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너머 | Posted by Mirae 2008. 11. 2. 07:23

일상다반사@구글

# 스트리트뷰 론치기념 파티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 밀리웨이에 갔다. 평소에도 밀리웨이의 식사는 언제나 훌륭했지만, 그날따라 도가 지나칠 정도로 메뉴가 으리번쩍한 것이 아닌가. 번쩍거리는 디저트들 옆에 푯말이 붙어있었다. '스트리트뷰 파리 론치 기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스트리트뷰 영상과 함께 프랑스 음악이 흘렀다.
에릭이 불평아닌 불평을 했다. "이거 참, 나는 그저 점심을 먹고 싶었을 뿐이라고!"

# 미국에는 버팔로가 없어
자기가 미국인인지 영국인인지 독일인인지 헷갈려하는 마틴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에는 진짜 버팔로가 없다. 버팔로라는게 뭔지 잘 몰랐던 미국인들이 엉뚱한 동물을 버팔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동물이 미국 전역에 퍼져서 잘 서식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건 진짜 버팔로가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에는 진짜 버팔로 모짜렐라도 없다. 스위스에도 버팔로가 자라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버팔로 모짜렐라는 진품이라면 모두 이탈리아산이다.
나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기분으로 흘려들으며 구운 치즈를 맛있게 먹었다.

# 10만원
처음 이주해와서 가구 사다 조립하고 나름대로 독립심과 자주심과 자긍심을 쌓아가던 차에, 결국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다. 파이프 형태로 된 옷장을 샀는데, 이걸 설치하려면 천장을 드릴로 뚫어야 했던 것. 결국 가구점에 전화를 해서 10만원짜리 가구조립 서비스를 신청했다. 이 얘기를 했더니 전형적인 러시아 군인 체격의 드미트리가 잔뜩 핀잔을 주었다.
"날 부르지 그랬어. 10만원이면 사람도 하나 죽일 수 있는데." -_-

# 굳어진 단위 환산
다같이 카누를 타러 가기로 하고 가격을 알아봤다.
"얼마래?"
"한 사람 반."

# 본토 영어
어느날 앨런이 내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말을 했다.
"#&%^@#$Y&#%^&#&*$^&@$@"
"뭐라고?"
"아, 신경쓰지 마." 그리고 그는 다시 뚜벅뚜벅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본토 영어 2
어느날 앨런이 내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광속으로 말을 했다.
"이게 @#!@#$한데 말이야 @$%@^&@$하고 @#&#한데 어떻게 &*&#$%#할 수가 있지?"
나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네 말이) 이해가 안 되는데."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이 현상이) 이해가 안 돼."
그리고 그는 다시 뚜벅뚜벅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본토 영어, 그러나 오레곤 사투리
팀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던 중 각 나라의 상징 동물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유럽 나라들 대부분이 독수리여서, 자기 나라는 황금색 볏이네, 자기 나라는 머리가 셋이네, 이런 시덥잖은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말해줬다. "한국의 상징은 타이거예요. 지도가 호랑이처럼 생겼거든요."
명색이 지도검색팀인지라 사람들이 다들 한반도 모양은 알고 있어서, 어떻게 호랑이가 이 모양에 매치되는지를 내게 묻고 있었다. 가만히 있던 앨런이 한참 뒤에 말했다. "티거 말하는거야?"

# L 발음은 어려워
어느날 내가 앨런의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말을 했다.
"그래서 월드 빌드에서는 이러이러한 것과 이러이러한 것을 추출하고 있는데..."
그가 골똘히 생각해보곤 말했다. "아, 월드 말하는거구나."

# 친밀한 남미인
종종 다른 오피스에서 우리 팀을 방문하면,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나름대로 상냥하게 대접하려 노력한다. 어느날 남미풍의 이국적인 손님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예요."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예요."
각자 소개를 하며 악수를 하는데, 이 손님이 디에나에게만 손에 키스를 했다. 디에나가 약간 당황하며 재빨리 수습했다. "아 정말 친밀하시네요."

# 뉴질랜드 영어, 영국 영어, 미국 영어
어떤 미지의 아저씨가 우리 팀에 뚜벅뚜벅 걸어와서 물었다.
"...그래서 이 브런치에서 이러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브런치에서는..."
앨런이 미지의 아저씨의 말을 중단했다. "잠깐만. 브런치가 뭐야?"
미지의 아저씨: "브런치."
알렉스: "브란치."
앨런: "아, 브랜치."
미지의 아저씨: "브런치."
알렉스: "브란치."
앨런: "브랜치!"
미지의 아저씨: "도대체 키위한테 뭘 바라는 거야?"
그리고 셋은 어쨌든 '브런치'로 통일을 하고 평화롭게 대화를 계속했다. 괴로운건 나뿐이었다.
.........어떡해 계속 '브런치'만 들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섬세한 취미
내 멘토이자 책상 이웃인 알렉스는 매우 점잖은 영국 사람이며 한국인 부인을 두고 있다. 헌데 어느날 그가 팝에게 유리상자를 보여주며 뭔가 부탁을 하고 있었다. 개미가 든 유리상자였다.
"개미를 키우세요?"
그러자 그는 이 개미는 독일에서 수입해 온 것이며, 혈통있는 개에 보증서가 있듯이 이 개미도 보증서가 딸려 있으며, 본인 자신도 개미를 키우기 위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설명해줬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부인도 아세요?"

