05시 43분 01초
제 목: 막두 오다

월요일.
핀란드 헬싱키공대에서 교환학생 하고 있는 막두랑, 01학번 한 분. 바이킹라인 타고
스톡홀름에 왔다. 버선발로 뛰어나가기엔 너무 추웠고 대신 지금까지의 모든
코스에서의 개근 기록을 깨면서 Technical English 수업 째 주고 뚤레뚤레
중앙역으로 마중나갔다. 카이스트에서도 보기 힘들던 막두, 어찌나 반갑던지. ㅋㅋ

우리 기숙사로 데려와서 볶음밥 해 먹이고 맥주마시면서 한참 수다떨었다. 동네
이웃들은 '오오 이게 한국어구나' 신기해하고 '네가 요리한거냐' 기특해도 하고;;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요리해서 사람들 먹이는 거
예상외로; 꽤나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

화요일.
아침부터 막두 일행의 관광가이드 노릇을 할 예정이었으나 가이드 본인이 길을
잃어버리는 사태 발생. -_- 빗속에서 한참 헤매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초밥집에서
점심을 때웠는데 이때까지도 좀 양심이 남아 있어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역에서 감라스탄으로.. 그리고 또 박물관에서 박물관으로.. 다니는 사이
어느새 같이 좋아라 하면서(혹은 더 신나서;) 구경에 정신팔린 나를 발견.;
킁 나도 그 박물관 처음 간거란 말야-_- 근데 정말 왕궁이 너무 멋졌다 ;ㅁ;
..막판에는 저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기까지 한 두 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여자야 좀 쪽팔린 줄 알아라;;)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3일 (금) 07시 57분 45초
제 목: 할로윈

그렇게 막두 일행을 배웅(?)하고 난 화요일 저녁.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다리는 피곤했으나 코리도에서 할로윈 파티가 있다! 다시 불끈

할로윈이라고 별 걸 한 건 아니고 그냥 디너 각자 준비해서 다같이 먹기로 한
거였다. 살로메랑 같이 장 봐와서는 '가능한 모든 재료를 넣은 볶음밥'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난감. 사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줄리아가 또 실력발휘를 하는
바람에 나란히 놓인 우리의 요리는 어쩐지 안쓰러워 보였다. ;ㅁ;

그래도 초고추장도 만들고(토마토케첩이랑 고추장 1:1로 섞고 참기름 좀 섞으면
초고추장 되더라! 나 혼자 터득한거다 으하하) 한국서 공수해온 양반김도 꺼내고
끓는물만 부으면 되는 인스턴트 된장국도 준비했다. 냄새가 강한 편이라 사람들이
과연 먹을까 싶었는데 '일본 미소랑 비슷한거다'라고 했더니 불티나게 팔리더라.;;

"이 수프 미소랑 비슷하다고 했지. 근데 미소랑 뭐가 다른거야?"
"나한테 묻지마-_-"
"니가 설명한 그 김밥이라는 거 마끼스시랑 비슷한 거 같은데 왜 너네는 그걸
스시로 안 친다는 거야?"
"몰라. 생선이 안 들어가서 그런가-_-?"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삼..;;

하튼 그 사람들한테도 희한한 음식이었겠지만 나도 희한한 광경 좀 봤다.
사람들이 김에서 생선 냄새가 난다고 하질 않나. (바다 냄새라고 하잖아 우리는;)
옆에서 유레가 빵에 와사비 발라먹는 걸 보면서는 속으로만 경악하고 있었고 ㅋㅋ

안에 촛불 넣은 호박 가면 가지고 한참 놀다가, 노래 부르면서 흔들흔들 춤추다가,
사람들 성화에 못 이겨 트로트도 한 곡 뽑아주고.. 아참 여기서 노래 부를 때 몹시
안타까운 점은 사람들이 코러스를 넣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네 시간에 걸친 즐거운 파티가 끝나고.. 마티아스와 함께 차 한 잔
기울이며 난데없이 내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면서-_- 하루가 저물어갔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3일 (금) 08시 44분 22초
제 목: 채식 점심

할로윈 파티에 초대받은 답례로 유레가 점심에 초대했다. 이건 대접이라기 보다는
그냥 주방와서 점심 같이 요리해서 먹자는 것.

이 친구 채식주의자인데, 예전부터 '채식을 하면 얼마나 몸이 달라지는지, 얼마나
머리가 상쾌해지고 졸음이 덜 오는지' 등등 열심히 포교를 하더니만 오늘의 컨셉도
그런 거였다.
토마토 당근에 잘게 썬 파와 말린 바질을 뿌린 한 바구니 가득한 샐러드.
꼭 고기같은 맛과 질감이 나도록 만들어진 채소스테이크.
버섯과 콩으로 만든 파스타 소스.

으음 물론 나는 옆에서 뭐 깎으라는 거 깎고 썰라는 거나 썰었다. ^^;
근데 그 채소스테이크 정말 신기하더라. 진짜 딱 햄버그스테이크 같던데..

오랜만에 해가 무척 밝게 뜬 날이었는데 오후 네 시쯤 부터 해가 지기 시작했다.
후식으로 레몬티랑 케익 먹으면서 눈 쌓인 평원에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는데 참,
조용하고 서늘하던 그 풍경은 마치 지구 끝에 와 있는 듯한 느낌.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4일 (토) 05시 22분 24초
제 목: 여행?

12월 말에 어쩌면 동유럽 여행을 하게될지 몰라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중인데,
으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원래 여행이란 '그 지역 주민인 척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한 장소들 여기저기 바쁘게 들르고 다니는 그런 여행 왠지 안 내킨다.
그런 면에서 스톡홀름 교환학생 온 거 참 좋았단 말이다. 학교 갔다 버스타고
돌아올 때마다 마주치는 예쁜 거리라든지, 친구랑 자주 들르곤 하는 음식점이라든지.
그런데 그런 일상의 기억과 맞물려 있지 않은 장소들에서 사진 한 방씩 찍고 온다고
그게 내 인생 여정(?)의 일부가 될까.

뭐..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예쁜 거리 멋진 건물들 보면 또 홀딱 눈
돌아가서 '내가 한 말 당장 취소야!' 외칠지도 모르고.. 사실 마음이 썩 안 내키는
이유는 추운 날씨에 어디 돌아다니기 싫어서인지도. 진짜 학교 가는 것도 이렇게
추운데 과연 여행까지나 할 수 있을까.. 덜덜덜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11. 2. 07:16

10월 일기

또 몰아서 올리게 되어 송구스럽게 그지없사와...;;;
그래도 나름대로 스크롤의 압박을 줄여보고자 두 개로 나눠서 올립니당.

9월 일기
10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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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10/07 (토) 22:52:22
제 목: 추석

한인교회분 집에 우르르 몰려가서 와인먹고 피자먹고 시루떡도 먹고 잘 놀다 왔다.
술 마시면서 한국노래 듣고 있으니까 한국생각이 좀 났다. 두 달만에 드디어 쪼-금.;

한국생각을 별로 간절하게 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음식이라는 것 자체에
별로 집착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여기 친구들 인제 라면이라고 하면 종류를
불문하고 뒤집어지는데 난 원래 라면을 별로 안 좋아하다보니 누가 해 줄 때 빼고는
안 먹는, 그런 것처럼.

..사실 그런 것 보단;;

내가 계속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보다는 낯설고 생경한 걸 갈망하던 시기에 딱 여길 온 거니까.
매일 낯선 사람들과 입에 선 언어로 말을 트는 것 자체가 설레는 도전이었으니까.

여기까지가 집에 있는 강아지 보고싶다고 울먹이는 한 친구를 보면서 생각한 거였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10/08 (일) 06:03:04
제 목: 영어 리포트

Technical English 과목 숙제. 1800단어짜리 기술 리포트다.

주제가 맘대로 정하는게 아니고 리스트에서 골라서 약간만 변형하는 거라서..
Artificial Intelligence: Some Applications 를 골랐다. 그리고나서 '검색엔진
기술의 관점에서'라고 포지셔닝을 하고 pattern recognition, natural language
processing, data mining, semantic web등을 주섬주섬 아웃라인에 적어냈더랬는데..

알고보니 이 교수님 전공이 speech recognition이다. 덴장! ㅠㅠ
차라리 The Security of Public-sector Databases를 골랐어야 했다 (뭔진 몰라도)

지금까지 쓴 게 900단언데 앞으로 900단어를 또 어케 쓰나 흑흑.. 시간만 잘 간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10/11 (수) 20:13:10
제 목: 수업들

음. 교환학생을 한 학기 더 연장을 할까 말까 고민중이다.
인제 두 달 있었는데 벌써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니 크윽.

HCI 수업이 꽤 맘에 든다. 수업은 괜찮은 편이고(사실 꽤 괜찮은데, 좀더 심도있게
다뤄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조별과제 하는 것도 잼나고 매일 같이 앉아서
수업듣는 학생 하나랑(드럼닮은 아이-_-) 수다떠는 것이 사실 특히; 잼나다.

알고보니 오픈소스진영에서 잔뼈가 굵은 친구였다. 오픈소스 활동 하면서 겪은
재밌는 일들 얘기를 막 해주는데.. 음 솔깃했다.;; 동아리같은 물리적인 커뮤니티가
있어서, 단체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단체로 하니까
돈이 모이는구나 싶었다. 협찬을 많이 받는 것 같았다. 홈페이지를 구경하니,
작업실이랄까 시설이 완전 빵빵하고(아예 소규모의 연구소같다;) 뭐 지난번엔
어느 나라 가서 컨퍼런스 하고 이번엔 어느 나라에서 열 예정이고 이러고 놀고 있고
(유럽이니까 뭐 훨씬 쉬운 거야 있지만) 자기 동생이랑 한국 아티스트 한 명이 같이
작업했던 작품이라면서 보여준 것도 있었는데 멋졌다. 뭐랄까 '제대로 하는구나'
싶은 느낌. 취미로 한다기보다는 아예 직업처럼 매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그룹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삼..
(아 얘가 한국의 게임채널을 몹시 궁금해하더라 프로게이머 있는 것도 부러워하고;)


음 딴길로 샜는데; 영어 수업도 유익하게 듣고 있다. 5분짜리 개인 발표도
있었고(주제는 Introduction to a Web Search Engine이었다. 검색엔진 참 잘
울궈먹는다 으하하-_-) 저번에 말한 리포트도 써 냈고 프로포절 최종버전도 냈고
써머리도 냈고.. 첨에 실라부스 보고 벙쪘던 것과는 달리 뭐 할 만 하다.

