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무언가 정리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책상 위의 먼지를 털고 서랍을 정돈하는 모양이지만 나처럼 컴퓨터와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은 하드디스크를 정리한다. 종이보다는 워드프로세서를 좋아했던 탓에 초등학교 때 보낸 메일이라던가, 중학교 때 세운 방학계획 등의 사소한 것들이 참 많이도 쌓여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온갖 소소한 감정들을 일일이 누군가와 공유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꼭 특별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감정에는 어느 정도 기복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미미한 변화까지 보여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타인인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도 있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졌다고 느낄 때, 짤막한 글을 남김으로써 가라앉은 감정의 앙금을 조금 비워내는 것이다.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며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그렇게 차곡차곡 써내려간 수백 편의 글이다. 시간이 흐르며 기억 속에서 빛이 바랜 감정의 파편들을 후일에 돌아보는 것은 묘한 느낌을 준다. 때로는 숨을 몰아쉬며 올라왔던 가파른 길을 내려다보는 듯한 아찔함과, 결코 쉽지 않았던 시간을 잘 이겨냈다는 안도감 같은 것들이 교차한다.
  물론 지난 2년은 나에게 다시없을 소중한 시간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회고하며 느끼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은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 오래가지 않을 감상에 젖어 추억이란 이름을 붙이려니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나 자신을 기만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떠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래도 교정의 구석구석을 볼 때마다, 그곳에 서린 갖가지 사연들을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슬퍼진다. 이곳에서 함께 했던 2년이라는 시간이, 가끔은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난 또다시 하드디스크를 뒤적이게 될 것이다. 잠시 동안이라도 그때 그 시각에 내가 가졌던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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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에 내려고 썼는데 늦게 내는 바람에 결국 실리지 못하게 된 글입니다. 세 시간을 쏟아부어 썼는데 아쉬워서 올리게됐네요. ^^;
아 그리고... 이 글의 전신은 예전에 올렸던 <defrag>입니다. 물론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_^