# 매니저
내 매니저인 팝 역시 매우 점잖은 프랑스 사람이다. 구글의 지오코딩은 이 사람을 믿고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막중한 책임을 떠맡고 있으며 광범위한 지식과 초인적인 업무량과 그에 비례해 테이블 위에 첩첩이 쌓인 커피잔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람. 그런 팝이, 알렉스의 휴가기간 동안 며칠에 한 번씩 그의 개미상자를 들여다보며 세심하게 꿀 한 방울과 물 두 방울씩을 줬다.
아, 나는 내가 정녕 훌륭한 회사에 다니고 있구나, 감동할 지경이었다.

# 돕고 산다
원격 화상회의가 있었다. 시간은 이미 늦은 저녁 8시, 팝과 앨런과 나 셋만 남았다. 너댓 군데 오피스에 화상회의가 연결되고, 여러 질의응답이 오가고, 결정의 순간에 그들이 내게 물었다. "@#$!#$%@#$^@$%"
나는 옆에 있던 앨런에게 되물었다. "질문이 뭐였어?" "추가적인 트래픽이 필요하냐고."
덕분에 나는 침착하게 대답을 하고 회의가 끝났다. 나보다 팝이 더 기뻐했다.

# 빔의 아버지를 만나다
누글러 트레이닝을 받던 첫 주. 자기소개도 없이 불쑥 강연을 시작했던 이 사람이 바로 빔의 아버지, 브람 물레나였다는 것이 강연 후에 밝혀졌다. 나는 중1때 가수 이적을 처음 실물로 접했을 때만큼이나 광분했다...!
"당신이 진짜 '그' 브람이예요?"
브람이 웃었다. "'그' 브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브람 맞아요."
다른 누글러 친구들이 뻘쭘해하는 가운데 나는 그와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았다.
'Happy Vimming! - Bram Moolenaar'

# 그런데
정작 브람 본인은 요즘 이클립스를 쓴다고 한다.

# 두들의 아버지를 만나다
여느 때처럼 밀리웨이에서 감동의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익숙한 얼굴이 휙 지나갔다. 나는 다시 광분했다.
"방금 데니스 황이 지나갔어!"
"그게 누군데?"
"잠만 그거 대답해 줄 시간 없어.. 아 어떻게 가서 말을 걸지 $@^@#$ 어흑 사라졌어"
그리고 나는 라이브러리로 쫓아가서 그에게 수줍은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는 그의 일정이 너무 바빠보여 차마 브람 때처럼 싸인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 격식있는 한국어
두들의 아버지 황정목씨와의 조우 후, 피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 우리가 아까 옆에서 웃은 이유는 말이지."
"니네 웃고 있었어? 몰랐네."
"옆에 있던 한국분이 우리한테 통역을 해 줬는데, 네가 굉장히 격식을 갖춘 한국어로 점잖게 말하고 있다고 해서."

# 재색겸비
스페인 사람 루재가 자신의 친구인 한국 여자분을 데리고 불쑥 내 책상으로 찾아왔다. 마침 포니테일을 질끈 묶고 뿔테 안경을 쓰고 8단으로 나눈 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를 보고 그 친구분이 말했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젊은 여자분이 구글에서 일을 하시네요."
"네 뭐, 전산 전공이거든요."
"세상에 공대 출신이신데 영어도 어쩜 잘하시고.."
"미모도 겸비했다는 말도 덧붙여주세요." ^^ 그분의 벙찐 표정이 생각난다.

# 금색 하이힐
내 책상 이웃인 스웨덴 사람 요한이 인천국제공항에 잠시 들렀던 경험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 김치라는 것도 맛을 봤는데 말이죠. 솔직히 맛이 정말 끔찍했는데, 우리를 안내했던 한국 여자는 김치가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거예요."
"네 한국 사람들은 김치 덕분에 사스도 피해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그 여자도 사스 얘기를 하더라니까요!"
그리고 그가 중요하다는 듯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를 안내했던 한국 여자가, 엄청나게도 차려입었었는데, 하이힐이 금색이었어요!"
...어쩐지 나랑 마주앉아 얘기할 때마다 내 구두를 쳐다보더라니 싶었다.

# 더이상 놀랍지 않아
요한이 다른 오피스에 출장을 다녀왔다. 알렉스가 물었다.
"어땠어요?"
"뭐 그럭저럭. 걔네 오피스도 좋던데요. 아 수영장이 있어요."
"괜찮네요."
"그죠."

# 번뜩이는 광고 재치
취리히의 어느 지역신문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안녕 구글 취리히! 근사한 휴게실도 갓 짠 신선한 쥬스도 스페이스 캡슐도 잠시만 잊어보세요. 한밤의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가 보다 극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팀웍을 고양시킬테니까. 분장실도 구경시켜줄게!!”
아니 이렇게까지 오라는데 못 갈 이유가 있나. 우리는  카피라이터의 재치에 감탄을 거듭하며 단체로 즐겁게 잘 보고 왔다.

# 새 인스턴스 (주: 워낙 구글 특화된 용어들이라 대충 비슷한 용어로 대체)
제프리의 아들 출산 소식이 이메일로 날아들었다.
"어제 저와 제 아내가 두 번째 인스턴스를 성공적으로 론치했습니다. 첫 번째 인스턴스보다 더 적은 자원을 사용하는군요. 서버 상태 양호. QPS는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팝이 재빨리 답장을 달았다. "오 축하합니다! 모니터링 그래프를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프리의 귀여운 아들의 인증샷이 따라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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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제 블로그에서 구글과 검색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피력하는 이야기를 기대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앞으로도 그런 글은 올라오지 않을 예정입니다. ㅋㅋㅋㅋㅋ 그런 것은 공식 블로그에서 찾으시고. 저 자신도 얼마나 회사의 요모저모가 어썸리 어썸한지 자랑하고 싶지만, 제 수다는 여기서 일어나는 일상다반사만 얘기해도 바닥이 날 것 같지 않으니까요. ^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