개인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난 며칠 뒤엔 교수님한테 가서 녹화한 비디오를 같이
보면서 피드백을 받았다. "다들 네 발표를 좋아했더라고" 방실방실 웃으며 교수님이
학생들이 적은 코멘트를 건네줬다. '구조가 훌륭함' '주제가 흥미로움' '기술적인
어휘 선택이 적절함' '내용이 전문적임' '연습 열심히 한거 같음(-_-)'
문제로 지적된 것들이야 뭐.. 머리카락 만지는 거 빼곤 못 고친다 배째라. -_-

하여튼 좋은 수업이다. '나치의 비유'라는 칼럼에 대해 써머리를 써 냈는데 종이가
벌겋게 되어 돌아왔다. (이러면 더 좋아한다니 약간 변태같다-_-) "이 문장은 마치
네가 나치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희생자라니? 피해자라고 해야 한다" "원문은
이 비유가 남용되는 것에 대해 굉장히 격노한 어조를 쓰고 있는데 너는 그걸 못
살렸다" 등등.. 써머리에 원문 구조를 반영해야 된다는 건 알았는데 어조도 담아야
된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마지막으로 '연구방법론' 수업. 수업은 인제 딱 두 번 남았고, 최종 과제 하나가
지난번에 했던 RTT와 download time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험에 대한 리포트 쓰는거.
HCI수업은 안 그렇던데 이 수업 특히 우리 분반은 좀 함량미달인 학생들이 많아서
(브리티시 억양을 쓰는 귀여운) 교수님이 수업하다 말고 한숨을 쉴 때가 가끔 있다;
다른 분반이나 우리 분반에서도 일부 학생들은 뭐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했다.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한 서버를 집중적으로 파 본다거나, DNS 영향
줄여보겠다고 로컬에서 네임서버 돌린다거나(이건 아무래도 좀 뻘짓같지만) 등등.
그리고 나는.. 실험하고나서 매트랩만 다운받아 놨다 꺄하하하-_- 슬슬 시작해야지;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0월 23일 (월) 03시 36분 54초
제 목: 이상

하루종일 비오고 흐린 날이 며칠 째 연속. 낮에 잠시 날이 개었길래 햇볕쬐러
나가볼까 했는데 꾸물거리는 사이 하늘은 어두컴컴해지고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헬스장 가려던 건 관두고 냉장고에 있던 오렌지주스를 끝내버렸다.

스톡홀름의 일 년중 가장 끔찍하다는 11월이 오고 있는데 방에 틀어박혀서
카디건스의 카니발을 듣는 거.
한 번쯤 해 볼만하긴 한데 기분은 대빵 구려진다. 으하하

- 이 음악 들으면서 좀 긴장 풀어봐. 어어 진짜로. 이어폰 제대로 꽂고.

- 한 시간이 넘게 걸리면 또 어때. 이거봐 여긴 유럽이야. 유럽에선 아무도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

조별모임 하고나서 시간이 남았는데 교과서라도 가져올걸 발 동동 구를 때. 혹은
수업끝나고 기숙사 돌아가면서 네 가지 루트를 말하면서 하나는 40분짜리, 하나는
50분짜리, 하나는 1시간이 넘을 수도 있는 루트, 열심히 설명하면서 어떤게 좋니
어떤게 좋을까 막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이 친구가 옆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데, 그걸 보면 갑자기 나 자신이 참 웃겨보인다. ㅋㅋ 나 왜 이렇게 항상
쫓기듯이 살까. 그런다고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활기찬 기분이 날 만한 음악을 찾는데 나는 왜 듣는 음악들이 다 이모양이냐.;
그나마 가장 발랄한 시카고 OST를 돌렸는데 이 음악이 이렇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_-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0월 25일 (수) 08시 24분 49초
제 목: HCI 종강
(*원문에서 아주 약간 수정 ^^;;)

종강했다 앗싸. 인제 토요일에 시험만 보면 진짜 끝나네.

웃을 때가 몹시 귀여운 슬로베니아 남학생 유레는 이제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고
패션이 심상찮고 무서워보이지만 알고보면 따뜻한 구석도 있는 독일 여학생 알리나
논쟁할 때 보면 은근히 한 성깔 하지만 파티에선 유쾌한 독일 남학생 알렉스
핀란드에서 5년 살다온, 침착한 성격에 스타일 시원한 중국 여학생 티나
아일랜드에서 6년 살다온(중국엔 유럽이 유행인가?;) 성실해보이는 중국 남학생 지미
재미없는 농담과 잦은 지각으로 조원들의 미움을 샀던 아프리카 어딘가 학생 나씸

그리고 성깔로 치자면 절대 뒤지지 않으며, 어쩌다보니 '긱'으로 통했던 미래 ㅋㅋ
(어쩌다보니가 아니라 전산과 학생인데 당연한건가 쿨럭;)
일곱 명이서 한 달 동안,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재밌었다. ㅋㅋ

주변에 잘못된 디자인 사례 찾기, MS Word 사용성 평가하기, 웹사이트 사용성
평가하기, 등등의 자잘한 과제들이 있었고
파이널 프로젝트로는 4일 동안 1. 현장 조사, 인터뷰, 요구 분석 2. 종이
프로토타이핑 3. 목업 4. 다른 조 목업 평가하기 를 하는 거였다. 아침 10시부터
만나서 하루종일 같이 이런 것들을 하고나서 오후 4시부터 세미나. 교수님이랑
같이 무엇이 문제였나 짚어보고 방법론에 대해 토론하는 거였다.
우리 조는 학교 근처에 있는 쇼핑몰 푸드코트 홈페이지 만드는 걸 했었는데 음 나름
재밌었다고 생각한다.


수업 내용은 뭐 여러가지 있었는데 깊게 다루진 않았고 여러가지 진행되는 연구
사례들을 훑어보는 방식이 절반. 나는 뭐 HCI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우오오
신기하다 하면서 봤는데 원래부터 관심이 좀 있었던 학생들은 불만족스러워 하더라.
그리고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강의가 절반. 사용성 평가라든지 프로토타이핑
등등에 대한... 음 꽤나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알았더라면 LKIN 만들 때도
좀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음.


사실 조별과제 하면서 몇 번은 난감했던 적이 있다. 한 번은 실험 다 끝내고 리포트
쓸 부분도 싹 나눠서 막 작업하던 중이었는데, 우리가 이해한 방법론이 틀렸다는 걸
내가 나중에서야 깨달은 거다. 결국 조원들 열심히 설득해서 실험 다시 하고
리포트도 싹 다시 썼었는데... 나중에 교수님이 '너네 제대로 이해하고 잘 했다'고
칭찬해줬었다. ^^ 알고보니 잘못 이해한 조들이 제법 많았다는..

그리고 파이널 프로젝트 두 번째 날, 프로토타이핑 하면서 대판 싸운 일. -_- 두
팀으로 나눠서 각자 프로토타이핑을 하고나서 모여서 토론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막상 모여보니, 저쪽 팀은 정말 중요한 부분(상점의 정보와 음식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 연결하며 어떤 식으로 배치해서 보여줄 것인가)은 싹 빼놓고 쓸데없이
팬시한 프론트페이지만 딸랑 그려놓고 '너네 도대체 왜 그렇게 오래걸리냐'면서
놀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 우리 팀 디자인을 보면서는 'about us'에 뭘 넣을지도
고민을 안 했냐고 생트집을 잡길래 내가 그랬었다.

"이거(상점 정보랑 음식 정보 배열하는 거) 너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명한 게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여러 선택이 생길 수 있는데 바로 이걸 선택하는
게 어려운거다. 우리는 이 부분에 시간을 많이 쏟느라 늦었던 건데 너희는 심지어
이부분은 생각도 안해본거 아니냐"

하튼 갑갑했다. 경험이 적으니까 모르는거야 그렇다치는데 말을 하면 좀 알아들어야
할 거 아니삼.. '그거야 이렇게이렇게 하면 되는거아냐 간단하잖아'라고 계속 말도
안 되게 받아치는데 그땐 정말 승질 좀 났다. -_-

뭐.. 물론 내가 전부 옳았다는 건 아니다. 왼쪽 사이드바에 상점 목록을 나열을
할거냐 말거냐 같은 걸로도 또 서로 언성을 높였었으나 이거는 뭐 나중에 보니
문화적인 차이가 좀 있는 거였던 거 같다. 지나가는 세 사람에게 테스트를 했었는데
그중 한국인 언니만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걸 보면;

한참 열올렸던 그날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유레가 열심히 달랬었다.
이건 그냥 바보같은 숙제일 뿐이고.. 완벽해야 될 필요도 없고.. 제발 릴랙스하라고.
어째 많이 들어본 얘기... (글타 사실 내가 사람들을 좀 들들 볶는 경향은 있다-_-)
정녕 내가 유럽에서 배워가야 할 것은 '릴랙스'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좋은 경험 많이 남겨준 HCI 과목, 즐거웠다.
시험은 토요일이다! 두둥
족보 보니까 서술형이던데 큰일났다 교과서 언넝 읽어야지;;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0월 25일 (수) 08시 38분 16초
제 목: 파티

오늘/ 줄리아 내외의 깜짝디너. 어쩌다 낑겨서 호사스럽게 먹었음 캬캬
수욜/ 한국친구들 생일파티 & 알후셋 파티
목욜/ 락페스티발 어쩌고
금욜/ 라피스 할로윈파티
토욜/ 시험끝났다축하하자 파티

결론:
저거 다 가면 HCI 패스 못한다. ㅠㅠ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0월 29일 (일) 04시 15분 45초
제 목: HCI 시험 끝

오예 다 끝났다!!! '연구방법론'도 최종리포트 냈고 HCI도 시험 쫑.
서술형에 4시간짜리 시험이었는데 대략 내가 공부한 부분에서 다 나왔다 으히히.

벌써 21학점 들었으니(카이스트로 변환하면 16학점) 수업은 이만하면 됐고
앞으로 뭐하고 놀지 궁리해야겠다. 오호호호호...

피곤해 죽겠는데 시험 쫑을 축하하러 파티엘 가야.....하나? -_-;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0월 29일 (일) 10시 36분 00초
제 목: 현대미술관 & 파티

어제 방에 하루종일 틀어박혀서 시험공부하다가 알빈한테 받은 전화. 제이콥이
파티하는데 올 거냐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거절했다 시험공부 하는 중이라고 ;ㅁ;
그래서 시험만 끝나봐라 뽕뽑자 하고 다짐.

오늘 오후엔 유레랑, 유레 친구랑(미술 하는 친구랜다) 현대미술관에 갔었다.
뭐 아는게 별로 없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심심풀이스럽게 갔는데 세상에 너무
흡족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그림들이 막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눈에 보이는 것 같고 그 느낌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원래 잘 모르면서도
그림 보는거 좋아하긴 하는데 이런 기분은 왠지 처음이었다.
너무 몰두해서 보던 탓에 마지막 전시장은 거의 그냥 훑어보기만 하고 왔는데 -
거기는 또 유명한(=나도 아는) 작품들이 많더라. 뒤샹도 있고 모딜리아니도 있고
몬드리안도 있고 워홀도 있고 하튼. 그렇지만 앞쪽의 스웨덴 사람들의 작품들이
정말 괜찮았다. 이거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이거라면 좋아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런 느낌. 무엇보다도 그 그림들은 나를 어쩐지 행복한 기분이 들게 했다.

기숙사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데 파올로의 충격선언. '나 이사간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새로 들어올 사람은 자기 친군데 역시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그 사람도 요리 잘 가르쳐줄 거라고 했다-_- 티라미스 같은거 만드는
법 배우라나. 저녁마다 날려주는 굿나잇 윙크에 정들었는데 섭섭하고나. 크흑..^^;

우리 코리도에 2~3주? 전에 들어온 살로메라는 포르투갈 여학생이 있는데 이 학생이
말그대로 '파티의 여왕'이다. 이 친구랑 지난주에 같이 파티를 갔는데 너무
재밌는거다. 얘가 아는 사람이 많아서 그냥 같이 낑겨있으면 일행이 있으니까
춤출때도 재밌고 몇 번 거듭해서 마주치는 애들이다보니 수다떠는 것도 더 재미있고.
"와 너 정말 대단하다 거기 있던 사람들 한 절반 정도는 너를 아는 거 같던데"
"아냐 네가 지난 학기에 나랑 내 친구를 봤어야 해.. 우린 모든 파티의 모든
사람들을 다 알고 있었어^_^"
한 달 정도 포르투갈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니 그 친구들이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려서 외로워 죽겠다고. 그렇지만 사실 온지 2~3주만에 그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다는 게 나로선 경이로울 따름이다;;

KTH만도 일 년에 교환학생이 700명이라는데, 의외로 교환학생 사회(?)는 넓지 않다.
다니다보면 누구 친구 누구, 누구 친구 누구.. 알고보니 유레도 살로메의 가장 친한
친구들의 친구였던 것이었다. 자 이렇게 되다보니 오늘의 실제 시츄에이션. 유레가
자기네 코리도에서 파티를 한다고 오랜다. 알았어 빠이 하고 주방에 오니 살로메가
바로 그 파티 간댄다. 자 이제 나도 파티가서 한참 신나게 논다. HCI 같은 조였던
알렉스가 보이길래 오늘 끝난 시험 얘기 벌써 이름 잊어버린 무슨 스페인 술 얘기
열심히 한다. 누가 불러서 뒤돌아보니 파올로랑 옆집 청년 니클라스다. 등등...;

하여튼 그동안 맨날 학교에서 하는 파티만 갔었는데 코리도 파티가 훨씬 재밌는 거
같다. 그렇게 미친듯이 시끄럽지도 않고; 친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재밌고, 음악도
더 낫고(나중엔 어떤 친구 둘이 직접 일렉기타 들고와서 연주하더라.. 아 훌륭했음)
술도 좋은 술에 공짜라서. 으하핫
럼콕에 초콜렛리큐어에 맥주 하나 끝내고 오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아싸.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1일 (수) 17시 59분 14초
제 목: 첫눈

이불 두 겹 꽁꽁 덮고 늦잠자다가 문자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 저녁 즐거웠길, 그리고 지금 첫눈을 만끽하고 있길 바래! ;-)"

얼른 커튼을 걷어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네. 아아..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년 11월 2일 (목) 05시 32분 15초
제 목: 스웨덴이 왔다

아침에 니클라스 문자받고 점심에 알빈이랑 맛있는 타이요리 먹고 수다떨때까지도
아니 그럭저럭 따뜻한 도서관에서 몇 시간동안 이것저것 용무 볼 때까지만 해도
몹시 행복한 기분이었으나 도서관을 나오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소복한 정도가 아니고 걸판지게 쌓여있는 눈. 얼어붙은 보도블럭.
목도리 장갑 부츠로 꽁꽁 둘러싼 채 두 눈만 내놓고 주춤주춤걷는 사람들.
예정시간보다 15분을 더 기다려도 안 오더니 결국 운행중단 되어버린 버스.
걷다가 눈에 채여 넘어질 것 같은 드넓은 눈의 평원.

스웨덴이 왔다.. -_- (지난 학기부터 여기 있었던 준호군의 표현;;)

손이 완전 꽁꽁 얼어서 기숙사엘 도착했는데, 이 날씨에 조깅하고 왔다면서
쫄쫄이바지 차림으로 복도에서 스트레칭하던 이웃 청년들 덕분에 마음만은 조금
훈훈해졌다. 크크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11. 2. 07:10

9월 일기

또 몰아서 올리게 되어 송구스럽기 그지없사와...;;;
그래도 나름대로 스크롤의 압박을 줄여보고자 두 개로 나눠서 올립니당.

9월 일기
10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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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10 (일) 08:23:08
제 목: 살림

설거지하고 방닦고 화분에 물주고 쓰레기버리고 우편물 확인하고 가계부쓰고 왔다;
어떻게 생전에 안 하던 짓만 골라서 하고 있지?;; 한 달 전에 짐쌀때 최우선으로
생각한 건 '안에서 안하던 짓 나가서 안 한다'여서 꼼꼼한 살림거리 반찬거리
같은건 싹 빼놓고 왔었는데, 여기오니 감자깎는 칼도 아쉽고 그렇다.;;;

식물 잘 못 키우는 사람보고 선인장도 말려죽일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나 여러번
그래봤다.; 앞으로도 누가 제발 나한테 화분 선물은 안해줬으면...-_- 그런데 지금
키우는 화분은 다른게 아니고 바질이다. 키워서 먹으려고. ^^; 그래서 그런지 잘
큰다 오호호.. 저거 싱싱할동안 빨리빨리 파스타해서 먹어치워야지;

아 스웨덴어 학점 A 받았다! 앗싸~ 이놈들 공부 안하는가부다. 시험 엄청 쉽드만.
나한테 스웨덴어 가르쳐준(?) 건실한 독일청년이 B 받았길래 약간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았음. 정말 불가사의하다 왜 한중일 사람들은 시험에 강한걸까..

영어숙제를 하느라 기사 하나를 찾아서는, 그걸 영어로 쓴 다음 그 기사의
영어원문이랑 비교해봤다. 물론 숙제는 그냥 프로포절을 쓰는 것이고, 자료를
위해서는 영어/모국어로 된 기사를 참조해도 된다고 했는데, 연습삼아 그런 식으로
해 봤다. 근데 나는 엄청 복잡하게 써 놓은 문장들 원문에선 한큐에 끝나더라.;;
한번 번역을 거친 문장을 다시 번역하다보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휘 선택도
발전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킁

토요일 밤. 기숙사가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라디오를 틀면 리드미컬한 스웨덴어만
흘러나오고.. -_- 아, 수다떨고싶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12 (화) 16:57:52
제 목: 헬스장

이틀째 헬스장엘 갔다. 3개월에 15만원 정도? 한국이랑 비슷한 가격이지만 운동복도
안 주고 수건도 안 주고 벨트마사지기(?)도 없다. 에잉.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는 내가 예전에 다니던 곳보다 더 많은 듯.
도대체 뱃살이라도 나왔거나 뭐 문제있어뵈는 사람은 안 보이고 아쉬울거 없어뵈는
사람들만 헉헉대며 운동을 하고 있다. 쭉쭉빵빵한 언니야들이 이것저것 스트레칭
같은걸 하고 있으면 막 따라하고 싶어진다.; 열심히 따라하면 좀 비슷해질라나 크크;

쥠-_-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니 싱가포르에서 온 에드버트는 "그냥 밖에서 뛰면
안돼?"라고 한다. "웨이트가 없잖아." "그냥 자동차 같은 것 좀 들고.." (뭐시라;)
예전에 한 독일 친구가 '중국인들은 조깅을 왜 그렇게 많이 하는거야? 지겹지도
않나?'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적이 있었는데.. 에드버트를 보니 왠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12 (화) 17:36:32
제 목: 한국전통벌레

어제 그렇게 헬스장에 다녀와서 시리얼에 우유를 타 먹고 있었는데 파올로가 그게
뭐냐고 물었다. 멀리서 보니 무슨 한국 전통 벌레인 줄 알았다고.. -_- 요즘
어무이께서 보내주신 밑반찬들을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그게 어지간히 이상해보였던
모양이다. 마티아스도 '나도 벌렌줄 알았어!'랜다.

"아니 도대체 한국음식을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버럭.
"그럼 정말로 벌레 안 먹어?"
"No! (하다가 갑자기 번데기가 생각났다) 아니 먹긴 하는데.." -_-;

마티아스가 오늘 저녁에 줄리아한테 피자(손으로 만든!) 한 판을 받았다면서
좋아라했다.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사람과 주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더라면서..
흠 나도 봤다. 정확히 말하면 키스하고 있는 걸 봤지만.. -_- 타이밍 잘 맞춰서
갔으면 나도 피자 좀 얻어먹는 건데 말이다.;

스웨덴에 지금 큰 스캔들이 났다. 주요 정당 두 개가 있는데 한 정당이 다른 정당의
네트워크를 오랫동안 해킹해서 기밀 문서를 빼돌려왔다는 게 발각되었다고 한다.
선거 일주일 전인 지금! 그런데 마티아스 얘기는 '이건 사실 해킹을 한 정당 쪽에
유리한 상황이다. 너같으면 해킹당한 정당을 찍고 싶겠냐'라고..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13 (수) 02:13:16
제 목: 매리네이드

매리네이드가 뭔지 아시는 분? -_-;;;

수업듣고 신나서 룰루랄라 고기를 사 왔다. 스테이크 해 먹으려고.. 질 좋은 걸로
사려고 일부러 백화점까지 가서 사왔는데,
줄리아가 보더니 이거 스테이크용 아니라고.. ㅠ_ㅠ 너무 두껍다고 한다.
대신 '마리나데'에다가 담갔다가 어쩌고저쩌고 하면 된다고 했는데.. 도대체
마리나데가 뭔지 모르겠는거다. "나중에 사전찾아볼게-_-" 하고 왔는데..

mar·i·nade〔〕 n. 매리네이드 《식초·포도주·향신료를 넣은 액체;여기에
고기나 생선을 담금》;매리네이드에 절인 고기[생선]
━ [] vt. 매리네이드에 담그다(marinate)

모니 이게-_- 단어를 모르는 건줄 알았더니 저런건 난생처음 들어본다.;
좀전에 줄리아가 준 레시피가 몬가 했더니 이 '마리나데' 만드는 법인가부다. 마늘
양파 로즈마리 티메(는또뭐야ㅜㅜ) 올리브오일 후추 칠리 와인.. -_- 덴장 그냥
잘라서 불고기 해 먹을까.;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14 (목) 01:16:41
제 목: (re:cashmere) 매리네이드

파올로한테 물어봤더니 좋은 고기라서 그냥 스테이크 해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해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ㅠ_ㅠ
풍부한 질감과 달콤한 육즙과 적절히 가미된 향신료까지.. 잠시 세사를 잊었다.;;
고기는 모쪼록 좋은 걸 사고 볼 일이다.

(아 그리고 매리네이드에 있던거 티메가 아니고 타임-_-이었다.; 허브 한 종류.)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14 (목) 19:23:46
제 목: 입동준비

여유로운 생활도 인제 얼마 안 남은 듯 하다. HCI 수업 개강하고 나면 월-금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이 들어차는데다 기숙사에서 왕복 2시간은 걸린다 ;ㅁ;
여유있을때 해야지 싶어서 헬스장도 하루도 안 빼놓고 가고 있다.

티비랑 히터 중고 알아보다가, 온풍기를 스웨덴어로 모르겠길래 주방에 있던 스웨덴
언니한테 물어봤다. 그런데 2주 뒤에 이사간다면서 온풍기를 그냥 주는게 아닌가!
아싸.. 추위 걱정 좀 덜었다.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티비 중고는 오늘 오후에 입양하러 갈 예정인데 어찌 생긴 놈일지 궁금하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15 (금) 07:44:12
제 목: 티비입양

드디어 티비를 입양해왔다!
14인치. 3년 썼다고 했는데 3만원 약간 넘었다. 아 싸게 잘 산 듯!
브레아뎅-_-이라고 멀리까지 가서 직접 가져왔다. 들고오는데 무척 뿌듯해서 무거운
줄도 몰랐음.;

티비 주인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스웨덴 아저씨였는데 굉장히 선량해보이는
사람이었다. 주방에서 항상 이 티비를 보곤 했었다고, 무척 좋아하는 것인데 이번에
22인치 티비를 새로 사게 되어 파는 거라고 했다. 웹사이트에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좀 낡았을수도 있겠다 생각했었지만 거기 올라온 비슷한 가격대의 티비 중에 가장
괜찮은 거였다. 이힛.

스웨덴 채널 6개랑 MTV랑 유료채널 하나 나온다. 스웨덴 채널들에서는 물론 스웨덴
프로그램들을 하지만 수입한 미국/영국 프로그램들도 많이 튼다. 그대로 틀고
자막만 스웨덴어를 붙이는데.. 오늘 저녁 시청해본 소감은 어처구니없게도 스웨덴어
자막이 가끔씩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_-;

그래서 지금 이걸 쓰면서 투나잇쇼를 보고 있다. 꺄아 >_<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17 (일) 21:42:11
제 목: 금요일부터 지금까지 본 것들

Fools Rush In // 오예 매튜페리!
Schindler's List // 간지난다 리암니슨
Sweet Home Alabama // 이뻐요 리즈위더스푼
Angels In America // 소름돋으삼 알파치노
The Miracle Worker // ..헬렌켈러!? -_-;

티비란 참 좋은 물건인 것 같다.;;;

부렉 숙제하자-_-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22 (금) 08:49:49
제 목: remember

remember라는 카드회사가 있다. 스웨덴꺼 같지는 않고 하튼. 그 광고가 티비나
지하철에 꽤 보이는데, 모토는 대략 이거다.

"
Remember, you are not the car you drive.
Remember, you are not the logo on your bag.
"

나는 차를 운전하는 대신 책을 읽고 로고박힌 가방을 드는 대신 영화를 본다.

씁쓸하게도,
내가 소비하는 이 모든 것들은 내 지적 허영은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언정
나를 대변해 줄 수는 없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23 (토) 10:58:39
제 목: 사람들 이야기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걸 쓰는 건 사실 민망하지만^^; 한 일이년쯤 지나고나면
아 이런 사람들을 만났었지..하고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해서.


니클라스
한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갑자기 메일이 왔었다. '나 죽지 않았어'라고.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해보면서 진짜 얘 소리소문없이 죽기라도 했나 망측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메일을 보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웃음이 나왔었다.; 그냥 한동안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고 했다. 자기도 왜 그랬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이 친구랑 수다떨고 있으면 어쩐지 나는 더 어려지는 기분이다. 왜냐하면 얘가 무슨
어린 동생이라도 보는 것처럼 자상하게 웃고 있기 때문에.. -_-;;


알빈
종종 점심을 같이 먹는데, 어쩌다보니 만나면 주로 일/회사 얘기를 한다(?).

자기가 알바로 스톡홀름지하철공사(?)의 노임관리 프로그램을 만든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스웨덴에서는 휴가기간 중이어도 아프다고
전화하면 병가로 처리한다고 한다. 참 이상한 규정 아닌가;; 하여튼 이 친구는
정규직으로 근무해 본적이 없으니 그런 걸 몰랐고 나중에 연락을 받고서야 부랴부랴
그 기능을 추가했다고 한다.;;

나한테는 PHP 할 줄 아냐면서, 혹시 관심있으면 아는 사람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물론.. 정중하게 사양했다;;


마티아스
커다란 키를 유지해야되서인진 모르겠는데 주방에 가면 항상 뭔가를 먹고 있다;
그리고 나한테 맨날 뭘 먹이고는 자 이제 먹었으니 운동하자고 끌고 나간다. -_-
권투(?)도 시키고 계단 오르내리기도 시키고 이상한 토끼뜀 비슷한 것도 시킨다 ;ㅁ;
알고보니 왕년에 테니스 선수 비슷한 걸 했다고 한다. 믿어지진 않지만.. ㅋㅋ

별 희한한 얘기를 참 많이 한다. 이를테면.
스위스의 임금은 스웨덴 임금의 두 배 정도 된다고 한다. 물가도 두 배겠지.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건 이런 거란다. 스위스에서 취업을 한다. 그리고 텐트에 살면서;
지금 너네 엄마가 하는 것처럼 자기 엄마가 스웨덴 음식 소포로 보내주고 하면(-_-)
삼 사 년 일하고 나면 떼돈벌지 않겠냐고.

여기서 몇가지 드는 의문은 '왜 나는 만 28살인 니클라스는 친구라고 인식하고 있고
만 27살인 마티아스는 오빠라고 인식하고 있을까'와 '그런데 정신연령은 정반대인
건 또 어찌 설명해야할까'이다. 아.. 복잡하다.


토마스
내 멘토. 희한하게 시스타캠퍼스 가면 자주 마주친다. 스타일은 항상 검은색 광나는
자켓에 구멍뚫린 바지와 구멍뚫린 눈썹(피어싱 얘기)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오늘
저녁에 나이트클럽/펍 갈껀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왠지 나랑은 다른 세계 사람 같아서 부담스럽다;; 킁.


닝이
부담 하니까 생각났는데 이 친구 끊임없이 나한테 요리해먹는 파티라든지 근위병
교대식 구경이라든지 같이 가자고 조른다. 그 금요일마다 하는 파티가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해와서 나눠먹는 파티라는데.. 그거야말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다.;; 한국음식? 모른다. 먹을 줄만 안다.;;
그래서 이런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거절해오고 있는데 속으론 섭섭할 거 같다.;;
아무래도 김밥 재료를 공수해와야 될 모양이다.

중국인들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다. 어느 수업엘 가도 중국인 커뮤니티가 있다고
방글라 학생이 그랬다.; (사실 내가 듣는 수업에는 방글라 커뮤니티도 있다-_-)
윗층사는 싱가포르 총각과 중국 총각이랑 셋이서 밥해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얘네들은 왠지 멀쓱하니 느낌이 '청년'보다는 '총각'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등등등..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ㅋㅋ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23 (토) 11:29:22
제 목: 컬쳐쇼크

어제는 주방에서 라디오 들으면서 밥딜런 노래 못한다고 흉을 보다가-_-
마티아스가 씨디 들려주겠다면서 자기 방을 구경시켜줬다.
그런데..

바닥에 옷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무릎높이쯤 되는 산이 한 서너 개 쯤은 됐다.
솔직히.. 나도 그다지 깔끔떠는 체질도 아니고 왕년에는 한어지름 했던 사람이라 남
어지르는거 웬만하면 뭐라고 못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폭소를 터뜨렸고; 마티아스의 구차한 변명이 시작됐다.

"(끊임없는 변명) 블라블라.. 블라블라.."
"(듣지 않고 있다) 으하하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이불은 또 완전 소녀취향이네?"
"이게 왜 소녀취향인데?"
핑크였다. 그것도 별무늬가 가득한 핑크.. -_- 여자친구가 놓고갔나 생각했다.;

"(의자에 쌓인 옷들을 다른 산에 옮겨놓는다) 자 여기 앉아."
"..아니 사양할래^^;"
"괜찮아 이 옷들 어제 빨았어!!"
"(힘주어 말한다;) is it CLEAN?"
"-_-;;"

"난 또.. 방 정말 좋아한다고 자랑하길래 좀 다른 걸 상상했지."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고 꽃병도 있는?"
"그래!"
"아 역시 보여주지 말았어야 했어.. (머리를 쥐어뜯는다. 좀 불쌍하다;)"
"괜찮아.. 마티아스라는 인간의 또다른 면모를 본 기분이니까."
"...(더 괴로워하고있다-_-)"


적다보니 너무 뭐라고 한거 같아서 미안해진다... -_-; 그렇지만 정말로 그런
기분이었다. 뭐랄까, 뭔가 일관성있게 리버럴한; 그의 삶의 단면이 느껴졌다. -_-
그의 여자친구가 몹시 존경스러웠다. 크크;;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24 (일) 04:47:25
제 목: 중국음식

오늘 저녁. 파스타나 해먹으려고 바질잎 몇개 뜯어서 주방에 갔더니 닝이랑
싱가포르 총각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또 같이 하겠냐고 제안을 하길래 역시 또
부담스러워서 거절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요리들이 참 맛있어보이는거다. -_-

"..내가 뭐 하면 되지? -_-a"
"손만 씻구 와 *^^*"

그래서 접시 몇 개 닦는 시늉만 하고 다 된 요리를 같이 먹었다. 으하하;;
소스 때문인지 '중국음식'이라는 냄새가 강하게 나긴 했으나 맛은 꽤 괜찮았다.
따뜻한 국물요리들이 꽤 괜찮았고 두부며 고기조림이며.. 양도 푸짐했고.
닝이도 분명히 여기 와서 요리를 처음 시작했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잘 하냐고
따졌더니-_- 닝이네 어무이가 요리를 잘 하신다고 한다. 파올로네 어무이도 요리를
잘하신다고 들었으니.. 내가 요리를 잘 못하는 건 내 탓이 아니다. 킁;

어쨌든 뒷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먹......은게 아니고
사실은 먹으면서부터 뒷일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얻어먹고 나면 나도
한국음식 대접해야 할텐데 도대체 뭘 만들어야 되나 재료는 또 어디서 구하나' 등등;

나중에 걱정하자 오늘은 배부르다. 캬하-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26 (화) 06:01:01
제 목: 학기 시작(?)

#
세 번째 과목 HCI 개강. 기숙사에서 한 시간 걸리는 캠퍼스인데, 거기다 주로 아침
9시 수업이다. 놀랍게도 그때는 지하철도 만원이다;; (좀 한적한 도시라서;)

이 학교 과목들은 어째 실라부스가 초반부터 상당히 압박해준다.;; 팀 프로젝트들은
재밌을거 같은데, reading material분량이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다음주부터
퀴즈본댄다. 랄라라~ 다음주에 Technical English 개인발표도 있는데-_-

아, 과목 교재비가 10만원이었다. 교수들이 특별편집한 책이라 다른 데선 못
산다는데 별 수 있나 사야지. 도장 10개짜리 쿠폰 순식간에 8개 찍었다;

#
Technical English. 좋은 수업은 좋은 수업인데 이넘들이 너무 유창하다. 발음은
제각각이긴 해도 저 할말은 다 하니 듣는 사람만 피곤하지; (유럽 애들 중에서도
비슷한 언어권 애들은 비슷한 발음/억양을 잘 알아듣는다. 내가 상대적으로
중국/일본애들 발음 알아듣기 쉬운 것처럼;)

그리고 얼마 전부터 깨달은건데 한국어는 굉장히 천천히 말하는 언어인 것 같다!
뉴스 아나운서들 말하는 속도를 놓고 비교해도 확실히 느리다고 어디서 본거 같은데.
중국 여학생 닝이 얘기로는 한류 드라마 보면 중국어 더빙이 되게 웃기다고 한다.
기다란 문장 하나가 자기네는 두 단어면 끝나는 거라서, 성우들이 천-천히
말을 한댄다;; 아 이건 좀 다른 얘긴가 하여튼. 몇 가지 사회 이슈에 대해서
조별로 논쟁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빨리 말하려고 하면 자꾸 혀가 꼬이고 발음이
엇나가서 갑갑했다. 대신 조원들한테 내 변명을 납득시키는 데엔 성공했다. 내 혀
자체가 빠른 언어에 적응이 안 되어있어서 말 좀 꼬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으하;

#
하여튼 그래서 오늘 세 과목 다 합쳐서 9시간 수업듣고 왔다.
드디어 진정한 학기의 시작이다!! 므하하하-_- 슬슬 비비도 줄여야겠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29 (금) 05:29:45
제 목: 학생들

연구방법론 수업. 계속 듣다보니 슬슬 학생들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자식들 왜 이렇게 무식해-_-
정성적 분석과 정량적 분석의 차이도 모르고 세미나에서 열심히 떠들어대지.
나름대로 internetworking 석사생들이란 사람들이 실습수업에서는 파일 이름 바꾸는
명령어 지우는 명령어 뭐냐고 물어보지. (su를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긴 한데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쓰고있더라;)
실험 설계하라는 숙제가 나왔는데 한 친구가 자기 한 걸 보여주면서 코멘트를 해
달라고 했다. 봤더니 설계만 한 게 아니라 실험 결과를 알아서 조작해서 결론까지
써놨다. -_- 이거 아니라고, 그냥 설계만 한 다음 결과는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걸 어떻게 분석할건지만 적으면 된다고, 암만 설명해도 '그러니까 이 표만 지우면
된다는거지?' 둥둥 하고 있고. 아아아...

정말 카이스트는 좋은 학교다. 영어만 쫌더 잘하면 된다.;



글쓴이: cashmere (미래)
날 짜: 2006/09/30 (토) 05:18:49
제 목: 갈등의 주말

놀기에도 좋지만 공부하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말 취소할란다.
주말만 되면 유혹이 너무 많다. ㅠㅠ

열여덟 청춘 파릇파릇 새내기 녀석-_-은 파티오라고 꼬시지
벨기에 사진전시회 보러 간 니클라스 엠에센으로 막 자랑질;하고 있지
내일은 '뭔가 달콤한 디저트(?)'를 가지고 실비아네 가서 점심먹기로 했지

다 좋은데 숙제는 언제 하냔 말이다.;; HCI 퀴즈도 있고 조별숙제도 있고 영어
개인발표도 있고 단어시험도 있고 써머리도 있고 토론 심판-_- 준비도
해야되는데에에에!

파티를 갈까 헬스장을 갈까 숙제나 할까 고민하면서 주방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파올로가 "굿나잇"하면서 샤방샤방한 미소와 함께 윙크를 날리고 간다.
...그런거 좀 남발하지 말란 말이다 ;ㅁ;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9. 1. 06:26

8월 일기(?)

한 달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더럽게 긴 포스팅 하나 올려봅니다.
이름하여 '8월 일기' (이쯤되면 '월기'인가-_-) 끝까지 읽는 당신은 챔피언~ -_-



8/2
스웨덴 첫 느낌.
"젠장.. 가을이잖아"


8/3
아주 즐겁게 살고 있다 ㅎㅎㅎ 너무너무 좋다. 스톡홀름이라는 도시만으로도
아름답지마는 여기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좋다. 내 평생에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날 기회가 또 다시 있을까 싶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쏟아져들어오는
정보량에 정신이 하나도 없긴 하지만 이마저 익숙해지고 있다 ㅎㅎ 하루가
거의 일주일만큼의 밀도로 다가온다.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는 며칠 전에 만난 것
같아서 언제였냐고 물으면 어제였다는 대답이 돌아오길 다반사다.;;;

내 영어도 다행스럽게도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주:요샌 안 늡디다 ㅋㅋ)
하루종일 말을 하게 되니까 그런 거 같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정도로도 농담도
주고받고 재밌는 얘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사실 신기하다;;
다만 프랑스애들 영어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다-_-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독일까지는 상당히 깔끔한데 프랑스 오스트리아 정도 가면 익스큐즈미를
연발해야한다 ;ㅁ; 하튼 신기한건 유럽애들은 유럽애들끼리 잘 알아듣고 내 발음도
잘 알아듣는다는거다;; 나로선 다행이지만..

다른 나라 학생들은 얼마나 깨어있는지를 보면서 정말 놀라고 많이 자극받고 있다.
얼마나 부단히 다른 세계를 관찰하고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꾸준히 그걸 유지해나가는지 등등... 우리는 정말 고립되어 있다는 자각을
이제서야 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세계와의 인터랙션에 무관심했는지... 이
학생들은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게 느껴진다. 단지 외모 때문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면에서 말이다. 사람을 대하는 매너도 몹시 다듬어져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다짐을 하고 있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더 액티브한 하루가
되자. 내일은 오늘보다 더!



8/5
무슨 식료품을 사러가도 침구를 사러가도 온통 스웨덴어로 되어있으니 원;ㅁ;
영어로 씌여있으면 그냥 막 반가울 정도;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긴 한데 매번 그러려니 귀찮다 흑. 그냥 스웨덴어 배워야지..;;



8/10
밥 해먹는게 진짜 일이다. 흑흑 별것도 아닌데 오래걸리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스웨덴어 수업듣고 점심 사먹고 이것저것 볼일보고 저녁 해먹고나면 이
시간이고나.

슬슬 휴가간 사람들 돌아오는 기간인가보다. 이제 기숙사 주방 가면 제법 사람이
우글우글한다. 저녁먹을 때쯤이면 몸이 영 피곤해서 빨리 먹고 자고 싶은데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어온다;; 그래도 정말 좋은 거 같다. 개인별 주방이었으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아 주방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이야기.
먼저 베이징 가족. 아줌마 영어 너무 잘한다. 솔직히 말이 빨라서 알아듣기
힘들지만; 나한테 항상 이것저것 잘 일러준다. 꼬마애가 너무 귀엽다 항상 생글생글
웃으면서 복도에서 인라인 타고 있음.. 아저씨는 몇 번 못 봤고.
그리고 상냥한 스웨덴 오빠(?). 역시 나한테 이것저것 잘 가르쳐준다. 이
프라이팬은 뜨거운 물에 솔로 닦아야되고 어쩌고.. 하튼 모르는게 많으니 배울게
투성이다 흑. 하루에 최소한 세 끼를 먹는다고 하는데 그럼 보통 얼마나 먹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방금도 저녁먹고 또 저녁먹고 또 아이스크림 사러 나갔다;
그리고 무뚝뚝한 스웨덴 오빠(?). 말을 먼저 걸면 얘기는 잘 하는데 방금 위엣
사람들처럼 수다를 즐기는 것 같진 않다. 파스타랑 고기요리를 우르르륵 해서
먹고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튼 요리 못하는 사람은 이 층에 나밖에 없다-_-

아 인제 배 좀 꺼졌으니 자야지. 잠이 부족해... 어지러울 정도로 졸리다 지금;



8/17 개별연구
지도해 줄 교수님을 찾는 중이다.

오늘 만난 교수님은 알프 렌. '핑크 머신'이라는, 미학과 관련된 재미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람. 프로젝트 홈페이지를 보고 꽤 재미난 사람들인 것
같아서 그리고 내 관심 분야랑도 좀 비슷한 것 같아서 만났는데, 내 얘기를 듣더니
세 사람의 이름을 적어줬다.; 내가 지난 알고리즘 프로젝트로 했었던 Graph-based
analysis of the human relationships on the soap opera(-_-)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content analysis라는 용어도 얘기하던데.. 그런 걸 봐선 아무튼 이 분야가
마냥 막연한 분야인 것 같지는 않고, 다행히 스톡홀름에도 그런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자기들은 주로 이론적인 접근, 통계적인 접근을 하는 편이라
내 프로젝트(라고 말해주더라)에는 별로 도움이 못 될 것 같다고, 그렇지만
일반적인 연구의 방향이나 방법론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조언해주겠다고 했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상은 참 좋았다. 내 전공을 보고는
프로그래밍의 미학에 대해 연구하는(그렇다 이런 분야도 있다;) 에릭이란 사람도
소개해줬고.. 물론 내가 관심가지는 분야랑은 또 달랐지만. 아무튼 교수님들이랑
얘기하다보면 느끼는 건데 정말 순식간에 핵심을 간파해낸다. 부족한 영어로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따뜻한 격려를 받고 돌아온 것 같다. 에릭의
박사 논문 '코드의 미학' 한 권과 함께..(이걸 과연 읽을 일이 있을까?;;)

감옥과 흡사하게 생긴 Sing-Sing 건물을 나와서 벤치에 주저앉았다. 내가 두서없이
늘어놨던 말들과, 두 사람이 해 준 여러 이야기들과, 앞으로 또 만나야 할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하늘이 참 맑다는 생각을 했다.



8/20 파스타 요리 성공!
(레시피는 여기: http://recursion.kaist.ac.kr/tatter/mirae/840 )

으하하하 해냈다옹 ㅠ_ㅠ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정신 하나도 없어서 사진도 못
찍긴 했지만.

베이징 아줌마는 내가 요리하는 걸 보는게 그렇게 재밌댄다. 내가 양파를 썰거나
토마토리퀴드를 따르거나 할 때마다 '조심해요' 하면서 깔깔 웃고 있고;; 주방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상냥한 스웨덴 오빠 마티아스도 거든다. '파올로가 이건 안
가르쳐준 모양인데.. 알루미늄 냄비에 토마토를 끓이면 안돼. 발암물질이 나온대'

하여튼 주방을 다 뒤집어엎은 끝에 완성된 파스타 세 접시. 이쁘게 하려고 스위트콘
좀 접시 한켠에 덜려고 했더니 때마침 주방에 들른 파올로가 놀란다. 'forbidden'
이랜다. 파스타는 짠 음식이기 때문에 단 음식과 같이 먹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오렌지주스도 안되냐고 하니까 안된댄다 ;ㅁ; 그냥 물, 아님 와인. 만약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파스타와 함께 주스 같은걸 선택하면 주문받는 사람이 놀랄거라면서.

옆에 있던 마티아스 막 착잡해한다. '파올로가 이탈리안 왕국을 만드려 하고
있어... 저런 복잡한 요리말고 내가 스웨덴 요리 알려줄게'-_- (허나 오래지않아
밝혀진 그 스웨덴 요리의 정체는 '씨리얼 죽'이었다.;;)

그래서 맛이 어땠느냐. 파올로가 'perfect!'라면서 접시를 방에 들고갔다 >_<



8/21
오늘은 겨울 롱코트 입었다. 적당하드라.
(8월이란 말야! 이게 말이 돼? ㅠ_ㅠ)
요즘 대략 기온이 섭씨 10도 ~ 22도 정도 되는 거 같다. 오늘은 비와서 더 추웠고..

백화점 가서 모직 카디건도 사 왔다. 내일부터 당장 입어야겠다.
추운 나라니까 겨울엔 따뜻한 옷 많이 나오겠지? -_-;



8/24
감자랑 당근이랑 파프리카 썰어서 볶았다. 파프리카가 노란색이라 안 맞는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맛은 괜찮았다. 감자가 좀더 찰지고 말랑말랑했으면 했는데 한참을
볶아도 그렇게는 안 되길래 그냥 먹었음. 채써는 것도 오래 걸려서 실제론
파스타보다 오래 걸리는 요리였다. -_-

오늘 낮에 또 다른 교수님을 만났다. 닐스 엔룬드. 미디어학과장..정도 되는
사람인데 나이도 꽤 지긋. 내 관심사와 약간 관련있는 프로젝트가 작년에 마감됐다고
하더라. 근데 이 분야 돈이 안 되나 왜 다들 중간에 펀드 끊겼단 소리를 하지-_-
하기사 예전에 내가 느낀 인상도 '쓸모없지만 아름답다'였었지. 나는 그속에서
어떻게든 실용적인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지만.. 내가 'practical, and also
beautiful'이라고 하니 닐스가 씨익 웃었다. ^^;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들 얘기했더니 몹시 흥미롭다고 했다.
그렇지만 딱 고런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다시
추천해준 사람이 지난번 알프가 추천해준 사람이랑 겹쳤다. 아직까지 답장이 없는데
이 사람에게 기대를 걸어봐야하나. Human Computer Interaction랩에 그런 아트랑
관련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얘기한 것들이 혹시
HCI랑 가까운가요, 했더니 그건 아니고 거기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정말
도와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는데, 자기도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을지 몰라서
고민스럽다고 했다. 정말 도움 많이 됐습니다 나중에 또 찾아뵐게요, 하니 아무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단다.

오늘 저녁은 어쩐지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었다. 유독 짧아진 해 때문인가. 요리하는
동안 하우라랑 마티아스가 한참을 스웨덴어로 얘기했는데, 말투만 알아들은 바로는
하우라가 스웨덴어로 된 문서 내용을 물어보는 듯 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열두살
먹은 마티아스네 고양이 얘기를 하고 자기네 나라들의 결혼 적령기에 대해
얘기했다. 아이는 스무살에 하나, 스물다섯에 하나, 서른에 하나를 낳아야 한다는
마티아스 말에 한참 웃다가, 그런데도 어쩐지 어제 저녁같은 유쾌한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바둑 규칙 설명해주다가 문득 또 내 영어에 갑갑함을 느꼈다. 교수님하고
공부얘기 하는 것보다 이웃들하고 수다떠는게 더 어렵다. 아닌가, 표현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까?

어제는 손에 양파냄새가 배더니 오늘은 감자냄새가 배었다. 설탕 엔간히 문질러서는
냄새가 안 빠지는데 레몬을 좀 사와볼까.



8/26
스톡홀름대 도서관은 주말에는 일찍 문을 닫는다. 평일에 오후 8시에 닫는 것도
좀 어이가 없는데 금요일은 6시, 토요일은 5시, 일요일은 4시. 그나마 이정도면
많이 여는 거고 왕립공대 도서관은 주말엔 안 연다. 도서관에서 공부해야 돌돌
말리지 않는 나로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상점들도 일찍 문을 닫고 하길래 이 도시엔 밤이 없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그건 또
아니다. 주말에는 지하철이 새벽 4시까지도 다닌다. 어제 또 교환학생들을 위한
파티에 갔었는데 새벽 2시에 파티가 끝나고 나니 백여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와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도착하니 막 환호성과 함께 모두가 우렁차게
입을 모아 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축구 응원가랜다. 유럽 애들은 다들 나라
이름만 바꿔서 이 노래를 응원가로 쓴다는 게 민영이의 설명. (혹시 나만 모르나;)

삶의 소소한 백 가지 기쁨 중의 하나는 '사흘치 가계부를 몰아쓰고 잔액을 맞춰보니
딱 맞는 것'이다. 오호호- 스웨덴어 시험이 월요일인데 이제 공부 좀 하자. -_-



8/27
오늘 점심으론 훈제연어를 먹었다. 슈퍼에서 진공포장된 걸 3천원 정도에 판다.
접시 한 켠에 케이퍼를 얹고 방금 지은 밥에 연어 한 점.. 아아 행복해졌다.;

샐러드로는 양배추랑 토마토랑 스위트콘. 드레싱이 없길래 올리브유를 뿌릴까
하다가 그냥 먹어도 맛있길래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 공부하면서
간식으로 먹을 생각이었는데 으음..;;

요리지향적 생활을 하다보니 식욕이 정상화된 것 같다. 사실 처음 와서는 이상하게
식욕이 없었다. 밥을 지어도 반 공기 정도밖에 못 먹고, 그러고나면 또 금방
배고픈데 먹으면 또 많이 못 먹고 해서 난감했었는데... 며칠 전엔 여기 온 이래
처음으로 케밥 하나를 남김없이 다 먹었다. 왠지 뿌듯했다-_-

다음에 이케아 가면 체중계 사야겠다. 슬슬 예방을 시작할 시점으로 보인다. -_-



8/28
1. 스웨덴어 시험
문법 문제들 + 200단어짜리 에세이. 에세이 주제는 지난 3년간의 기출문제에서 모두
똑같길래 숙제 하나 골라서 달달 외워갔는데 역시 그대로 나와서 그대로 써냈다.;
문법 문제들은 쉬웠고. 아 드디어 스웨덴어로부터 해방이다옹 ;ㅁ; 스웨덴어
공부하면서 영어는 '그나마' 쉬운 언어라고 생각했다; 스웨덴어는 동사도 폼 5개
형용사 폼 4개 명사 폼 4개 다 따로따로 외워야 하니 원;

스웨덴어 수업을 들은 목적은 여기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읽기 위함이었으나
54시간의 수업을 듣고 난 지금에도 역시 스프 뒷면의 조리법을 못 읽고 있다-_-
기분 내키는 날 사전 옆에 끼고 해석해보자.

2. 영어수업
Technical English Advanced level - 첫 수업! 웹에서 배치고사를 쓸데없이 잘
봐버려서 어드밴스드 레벨로 배정이 됐다. 다들 석사 삘나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동양인은 나 혼자. 시험에 강한 자랑스런 한국인이다-_-

매주 월요일마다 4시간을 꽉 채워서 하는 수업인데, 엄-청-빡셀거 같다. 그룹토론
그룹발표는 매주 할 거 같고 개인발표도 2번에 개인과제는 프로포절 리포트 에세이
써머리 이력서 커버레터(는 또 뭐야?) 단어시험 리딩숙제 등등.... 12페이지짜리
실라부스 보면서 멍해져서 한 생각이 '이거 진짜 다 할 수 있을까'랑 '이거 진짜 다
하면 엄청 많이 남겠다'. 정말로 궁금하다 나 이거 다 할 수 있을까?;;

첫 수업부터 그룹발표가 시작됐는데 음.. 어떤 애들(?)은 정말 이거 왜 듣냐 싶게
유창한 반면 어떤 애들은 목소리마저 덜덜덜 떨리고 그런다. 대본 읽는 애들도
있었고. 나도 미리 대본 써 놓고 읽었는데; 혀 꼬일때마다 웃음이 나와서 곤란했다;
근데 하튼 스웨덴애들 영어 정말 잘 한다. 음 뭐랄까 굉장히 자연스럽게 한다. 언어
자체가 비슷해서 그런 거 같다. 어순이 일단 비슷하니 단어만 탁탁 떠올리면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선지 교수님 얘기도 이 수업은 문법은 이미
완벽하다고 가정하고-_- 단어에 초점을 맞춘다고.
아놔 당신들 후회할거야... 내가 인터미디에이트로 바꿔달랬잖아-_- 나중에
후회해도 난 책임없어-_-

3. 파티
또 학생연합에서 하는 파티엘 갔다. 늘상 가던대로 교환학생들 우글거리는 분위기
생각하면서 아무 부담없이 뚤레뚤레 혼자 갔는데 웬걸 쌩판 스웨덴인 천국인거다.
신입생도 들어오고 개강이고 하니 이제 교환학생 환영의 시대는 가고 신입생 환영의
시대가 도래한즉... 아는 얼굴이 없어 스프라이트 한 잔 들고 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무작정 자리를 잡고 어떤 애들과 얘기를 시작했다.
무려 1주일도 안 된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이었다;; 학교에서 하는 파티도 당연히
처음 온다고 하고, 스톡홀름 온지도 얼마 안 된 모양인지 지하철 끊기는 시간도
몰랐다. 영어를 아직 불편해하는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보이는 그 애들을
보면서 내가 아는 다른 스웨덴 사람들, 여기 나이로 최소 25세 이상의 그 '친구들'
을 떠올려봤다. 이 새내기들은 18~19세. 그 5년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8/29
뭔가가 빠진 것 같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처음
카이스트에 입학했을 때도 그랬고, 회사에 갔을 때도 그랬고, 이렇게 교환학생을
와서도 그렇고.
겨우 7시간 정도 되는 시차에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하기가 영 쉽지 않다.

사람마다 생활의 중심을 잡아주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싶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혹은 일주일을 마무리하면서, 자기 생활을 잠시 되돌아보고 잊어버린 것들 혹은
그냥 지나친 것들을 발견하게 해 주는. 누군가는 그게 일기를 쓰는 것일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그게 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한다거나 명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같은 경우는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도, 그걸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고 지나가면 깨닫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귀가 뜨거워질때까지 전화통 붙잡고 수다떨던 밤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8. 22. 21:24

스테이크

지난번에 파스타 요리를 배워서 신나게 해 먹었더니 매우 흡족해진 이탈리아 오빠. 방금 주방에서 마주쳤는데 스테이크를 먹으려던 참이길래 구경하면서 한 수 배워 왔습니당. 사실 요리랄 것도 없고(?) 10분이 채 안 걸리는 밥보다 간단한 요리... 재료가 다른 요리에 비해 좀 비싸다는 게 흠이랄까요.

이건 뺏어먹기가 난감해서-_- 맛보진 못하고 사진만 찍어왔어요. 잊어버리기 전에 레시피를 써 봅시다.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진을 올리려니 왠지 찔립니다(?)



<준비물>
스테이크용 고기
소금
토마토
야채
후추
통후추

<스테이크 만들기>
팬 전체에 소금을 뿌리고 고기를 올려놓는다. 2분 익히고 뒤집고 다시 2분 익힌다.
칼집을 내 봐서 알맞게 익었는지 확인한다. (취향에 따라 다르나 육즙이 배어나오면 적당함)

접시 한 쪽에 샐러드(토마토와 야채 썬 것)을 담는다.
다른 한 쪽에 익힌 고기를 올려놓고 소금, 후추, 통후추를 차례로 뿌린다.
샐러드와 고기에 올리브유를 뿌린다. 끝.


보너스로 제가 만든 파스타 사진!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8. 19. 22:22

토마토소스 파스타

자랑할 게 있습니다. 저 요즘 요리해요!!! 닥치니 하게 되더랍니다 저렴한 카페테리아가 없으니 매일 밖에서 사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래도 여기가 요리하기엔 참 좋은 환경인 것이 기숙사에 층마다 주방이 있고 웬만한 취사도구가 다 있거든요. 슈퍼마켓에서는 별의 별 재료들을 쌓아놓고 팝니다. (물론 스웨덴어로 쓰여있어서 저는 용도조차 짐작할 수 없는 게 태반이어요;ㅁ;) 동현이한테 물려받은 밥솥에 초밥용 쌀로 밥을 지으면 그냥 환상적인 밥이 됩니다. 문제는 항상 반찬인데... 처음에는 볶음밥이네 스크램블에그네 소세지후르츠칵테일볶음이네 매번 지지고 볶고 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아 밑반찬이 있으면 매 끼니마다 이럴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_-; 언제 한국식품점 가서 김치랑 몇 가지 좀 사 오려고요.
하여간, 맨날 주방에서 골골대고 있는게 딱해보였던지 한번은 같은 층 사는 친절한 이탈리아 오빠가 요리수업을 해 주마고 약속을 했더랍니다. 그리고 오늘,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배웠어요! 꺄아 >_< 잘 구경하고 배부르게 먹고나니 열심히 적은 레시피가 아까워서 올립니다 ㅎㅎ 만들어보아요~

짜잔~ 이게 그 완성작입니다! 물론 저는 옆에서 레시피만 받아적고 있었고 음냐...



<재료 (1인분 기준)>
파스타 // 모양 상관없음. BARILLA 또는 LINGUINE.
토마토리퀴드(?) // 파는 걸 사도 되고 만들어도 됨.
양파 1/4개
바질잎 4~5개

<토마토리퀴드 만들기>
끓는 물에 토마토를 5분동안 삶는다.
껍질을 벗기고 딱딱한 부분을 도려낸다.
잘게 썬다. 끝.
* 2~4일 정도 보관 가능하다.

<소스 만들기>
냄비에 오일을 조금 넣고 센 불에 데운다.
양파를 썬다. (잘게 썰 수록 좋음)
썬 양파를 넣고 소리날 때까지 데운다. 가끔 흔들어준다. (주의: 타면 냄새난다. 자리 비우지 말 것!)
토마토리퀴드를 넣고 10분 정도 끓인다. 가끔 저어준다. (바쁠 땐 4~5분)
불을 줄인다.
약간 단 걸 원하면 설탕 한 작은스푼. 조금만!
소금 0.3 큰스푼, 후추를 약간 넣는다.
바질을 찢어서 넣는다.
파스타가 준비될 때까지 계속 약한 불에 데운다.

<파스타 만들기>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끓이면서 따로 또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시간 절약 위함)
주전자의 물을 붓고 끓인다.
소금 1.2 큰스푼을 넣는다.
물이 끓으면 수위를 확인한다. (파스타 길이의 절반 이상이 되어야)
파스타를 넣고 봉지에 적힌 시간만큼 삶는다. 점점 익어가면 눌러서 냄비 안에 넣어준다. 가끔 저어준다.
잘 익었는지 확인한다.
냄비 통째로 체에 엎었다가 냄비에 다시 엎는다. (즉, 물을 완전히 따라낸다)
다 된 소스를 붓고 센 불에 아주 잠시 익힌다.
접시에 파스타를 덜고 바질을 얹은 후 오일을 약간 뿌린다. 끝.

<팁>
* 위의 <소스 만들기>와 <파스타 만들기>는 동시에 한다.
* 물이 끓는 걸 막으려면 찬물을 조금 붓는다.
* 파스타 길다고 분지르면 안된다.
* 파스타는 너무 익히지 말고 딱딱한 게 약간 느껴질 때까지 익힌다.
* 파스타를 덜 때 포크 두 개를 쓰면 편하다.
* 냄비는 미리 물에 담궈둬야 설거지하기 쉽다.
* 모양이 다른 파스타는 조리 시간이 다르다.
* 남은 것은 냉장보관 했다가 데워 먹는다. 바쁠 땐 전자렌지에 데워도 되지만 냄비에 오일 살짝 넣고 데우는 게 낫다.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8. 13. 05:53

피카사에 둥지 틀었삼

여기! -> http://picasaweb.google.com/seomirae

놀러오세요- 아직 70여장밖에 없긴 하지만 차차 (찍어서) 올릴 예정.
베타라 250MB까지밖에 안된다 하니 아껴서 올려야겠어요ㅡ.ㅡ;;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8. 6. 17:00

스톡홀름 정착기!

무사히 정착했어요! ^o^ 사실 스톡홀름에 온 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는데... 일주일의 일기를 몰아서 쓸 생각이었으나 처음부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버렸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일단 이건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의 짧고도 긴 이야기. 입니다.


출발 전날은 참 이상하게 실감이 안 났어요. 그냥 대전 기숙사로 떠나는 것 같은 기분. 공항에서 엄마랑 빠이빠이하고 들어가면서도 그냥 좀 커다랗고 날아다니는 버스 타고 기숙사 가는구나 싶었는데 ㅋㅋ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부터 실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빠다 냄새'랄까 하튼 이상한 냄새가 너무 나서요-_-;;; 사람 사는 데들도 다 이러면 어쩌나 과연 익숙해질까 걱정을 했더랬는데 다행히 그 공항이 유독 심했던 거 같아요. 으핫

형구씨(^^;) 얘기론 출국해서 기숙사 들어가기까지가 가장 힘들거라고 했었는데, 정말 힘들법한 여정이었는데 다행히 니클라스라는 스웨덴 친구 덕분에 무사히 기숙사에 입성을 했습니다. 지난 번에 우리 학교에서 열린 스웨덴 문화 설명회에서 본 친구예요. 제 기숙사가 1일부터 쓸 수 있는건데 제가 하루 전날 도착했거든요. 공항에 마중도 나와주고 아파트도 빌려주고 기숙사까지 짐도 날라주고 ;ㅁ; 하튼 짐이 무거워서 너무 미안했어요. 이민가방 25kg에 캐리어 8kg에 책가방 3kg였으니... 뭔 짐이 이렇게 많았는지 저도 모르겠슴다. 별거 없었는데 말예요!

하튼 아침 10시쯤 만나서 이사를 하기로 했는데... 몸은 피곤해 죽겠고 새벽 2시라 일찍 일어나기 힘든 상황인데 알람시계가 없지 뭡니까. 그땐 이상하게 노트북을 이용할 생각은 들지 않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물을 잔뜩 마시고 잤어요 으하하; 사실 1-2시간쯤만 자야할 때 가끔 애용하는 방법이거든요. ^^;; 근데 새벽 5시쯤에 비가 창문을 두들겨대는 통에 깨버렸습니다. 그때부터가 수면부족 일주일의 시작이었어요;ㅁ;

그렇게 무사히 아침에 일어나서 스튜던트 센터에 들러 키를 받고, 공짜 SIM카드도 받고, 공짜 맥주 쿠폰;도 받고, 가방 질질질 끌면서 기숙사에 당도했습니다!  어디냐면, Lappis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다 알아요.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멋진 기숙사예요. 주소는 Forskarbacken 05-240, S-104 55 Stockholm, Sweden. 자자 받아적으시고... 컵라면 같은거 보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호호^^;;

짐만 후닥닥 내려놓고, 스웨덴에서의 첫 번째 식사를 한 후! (맛있었어용 ㅋㅋ 내가 왜 사진을 안 찍었을꼬) 곧장 감라스탄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알란다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그때까지도 시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길도 하나도 기억할 수 없었고, 그냥 거리와 건물들과 사람들을 보면서 얼빠져 있었던 기억만 납니다. 정말 너무 멋지잖아. 내가 정말 여기에 와 있는 거 맞아? 그렇습니다 촌티 팍팍 났을겁니다-_- 계속 두리번두리번 감탄사연발 눈끔벅끔벅... 니클라스가 스웨덴에 대해서, 또 그 감라스탄 거리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들려줬는데 기억을 못하는게 몹시몹시 유감이예요!

그리하여 해는 저물어가.....진 않고 여전히 중천에 떠 있었고(고위도 지방이라니까요) 저는 스튜던트 유니언에서 주최하는 밍글 파티!에 갔습니다. 공짜 맥주 한 잔을 받아들고 처음엔 먹먹했지만 한 명씩 말을 걸어 나갔어요. 맨 처음 인사한 너댓 명의 친구들. 너희 모두 아는 사이야? 라고 물으니 방금 알게 된 사이래요. 그때부터 용기를 냈어요^^; 그렇구나, 여기선 어차피 다들 처음 보는 사이인거잖아. 안녕? 어디서 왔니? 로 시작해서 조금씩 말을 붙여가는 사이에 어느 새 백 명도 넘는 학생들이 펍에 모여 와글와글 떠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말 멋졌어요. 내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한꺼번에 만날 일이 내 평생에 얼마나 있을까... 어디선가 감동의 BGM이 들려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비가 내린 직후라 몹시 추웠습니다. '젠장... 가을이잖아...'를 다시 한번 되뇌이며;ㅁ; 변덕스럽다는 스웨덴의 날씨를 첫날부터 체험한 셈이예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고 있는데 한 싱가포르 친구가 제 가방을 빌려줍니다. 이거라도 앞쪽으로 메고 있으면 좀 따뜻하지 않겠느냐고-_-;;; 쪽팔렸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저는 날씨가 추우면 괜시리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때도 살짝 그럴뻔 했습니다만 무사히 이겨냈습니다. 저는 강한 여자라니까요!! (뭐 어째;)


여기까지가 31일부터 1일까지의 짧고도 긴 이야기의 끝. 그 다음 얘기는 다음에 하지요. 일기를 쓸 거면 제발 제때제때 써야겠슴다 이제 겨우 이틀 분을 쓴거라니요;;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7. 28. 22:43

출국 3일전

아 오랜만에 뽀스팅. 몇 달 동안의 근황을 한 번에 요약해보겠습니다-_-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들었던 회사 첫눈을 떠나 스웨덴 KTH로 교환학생 갑니다.
회사 처음 갈 때처럼 설레는 기분이예요^^;; 월요일마다 '이번 한 주도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던 그때 그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즐겁게 살아보렵니다.. 꿋꿋하게 살겠어요~!! ^^;

올 상반기는 첫눈에서

하반기는 KTH에서;;


현재 준비상황 기록.

1. 비자(100% 완료): 오늘 비자 받았어용. 아휴 아슬아슬;; 어쨌든 다행이예요. 6월초에 신청을 했으니 근 두 달이 걸렸네요.

2. 짐싸기(50% 완료): 위탁수하물 20kg 기내수하물 8kg라는데 큰일났슴다. 이민가방만 4kg... 여행가이드북이고 뭐고 얄짤없군요;ㅁ; 스프링노트도 빼게 생겼어요. 내일은 거기 친구들 줄 선물을 살 텐데 최대한 가벼운 걸로 장만해야겠습니다;;

3. 환전(100% 완료): 외환은행에서 환전클럽 미리 가입하면 손쉽게 수수료 할인받을 수 있는데, 귀찮아서 그냥 갔더랬습니다;; 그런데 국제학생증(ISIC) 내미니까 할인되더라구요^o^ 일단 발급비는 건지고 갑니다 오호호;;

4. 항공권(100% 완료): 루프트한자 1년 오픈. 5월 말에 예매할 당시에는 다른 거에 비해 비싼 편이어서 번뇌-_-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가장 싼 항공권이 그 정도 하네요. 미리 예매하는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음.

5. 각종 행정 처리(80% 완료): 휴학중이었으니 과사에 복학신청부터. 미휴학파견신청서 내고, 국제협력처에 서약서 내고, 지원금도 받았고요. 이제 등록금(우리학교) 처리하고 도착신고서 내는 일이 남았네요.


이러저러한 일들이 적당히 마무리되어가고, 이제 다음주 월요일에 출국합니다!! 꺄~~~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5. 14. 12:19

스타워즈 한국순회전?!

STARWARS Science & Art



http://www.starwarskorea.com/
오예~! 만쉐이~!
7월에 부산 떠야겠슴다. ㅎㅎㅎㅎㅎ 같이 가실 분? (없으면 또 지난 패닉 콘섯처럼 혼자 가야 ㅡㅜ)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5. 6. 02:11

삶 자체가 바쁠 수 있는

매일같이 블로그 같은데에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은 대단하다고도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그리 좋아보이질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기술해내는 데 들이는 공만큼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일까 생각하면 의문이 들어서. 이건 블로그에 한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말과 행동'에 대한 생각.

아니 물론, 자기 삶을 기록하는 것에나 남에게 전달하는 것에나 아무튼 무엇에든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부분에서도 역시 의욕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내실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말보다는 행동이, 기술보다는 영위 그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아도 가능할까 말까한 일이란 말이다. 자기 삶을 기록으로 잘 남기면서도 그 생활 자체도 꽉꽉 영글어 있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그건 사실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말만 열심히 하면서 생활에 구멍이 숭숭뚫린 사람들도 생길 수 밖에 없는 거고.......
난 그런 게 너무 싫어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거다.

말과 생각만 넘쳐나고 무언가 실제적인 행동은 할 수 없었던 상황이 갑갑했었다.
삶 자체를 제대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바쁠 수 있는 지금 상태가 난 맘에 든다.







@ 그러니까 그게..... 몸만 좀 따라주면 말이지요. 흑흑 ;ㅁ;
끄적이기/일상 | Posted by Mirae 2006. 4. 10. 03:47

스킨 변경에 관한 설문조사;;

약먹고(?) 하루종일 뻗어있다 하는 짓이란 게 이런 겁니다. 쿨럭쿨럭

오시는 분들 부디 투표해주세요-_- 저는 한 시간째 번민중;;


기호 1번.
컨셉은 "삐뚤어질테다!!"
일부러 불협화음 물씬 느껴지는 색깔을 고르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어긋나보여서 난감; '색깔 못 쓰는 애가 만들었나' 싶을 거 같기도 함-_- (틀린 말 아니라고요? 흑흑;;)


기호 2번.
컨셉은 "사람들 눈 괴롭히지 말고 친절하게 살자"
멀쩡하게 잘 쓰고 있던 스킨이 갑자기 참을 수 없이 따분해보여서 갈아엎는 거 치곤 너무 얌전해서 또 망설이는 중.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거라 생각되긴 함.


지금은 1번도 2번도 아니고 애매한 상태.
자자 주저말고 투표해주세요~ 쥔장의 쓸데없는 고민을 덜어줍시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